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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3)<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6.07.26 12:21

7월호 발행으로 ‘사상계의 생명은 끝났다’고 예단한 장준하를 따라 술집 「대하」를 찾은 10여명의 사원들은 온 밤을 지새우며 술을 퍼마시면서 애국가를 불러댔다. 어울려진 무리들은 가관이 아니었다. 거기는 사장도 사원도 없었다. 평소에 헛말이라곤 한마디 없는 장준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드디어는 얼싸안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애국가는 끊임없이 불러댄다.
“이 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 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튿날 거의 정오쯤 장준하는 사(社)에 나갔다. 어제 술집 대하를 찾기 전 “다음 소식이 있을 때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 했기 때문에 “자, 이젠 어쩐다?”하는 맘으로 나아갔는데, 나아가보니 한 사람 예외 없이 어제 그 밤새도록 폭음을 했던 사원들이 똑 바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사상계는 무사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결코 무사할 리가 없어. 그 글은 이미 군부에서도 다 읽었을 거고, 그렇다면 사상계를 놔 둘리가 없지...” 그렇지만 장준하로서도 별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그랬던가. “하늘에 맡긴다고”고...
“하늘에 맡긴다!” 장준하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다. 그는 역사에는 반드시 답이 있다고 믿었고, 그는 그 답을 받아내는 생(生)을 살아 내왔다.

몸을 던져 역사의 답을 아주 확실하게 받아낸 사람!
이점에서 한국의 현대사 (韓國現代史)는 장준하를 깊숙이, 길이 감싸야 한다.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장준하를 자리하게 해야 한다. 인간에겐 잡다한 삶이 있지만, 그래서 「살림 살이」라 하는 거지만 그 삶은 크게 두 가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취하는 것과 버리는 것, 누리는 것과 나누는 것 말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취함으로거나 버림으로 말이다. 누리거나 나눔으로 말이다. 그래서 생(生)의 진행에 취하는 일과 버리는 일, 누리는 일과 나누는 일은 부단히 반복된다. 때문에 취하는 일과 버리는 일, 누리는 일과 나누는 일에 선후를 규정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분명히 인지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역사의 진행이 중단되는 경우에서 인데, 참으로 이상스럽게도, 그것은 더 할 수 없는 불행이지만, 그 ‘역사의 중단은, 역사의 진행, 진화를 위해 허락되는 <취함>과 <누림>의 세력 혹은 행위에 의해 빚어진다는 사실이다. 역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역사(우주 배후의 절대 의지, 궁극의 실제)는 이 소위 소유 세력(所有勢力)에 의해 중단된 역사 자신의 진화, 진행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곧 버리는 자, 나누는 자를 불러내는 것 말이다. 
흔히 귀중한 것을 말할 때 ‘천금(千金)’이라 하지만, 그 천금이라는 것 따위엔 비할 수 조차 없는 오히려 그 같은 것들은 분토처럼 여기고 가족, 자신을 드디어는 자신의 생명까지를 조건 없이 내던지는 생명들을 말이다. 

죽기로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을 통해 막혔던 진로가 뚫려나 그 역사가 진화를 계속하게 된다. 그 진행이 중단된 한국의 현대사에 그 같은 아주 분명한 버림으로 드려진 천고(天高)의 제물이 있었다. 함석헌(咸錫憲)과 장준하, 장준하(張俊河)와 함석헌 말이다. 함석헌, 장준하, 감옥? 가게 되면 가리라 했고, 죽음? 죽게 되면 죽는다 했다. “5.16을 어떻게 볼까”로 만이 아니었다. 신비스러우리만큼 함석헌과 장준하는 자신들의 일생(一生)을 그렇듯 평생(平生)으로 살아냈다. 

장준하는 맘을 착 가라 앉히고 이후 야기될 일들을 찬찬히 그려보고 있었다. 사상계 7월호가 시판에 들어갔다. 예언은 적중했다. 사상계는 본사는 말할 것 없고, 그 편집 위원들, 기자들, 사상계를 취급하는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서점들, 시내의 한다 하는 일간, 주간 신문들, 잡지들, 그동안 숨죽인 채 엎디어 있던 구 정치인들, 사상계 정기 구독자들 모두가 함석헌, 장준하의 입이요, 전령들이었다.

“함석헌 선생, 장준하 사장 별일 없냐?”, “두 분 구속되는 건 아니냐?”, “사상계사는 어떠냐?”,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거냐?”, “이거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원효로를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 사상계와 함석헌 본가의 전화는 오직 「함석헌의 필화」가 어떻게 전개 될 것 인가?로 묶어져 버렸다. 게다가 더욱 장준하와 사상계를 무겁게 억눌러 오는 사건이 겹쳤다. 엊그제 7월 4일 창경원 수정궁에서의, 사상계에서 이제까지 출간해온 <사상문고 100권 출간기념리셉션>이 있었다. 장준하는 이 자축모임에 사상계 운영에 지극한 관심을 지녀준 학계, 언론계, 문예계는 물론 정계, 재계, 박정희의 군부 요인들에게 까지 정성스레 초청장을 보냈다.

헤아릴 수 없는 만큼 알려진 인사들이 모여 들었다. 심지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버거 대사까지 다수의 장성들을 대동, 리셉션에 참석 했고, 어제부로 국가 재건 최고회의를 사임한 장도영과 그의 참모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러나 끝내 박정희와 그의 일단들은 보이지 않았다. 장준하는 이 창경원 수정궁의 「사상문고 100권 기념 출판 기념 리셉션」을 준비할 때 내심 한국사에 기록될 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큰 그림이란 아직까지도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내심 군부 세력의 민정복귀를 염원하는 지식계층, 군부의 철권에도 꺾이지 않는 양심세력과의 사이에 한 튼튼한 가교를 개설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그 같은 장준하의 기대는 무너지고 있었다. 장준하가 초청했던 인사들이 거의 빠짐없는 참석을 했는데, 박정희를 비롯한 그의 사람들은 하나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어제는 (7월 5일) 그제 수정궁의 그 사상계 행사에 까지 참석했던 장도영과 그 일단이 반국가 행위로 체포되어 버렸으니...
이런 상황에 사상계에 실려나간 그 함석헌의 글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어쨌든 그 날은 그렇게 무겁게 흘렀고, 다음날은 불안한 (?) 마음으로 함석헌을 찾아 갔다. 두어 평 정도의 함석헌의 글방, 방바닥에 놓인 보통 밥상보다는 조금 더 큰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그 무릎위에 모은 체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 그것이 여느 때나 지니는 함석헌의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함석헌과 장준하의 합석한 자리는 마치 어떤 구도자들의 자리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띄어갔다. 그저 고요가 계속될 뿐 말이 없었다. 말이 없기는 함석헌이 더 했다. 타는 가슴을 못 이겨,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는 때도 함석헌의 말은 그 특유의 “글쎄...”이거나, “글쎄요...” 였다.

그런데 장준하가 그렇듯 함석헌을 찾아와 함께 “고요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사상계사에는 장준하가 이미 예상하고 있던 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혁명군(?)에서 나왔다는 군복차림의 두 사람이 사상계를 찾아온 것이다. 혁명군을 자처하는 그들은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장준하를 찾는 저들은 분명한 자세에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놀랄 만큼 정중했다. “사장과 사상계 편집 책임자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었다. 당사자의 부재중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내일 아침 일곱시 사장과 편집 책임자를 모시로 오겠으니 그 시각까지 사(社)에 나와 기다리고 있도록 전해 달라”하고는 상대방의 답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돌아갔다.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은 장준하는 다음날 아침 취재부장인 고성훈(高聖勳)을 불러 동행케 한다. 다시 찾아온 두 사람은 아주 정중하게 자신들의 소속을 밝히는 것이었다. “선생님” 호칭이 선생님이었다. “저희들은 혁명군 정보부에서 나왔습니다.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명에 의해 온 것이니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왜, 무엇 때문입니까?” 연행의 이유를 묻는 장준하에게 두 사람 혁명군(?)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그건 저희들도 모릅니다.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가보시면 압니다.” 연행의 이유조차 모른다는 사람들과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요? 그럼 가야지.”
장준하 역시 군소리가 없었다. 그리고 고정훈과 함께 혁명군부의 검정 찦차에 올랐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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