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은 양명학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주자학은 지知와 행行을 선후관계로 놓습니다. 선지先知, 먼저 알고 후행後行, 나중에 행하는 구도입니다. 독서궁리讀書窮理, 즉 책을 읽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한다는 논리입니다. 양명학에서는 독서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 아닙니다. 지와 행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독서로 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통해서 삶의 현실 속에서 진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을 사상마련事上磨鍊이라고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연마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실천이 사상捨象된 리理와 양지良知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선지후행, 독서궁리와 같은 주자학 논리와는 전혀 다른 구도입니다.
왕양명의 강론에는 수백, 수천 명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임란 이후 무너진 신분 질서를 강화해야 하는 훈구 세력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양명학 사상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됩니다. 하곡은 양명학에 심취했고, 늦었지만 스스로 양명학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고 표표히 강화로 낙향합니다.

-<사대부의 시대>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에서 확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왕양명의 강론에는 수백, 수천 명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부럽다. 아니 시기와 질투가 솟는다. 나는 왜 매사가 잘 안 될까? 내가 주최하는 글쓰기 수업에 사람도 모이지 않고, 책 판매 부수도 저조하고, 강의 요청도 없고, 한마디로 존재 자체가 무용지물 같다. 그동안 억척스럽게 부여해온 삶의 의미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성찰의 글쓰기’ 6기에 한 분도 오지 않았다. 두 말할 필요 없이 모두 내 탓이다. 턱없이 부족한 내가 판을 벌린 것 자체가 잘못이다. 심층에서는 능멸과 조소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돈을 들고 나를 찾아오겠는가? 시간낭비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속칭 ‘잘된 일’이 내게는 없다. 그런데도 버텼지만, 뻔뻔함에도 이제 한계가 있다. 스스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을 따름이다.
텅 빈 강의실에서 나는 트립티 대표님과 라면을 끓여 막걸리를 마셨다. 글쓰기 자료가 뒹구는 책상에 깔아놓은 반찬을 안주 삼아 서로의 삶을 직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가 오고가며 우리는 서로를 공감했다. “왜 우리에게는 돈이 벌리지 않느냐고?” 그러면서도 대표님은 초연했다. 그러면 그런 대로 사는 것 아니냐고.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미안한 사람이 떠오른다. 내 몸이 살아있게 하는 그 사람. 내 존재는 무의미해도 미안한 사람에게 덜 미안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상마련事上磨鍊’에 충실한 하루가 되도록 해야겠다.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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