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에세이 연재
나만 몰랐던 이야기 : 한강 <소년이 온다><소소한 남자의 소소한 독서>
정주현 (예사랑교회) | 승인 2016.07.27 12:04

이 글은 부끄러운 고백이다. 나는 평소 대화중 ‘아는 척’을 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내가 조금 이라도 아는 것이면, 그 내용을 기반으로 내 추측을 더해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충동을 즐긴 날이면 그날 하루를 마무리 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했던 말들이 맞는지 검색 할 때면 안도의 한 숨과 귀가 달아오르는 부끄러움 사이에서 마음을 졸인다. 

나의 ‘아는 척’은 내 안에 콤플렉스에서 기반 한 내 단점일 것이다. 이것을 알기에 늘 주의하려 하지만 그래도 빈 수레 마냥 덜커덩 거리며 말하는 날은 피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혼자되는 시간에 부끄러움의 쓴 맛을 되삼킨다.

이렇게 ‘아는 척’하는 충동을 자주 느끼고, 그걸로 부끄러워하는 내게 이 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부끄러움이 있다. 그것은 ‘무지’라는 부끄러움이다. 대화중 찾아오는 참을 수 없는 ‘무지’의 부끄러움은 간혹 나를 위축시키기까지 한다. 입도 뻥끗할 수 없는 ‘무지’한 분야와 이야기 거리가 어디 한둘 이겠냐마는 그 중에서도 우리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내가 취약한 분야다.  

아마도 수유리에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더 오랜 시간을 아니면 평생을 회색지대에서 맘 편히 살아갔을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 우리 현대사를 무지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살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먹고 살아가기에는 그게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는 양분된 입장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따라서 편하게 결론지어질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때문에 현대사에 대해 ‘무지’하지 않으려 하면, 먹고 사는 일만도 힘든 세상에서 또 다른 골칫거리를 품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내가 지나온 공교육의 현장과 사회는 현대사와 같이 머리 아프고, 마음을 써야 하는 일에서 나를 구원하며, 지나간 일을 뒤로하고 다가올 날을 바라보도록 도왔다.

이런 삶에 균열을 가한 것은 수유리의 분위기였다. 이곳에선 먹고 사는 일에 고민이 없는 사람들 마냥 내 친구들이 고민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마주하면서 불편했고 어색했으며 의심하기도 하고 그러다 때때로 약간은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그동안의 ‘무지’ 했던 일들에 대해 부끄럽고 안타까워하게 되었다.

서설이 길다. 나는 1980년 오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에 ‘무지’ 했다. 나에게 광주에서의 일은 ‘5.18’ 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법정 기념일로써 명칭을 묻는 객관식 또는 주관식 답안 중의 하나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로 다가 오지 않았다. 그런 부끄러움 마음을 속죄라도 하듯이 읽게 된 글은 얼마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장편 소설이라는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짧은 문장들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에필로그에 다다른다. 1970년 광주 태생의 저자는 1980년 1월 가족들과 함께 수유리로 이사 한다. 그리고 그해 광주에서의 서늘한 소식은 초여름에 남아있는 스산한 기운과 함께 작가를 찾아 수유리로 올라왔다. 작가는 어릴 적 기억 속 어른들의 대화를 더듬었다. 작가의 가족이 이주 후 작가가 살던 광주 옛집에 살던 소년과 그의 누나가 죽었다. 작가는 거기서 출발한다. 자신의 옛집에 살던 한 남매의 죽음으로 광주에서 벌어진 아픔의 역사를 더듬는다. 

작가는 소년을 더듬어오며 담담하게 아픈 문장으로 찔러온다. 만약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 읽어내려 갔다면 아마도 펑펑 울었을 것이다. 며칠간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며 읽어내려 갔음에도 찌푸러지는 얼굴 근육과 더불어 쿵하고 내려앉는 마음 그리고 붉어지는 눈시울에 당황했다.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기도 하고, 주변의 소음은 소란했지만 그럼에도 소년의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누군가 옆에서 내 표정을 관찰했다면 한 문장 한 문장에 급변하는 표정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무지’했던 광주의 아픔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글이 내뱉는 짧은 호흡에 나도 100m 달리기하듯이 따라갔다. 그 빠른 뜀박질에 심장이 요동치고 온 몸의 근육이 떨려오듯이 작가는 독자의 심장을 마구 두드리고, 온 감정과 생각의 근육을 긴장시킨다. 다가올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광주시청에 남은 사람들에 대화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돌이키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이 맞이한 일, 그 때의 이야기는 작가의 날카로운 칼이 되었고, 타인에 무감각해져가는 나를 찔러왔다. 그 찔림은 글을 읽어감과 궤를 같이하여 깊숙이 들어왔고, 때문에 나는 그 아픔에 ‘끙’ 하는 신음을 연신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의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어 현재와 과거를 엮어가고, 더불어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를 오가지만 결국 소년을 둘러싸고 꿰어진다. 그리고 이 서사의 한 복판에서 소년을 발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누구나 소년을 발견하게 되면 그가 주변의 말을 좀 들었으면 할 것이다. 소년에게 이야기 하는 주변의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소년보다 겨우 몇 년 더 세상을 바라봤던 이들이다. 

20대의 형·누나들은 소년에게 미래를 말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소년을 그렇게 생각했듯 나 또한 그들이 안타까웠다. 산제사로 드려지기엔 너무나 어리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는 필시 배가 갈려 모든 피를 쏟아내고 불살라진 그들 덕분에 달콤한 자유를 넉넉히 맛본 탓일 것이다. 어느 순간 부터인가 나는 작가가 소년을 통해 안락함에 젖은 나의 얕은 사유를 꾸짖고 있다고 느껴졌다. 

영화 <화려한 휴가> 중 한 장면. 필자가 '제13공수 특전여단'에서 군복무 당시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었다. 그러나 영화 상영기간 중 출타하는 장병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화려한 휴가를 보지 말라' 였다. .

다시 소년과 함께 피 흘리며 죽어간 이들을 그려본다. 구약의 제사가 겹쳐진다. 광주란 제단에서 각이 뜨여진 것처럼 피 흘리며 죽어간 사람들을 감히 잊고 지냈음에 소스라친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누구를 위한 제사이며, 무엇을 위한 제사였을까?’ 괴롭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스스로 제단 위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끌려가지 않았고 자존감 가득한 모습으로 제단위에 누웠다. 그것이 슬퍼서 가슴을 아려왔고, 그것이 예수와 닮았음에 놀라웠다. 예수도 ‘할 수 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찾아오는 운명을 기다렸는지는 그 장엄한 밤을 상상해 그려보기도 했다.

내가 ‘무지’했던 광주의 아픔을 절제된 문장으로 녹여낸 ‘소년이 온다’는 한 호흡에 달려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처럼 읽게 되는 책이다. 200페이지 남짓의 글을 읽어내는 동안 생각과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 파고드는 문장들에 저항하기 힘들다. 광주의 기억, 그 아픔의 한 복판의 이야기는 이제 한 걸음 뒤에 서서 흘려들을 수 없게 되었다. 

작가가 불러낸 소년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암암리에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길 강요받았던 그때 그날 광주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불러낸다. “동호야” 하고 부르는 작가의 음성에는 광주가 담겨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곳에서 뿌려진 피를 부르는 음성이다. 이 음성은 생존자들의 고통스런 트라우마를 불러내어 위로한다. 그리고 잊고 있던 이들의 무책임함에 일갈한다. ‘동호야’는 마치 시어처럼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소년이 온다’는 ‘동호’라는 소년에 ‘광주’를 담아낸다. 그리고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말하듯 광주는 지나간 일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작가는 2009년의 용산에서 광주를 보았고, 우리는 2014년 세월호에서 광주를 보았다. 광주는 지금도 곳곳에서 반복된다. 동호의 이야기는 지나간 광주를 불러오고, 현존하는 또 다른 광주의 아픔을 보게 한다. 

그러나 네가 아픈 일에 내가 통감하기 힘든 시대이다. 그러니 신약성서가 말하는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로 여겨진다. 이때 ‘소년이 온다’은 우리를 찔러온다. 작가가 광주와 동호를 우리에게 불러온 이유는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픈 세상’을 꿈꾸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며 책장을 덮는다.

‘소년이 온다’분명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무지’했던 나에게 다가온 소년은 한 번에 하나씩 이야기 하자고 한다. 그동안 잊고 있던 자신을 이제는 “동호야”라고 부르는 것 먼저 하자고 말을 걸어온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동호’가 나에게 용서를 베풀길 바란다. 

<필자 소개>

 

정주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예사랑교회 청소년부 전도사

아쉽게도 평범한 통찰력과 이해력을 가졌지만, 제 능력 이상의 성취를 원하는 욕심이 있다. 게다가 어렴풋이 느끼는 이상향, 옳은 삶, 행복한 삶에 대한 갈증 때문에 더듬거리며 갈 길을 찾으며 살고 있다. 그런 탓에 배움의 성취도 더디고, 삶을 여정도 매끈하지 않다. 그러나 다행이도 스트레스는 많이 받지 않아서 소박한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 지면은 카페에서 지인들과 읽은 책에 대해 수다 떠는 느낌으로 채우고자 한다

정주현 (예사랑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