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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첫 설교<김명수 칼럼>
김명수 (경성대 명예교수, 충주예함의집) | 승인 2016.09.12 14:04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느님나라가 너희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린 사람들은 복이 있다.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너희는 복이 있다. 기뻐 웃게 될 것이다.“(눅6:20-21; 새번역)

And turning His gaze toward His disciples, He began to say,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yours is the kingdom of God.   21."Blessed are you who hunger now, for you shall be satisfied. Blessed are you who weep now, for you shall laugh.(Luke6:21-22;NASB) 

 

몇 달 전 최원웅집사가 <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란 책을 선물했어요. 파리 경제대학 교수 토마 파케티가 쓴 책인데요. 분량이 꽤 많았어요. 8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습니다. 엄두를 못 내다가 한 달 전에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후 전개된 21세기 지구촌 자본주의의 실상을 가장 생생하게 파헤쳐주는 책이었어요. 중국과 일본에서 엄청난 반응을 보였는데요. 중국에서 2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저자가 십 수차례 방문하여 강연을 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이 책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다고 해요. 개론서와 연구서들이 많이 나왔고요. 여러 잡지에서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성장 위주의 경제논리를 앞세웠던 주류경제학과는 다른 시각에서 자본주의의 맨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저와 같은 전문적인 경제학 지식을 갖지 않은 일반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 져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삶의 현실에서 피부로 느끼고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피케티는 지구촌 자본주의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시급한 문제를 경제적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에서 찾았습니다.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서 생겨난 불변의 신화(神話) 중 하나가 무엇인가요? 이른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이론인데요. “위에 있는 통에 물을 먼저 채우면, 그 물이 넘쳐서 바닥을 적시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먼저 파이를 크게 키운 다음 나누자는 이른바 파이 이론이나, 선성장후분배(先成長後分配) 이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어요.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경제는 트리클다운 이론을 기조(基調)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기업 살리는 것이 먼저다.’ 친기업(親企業) 정책이었지요. 지난 반세기동안 소득 분배나 재분배는 항상 미래의 과제로 미뤄져왔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회의 소수자들의 기본권은 항상 국가폭력으로 제압당해왔습니다.

기업들은 통에 물이 차면 어떻게 하나요? 물이 흘러넘치도록 그냥두지를 않습니다.  다른 통을 마련하지요. 이명박 정권이 펼친 정책이 무엇이나요? 7-4-7정책입니다. 경제성장 매년 7%, 국민소득 4만불 시대 달성, 세계경제 7위권 나라였지요. 이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 친화(business friendly)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대기업을 부자로 만들어주면, 투자가 증가되고, 고용이 촉진되어, 중소기업이나 영세민의 경제도 활성화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법인세를 대폭 인하해주었어요. 그만큼 국민은 세금 폭탄을 맞게 되었지요. 

결과는 어떠했나요? 세계 100위권 안에 한국기업들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현재 30대 큰 기업의 사내 보유금이 1800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10년 전 노무현 정권 때보다 천문학적으로 증가했어요. 한 마디로 1%도 안 되는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놓은 것이지요. 이처럼 부(富)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 절대다수 국민은 빈곤에 허덕이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 정책의 결과가 헬조선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피케티는 바로 이 점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수 백 년 간 통계자료들을 조사하여 트리클다운이라는 것이 근거 없는 이론임을 밝혀내었어요. 기업이 살찌워야만 일반 국민경제가 되살아난다는 기업 친화적 경제정책의 허구성을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밝혀낸 것이지요. 

2014년 세계 1%의 부유층이 사유하고 있는 재산이 세계 전체 부의 절반에 이른다고 합니다. 상위 10%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세계 전체 부의 9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옥스팜> 보고서, 2015) 

대기업들의 상속재산, 금융자산, 부동산투기, 법인세 인하로 얻는 불로소득자(rentier)들의 재산 증식비율이 땀 흘려 일하는 일반사람들의 소득비율에 비해서 엄청나게 크다는 것입니다. 

피케티가 또 하나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로비 정치경제학입니다. 기업 활동에서 재벌들의 비자금 조성은 필수적인 일이지요. 그 돈으로 무슨 일을 하나요? 매년 막대한 로비자금으로 사용하지요. 대상은 누구인가요?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국회의원과 고위급 정치인들입니다. 엘리트정치인들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법을 제정해주지요. 엘리트 공무원들은 엄청난 특혜를 주지요. 이런 식으로 로비를 하여 기업들은 공기업을 사기업화하거나, 공공의 소유여야 할 재산이 기업의 재산으로 사유화되지요. 나라 경제의 건전성을 파손시키는 주범이 로비 경제정치입니다. 로비를 통해 사회적 불의가 시스템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계층 간 임금 격차와 교육 불평등은 사회 전반에 걸쳐 다층적 불평등구조를 재생산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땀 흘려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회에서 바보 취급 받기 십상이거나, 아니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극소수 특권층에게 부가 편중되고, 국민 절대다수가 궁핍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면 사회 전체가 불안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 구조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지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사태까지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소비 없는 생산은 자본주의의 파탄을 초래하게 되지요. 기업도, 투자도, 자본도 결국 파산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불합리한 선거제도에 의해 선출된 엘리트 직업정치가들, 그들에 의해 운영되는 대의(代議)민주주의 제도나 관행이 오늘의 현실을 초래했어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근본 원인이 어디 있나요? 바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화학적 결합에 있지요. 자유민주주의가 내 거는 자유는 무엇인가요?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지요. 단지 자본과 특권 로비세력의 권익을 위한 것으로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가? 피케티는 민주주의 강화를 들고 있어요. 우리나라 국가 설립의 이념이 무엇인가요? 민주공화국입니다.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민주국(民主國)이지요. 공화국에서 ‘화(和)’자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곡물(禾)과 사람의 입(口)이지요. 밥은 함께 먹어야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지요. 밥을 독식(獨食)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먹는 나라가 공화국(共和國)입니다. 

민주공화국은 다른 것이 아니지요. 민(民)이 주인이 되어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경제의 공성회복, 곧 경제민주화입니다. 평등사회 구현이지요.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헌법 제1조의 근본이념을 회복하면 됩니다.  

ⓒ 김두홍 목사

예수의 공적(公的) 생활 기간은 3년 정도 됩니다. 공생활동안 하신 말씀들이 처음에는 예수를 따랐던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oral tradition)되어 내려 왔는데요. 대략 10년 정도 되지요. 

사람의 기억이란 오래 가지 못하지요. 예수 따르미들은 그의 말씀을 후세에 전하는 방법으로 구전(口傳)보다 글로 남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작성된 최초의 책 <예수말씀 복음>을 <큐복음>이라고도 합니다. 70년 경 쓰여 진 마가복음보다 대략 20년 정도 앞서 작성되었는데요. 아마 바울도 이 <예수말씀 복음>을 자주 읽었던 것 같아요.  

<큐복음>에서 예수께서 하신 첫 설교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루가복음에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어요.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느님나라가 너희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나오는데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5:3)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든, 아니면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든, 예수께서는 공생활 등장 첫 설교를 ‘가난한 사람들’(hoi ptochoi)과의 관계성 속에서 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통치(basileia)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 뒤바꾸는 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프토코스(ptochos)’는 사회경제적 용어인데요. 오늘의 언어로는 기초수급자에 해당하지요. 하여튼 예수는 하느님통치 복음의 정체성(identity)을 가난한 사람과의 연관성 속에서 찾았음이 분명하지요. 3년에 걸쳐 갈릴리 씨알민중을 대상으로 행해졌던 예수의 하느님통치 운동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 변혁으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박두한 하느님통치를 준비하는 삶의 자세로 예수는 무엇을 제시하셨나요? 회개(metanoia)입니다. 개벽의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회개(메타노이아)라는 것입니다. 메타노이아는 무엇인가요? ‘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는 개인, 가정, 공동체, 사회, 인류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 한 생각을 바꾸는데서 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세상만물과 세상만사가 다 마음작용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이 회개에는 들어있어요. 

우리는 밖의 세계를 액면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지요. 색깔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의식하고, 식별하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마음작용을 통해서 내 마음에 투영되고 재구성된 세계만을 인식할 뿐입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지요. 내 마음작용을 떠나, 그 어디에도 객관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메타노이아를 그토록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요. 한 생각, 한 마음 바꾸는 것이, 곧 세계 전체를 바꾸는 단초(端草)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유대인들은 율법과 안식일 수호를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613개 조항의 안식일 법규를 만들어놓고 지키기 위해 인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는 어떠했나요?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바꾸어 생각했어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어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도록하기 위한 보조 장치가 안식일 법규라고 생각을 바꾸었지요. (막2:27)

예수에게 최상의 가치는 사람이었어요. 모든 사람이 하느님 자녀답게 존귀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율법과 안식일법규도 그 가치 아래 두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리, 창녀, 죄인을 죄악시했어요.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헌데, 예수는 그들과 한 밥상에서 먹으며 교제를 나누었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살았고요.(눅7:34)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겨 마시면서 민중의 동반자로 살았지요.(마11:7-11).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나요?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사회법규를 잘 지키는 이른바 모범생들로 불리는 부유층 엘리트들이지요.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예수는 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세리, 창녀, 죄인들이 사회의 모범생인 바리사이파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선언하고 있어요.(마21:31) 율법에 충실한 부유층 바리사이파에 의해서 멸시당하고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라는 것이지요. 

예수의 첫 설교에서 하느님나라의 주인공을 누군가요?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세속적인 평가기준에서는 당연히 돈 많은 사람들일 텐데요. 하느님 나라의 평가기준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한 생각을 바꾸어 생각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하느님의 아들딸로써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빈곤 문제 해결 없이는 아무리 경제성장, 복지, 삶의 향상을 외쳐도 모두 허구라는 것이지요. 예수는 인류 문제, 세계 문제의 근본원인을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서 찾았습니다. 하느님나라의 정의와 평화실현 차원에서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예수는 공생애 첫 설교에서 과업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피케티가 강조하는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의 실현을 통한 민주주의 강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 말씀 복음>이 전해주는 예수의 첫 설교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김명수 (경성대 명예교수, 충주예함의집)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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