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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 (民衆魂) (4)<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6.08.16 14:51

장준하가 그 혁명군이라는 이들을 따라 내린 곳은 남산 밑 회현동의 한 민가형 건물로, 거기 한 구석 방에 놓여 진 채 찾아주는 자 한 사람 없이 무려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자신을 연행해온 자들까지도 기다리라던가 하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가버린 후 장준하는 그렇게 버려져 자신과 싸워야 했다. 자신이 버려진 방은 천정, 바닥, 사면 벽이 온통 노란 색지로 도배되어 있는데다가 백열등의 조명과 광열로 달구어져 있다 해야 옳을 것이었다. 수 시간이 흐르면서 장준하는 고성훈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뭐라 위로를 하긴 해야겠는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성훈이 되레 자신을 격려해 오는 것이었다.

“사장님, 제게 대해선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오히려 이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장준하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슬퍼서도,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이제까지 역사가 명하는 길을 옳곧게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였다. 그는 그의 하느님께 감사했고, 이후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역사의 도상을 걸을 수 있기를 기원했다. 장준하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의의 길에서 당하는 수난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얼마나 정화, 성화 시켜주었던가를 절절히 체험해 오는 터였다.

“고형, 고맙소.” 장준하는 고성훈의 두 손을 굳게 쥐어주었다. 후에 고성훈은 장준하를 “우리시대의 참으로 뛰어났던 인물”로 묘사하게 된다. 그렇게 흐른 세 시간 쯤 후 이전 자신들을 연행해 왔던 이가 아닌 다른, 역시 계급 없는 군인 복장의 한 사람이 나타났다. 

“나오시오. 나를 따라오시오.” 처음 연행했던 두 사람과는 달리 거칠기가 짝이 없는 어투였지만, 명(?) 하는 대로 말없이 따랐다. 역시 검정 찦차가 대기되어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이 바로 민주혼(民主魂)으로 호곡(號哭)을 금치 못하게 한 저 한(限)의 남산(南山)이라는 곳이었다.

거기 한 조사실에서 다시 기다리기를 한 시간여, 또 다른 두 사람의 안내로, 또 다른 곳으로 갔는데, 그 곳이 바로 한 달 여전 5.16 군사 반란의 주모들로 조직된 소위 그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의 부장실이었다. 아직 방주인은 부재중이었고,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은 접객용 소파에 앉았다. 

“잠시 기다리시오. 곧 부장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모처럼 들어보는 말 소리였다. 
그 말 몇 마디가 고마워지기까지 했다. 한참 후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좌우의 호위를 받으며 비로소 방주인이 들어왔다. 물론 초면이었지만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얼굴인지라 장준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바로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金鐘泌)이었다. 그의 소위 중앙정보부는 조금 후엔 “여자를 남자로,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못하는 것이 없다”는 기구가 된다. 실로 무소불위(無所不爲), 그래서 그것은 기형(奇形)이었다. 천하의 기형! 

제방에 들어온 김종필은 그때 좌우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를 지키는 것이 그것이었고, 그의 무리들은 대한민국의 합헌 정부를 탈취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5.16 반란 군부의 유일한 보호수단이기도 했다. 

김종필은 탄띠를 풀어 신경질적으로 그의 책상에 내던졌다. 물론 김종필은 지금 자기 앞 소파에 앉아있는 두 사람 중 하나가 장준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 장준하를 말이다. 그런데도 김종필은 그 장준하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1961년 8월 31일 서울 중앙정보부 남산청사에서 박정희와 김종필(오른쪽) (출처 : 국가기록원)

“한 치도 흔들림 없이 혁명과업 수행을 완수해야한다.”
“혁명과업수행에 방해물이 되는 어떤 세력도 용서할 수 없다.” 
“구국의 대업을 기어코 완수해야 한다.”
자기의 부하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장준하는 지금 김종필의 하는 소리가 자신을 겁 먹이려 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저 먹먹히 앉아 있었다. 천하의 장준하라 한들 인사조차 해주지 않는 자에게 뭐라 하겠는가? 김종필은 자기 자리에 앉아 무슨 서류를 뒤적이기도 하고, 무슨 메모를 하기도 한다. 보좌관들은 다 자기들의 자리로 돌아갔고, 고성훈만 함께 있게 되었는데도 김종필은 말이 없었다.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 였다. 장준하는 속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쓴 웃음을 지었다. 김종필, 아 그 김종필…….

지금 국토건설단 기획본부장 장준하의 서류철 속엔 예비역 육군 중령 김종필의 이력서가 들어 있다. 지원서들을 챙기던 중 정군운동으로 예편된 김종필의 이력서를 새삼스럽게 주목했던 일이 훤히 살아온다. 

“이런 인물들이라면…….” 이런 인물들이라면 등용시켜 크게(?) 쓸 수도 있겠다고 맘에 두었던 그 김종필, 지그시 눈을 감은 장준하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 다시 문이 열렸다.

“부장님, 여기…….” 보좌관이라 여겨지는 한 사람이 두툼한 책 한권을 전달하고 돌아간다. 김종필에게 전달된 그 책이 바로 「사상계」 7월호 였다. 5.16 군부반란 세력들을 향한 불화살이 된 함석헌의 그 글, “5.16을 어떻게 볼까?”가 실려 있는 것이다. 그 책은 흰 종이로 그 표지가 입혀져 있었고, 함석헌의 그 글은 빨강, 파랑, 노란색들로 거의 도배질이 되어 있었다. 김종필은 그 책을 장준하 앞에 내던졌다. 인사마저 없이 장준하를 다그친다. 

“장 사장.” 그래도 여보, 당신은 아니었다. 겸손치는 않았으나 칭호는 그래도 끝까지 ‘장 사장’이었다. 
“....목숨 걸고 일으킨 구국운동을 이렇게 악평을 할 수 있소?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소. 도대체 정신 분열증 들린 영감쟁이의 이따위 글을 어떤 저의로 「사상계」에 실은 거요. 어디 장 사장 이야기 좀 들어 봅시다…….”

그래도 김종필이 장준하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던 것은 바로 5.16 쿠데타 전, 장면정권에서 국가개조의 원대한 이상 아래 추진하는 그 국토건설본부의 요원 모집에 자신이 제출했던 지원서, 그리고 그 지원서의 최종 결정권자가 장준하였던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종필도 장준하와 꼭 같이 내심 지독한 쓴 웃음을 짓고 있었으리라…….

한편 장준하가 일말 다행스럽게 여긴 것이 김종필의 어투였다. 함석헌을 ‘정신이상자’, ‘정신 분열자’라는 과언 이외에는 의외로 낮은 음성에 격(格)마저 잃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나 그 후에나 ‘남산’(南山)으로 통칭되는 그곳에 끌려갔다 하면 받는 대우는 오직 한 가지 “개 취급”이었는데 장준하의 거칠 것이 없을 만큼의 함석헌에의 변론과 구국의 열 번을 제지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었다.

김종필은 시종 장준하의 변(辯)을 듣는데 열중했다. 장준하마저 의외라 여겨지리만큼 여며진 자세를 풀지 않았다. 주로 김종필이 묻고 장준하가 답하는 형식의 시간이 두 시간 여가 넘게 흘렀다. 

김종필은 마지막으로 장준하의 5.16 혁명 당국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고 했다. 장준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5.16 쿠데타 세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혁명’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씀 드려 여러분들의 5.16 거사 자체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장준하의 첫말이었다. 그러나 김종필 역시 보통 인사가 아니었다. 여전히 조용한,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렇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아니, 장 사장. 우리가 혁명을 일으켰을 당시 장 사장은 5.16을 혁명으로 시인하지 않았소. 4.19가 민주혁명이라면, 5.16은 부패와 부정을 일소하고, 확실한 반공태세를 갖추기 위해 일어선 민족혁명이라 하지 않았소. 그런데 5.16 자체를 거부한다니 어불성설 아니오. 다른 건 다 들어 넘길 수 있지만 5.16 자체에 시비를 거는 건 용서할 수 없소. 우리는 백척간두의 국가를 구한다는 일념하나로 이 자랑스러운 혁명을 이룩한 것이오.”
참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의 말의 톤(tone) 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극히 조용조용한 말들이었지만 그 내용은 한결같이 칼이었다.

장준하가 김종필의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제가 5.16이 터졌을 때, 5.16을 시인한 것, 4.19는 민주혁명, 5.16은 민족혁명이라 한 것 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 장준하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대전제」(大前提)가 있었소. 그건 혁명과업의 신속한 완수에 지체 없는 군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 다는 것이오. 그런데 지금 쿠데타 세력은 역사에 오히려 큰 과오를 범하려 하고 있어요. 군정연장, 정당조직, 민정 참여 등, 나는 민주주의 신봉자입니다. 이제 군부가 할 일은 본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김종필에게 장준하의 말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소리였다. 
함석헌의 그 글을 읽고 장준하를 부른 것인데 장준하의 주장역시 함석헌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았다. “이제 5.16 거사자들이 할 일은 하루라도 속히 군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단언이었다. 김종필은 장준하를 조건 없이 돌려보냈다. 

장준하를 돌려보낸 것만 해도 김종필로써는 큰일을 한 것 같았다. 실제 맘대로 라면 당장 철창 안에 쳐 넣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전략이 필요한 때로 여겼던 건지 어쨌든 장준하를 귀가시켰다.
“문제는 그 정신이상의 늙은이야…….”

「장준하의 사건」이 있은 며칠 후 김종필은 ‘함석헌의 단죄’의 칼을 뽑았다. 
“교수도 박사도 목사, 신부도 아닌 주제에 정말 별 볼일 없는 늙은이가 감히 구국을 위한 혁명을 통째로 거부해 버리다니…….”

김종필은 최고회의를 소집했다. 최고회의 의제는 ‘함석헌 처리의 건’이었다. 자신을 포함해 7명의 최고위원들이 참석, 함석헌의 구속여부를 표결하자는 것이었다. 3대 3, 표결의 결과였다. 결정권은 묘하게도 김종필의 몫으로 돌아갔다. 6명의 시선이 김종필을 주시했다. 

바로 그때, 장준하가 중정에 연행되었다가 돌아가면서 자신에게 주고 간 말이 귓전에 다시 울려온다. 

“김 부장, 내 김 부장께 긴한 청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일로는 누군가가 감옥에 가야한다면 내가 가게 해주시오. 만일 함 선생이 투옥되는 경우 이일은 김 부장과 장준하 사이에 두고두고 역사에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했던.
장준하의 그 마지막 말이 천둥처럼 김종필을 뒤흔들었다. 
함석헌을 투옥하는 경우, 그것은 두고두고 역사에 부끄러움이 될 것이라 한 그 말이…….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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