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실패와 새 출발(창 11:1~9)

1. 바벨탑 이야기

1) 언어는 인간 삶의 기본 요건이다.

해외 갔다 올 때마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외국 사람들과 의사만 잘 통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깊이 교제할 수 있고 협력하여 일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잘 안되면 기본적인 인사를 나누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

바인가르텐과 주민 청소년들은 재미있게 어울려 놀았다.

지난번 바인가르텐 교회에서 열흘 동안 홈 스테이하면서도 모두가 절감했을 것이다. 깊은 대화를 못한다고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우리가 독일어를 할 수 있다든지 아니면 그들이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진정한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청소년들도 신나게 놀았지만 속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 교회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독일 청년 베네트하고도 같이 놀고 한국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고 진짜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언어 소통은 중요하다. 이러한 바람은 옛날에도 있었다. 왜 인간은 저렇게 많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언어가 달라 소통할 수 없는 것은 교류를 힘들게 하며 일종의 형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오늘 성경은 이런 고대의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아주 태고에는 언어가 하나였는데 어느 계기를 통해 인간은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간은 소통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연대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인간은 심판을 받은 것과 같이 되었다. 그 이유를 야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문자화 된 것이 오늘의 본문이다.

2) 탑 : 문명의 상징

여기서 가까운 곳에 롯데월드 타워는 123층에 555m다. 이 건물에 얽힌 권력과 재벌의 불미스러운 관계가 있겠지만, 버스 타고 그 옆을 지날 때마다 저건 정말 바벨탑과 비슷하다는 생각과 정말 어떻게 저런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놀랍다. 인간은 정말 신에 가까운 존재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탑을 선호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탑을 쌓는 건축 기술이야말로 인간의 능력, 문명의 힘이 농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야훼 신앙의 배경이 되는 중동 지방은 이스라엘 북동쪽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거대한 고대 문명이 있었고 성경은 그 영향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에서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탑 쌓기를 좋아했다. 여기서 만든 탑을 지구라트(Ziggurat)라고 한다. 당시 인간이 지닌 모든 지식과 기술을 총 집결하여 탑 건축에 투여했다. 그 때는 IT나 영상, 자동차나 항공기 등이 없었으니까 탑 건축이야말로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된다. 높이 쌓은 탑이 오래 견디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힘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탑 건축은 설계와 함께 재료를 무엇으로 쓰느냐가 중요하다.

뉴욕 맨해튼에는 100층 넘는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100년 넘는 건물들이다. 그렇게 높은 빌딩들이 세워지고 더군다나 그렇게 오랫동안 건재한 것은 건축에 철강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철을 채취, 가공하여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피터 브뤼겔, '바벨탑'(155*114cm, 1563년, 목판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화가는 고대 성경의 이야기를 당대 벨기에 안트웨르펜을 배경으로 그렸다. 거대한 규모의 탑이 구름을 뚫고 올라가 있다. 저 멀리 성 밖으로 산야가 보이고 성 안의 건물들은 탑에 비하면 아주 작게 보인다.

탑은 바위를 끼고 아주 견고하게 건축되고 있다. 장소도 해안에 있어 주요 장비나 커다란 건축 재료를 수송해오기가 쉽다. 새로운 건축 기술도 적용되고 있으며, 탑의 내부는 로마 콜로세움을 본떠서 아름다움과 과학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속의 권력자가 이 건축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다.

일꾼들이 왕의 행차에 무릎을 꿇고 맞이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무척 거만하고 권력을 휘둘러 온 것 같다. 그 권력의 오만함 연장선상에서 이 건축이 제안되고 실현되었을 것이다. 완성이 얼마 남지 않은 탑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위대함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이 성취될 수 있을까? 우린 지금 또 하나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사회를 지나가고 있다.

아주 먼 옛날에 벽돌을 굽고 그 사이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역청을 바르는 기술을 발견한 것은 대단히 큰 진보였다. 왜냐하면 요즘은 다이아몬드 칼로 어떤 돌이든 가공할 수 있지만 돌을 가공할 도구가 변변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돌을 거의 자연 상태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모양이나 쌓기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고 그렇게 규칙적으로 만든 벽돌로 획기적으로 높은 탑을 쌓는 것이 가능해졌다. 놀라운 진보다. 그만큼 인간은 행복해져야 한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없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래서 벽돌 만드는 기술과 역청의 발견으로 이룩한 바벨탑은 인간을 행복하게 했을까?

3) 실패

문제는 결과적으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높은 탑을 쌓는 기술로 인간은 행복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불행해졌다. 탑은 성공하지 못했고 인간은 분열되었으며 소통이 단절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 본문은 언어의 불통을 소재로 삼아서 성경이 진짜로 하고자 하는 말은 언어가 많아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인간의 야심찬 계획이 성공하지 못했고, 다른 피조물이 꿈도 꿀 수 없는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는 실패의 이유가 핵심이다.

2. 심판의 이유 : 교만

1) 이름을 날리자 : 우리 이름을 우리가 짓자!

오늘 바벨탑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규정한다. 즉 천재지변이나 우연히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과 그들이 추진하던 야심찬 계획을 의도적으로 중단시킨 것이다. 초점은 무엇이 도대체 하나님을 불편하게 했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 계획을 중단시키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4절)

탑 꼭대기를 하늘까지 닿게 하자는 건축의 목적은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내자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어떤 존재를 구분하고 불러서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기호(sign)일 뿐이다. 이름에 중요성을 부여해도 이름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니 잘 지어야 한다는 실용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옛날에 이름은 그 정도 중요성을 넘어섰다.

이름 자체가 그 존재의 운명, 삶과 죽음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우리도 이러한 성명철학이 발달되어 있고 지금도 돈을 주고 이름을 짓거나 인생이 잘 안 풀리면 이름을 바꿔서 인생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성경 시대에는 이름이 훨씬 중요했고, 이름에 존재의 운명과 비밀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름을 알려달라는 모세의 요청에도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인간이 알면 인간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겨우 가르쳐준 이름 야훼(나는 나다)는 가르쳐주긴 한 건데 숨긴 것과 같다. 나는 누구냐 하면 ‘바로 나야’라는 건 사실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름이 매우 중요한 시절에 바벨탑을 쌓은 이유가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이었다. 오늘 본문의 ‘우리 이름을 내자’는 히브리어는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짓자!’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성경에는 이름을 누가 짓는가? 아이 낳으면 이름을 누가 짓나? 회사 사장이나 옆집 아저씨가 짓지 않는다. 대개 부모나 그 부모가 짓는다.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생명을 존재하게 한 존재가 이름을 짓는 권한을 갖는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의 관리인으로 세우시고 모든 생명체의 이름을 짓게 하신다. 이름을 짓는 것은 책임과 주권을 의미한다. 그런데 과학 기술 문명이 발전한 바벨탑의 인간들이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는 이유가 바로 이제는 자기 이름을 스스로 자기네가 짓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인간 스스로가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하는 프로젝트다.

성경은 인간의 내면에 이 욕망이 원초적으로 살아있다고 본다. 성경은 이것을 교만이라고 보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것이 결국 죽음과 심판에 이르는 이유라고 아주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이것이 정말 위대한 통찰이다. 우리는 이 영성 깊은 통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도대체 교만이란 무엇인가?

1)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 비교

보통 우리는 목이 곧아 인사도 잘 안하고 말 표현이 거칠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을 교만하다고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예의 바르고 부드럽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기 잘난 척 하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고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구분점은 이와는 좀 다르다.

2) 기독교적 교만 : 하나님 없이 사는 삶

하나님 없는 인간의 주체성에 끌리는 것이 교만이다. 현대는 이런 시대다.

기독교는 사람이 아무리 예의 바르고 잘난 척 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며 부드럽다 하더라도 교만한 사람일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가 말하는 교만은 자기 중심(영혼)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삶이 가능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없이, 인간성만 가지고 인생과 역사를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교만하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우리 이름을 우리가 짓자!’고 하는 사람이다.

더 이상 창조주와 관계를 맺지 않고 그냥 하나님과 무관하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삶, 현대는 바로 이런 삶을 추구하며, 그 매력에 빠져 있다. 이것이 교만한 삶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역사, 굳이 하나님 없이 인간의 생각, 경험, 능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삶은 가능하며 그래야만 진정한 인간에 이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상식처럼 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교만한 것이다.

3) 교만한 인생의 결과 : 실패

성경이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연약하고 모자라고 무능력해도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의지하면 주님께서 은총과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이 겸손한 사람이다. 반대로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교만하며 그는 결국 실패와 심판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오늘 야심차게 새로운 문명의 탑을 하늘까지 쌓고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자기 운명과 인생을 결정하기로 했던 바벨탑의 사람들이 결국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였으며 사방으로 쓸쓸하게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문명과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4. 교만으로 실패한 인생으로부터 새 출발

1) 아브라함

성경이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결국 실패할 것이고 진정한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나아갈 때 구원과 복이 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는 11장의 바벨탑 이야기에 이어 12장부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실패하는 인생과 역사의 예와 행복한 구원의 인생과 역사의 예를 뚜렷하게 대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온전한 삶을 원한다면 인간에게 주신 창조적 능력을 하나님 없이 교만하게 사용하려고 하지 말고, 그럴수록 우리에게 신적 능력을 부여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며, 자손이 없어 늘 고민하던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후손을 주셨다는 것이 구약 전체의 키노트다.

2)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

엘 그레코, 성령강림(부분), 1600년경

또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의 강림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초대교회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였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초대교회는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모든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기도하던 초대교회 공동체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이 임재하시니 그들이 방언을 하였고, 이에 여러 나라에서 예루살렘에 와 있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근원적으로 분열되었던 인간의 상처를 성령 강림의 역사를 통해 치유하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뜻 깊은 사건이었다. 이것이 교회다. 교회는 인간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분열을 넘어 진정한 일치에 이르게 한다.

3) 추석 명절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기도는 날마다 명절과 같은 기쁨과 풍요, 행복이 넘치는 삶이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생명 평화 정의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가 죽음 불안 부패로 왜곡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 없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인간 교만의 결과다. 우린 이 불행을 치유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해도 하나님을 등지는 삶은 바벨탑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행복한 구원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 그 믿음을 지닌 이들에게 내려 주시는 성령의 임재와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