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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종교, 「힘」 (6)<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6.07.12 11:11

하느님의 역사란 실로 오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창조세계엔 큰놈과 작은놈이 크다, 작다 전혀 개의치 않고 공존하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큰놈이 작은놈을 섬기도록, 섬겨야만하도록, 섬기지 않으면 아니 되도록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자 같은 놈 호랑이 같은 놈, 멧돼지 곰 늑대 여우같은 놈들이 험산광야로 제 판(埸)을 삼고 내 달릴 듯한데, 그 통에 노루 같은 것, 다람쥐, 토끼 같은 것들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릴 듯한데, 그런데 되가는 것은 거꾸로니 어떠나? 막강들이야 말로 그 자취를 감추고 정말 별 볼일 없는(?) 것들은 온 산천을 휘젓고 다니니 말이다! 삼림의 세계 역시 다르지 않다. 하늘을 가리는 대산(大山)의 거목들, 아름드리들이 하늘을 가리어 갈 듯한데, 산천은 푸른 풀들로 수를 놓고 있으니…….

함석헌은 <民>을 풀로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밟아도 밟아도 사는 풀, 베어도 베어도 돋아나는 풀, 너는 무한의 노래 아니냐? 다 죽었다가도 봄만 오면 또 돋아나는 풀, 심은 이 없이 나는 풀, 너는 조물주의 명함 아니냐? 푸른 너를 먹고 소는 흰 젖을 내고 사람은 붉은 피가 뛰고, 소리도 없는 너를 먹고 꾀꼬리는 노래하고 사자는 부르짖고, 썩어진 물에서나 마른 모래밭에서나 다름없는 향기를 뿜어내니 너는 신비 아니냐?”

역사의 지향로선, 그 끝자리가 공존이라 했다. 과학이 어떤 신비스러움을 찾아내고 이루어 낸다 해도 ‘공존’이상은 없다. 천당도 낙원도 오직하나 공존의 처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공존의 구현에 가장 큰 장애가 무엇인지 아는가?

크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역사 구현에 ‘크다는 것’처럼 장애물이 없다. 이 공존의 구현에 가장 큰 자랑이 무엇인지 아는가? ‘작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과제가 있다. 작아지는 것, 작기를 힘쓰는 것이다. 이 작은 것으로, 작은 것으로만 하느님의 역사는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박정희의 무지(無知)의 총결산, 5.16 군사반란

‘공존의 구현에 있어 ’큰 것‘보다 더한 장애가 없고, 작다는 것보다 더한 행(幸)이 없다’는 이 공존의 역사관으로 볼 때 한국 현대사에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반역사적 사건이 박정희가 저지른 5.16 군사반란이다. 처음부터 그것은 칼 놀음 이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초유의 민주정부를 탱크와 완전무장한 반역도들을 앞세워 철저하게 유린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인도교를 넘은 반란군들에겐 오직 한 명(命)이 내려져 있었다. “어느 놈이거나 가로막는 놈은 밀어버려라”는. 

밀어붙이라.
깨부숴 버리라.
돌파해 버리라.

그 명령권자는 박정희였다. 그의 힘에 대한 확신은 한 국가 권력을 찬탈할 만큼 그를 이끌었다. <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다면 그의 현존이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범죄적인 것이었지만 시공 속에서 전개되는 현상들은 「뜻」을 묻는 것만은 아닌지라 어떤 이들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괴력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모사를 꾀한다 해도 그의 원초적 비리(原初的 非理)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군사반란에 참여한 장성들이 많았다. 그의 쿠데타에 참여한 다수의 장성들은 박정희로 하여금 쿠데타의 성공(?)에 대단한 확신을 갖게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쿠데타에 참여한 장성들은 하나같이 박정희와 만주 신경군관학교 동료거나 선후배 들이었다. 일군 출신 장교들이었다는 말이다. 

박정희란 그런 인물이었다. 일황 앞에, “일황폐하와 대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훌륭하게 죽겠습니다”하고 선서했던 무리들로 자신을 호위케 하는 사람이었다. 필자가 박정희의 쿠데타를 비난(!)함에 있어 그의 용서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그는 물론, 그의 일단들의 일군행적(日軍行績)을 겨냥하는 것은 결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입장에서가 아니다. 소위 ‘나라사랑’에서가 아니란 말이다. 내나라, 내 민족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 나라 내 조국을 왜 아껴야, 왜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이유는 하나,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되어야 한다는 세계적인 이상, 세계적인 사명 때문이다. 이 세계사명의 수행을 위해서 시종일관 우리가 속행해야 할 과제가 있다. 큰 것의 거부, 작은 것에의 관심(사랑)이다. 

일본은 이 거룩한 역사의 명을 거부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장악(掌握)을 위한 힘 휘두르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는 바로 그 일본의 충견이었다. “뜻으로 볼 때” 박정희는 일본철권 치하에서는 물론, 한국이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난 후에도, 특히 5.16 군사반란이후 그가 민주압살통치의 벌로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불안가(不安家)에서 그 비운의 죽음을 맞기까지 일본의 황군이었다. 

5.16이 무엇인가? 4.19의 부정 아닌가? 민주정치, 민주 정부의 부정 아닌가? 박정희의 군대(?)가 현실싸움에서는 이겼다 하자.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역사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분명한 그 지향 노선이 있다고 했다. 기독교의 말을 빌린다면 「하나님의 나라」요, 역사적인 표현으로는 공존의 자리, 전체의 자리다. 5.16이 사용한 것이 무엇인가? 칼이요, 총이요, 군 무리 아닌가? 박정희가 이끌고 한강교를 넘은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었다. 심야에 국가를 훔치기 위해 군대를 탈영한 무리들이었다. 5.16의 무리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법이 있었다. 

결국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죽여야 하는 대상은 적군이 아닌 아군이었다.

“가로막는 놈이 있으면 깨부숴 버려라”
“밀어 붙여라”
“돌파해 버리라”는.

어쨌든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한다. 그는 시세의 장악을 위해 장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등장시키고 자신의 군사행동에 대한 대통령의 추인을 받기위해 장도영과 함께 윤보선을 찾는다. 대통령의 예방에는 국방장관 현석호(玄錫虎)가 함께 했다. 

“대통령 각하, 저희들은 생명을 걸고 구국의 일념으로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만일 혁명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우리의 거사가 잘못이라면 자살로 사죄하겠습니다.” 대통령을 향한 박정희의 역설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알다가도 모를 이었다.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은 박정희의 거사에 문제를 제기하는데도 대통령은 박정희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결국 올 것이 온 것이외다. 다행스럽다고 까지야 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의 태도가 옳소. 나는 이 사람들의 혁명과업수행을 지지합니다…….”
“각하, 감사합니다. 각하의 승낙이 없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혁명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각하께서 이 문제까지 추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동시에 각 군참모총장, 사령관, 메그루터 주한미사령관에게도 각하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통령으로서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제의 분위기는 박정희의 요구대로 흐르고 있었다. 
“좋소이다. 그렇게 하겠소이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의 쿠데타는 완전히 성취되는듯했다. 5월 22일,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희의」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모든 정당사회단체를 해산한다. 그것은 마치전광석화와 같은 진행이었다. 말이 좋아 국가재건최고 회의이지 사실 그것은 박정희의 사유물이었다. 국가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고도 그는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박정희의 직함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회장, 좌장(?)은 장도영이었다. 
국방장관, 참모총장, 내각수반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자리까지 장도영이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박정희에 의한 완전한 허수아비였지만…….

한국, 박정희의 천하

그러나 박정희의 흉계는 계속되었다. 목숨을 걸고 이룩한 혁명(?)인데, 실권을 포기하겠는가? 어떤 박정희의 「실록」기자는 “장도영의 몰락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박정희-김종필 라인은 ‘사냥이 끝난 개’를 처리하기로 이미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기자까지도 사냥이 끝난 개라는 말을 따옴표(‘ ’)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냥이 끝난 개라는 말이 이미 그 이전부터 회자(膾炙)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힘을 가지면 자신의 힘만이 정당한 것이 된다. 

그 힘에 종속되지 않는 자는 제거해야한다. 그것이 모든 ‘힘’의 성격이다. 
「힘」을 종교로 하는 박정희는 더욱, 정말 그랬다.
박정희는 그 머릿속에 장도영제거를 위한 고도의 작전을 그리고 있었다. 

6월 3일 오전, 박정희는 「최고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여기서 이미 만들어놓은 비상조치법을 통과시킨다. 그것은 사실 임시헌법이라 말할 수 있는 막중한 규범이었음에도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최고회의 의장은 타직을 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도영이 노발대발했다. “사람을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 그대들이 나를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느냐.” 평소의 장도영이 아니었다. 표정도, 언동도 막된 것 같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박정희였다. 

“최고회의 의장이 내각 수반만은 겸직할 수 있도록 비상조치법을 수정토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한 지시였다. 
천하가 박정희에게 장악되었다는 것을 이처럼 명명하게 보여줄 수 없는 그런 장면의 연출이었다. 이제 박정희의 최고회의는 그야말로 한 정글이 되어간다. <야수의 정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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