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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2)<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6.07.21 10:57

장준하가 다시 함석헌을 찾았다. 며칠 전 함석헌을 찾아 사상계가 박정희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담론한 끝에, 자신의 5.16에 대한 ‘불가피’한 입장을 표하면서 군사혁명의 지휘부에 ‘한 말씀’을 부탁드렸는데, 그 글이 탈고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자신이 직접 다시 찾아온 것이다.

원고를 받아 돌아오는 길, 장준하는 사(社)의 찦차 안에서 함석헌의 원고를 꺼냈다. 글의 제목이 「5.16을 어떻게 볼까?」였다. 그 담(膽)의 사람 장준하로서도 그것은 가히 논리가 아닌 천둥이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독설인데다, 아예 장준하가 말한 5.16 「혁명」이라는 걸 통체로 부정하는 글이었다. 그러나 장준하는 함석헌에게, “선생님, 이 글 못 싣겠습니다.”할 수가 없었다. 하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 였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청탁한 글인데다가 지난 수년간 사상계가 전개해온 「민주주의 신장운동」을 비롯, 문화계몽의 등뼈로 자라오는데 어떤 필자도 그 추종을 불허하는 후원자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이, 다른 하나는 5.16이 발발하던 당시와는 달리 쿠데타 이후 4,50일이 지나는 사이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 결코 정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들이 근거 있게 회자(膾炙)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랬다. 장준하는 맘을 착 가라앉히고 이후 야기 될 일들을 미리 그려보고 있었다. 드디어 함석헌이 쓴 “5.16을 어떻게 볼까”를 실은 사상계 7월호가 시중에 배포되었다. 

“한마디 하자.” 함석헌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마디 하자. 요새는 초면, 구면, 유식, 무식, 남, 녀, 노, 소 물을 것 없이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맨 먼저 하는 말이 ‘이번 일을 어떻게 보십니까?’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물음이다. 몸살만 조금 와도 소리를 줄곧 끊지 않고 내는 것이 사람이요, 똥을 한번 누어도 끙 깊으면서야 누는 것이 생명인데, 이것은 나라 전체가 몸살이 아니라 마마를 하고 있는 것이요, 민족의 늙은 어미가 똥이 아니라 새끼를 낳고 있는 것인데, 무슨 말이 있을리 없다. 앓는 소리, 갑는 소리, 그것이 곧 병을 쫓아내고 똥을 밀어내는 힘이다. 앓는 소리도 못하면 인제 죽는 사람이요, 끙 소리도 못하면 벌써 다 허탈 된 사람이다.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큰일 났지요?’ 

잘한다더라, 못한다더라,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흥분, 욕지거리, 그것은 다 군함을 뒤집어엎는 물결 위에 뜬 거품같이 혁명의 숨이요, 튀는 침방울이다. 그것 없이는 안된다. 거품과 소리 없는 물결 없다면, 떠도는 유언비어 없는 혁명도 없다. ‘난 인제 죽는다’, ‘이 배를 갈라주셔요.’ 하는 것이 어디 정말 아기가 싫어서 하는 말일까? 아기 어미의 앓는 소리가 듣기 싫거든 애당초 아가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소리도 내지 말라면 너무도 잔인 아닌가? 그것은 아기 아버지가 아니라 강간한 놈이다. 나오는 아기부터가 ‘으앙’ 하고 소리 지르고야 나온다. 소리 없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병혁(病革)이다. 병이 혁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죽음이다. 그런데 나 보기에 걱정은 이 혁명에 말이 없는 것이다. 말이 사실은 없지 않은데, 만나면 반드시 서로 묻는데, 신문이나 라디오에는 일체 이렇다는 소감, 비평이 없다. 언론인 다 죽었나? 죽였나?”

여기까지 함석헌의 원고를 읽고 난 장준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 사상계를 더 이상 정상적으로 운영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그러면서 꽉 이를 악문다.

함석헌의 그 글, 그 소리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인류사(人類史)에 있어 용서할 수 없는 범과는 칼을 쓰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박정희의 5.16을 그렇게 규정한 것이다. 함석헌은 박정희의 5.16은 ‘4.19’ 「민주혁명」을 반역한 것이라면서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때는 맨주먹으로 일어났다. 이번은 칼을 뽑았다. 그때 믿은 것은 정의의 법칙, 너와나 사이에 있는 양심의 권위, 도리였지만, 이번에 믿은 것은 총알과 화약이다. 그 만큼 낮다. 그때는 민중의 감격이 있었지만 이번은 민중의 감격은 없고 무표정이다. 묵인이다. 그때는 대낮에 내놓고 행진을 했지만 이번엔 밤중에 몰래 갑자기 됐다…….학생이 잎이라면 군인은 꽃이다. 꽃은 찬란하기가 잎과 비교할 수가 없다. 5월은 꽃달 아닌가. 5.16은 꽃 한번 핀 것이다. 꽃은 찬란하기가 잎과 비교할 수 없다. 저번은 젊은 목소리로 외쳤지만 이번은 총칼로 군악대로 행진을 했고 탱크로 행진을 했다. 그러나 잎은 영원히 길어야 하는 것이지만, 꽃은 활짝 피었다가는 깨끗이 뚝 떨어져야 한다. 화락능성실(和樂能成實)이다. 꽃은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 5.16은 빨리 그 사명을 다하고 잊혀 져야 한다.”

함석헌은 그러면서 ‘혁명은 민중의 것’, ‘민중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군인은 혁명 못한다는 것이다.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 혁명할 수 있다. 민중의 전적찬성, 전적참여 없는 혁명은 거짓이다. 그러므로 독재란 있을 수 없다. 민중의 의사를 무시하고 꾸미는 혁명은 아무리 성의로 했다 해도 참이 아니다. 또 민중의 의사를 모르고 하는 것이 자기네로서는 아무리 선이라 해도 그것이 성의는 아니다. 강아지를 아무리 잘 길러도 그것이 참 사랑 아니다…….민중을 내어놓고 꾸미는 혁명은 참 혁명이 아니다. 반드시 어느 때가서는 민중과 버그러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 즉 다시 말하면 지배자로서 본색을 나타내고야만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래 속였을수록 그 죄는 크고 그 해는 깊다. 그러므로 할 일을 다 한 후에는 곧 정권을 민간인에게 물려주고 본래의 자리로 물러 간다 선언한 것은 참 군인다운 말이다.”

함석헌은 특별히 힘을 주어 5.16 관계자들에게 ‘민중을 겁 먹이지 말 것’을 역설한다. 

“국민이 겁이 나게 해가지고는, 비겁한 국민 가지고는 다스리기는 쉬울지 몰라도 혁명은 못한다. 다스리기 쉽기로 한다면야 시체가 제일이지. 시체를 엎어다놓고 스스로 무슨 공이 있다할 사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공동묘지의 매장인부 아닌가?...칼을 든 것이 군인이 아니라 용기를 가진 것이 군인이다. 남을 말 못하게 하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어린아이도 능히 와서 맘대로 거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말 용기다. 용기는 무기 쥠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능히 버림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공산당의 선전 운운하는 그런 따위 맥 빠지고 속 빠진 바람개비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공산당과의 싸움이 무기내기, 꾀 내기, 거짓말내기, 사람 못살게 굴기 내기냐? 맘 성내기, 도덕내기, 믿음 내기, 정신 내기 아니냐? 그렇다. 믿는 자만이, 민중을 믿는 자 만이 이길 것이다. 믿음이라니, 믿음이 뭐냐?

그의 인격대접, 사람대접 아니냐? 사람됨이 어디 있느냐? 자유지, 자유에만 있다. 자유가 뭐냐? 정신의 맘대로 자람 아니냐? 정신이 어떻게 자라느냐? 말함으로만, 말 들음으로만 자란다. 

제 발이 5000년 아파도 아프단 소리를 못하고, 슬퍼도 목 놓아 울어보지 못한 이 민중을, 겨우 해방이 되려는 민중을 또 다시 입에 굴레를 씌우지 마라. 정신에 이상이 생겼거든, 지랄이라도 맘대로 하게해야 할 것이다. 4.19 이후에 처음으로 조금 열렸던 입을 또 막아? 언론자유니, 남북협상이니 소리 나오더라도 성급한 소리마라. 그 원인이 거기 있는 것 아니다. 옅은 수작마라……. “

장준하로 결정적인 결심을 하게 한 것은 함석헌의 그 맺음자리의 글이었다. 다시 신속한 원대복귀, 정권이양을 촉구하는 글로.

“...될수록 신속히 해야 한다. 마취해 놓고 시간 길게 가면 회생 못하고 말지 않나? 얼른 하고 물러나서 부모에게 내주어야지. 지금 민중이 군사혁명(?) 당하고도 어리둥절하고 말도 못하는 것은 총소리에 마취당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자주 생각나는 옛말이 있다. 
뿔을 바로잡다 소 죽인다!
새끼는 죽었지만 학질 떨어져 시원하다!
써놓고 보면 속과는 딴판같이 찢어버리고 싶은 넋두리를 하는 동안에 6.25의 밤이 다 새었구나. 3년전 이 밤엔 잠 못 자고 한 생각 말했더니, “나라 없는 백성”이라 했다고 이 나라가 나를 스무날 참선을 시켰지.
이번엔 또 무슨 선물 받을까? “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주고 돌아오는 장준하는 이겨내기 어려운 비감에 휩싸여야 했다. 함석헌의 글 “5.16을 어떻게 볼까”로 인해 사상계는 폐간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 때문이었다. 

사상계(思想界), 전 사원에게 내린 비상소집령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 달리묘수가 없었다. 모든 잡지, 신문, 라디오 등은 5.16의 칼날에 무참히 잘려버린 때, 그런데 “5.16을 어떻게 볼까”를 실은 사상계 7월호가 검열에 걸리지 않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함석헌이 사상계 6월호 권두언에서 “4.19를 민주혁명이라 한다면 5.16은 민족혁명이라 할 수 있다”라고 5.16을 혁명을 시인한 장준하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했냐는 차치(且置)하고, 그 서슬 푸른 군사통치하에서 다른 잡지도 아닌 사상계에 다른 사람 아닌 함석헌의 글이 검열에 걸리지 않고 발행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검열관의 큰 오해로 빚어진 그것은 일종의 사고였다.

당시 검열부에서 최우선적인 검열대상으로 「사상계」를 지목했다. 그런데 6월호 사상계지 권두언에 발행인 장준하의 “5.16혁명과 민족의 진로”가 실렸는데, 그 내용이 맘을 놓아도 좋으리만큼 5.16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여겨져 다행이다 싶었던 거고, 그것이 다음 달에 나오게 되는 함석헌의 그 글의 검열을 무관심하게 한 것이다. 결국 5.16에 대한 장준하의 수동적인 시인이 함석헌의 5.16에 대한 적극적인 부인을 가능케 했다는 말이다.

“5.16을 어떻게 볼까”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고 돌아온 장준하는 사상계 전사원의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외부에 나가 있는 영업사원들까지도 한 사람 빠짐없이 다 불러들이라는 장준하에게서 이제까지 볼 수 없는 강력한 지시였다.

사내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장준하는 참석사원들, 불참석 사원들의 현황을 제삼제사 확인했다. 그리고 비상회의의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함석헌의 그 글 “5.16을 어떻게 볼까”를 알렸다. 

“오늘 일자로 「思想界」의 문을 닫습니다. 내일은 나와서 사무정리를 끝내고 돌아들 가시오. 별도의 전달은 없을 것이오.”

그리고 장준하는 전 사원들을 데리고 대하(大河)로 갔다. 꽤 비산 고급 술집이었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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