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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악착같이 살지는 말자!(레위기 19:9~10)2016년 7월 17일 성령강림열번째 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07.15 13:36

*영상설교: youtu.be/Vp_jdpAh_Hw

 

■ 주간 단상 : 문신 없는 호날두

영국이 종주국인 축구는 유럽에서 종교와 같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일요일이면 정성껏 옷을 입고 교회가 아니라 축구장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축구의 양대 산맥인 유럽과 남미는 각각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중간에 4년마다 유로와 코파 아메리카라는 자기 대륙 국가들만 참여하는 축구 대항전을 연다. 전 유럽의 축구 제전인 유로 2016 프랑스가 지난 주간에 막을 내렸다.

올해는 개최국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결승에 올랐고,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우승을 더 많이 예견했다. 최근 10경기 동안 포르투갈이 프랑스를 이겨본 적이 없고 프랑스는 개최국 이점이 있는데다가 이번 대회에서 보여 준 경기력은 프랑스가 훨씬 앞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4시에 시작하니 보기 어렵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TV를 켜보니 연장전 0:0 이었는데, 포르투갈의 핵심선수인 호날두가 이미 전반전에 부상으로 교체되었으니 좀 지나면 프랑스가 이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TV 끄고 다른 일하다가 다시 틀어보니 결과는 반대로 포르투갈이 1:0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나 인생이나 참 의외성이 있다. 포르투갈의 핵심 선수가 못 뛰게 된 것이 오히려 나머지 선수들의 책임감을 상승시키고 이를 악물고 뛰어서 감격의 우승을 일궈냈다.

운동선수들은 몸이 보물이다. 몸이 곧 재산이고 수익원이고 광고물이다. 그래서 많은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자기 몸에다가 문신을 한다. 유명한 영국 축구 선수 베컴도 자기 아내, 아이들 등 온 몸에 문신을 했다. (나도 저런 문신 해볼까 생각 중이다).

호날두는 축구를 아주 잘하는데 어떤 때는 아주 얄밉게도 보이고 너무 잘난척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재수 없는 선수인 호날두는 몸에 문신을 하지 않은 선수로 유명하다. 골을 넣으면 웃옷을 벗고 조각 같은 복근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그가 다른 선수들이 하는 문신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호날두라는 건방져 보이는 선수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하게 만든다. 호날두는 오래 전부터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는데, 문신을 하면 6개월 이상 헌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헌혈을 계속하기 위해 문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1. 악착같다?

1) 악착같다는 말은 이를 악 물다는 뜻이다.

악착(齷齪)은 한자로 모두 이빨을 뜻하는 치(齒, 이치)자가 들어있다. 작은 이빨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꽉 다문다는 것이 악착이란 말의 원래 뜻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이를 악물고 해야 한다. 실제로 사람이 이를 악물면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집중력이 상승한다고 한다.

중국 고사에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있다. BC 496년 오(吳)나라의 왕 합려(闔閭)는 월(越)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월왕 구천(勾踐)에게 패하였다.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고 병상에 누운 합려는 죽기 전 그의 아들 부차(夫差)를 불러 복수를 유언으로 남겼다. 부차는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하였다.

부차는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겼다. 부차의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은 월나라 왕 구천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갔으나 대패하였고 오히려 월나라의 수도가 포위되고 말았다. 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회계산(會稽山)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견디지 못하고 오나라에 항복하였다. 포로가 된 구천과 신하 범려(范蠡)는 3년 동안 부차의 노복으로 일하는 등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었고 구천의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되었다. 그리고 월나라는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목숨만 겨우 건져 귀국하였다.

그는 돌아오자 잠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잊었느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이후 오나라 부차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북벌에만 신경을 쏟는 사이 구천은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를 생포하여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와신상담은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로 ‘회계지치’라고도 한다. (두산백과)

이렇게 이를 악 물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는 삶을 악착같다고 한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려면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2)악착같은 삶의 그늘 : 자기 파멸

권투 선수들은 입에다가 마우스피스를 끼고 시합을 한다. 요즘에는 농구, 야구 등 온 힘을 집중해야 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마우스피스를 끼고 시합하는 것을 자주 본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악착같은 삶에도 후유증이 있기 때문이다.

이규혁 선수.

이를 악 물면 호르몬이 분비되고 집중력도 상승되지만 이가 상하기 쉽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는 고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악물 때 딱 맞지 않는다. 그러면 어느 이는 힘을 덜 받지만 어느 이는 과중한 힘을 받아서 이가 쉽게 망가지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부드러운 것으로 만든 마우스피스를 꼭 끼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이가 고르지 않기 때문에 교정을 많이 한다. 치열이 고르지 않으면 이가 힘을 받는 곳이 차이가 나서 쉽게 망가지는 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착같은 삶은 목표를 성취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반면에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위험한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2. 악착같이 추수하지 말라!

1) 우리의 훈훈한 전통

백령도 가면 중화동이라는 곳이 있다. 중화동 교회는 1898년 우리나라 장로교 중 소래교회에 이어서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다.

이 교회와 함께 유명한 것은 중화동 고구마다. 중화동 고구마는 색깔은 진하지 않아서 맛없는 물고구마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맛있다. 내가 백령도 해병대 군목으로 근무하던 1991년에도 가을이 되면 군인 가족들이 마대 자루 하나씩 들고 중화동으로 고구마를 주우러 다녔다. 추수하던 사람들이 잔 고구마들을 많이 남겨 놓고 추수하였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과 군인들도 중화동 고구마를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섬의 90%가 기독교인이었던 것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오늘 본문 말씀을 실천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 아닌가 추측해 본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 뿐 아니라 미물인 까치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고자 했다. 그래서 홍시를 수확하면서 몇 개는 까치를 위해서 남겨두는 전례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가난했지만 미물인 까치와도 공존하려는 깊은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옛날에 목회자들이 심방 가면 가난한 교인들이 대접할 건 없고 달걀을 삶아서 정성껏 내 놓는다. 목회자는 교인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달걀을 좋아하든 안 하든 맛있게 먹어야 한다. 그래서 교인들 기분 좋으라고 내놓은 것 싹 다 먹고 가면, 심방 마치고 난 다음에 그 집 애들은 운다, 목사님이 자기네들 것 안 남기고 다 먹고 갔다고….
가난한 시절 이야기다.

2) 하나님의 법 정신 : 약자 보호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쨌든 추수를 하되 악착같이 하지는 말라고 엄명하신다.

“곡식 추수할 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고, 포도도 다 따지 말고, 떨어진 것도 줍지 말라.”
이유는 딱 하나다. 그래야 땅 없어서 농사 못 짓는 사람들도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율법의 근본정신은 그냥 놔두면 강한 자들에게 치여 살 수 없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3) 이삭 줍는 사람들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1857년, 83.8*111cm/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너른 벌판에서 한 해를 결산하는 추수가 한창이다.

높이 쌓은 곡식 낟가리와 거기서 마차에 옮겨 싣고 집으로 향하는 곡식 단 높이만큼 주인의 삶도 고양될 것이다.

오른쪽 뒤편 멀리서 말을 타고 추수 현장을 지켜보는 이가 주인인 것 같다.

보티첼리의 ‘봄’(부분) 미의 세 여신과 '이삭줍는 사람들'

그런데 화가는 인생의 성공자가 아니라 추수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겨우 떨어져 있는 이삭이나 줍는 가난한 세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화면의 전면에 내세웠다. 화가는 서양 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추앙받는 세 여신의 모양을 이 가난하고 얼굴 없는 하층 노동자들에게 덧입혀 놓았다.

빈곤이 흐르는 옷과 힘겨운 노동으로 검고 굵어진 손으로 마지막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의 밑바닥 삶을 신성하게 바라본 밀레에게서 거룩함이 묻어나온다. 너무 악착같이 살지는 말자. 내게 주신 은혜 중에 조금은 그냥 버려보자. 그래야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삶을 살아가는, 그러나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좀 살 수 있을 것이다. 악착같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이 시대에 이를 악 물고 이삭을 남겨두는 삶을 살아보자. 만인(萬人)의 하나님은 만인(萬人)의 생존과 행복을 염원하시기 때문이다.

3. 성령의 열매 절제, 악착같은 삶 극복

1) 악착같은 세상에서 악착같이 살지 않기의 어려움

버스가 섰다가 갑자기 출발하면 서 있던 승객은 몸이 뒤로 넘어가려 한다. 반대로 달리던 버스가 갑가지 멈추면 몸이 앞으로 쏠려 넘어지려고 한다. 버스가 서 있으면 우리 발도 그냥 멈춰 있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출발하면 발은 멈춰 있으려 하고 몸은 버스를 따라가니 몸이 뒤로 쏠려서 넘어지려고 한다. 반대로 달리는 버스에 타고 있으면 우리 몸은 계속 앞으로 달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버스가 서면 발은 서지만 몸은 계속 가려고 하니 몸이 앞으로 쏠린다.

운동하는 물체에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는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성질을 '관성'이라고 한다. 모든 물체는 그냥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뉴턴의 운동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이다.

물체뿐 아니라 사회에도 관성이 있다. 그 사회 구성체의 본질적인 성격이 있는데 우리가 사는 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근원적 성격은 자본(돈)이 중심인 사회다. 내가 회사로부터 존중받고 인정받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그만큼의 월급으로 표시되어야 마땅하다. 내 인격과 실력과 성실성은 100% 인정하는데 그것이 월급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옳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미 우리는 모든 관계와 평가가 돈에 의해서 계량되고 거래되는 것이 정착된 사회, 자본주의 구조에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지닌 중요한 특성은 돈은 한곳으로 모이려고 하는 성격이 있고, 한 곳에서 쌓이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집중성과 집적성이다.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한 곳에 모으고 쌓아놓아서 분산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사회 시스템, 골고루 분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회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리고 우리는 이처럼 이삭 한 알까지도 악착같이 한 곳으로 모으는 사회 구조를 그냥 유지하려는 관성을 지닌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내면적 탐욕과 악마적 사회 구조의 강고한 결합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너무나 뿌리 깊은, 그래서 원죄라고까지 표현하는 이기적 탐욕이 있는데 더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까지도 이삭까지도 악착같이 걷어 들이는 것이 마땅하고 관성에 따라 계속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늘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본래 내 내면도 탐욕적이고 내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도 탐욕을 극대화하는 현실에서 추수할 때 밭 끝까지 곡식을 거두어들이지 말고 이삭도 거두지 말고, 포도나 과일도 웬만큼은 남겨 두라는 말씀이 실효성이 없다. 그래서 엄격히 말하면 오늘 하나님 말씀은 무시되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이 무시되는 곳이 맞닥뜨릴 현실은 심판이요 파멸이다.

이를 악물고 사는 사람은 이가 다 상하듯이, 우리 사회가 모두 이를 악물고 살아간다면 생산은 늘고 재산을 늘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인생은 심각한 파손을 입는다. 그래서 이 충격을 조정하고 완충할 수 있는 마우스피스가 필요하다.

3) 악착같은 삶의 파멸을 보호할 마우스피스 – 성령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나열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그런데 얼핏 보면 이것도 성령의 열매에 속할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맨 끝에 언급한 절제다. 성령의 열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 당당히 절제가 들어있다. 절제도 성령이 주시는 소중한 열매라는 것이다.

우리가 내 속에 있는 악착같은 욕심과 우리가 살고 있는 맘모니즘 사회의 악착같은 탐욕을 넘어서서 진정한 구원의 삶을 누리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필수적이다. 성령만이 우리의 삶이 너무 악착같아져서 결국에는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너무 악착같이 살지는 말자. 이를 악물고 살면 호르몬이 분비되고 집중력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삶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불행으로 귀결된다.

성령강림절 열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탐욕을 절제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삶과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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