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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무드다!(창 32:9~20)2016년 6월 26일 민족화해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06.25 11:12

*영상설교: youtu.be/zVE9sP9xn3o

 

1. 6.25 한국전쟁

1) 한국전쟁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대 소련/중국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을 벌인  첫 번째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을 통해 20세기 후반기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체제가 형성되었다. 한반도의 남북한 대치 상황이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의 체제를 구성하는 특징이 된 것이다.

2) 모든 전쟁은 잔인하지만 한국전쟁은 아주 잔혹한 전쟁이었고 그 만큼 전쟁의 상처도 컸다.

1950년 6월에 시작하여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치열하게 전개되어 남북한의 전선이 계속해서 변경되었다. 처음에 38선으로 반반씩 차지하던 전선이 어떤 때는 거의 남쪽 끝까지 밀려 내려가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북쪽 끝까지 밀고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1년 5월부터 1953년 7월의 정전협정까지 2년 동안은 거의 처음 38선 부근에서 형성된 전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지루한 전쟁을 벌이다가 휴전에 이른 것이다.

낭독 : 최민경 통일부장

6.25에 대한 고전 ‘한국전쟁의 기원’은 이렇게 시작한다.

실제 3년 동안의 한국 전쟁으로 남한은 사망, 실종, 부상자가 거의 200만 명, 북한은 330만 명, 미국은 14만 명, 중국은 37만 명이었다. 그 외 산업 시설의 80%가 파괴 되었고, 5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생겼다. 정말 민족의 대 비극이었다.

3) 이런 끔찍한 전쟁은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2013년 서울신문이 고교생들에게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설문 조사를 했더니 69%가 북침이라고 답했다 보도했다. 그 신문은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위기의 한국사 교육] 고교생 69% “한국전쟁은 북침”…무너지는 우리 청소년 역사인식.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문제”라 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다.
그런데 이런 설문 조사는 북침이란 용어가 북한이 침략했다는 뜻인지 북한을 침략했다는 뜻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채로 물어서 학생들이 혼동스러워 했다고 한다. 역사 인식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단어 뜻이 헷갈려서 잘못 대답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단어의 뜻을 잘 설명하지 않은 채로 설문조사한 언론사의 잘못인데 엉뚱하게 현재 학생들이 좌 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배워서 그런 것이라고 우기면서 교과서 국정화의 논리로 사용했다.

정말 6.25는 북침일까, 남침일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북한의 김일성이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남한의 모든 국민이 다 자고 있을 때 기습적으로 남침했다고 배워왔다. 6.25는 분명 북한이 남한으로 쳐내려 와서 시작된 전쟁으로서 남침이다.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1981). 표지 그림은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1951년).

그런데 1981년 한국전쟁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라는 학자가 1970년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미국의 전쟁 기록물을 처음으로 열람하고 10년 동안 연구, 분석하여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한국 사회와 역사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의 결론은 6.25는 북한 김일성이 남한으로 침략한 것은 맞지만, 1945년 8월부터 1950년 6월까지 남과 북은 크고 작은 충돌을 이어갔었고, 남한도 먼저 북으로 쳐들어가 통일하자는 북진통일을 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남한의 구호는 북진통일이었다.

북진통일은 깃발 들고 평화시위로 하는가? 결국 북한을 침략하여 통일하자는 것이 당시의 주장이었다. 또 6.25 발발 1주일 전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대사인 덜레스가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도 남한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필요가 있고 미국은 우리를 도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했다는 문서가 있다고 한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벌어지던 상황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두 전쟁을 통해서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다는 것이다. 다만 김일성은 남한 침략에 대해 소련과 중국의 허락을 받아냈고 이승만은 북한을 침략하려는 허락을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했던 것뿐이기에, 사실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었지만, 사실 전쟁은 그 이전부터 남과 북 모두가 일으키고 부채질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1950년 6월 25일보다도 그 이전 5년 동안 남과 북의 분위기가 어떠했느냐 하는 것이다. 해방 후 5년 동안 남과 북은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려고 대립하고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켜 이미 전쟁 상태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끔찍한 6.25 전쟁의 모든 책임을 북한에만 전가하고 마치 남한과 미국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평화주의자로 자처하는 것은 향후 남북 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내용, 1950년 6월 25일 남한은 전혀 전쟁할 준비도 안했고 전쟁할 의사도 없이 그냥 평화롭게 북한과 같이 살려고 했는데 갑자기 김일성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왔다는 식의 주장은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남한 이승만 정권도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진 것에 대해 전혀 책임 없지는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진지하게 결단해야 한다.

2. 야곱과 에서의 기적 같은 화해

1) 에서와 야곱의 갈등과 화해는 개인과 집단의 평화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예시다.

지금부터 4천 년 전 고대 근동 사회에서 장자권과 축복권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이 모든 권한은 태어나면서부터 첫째가 소유하는 것으로 결정되기에 인위적으로 변경할 수가 없다. 그런데 쌍둥이 형제인 에서와 야곱에게서는 결과적으로 변경될 수 없는 것이 뒤바뀌었다. 이런 결과는 물론 에서의 잘못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을 속이고 중요한 권한을 빼앗은 야곱의 행위가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기고 아버지 이삭에게 별미를 해 드리고 축복을 받는 것도 야곱의 속임수에 빼앗긴 에서는 평생 복수를 꿈꾸며 살았다.

이를 눈치 챈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피해 멀리 외삼촌네로 피신해서 20년을 살았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살 수 없는 형편이 되었고, 이제는 어찌되든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에서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20년 만의 쌍둥이 형제의 해후는 기쁨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복수와 살육으로 끝장날 것이었다.

2) 그러나 철천지원수의 만남은 어떤 복수도 없이 눈물과 감동의 도가니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우리가 지난 60여 년 동안, 더구나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원수가 되고 있는 남북한의 화해를 위해서 우리는 에서와 야곱이 이룬 평화의 기적을 아주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루벤스, '에서와 야곱의 화해'(1624년경, 42.5*40cm, 스코틀랜드).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는 이미 군사 4백 명을 데리고 복수를 벼르고 있었다. 이 첩보를 들은 야곱은 가슴 깊이에서부터 하얗게 질렸을 것이다. 이제 외삼촌에게 되돌아갈 수도 없고 식구들을 그냥 길거리에 머무르게 할 수도 없다. 죽으나 사나 에서에게로 가야 한다. 그런데 에서는 칼을 갈고 있다. 자기 혼자서 벌 받는 것도 두렵지만 4명의 아내와 그로부터 출생한 11명의 아들들을 포함하여 모든 식객들이 죽임당할 수 있는 최악의 현실이 눈 앞에 기다리고 있다. 이 죽음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3) 인생과 역사의 절체절명 위기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11절).

이 놀라운 기적의 첫 번째 이유는 야곱이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이다. 기도가 답이다. 기도는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 작용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장 총회 주관 100차 평화기도회 (2016.4.25)

주민교회는 매주 수요기도회마다 평화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기장 교단은 매주 월요일마다 평화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전쟁의 참화를 피하고 평화를 주시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분쟁과 갈등 국면에서 극적인 평화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 속에서 인간적인 방식으로도 실현되어야 한다. 오늘은 기도와 함께 야곱이 형 에서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실행한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평화를 이루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었다.

3. 평화의 요소, 무드(Mood)

1) 야곱의 평화 방법 : 기도하고 먼저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라!
야곱은 오늘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그냥 무조건 간 것이 아니라 또 나름대로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우선 야곱은 에서를 위해 좋은 선물을 많이 마련했다. 양, 염소, 소, 나귀 등 고대 사회에서 최고의 선물을 여럿 준비하여 자기보다 앞서서 보냈다. 물론 그것으로 단번에 20년의 감정이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선물을 가지고 자기보다 앞서 가서 에서를 만나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하고 있다.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17~18)

야곱은 형 에서를 가리켜 자신의 주인이라고 높이고 자기는 하인과 같다고 철저하게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그런다고 형 에서의 오래된 분노가 사그라질지는 알 수 없지만 야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미리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평화란 바로 이러한 분위기의 마지막 결과다. 계속 갈등하고 대립하고 으르렁거리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웃고 즐기고 얼싸안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가능하지 않다. 분위기, 무드가 중요한 것이다.

2) 무드

모든 것이 분위기가 중요하다. 오늘 예배에 지지난주와 지난주에 결혼한 두 커플이 있다. 이들이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반드시 무드를 잘 만들어야 한다.

청혼할 때도 부드러운 사랑의 언어와 달콤한 식사와 차, 그리고 영화도 보고 이러면서 청혼을 해야지, 어색하고 딱딱한 말들이 오가다가 갑자기 청혼하면 퇴짜 맞기 십상이다. 또 결혼해서도 집에 오면 음악도 있고 촛불도 좀 켜고 꽃향기도 나고 옷도 좀 야시시한 것으로 입고 그래야 신혼 분위기가 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결혼도 실감이 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직장과 가정의 분위기가 차이가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교회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신앙생활하기에 순간순간 위기가 많다.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사람들 관계를 갈라놓아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는 교인이 있으면 교회가 행복해지기 어렵다. 정말 좋은 교인은 교회 분위기를 화평과 사랑과 헌신의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 분위기 메이커가 좋은 교인이다. 이런 분위기 메이커가 많은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미래가 있는 교회다.

3) 끔찍한 한국 전쟁도 해방된 1945년 8월부터 1950년 6월까지 이미 여러 번에 걸쳐서 남과 북은 서로 전쟁의 분위기를 만들다가 그것이 전면전인 6.25로 치닫게 된 것이다. 6.25는 남한과 북한이 평안하고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던 한반도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전쟁이 아니라 해방 후 5년 동안 지속된 남과 북의 대결과 갈등 무드의 불행한 결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통일을 위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정말 우리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남북 평화의 무드를 만들기 위해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한다. 우리가 못나서가 아니고 우리가 꼭 잘못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우리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한반도를 물려주기 위해 에서와 야곱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평화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에 이르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들이 자존심이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못하면 한국교회가 나서야 한다. 웬만한 것은 서로 자존심 세워주면서 이해하고, 결코 상대를 해치지 않겠다는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려울 때 남 모르게 돕고 격려하는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은 이러한 남북한의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다리였다. 금강산과 개성을 다시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남북 공동응원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wZcHqdxsj4

비정치 분야의 남북 체육교류도 다시 활성화시켜 남북의 하나 됨을 경험해야 한다. 우리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응원하던 감격을 기억하고 있다. 통일의 기억을 하나씩 확대해나가서 먼저 화해와 일치의 무드를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분위기가 전쟁의 갈등을 넘어 화해와 통일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끔찍한 한국 전쟁을 기억하면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화해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평화의 무드를 만든 야곱의 지혜를 실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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