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운동을 하고 싶은 ‘청년’이다. 

소위 ‘기독운동’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예전(60~80년대를 아우르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 등등)에는 퍽 잘나가서 현재 ‘활동가’라 불리는 사람 중에 SKA 출신 아닌 사람이 없고, YMCA나 KSCF, 종로 5가의 짱짱했던 NCCK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2000년대를 지나며 그 위세가 많이 줄었고, 다른 운동이 모두 그러하듯 축소의 축소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그 존재감이 희미하다 못해 심폐소생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초라해져버린 기독운동. 민주화야 어찌됐든 내 손으로 대통령 뽑는 나라니 ‘형식적’으로는 그 꼴을 갖추고 있고, 박근혜 독재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박정희, 전두환 만 한 대단한 파시즘의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반독재운동이라 하기 에도 영 구호가 낯 부끄러운 이 때. 우리의 기독운동은 이슈선점에 늦어도 한 참을 늦어버렸다.

1978년 12월 29일, 석방 이틀 뒤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구속자가족협의회 금요기도회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출처 : 한겨레)

‘종교’의 이름으로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다. 복지야 말로 개량적인 시스템인데 ‘본질’이야기 하고 ‘진리’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복지에 목매는 것이 보기에 영 세속적이다. ‘인권’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 실제 한국에 인권을 소개한 것도 서구문물에 발 빨랐던 기독운동의 크나큰 공로가 아닌가? 그러나 이제와선 심도 깊은 인권논의는 이미 새 판을 마련한 기존의 운동세력들이 전부 선점하고 있다. 기독운동이 내는 성명서는 저들의 성명서보다 너무 원론적인 신앙고백에 그치기 마련이며, 인권침해사례에 대한 대응 또한 저들이 훨씬 빠르고 훨씬 유효하다. 

기독학생운동에 대해 얘기하자면 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운동 안의 헤게모니 선점에서 전부 실패했고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기껏 몇 안 남은 진보적 학풍이 존재하는 대학에서도 쥐똥만큼 조금 배출되는 학생 운동권들 중에 굳이 ‘기독운동’을 찾아올 괜찮은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기껏 들어와 봐야 바로 위에 선배라는 사람은 ‘아니 아직도 운동을 하세요?’ 라고 할 만한 분들이 전부이며, 매력은 없고, 앞으로 십 년은 더 그 자리에 계실 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동안 잡일을 해야 할 것이며, 청년들 스스로 꾸릴 수 있는 조직체계가 들어설 공간도 없으며 그것을 지원할 마인드도 없는데 대체 어떤 의혈 ‘젊은이’가 이곳에 남아있을까? 그나마 평생 JOB으로 신을 섬길 생각하고 들어온 신학교 학생들 중에 몇몇 들이 동아리 한 두 개 거쳐서 졸업을 하고 요 언저리에 머무르겠지만 그걸 두고 ‘재생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알바몬' 광고 중 한장면

뭐, 한 십년이 지나면 이 판이 바뀌겠나? 보아하니 십년 가지고는 세대교체도 불가능하다. 밖에서는 알바노조니, 몸치패니, 청년좌파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아등바등하는 젊은 활동가 그룹과 그를 지원해주는 기존 세력이 (엄청 비판 받고 있지만) 존재하기라도 한다. 그러나 기독운동에는 ‘청년’은 있을지언정 그들을 묶어내고 자발적으로 활동을 할 만한 공간도 없고, 주제도 없고, 지원도 없다. 기독운동 맨 끝자리(송구하다)에 머무르며 학교를 다닌지 오 년째, 머리에 피도 안 말랐지만 앞으로도 이 ‘기독운동’이란 것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체감되고 있는 것은 우리는 ‘구호’만 가득하고 ‘실력’이라든지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든지, 아무리 언어가 후지더라도 존경할만한 품 넓은 ‘어른’이라든지. 모자라도 너무 모자르다. 괜찮은 후배가 생길라치면 다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부여잡아야 하나. 고민을 해도 답은 없다. 머리에 피도 안 말라서 그런가. 하지만 머리에 피가 마를 때쯤이면 다 떠나고 없을 텐데? 

-청년을 입에 담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니까, 그 입에서 ‘청년’이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청년으로서 당부 드린다. 솔직해지자. 시대가 이렇게 악한데 왜 청년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을까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계시지 않은가? 단체 이름 앞에 ‘청년’을 넣는다고 해서, 프로그램에 ‘청년’을 넣고, 세대별 비율 맞춘다고 대표기도 라든지, 발언이라든지에 ‘청년’ 끼워 넣는다고 해서 이미 ‘청년’시절 다 같이 대오짜고 화염병 던지고, 쇠파이프 들고 격렬하게 싸웠던 분들이 지금의 무기력한 청년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차라리 ‘니들은 왜 그 모양이니?’ 솔직한 꼰대가 더 낫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진 마시라. 정말 아무도 안 남는다.) 

예컨대 고민 없이 청년을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청년이란 것은 어떤 ‘계급’적 지표가 아니다. 청년이라는 말을 정의내릴 수 있을 만큼 그 근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와서 청년은 감수성이요 선포에 가깝다. 같은 학생운동하는 사람이더라도 그 온도는 천차만별이다. 그 특징을 한 번에 묶어낼 만큼 기독운동에 청년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뭐 ‘촛불세대’니 ‘세월호 세대’니 이야기 하는데, 그거야 말로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일련의 공통점을 가지고 묶어낼 수 있는 그룹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독운동안의 ‘청년’들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묶어낼 수 있는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가 않다.

반항적이거나, 참신하거나, 독특하거나, 열정적이거나- 내가 아는 한 그 모든 것에 걸 맞는 청년이 이 판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이곳에 들어오거나, 남아있거나 하는 청년들은 기존의 청년대오- 즉 취업을 준비하고 가정을 꾸릴 고민을 하고, 먹고 살 고민을 하고 있는 자들 사이에서 이탈한 이들이다. 열정보다는 절망이요, 창조적 생각보다는 음울한 생각이요, 독특한 생각보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산다. 이게 어딜 봐서 청년이야? 

청년을 모집할 생각보다는 있는 청년들이 청년다워질 수 있도록, 즉 철 없고 창조적이고, 아무튼 열정이 넘치고 파이팅한 녀석들이 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앞서 계신 분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현재 기독운동진영에 머무르고 있는 청년들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나는 ‘청년’을 굳이 정의하자면 ‘꿈꿀 수 있는 시간’이 그 전 세대보다는 더 많이 남아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20대가 30대보다야 그려볼 도화지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 빈자리에 자꾸만 좋은 것들을 그려보려고 시도하는 것. 청년이라고 하면 그런 것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다 30대가 되면 내가 그린 그림이 생각보다 별로였다는 걸 깨닫는 것일 테고, 더 늙으면 그릴 공간도 마땅치 않아 “에라 모르겠다. 후배들 잘 챙겨야겠다.” 마음먹게 되는 것일 테고. 그런 것이 어른 아니겠나? 경험치 못한 세계라 잘 모르겠다. 나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아서... 

그러나 그릴 도화지가 이미 전 세대의 이야기로 꽉 차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괜찮은 그림일지라도 다음 세대의 젊은 화가들은 붓을 내려놓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면 나는 ‘청년’일 필요가 없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먼저 흰 도화지를 넘겨준 다음이어야 한다. ‘어른’의 역할은,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 넣는 것- 그것이 청년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청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점의 그림도 그려보지 못했음에도 열정이 식어 반늙은이가 되어 버린 무기력 종자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기왕이면 청년대오를 포기하세요.

청년대오를 꿈꾸고 계신지? 나야말로 꿈꾸고 있다. 세월호 1주기, 감신대생으로만 200여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는 정말 새 시대를 보는 줄로 알았다. 세월호 2주기 사개신학교 연합으로 또 한 번 행진을 하고 기도회를 진행했을 때는 에큐메니컬의 새 지평을 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제는 ‘청년대오’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세월호 신학생 연석회의’라는 이름으로 모인 250여명의 신학생들이 감신대학교 교정에서 모여 세월호 광장을 거쳐 대한문까지 입례행진을 하는 모습 (4월 12일)

 ‘초대교회’를 이야기하고, 그래야 하지만 다시는 초대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 번 지나간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박근혜가 기왕 나라 망치는 것 박정희만큼 악독했으면 사람들도 공감하고 청년들도 거리로 뛰쳐나오고 더 좋겠지만, 이제는 그 분에게도 그러한 권력이 허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나간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회귀’한다 할지라도 그 형태는 분명 다르다. 인류는 어찌되었든 진보한다. 옛날처럼 선배가 끌고 집회 데리고 나와 최루탄 맞고 갑자기 깨닫게 되는 청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방심하면 이 경쟁사회에서 순식간에 도태된다는 것을 어느새 체득했고 그만큼은 똑똑하다. 자꾸만 ‘청년’을 말하고, ‘청년조직’을 꿈꾸지 마시라.

그 역할은 ‘청년’에 고착되어 있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제일 절박하다. 우리의 고민을 채가려 하지 마시라. 다만 깨끗한 도화지 한 장만 마련해주면 감사하겠다. 지금 있는 도화지는 여러분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것도 아름답지만,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어도 지가 만들어 먹어야 맛있는 법이다. 꽉 찬 도화지를 우리에게 내밀지 마시고 조금 못 미더운 얼굴로나마 뒤에 숨겨두신 새 도화지를 내달라. 여러분의 도화지는 잘 감상하고, 참고하고, 배우도록 하겠다. 그리고 우리의 그림을 열심히 그려보겠다. 최근 나를 포함한 몇 몇 신학생들이 현장중심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스스로 만들었다. 한 동지가 그저 지나는 버스에서 무심코 말한다. “야, 그래도 우리 조직이 있으니까 좋지 않냐?‘ 과연 그렇다. 내 손으로 만들어야 좋다. 물론 어른들의 관심과 지원의 ’약간‘은 가미되어야 한다. 아무튼 우리는 머리에 피도 안 말랐거든! (비꼬는거 아님.) 

이종건 (감신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