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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시인을 만나다 :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소소한 남자의 소소한 독서>
정주현 (예사랑교회) | 승인 2016.08.04 14:32
출처 : 트위터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눈길을 끄는 시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평소 시를 즐기진 않는다. 시인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세상에 시인이란 다 나이가 많은 줄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시인이라니 어색했다. 물론 그만큼 시는 나와 거리가 먼 존재였다. 시를 읽는 일은 나에게 낯선 일이었고, 때문에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시인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많은 시인들이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등단하고 시집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중·고교시절 문제집을 풀면서 보았던 시들의 주인공들도 20대에 쏟아낸 작품들이 많았다. 유일하게 가끔씩 꺼내보는 윤동주의 시집도 그가 20대 시절에 쓴 것들이다. 

시인의 이름은 ‘박준’이다. 시집 뒷면에 적힌 시인의 말은 이렇다. “문학을 잘 배우면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학과 대학원에서 알았다.” 이 문구를 읽고 잠깐 여러 생각을 했다. ‘나는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 했는데, 내가 신학을 잘 배웠다면 다른 이에게 줄 수 있겠구나,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번져가던 생각을 털고 시집의 목차를 펴보았다. 

목차를 훑어내리다가 눈에 걸린 제목은 ‘파주’였다.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곳에 대해 뭐라 썼는지 확인하고자 얼른 페이지를 넘겼다. 이어서 이곳저곳 펼쳐보다 보니 시집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동했다. 이전에 구입했다가 다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묻어두었던 몇 권의 시집들이 생각나고, 비어가던 지갑 사정도 생각났지만, 결국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제목의 이 시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날 집에 가는 길부터 시작해서 일주일동안 이 시집을 연달아 두 번 읽었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시들이 몇 편 존재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윤동주의 시 마냥 부드럽게 잘 읽어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시인이 나와 같은 시공간을 걷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같은 세대를 지나온 흔적이 시 곳곳에서 묻어났으며, 그가 머물던 공간들이 내가 경험했던 공간들과 접점을 이루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 요소들이 합해져 시를 읽는 즐거움을 한껏 맛볼 기회를 누렸다. 

또한 시인의 언어는 담백하고 포근한 말로 가득하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시어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시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돕는다.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가족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발견되며,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사색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보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시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때 주 이야기 거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내가 그의 정서에 공감하는 또 다른 큰 요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중요 키워드는 ‘미인’이다. 시인이 ‘미인’에 대해서 줄곧 말한다. 내가 보기에 ‘미인’은 이 시집에서 유일하게 반복되어 등장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인’이 하나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인’은 그의 연인으로도 보이고, 어머니로도 보이며, 그의 죽은 누나이기도 했다. 시인의 인터뷰1) 기사를 찾아보면 시인은 자신이 말한 대다수 ‘미인’의 대상이 누나였다고 말한다. 그는 ‘미인’이란 “지금 내 곁에 없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가 첫 번째 시집을 쓰는 기간에 죽은 누나는 그에게 있어서 아주 큰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시를 쓰면 가장 먼저 보여주던 사람이 그의 누나였다는 인터뷰를 보면 그가 첫 시집의 곳곳에서 누나를 추억하고, 그려내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제는 시인 곁에 존재하지 않는 누나는 시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고, 시인의 누나는 그의 첫 시집 안에서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p118

시인은 일상을 잘 관찰한다. 평범한 그래서 의식하지 못할 아주 작은 움직임과 현상들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에 담겨 있는 여러 정서들을 건드리는 일에 능숙하다. 시인에 의해서 건드려지는 애잔함, 후회, 연민, 그리움, 애틋함, 부끄러움 등등은 삭막한 일상을 살고 있을 그의 동세대들이 잊어가는 정서들이다. 시인은 세상에 떠밀려 부유하는 자신의 세대들의 감정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려는 듯 조근조근 이야기 한다. 

시인과 내가 속한 세대의 삭막한 정서란 우리세대의 지난날에 기인한다. 우리세대는 본격적으로 맞벌이 하는 부모님들이 늘어나던 시기 그래서 아이들 목에 집 열쇠가 하나둘 걸려있던 시기의 세대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친구 집으로 전화 거는 예절을 배운 마지막 세대기도 했다. 때문에 자연스레 친구의 부모님을 알고 있었고, 아파트가 많지 않은 지역에선 여전히 대문 밖에서 ‘누구야 놀자’하고 부르던 아이들이기도 했던 따뜻한 정서도 간직한 세대다. 그렇게 자라나다가 20세기의 끝자락을 청소년기로 보낸 이 세대는 그 시절에 한국경제의 최대 호황기를 경험함과 더불어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도 동시에 접한 세대들이다. 우리는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모든 것을 보장해 준다는 거짓말을 몸소 체험하기 시작한 첫 세대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꿈같은 어린 시절 또는 청소년기의 생생한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는 세대다.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또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골고루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은 조금 생소한 예일 수 있지만 만화책에 대한 향수와 갈증이 있는 동시에 웹툰을 익숙하게 즐기는 모습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그렇게 이 세대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전환기에 걸쳐진 세대라는 특징을 가졌다. 만화책 제목을 차용하면 우리들은 20세기 마지막 소년, 소녀들이다.2) 덕분에 우리 안에는 변화에 대한 불안한 정서가 스산하게 흐른다. 스산한 정서는 성인이 된 이후에 언제나 현실과 맞닿아있었고, 때문에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서 가장 따뜻했던 정서들을 어딘가에 묻어두게 했다. 

우리가 맞닿아 있었던 현실은 말하자면, 우리들은 20대의 중·후반기에 비슷한 꿈을 꾸는 세대가 되었다. 공무원을 다른 직업보다 선호하기 시작한 세대들이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까?’에 대한 고민을 뒤로하고 ‘가장 안정적인 직장은 어디고, 그곳을 어떻게 들어갈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그래서 각종 공무원, 공기업, 대학교 교직원과 같은 직장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청소년기에 IMF를 목격했으며 취업전선에 뛰어들 때는 저성장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기를 맞아 허우적거리며 20대를 보냈던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것이 19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 시대상이다. 

때문에 이 세대에 안에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 스산한 정서는 살아남기라는 끝없는 경쟁이 주는 불안감과 더불어 필요 없는 존재가 될 수 도 있다는 두려움이 맞물려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처럼 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은 우리 안에 정서를 옥죄었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신의 세대를 대표해서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저녁, p.79)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카프카 <변신> 삽화

나는 이런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세대에게 ‘박준’시인은 성큼 다가온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듯 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안에는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p.41)에 해당하는 문장과 시어들이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는 우리에게 드리워진 스산한 정서를 걷어 낼 힘이 있어 보인다.

말하듯이 적어 내려간 담담하고 따뜻한 그의 글은 일상의 작은 기억들이 발하는 아름다움을 되살려낸다. 때문에 이 시집을 읽어간다면 어느새 초등학교시절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꺼내올 수 있다. 때론 고등학교 야자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지긋지긋 했을 군대로 돌아가는 일도 거북하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첫사랑을 했던 그 시절 나의 순수함을 다시 마주하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도 있으며,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용산가는 길, p.26)나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마음 한철, p.69) 등의 문장을 곱씹으며 그 때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그가 이끌고 가는 곳으로 함께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어느새 독자도 한쪽 구석에 담아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서 즐길 수 있다.

고맙게도 친구처럼 말을 걸어오는 시인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p.55) 며 자신의 소중한 이야기를 간결한 말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이야기와 마주하다보면 어느새 시인과 대화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읽는 이가 시안에서 스스로를 발견 한다면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p.55) 고 말한 시인의 원대로 시인과 나의 만남은 아름다울 것이다. 동갑내기 ‘박준’ 시인과의 아름다운 첫 만남이 다음 작품들로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각주 설명>

1) 씨네21, “여름에 부르는 이름-<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박준” 2016.07.04. “글:이주현/사진:백종현”
2) 우라사와 나오키, 20세기 소년(전 22권), 학산문화사

 

<필자 소개>

 

정주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예사랑교회 청소년부 전도사

아쉽게도 평범한 통찰력과 이해력을 가졌지만, 제 능력 이상의 성취를 원하는 욕심이 있다. 게다가 어렴풋이 느끼는 이상향, 옳은 삶, 행복한 삶에 대한 갈증 때문에 더듬거리며 갈 길을 찾으며 살고 있다. 그런 탓에 배움의 성취도 더디고, 삶의 여정도 매끈하지 않다. 그러나 다행이도 스트레스는 많이 받지 않아서 소박한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 지면은 카페에서 지인들과 읽은 책에 대해 수다 떠는 느낌으로 채우고자 한다.

정주현 (예사랑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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