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약눌(大辯若訥)도 같은 뜻입니다. 최고의 언변(言辯)은 마치 말을 더듬는 듯하다고 합니다. 눌(訥)은 말 더듬는다는 뜻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신뢰하게끔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화려한 언어를 동원하거나 청산유수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말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가 대변(大辯)임은 물론입니다. 왕필은 자기가 지어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己無所造).

뜻을 자기 그릇에 담아서 건네지 않고 상대방의 그릇에 담는 것입니다. 이단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더듬는다는 것은 말을 줄인다는 뜻입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언어는 작은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에 담으면 뜻이 작아지게 마련입니다. 기형도는 ‘소리의 뼈’가 ‘침묵’이라고 했습니다. 침묵이 훨씬 더 많은 말을 합니다. 노자 철학은 미학, 윤리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담론>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대변약눌은 노자의 <도덕경> 45장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크게 바른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마치 서툰 듯하며,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마치 어눌한 듯하다”에 나온다. 글쓰기 수업에서 간혹 생각나면 수강생과 함께 음미해보는 문구이다.

인생이모작 인문학 글쓰기의 수강생들은 애초 글을 쓰려고 모인 분들이 아니다. 미술, 음악, 건강, 역사, 고전 등을 배우는 과정에서 접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글쓰기를 주문했다. 그것을 해내기 위해 나는 서툰 말솜씨로 글은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재능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것은 사회적 억압이라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몇 분은 강의 시간에 글을 썼다. 그러고는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했다. 그분들의 얼굴은 경직되었고, 입술은 미동했다. 격한 체험의 순간이었다. 그분들의 글은 ‘나를 표현하는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낭독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뭔가를 해냈다는 눈빛을 내게 보내는데, 나도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가운데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분의 말을 기억했다. “내 평생 글을 처음 써봤어요.” 그분이 쓴 글은 세 문장이었다. 가장 큰 감동이었다.

김서정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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