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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워리 Don't worry!(눅 12:22~31)2016년 9월 25일 창조절 넷째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09.24 16:20

*영상설교: youtu.be/eWSuJYZZzRo

 

1. 걱정거리 많은 인생

1)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생활 유지를 위해 의식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사느냐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하루 종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선조가 임진왜란 중 피난을 갔을 때, 한 백성이 '묵'이라는 물고기를 바쳤는데 임금이 먹어보니 너무 맛이 좋아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임금이 문득 은어가 생각나 먹어보고는 맛이 예전과 달라 '도로 묵이라고 하라'고 해서 도루묵이 되었다는 미확인 전설이 있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단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따지면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지만 2천 년 전이나 현대 과학이 발전한 현재나 인간이 사는 모습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

2) 물질적/경제적 근심이 현대인의 중심 문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 비해 요즘은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몸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돈만 있으면 새로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그래서 서울 강남 압구정 거리는 정말 성형외과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돈만 있으면 요즘엔 옷이 없어서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옷들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 입을까 고민한다. 돈만 있으면 수영장이 딸린 저택, 밤에도 천장을 통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집에서 살 수도 있다.

결국 과거와 같이 현대인들도 의식주 문제에 매여 있으며, 과거에 비해 이 모든 과제는 돈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결국 돈을 어떻게 모으느냐에 삶의 목적이 귀결되며 돈이 없는 사람은 늘 돈 걱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Don’t worry! (돈)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을라나?

2. 예수님의 청중 : 가난한 사람들

1)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주변의 사람들에게 오늘 말씀을 전하셨다.

먹고 사는 문제로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까마귀를 보아라. 농사짓지 않아도 먹고 산다. 열심히 저축하고 부를 쌓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는다. 들의 백합화도 마찬가지다. 옷 만드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멋진 옷을 입고 있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한가?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부모님처럼 모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주시고 배려해 주신다.

새나 꽃도 이렇게 챙겨주시는데 하물며 특별히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천지만물의 관리를 맡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시겠느냐?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살려고 한다든지 먹고 사는 문제로 날마다 시름에 잠겨 근심어린 삶을 살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이 당연히 주실 것을 구하기 위해 이 악물지 말아라. 이런 것을 구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다 챙겨주실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믿음은 이것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서 사는 것이다.

2) 이처럼 낙관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풍요롭게 잘 사는 이들이 아니라 기본소득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로서 대부분 하루를 살면서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굶기도 했고, 할 수 없이 주님이 이들을 먹여야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제대로 된 옷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을까? 겨우 한 벌로 1년 내내 견뎠을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옷을 입고 살려면 여러 벌 옷을 가지고 갈아입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을까! 예수님이 집에 대해서는 별 말씀을 안 하신 것은 아마도 중동 지방은 아주 춥진 않아서 그냥 옷만 있어도 밤에 길거리나 여기저기서 잘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주님도 자주 길거리나 산에서 주무시곤 했으니까.

이렇게 경제적 여유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오늘 주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당장 점심은 어떻게 먹지, 이 옷 떨어지면 뭐 입지, 오늘 밤에는 어디서 자야할까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런 것 가지고 걱정하고 한숨 쉬고 근심어린 얼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 물정을 모르시는 것인지, 이들의 고민과 걱정의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시는 것인지…. 그런데 어쨌든 주님은 이런 걱정하느라 아까운 인생 허비하지 말고 소중한 마음을 다치지 말라고 하신다.

3) 이런 삶이야말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옛날 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지금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신다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결국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 믿음이다. 내 인생과 역사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이 믿음을 어떻게 삶에서 유지하며 그 믿음 가지고 살았더니 하나님을 이렇게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3.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과 걱정해야 할 것

1) 주님의 뜻하신 것은 기독교인은 세상에 살면서 아무 근심 없이 희희낙락하는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날마다 천국만 바라보고 세상의 아픔과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눈 감는 무책임한 삶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개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는지 걱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시되 우리가 구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믿음이다.

이런 삶이 실제로 쉽지는 않다. 당장 물건도 사야하고 애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 병원도 가야하는데,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막막함과 절망감을 날마다 순간마다 믿음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러한 실존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 한계를 넘어서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에 근심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관심할 겨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누리고 싶은 욕구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신(神)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으며, 이러한 전망은 현대 자본주의에 와서 개인과 사회 구조에서 정확하게 실현되고 있다.

현대의 가장 강력한 신은 누가 뭐라 해도 돈이다. 심지어 교회마저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간판은 걸어 놓았지만 속으로는 돈을 숭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시각각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먹고 사는 문제의 근심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걱정하는 삶으로 채워야 한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이다.

2) 우리 시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걱정

기독교인은 사실 누구보다도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삶이 걱정 없이 풍류를 즐기는 낙천가였을까? 십자가의 극형을 예감하며 사는 삶이 그럴 수 있을까?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무거운 근심의 짐을 지고 평생 사신 분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처럼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을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며 원자력 발전소는 한번 사고가 나면 결코 씻을 수 없는 재앙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핵발전소 폐기 정책과 에너지 절약을 위해 걱정해야 한다.

남북 대치 상황이 날로 격화되고 있으며 대화와 협력이 아니라 갈등으로 치달을 경우 6.25와 같은 전쟁이 또 다실 벌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뛰어다녀야 한다.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 민족은 공멸할 수밖에 없으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아니라 바로 남과 북이 하루빨리 신뢰를 쌓고 평화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4대강 공사로 우리나라의 강산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걱정해야 한다. 한 번에 썩지 않아도 이미 죽음의 세력이 남한 전체에 확산되고 있고 어느 순간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갈수록 나라들 사이에, 한 나라 안에서 계층 사이에, 세대 사이에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갈등과 편차가 원망과 폭력에 대한 유혹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걱정해야 한다.
인간의 과학 기술의 무한한 발달이 몰고 올 파국과 이제 상식이 되어버린 무신론적 분위기,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걱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세상 사람들이 하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걱정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개인적인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삶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은총을 베푸시며 그 기적 같은 은총 속에서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1) 사렙다 과부의 기적

엘리야와 사렙다 과부.(그림 출처 : marysrosaries.com)

이스라엘을 책임지는 목자로 기름 부어 세우신 아합 왕이 타락하니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었다. 지도자의 자세가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시대, 안타깝지만 우리도 오늘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시돈 지방 사르밧으로 간 엘리야는 성문 어귀에서 한 과부를 만난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 없이 아들 하나를 혼자 키우는 삶은 그 자체로 가문 삶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오랫동안 진짜 가뭄까지 겹쳤다.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갈 방법도 의욕도 기력도 없다. 그 때 엘리야를 만난다.

지친 몸이지만 물 한잔 정도야 갖다 줄 수 있는데 이 낯선 노인은 먹을 것까지 요구한다. 엘리야를 바라보는 여인의 갸름한 얼굴에는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인의 옷 주름이 과장되고 어색한 것으로 보아 무명 화가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불을 지펴 아들과 최후의 식사를 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여인의 처지를 엘리야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길을 통해서 잘 드러내고 있다.

조금은 염치없고 인정사정 없어 보이는 엘리야는 죽음을 앞에 둔 여인을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그녀의 절박한 사정에 동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정은 다 알지만 우선은 나에게 그 음식을 가져오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 막막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엘리야의 오른 손은 여인을 향하고 있지만 왼손은 왼쪽 화면 밖의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부터 가뭄과 바닥난 식량, 그리고 절망을 넘는 복음이 들려올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과 기적이 불어올 것이다.

교회는 이 구원의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곳이다. 교회는 그 시대의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경제적 궁핍의 해결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드러내 보이는 곳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엘리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은 스스로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지만!

2) 죽음을 앞 둔 사렙다 과부와 기적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건만 충족하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기적은 가능하다. 조건은 오직 믿음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신다는 믿음, 하늘의 새도, 들의 풀과 꽃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당연히 보호하신다는 이 어렵지만 단순한 믿음이 기적의 조건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480Y6OV4R3w&index=33&list=WL

내가 가진 조건과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면 가능하다는 것이 믿음이다. CBS 새롭게 하소서!에 나와 간증한 영화배우 최강희 씨의 간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늘 밝고 쾌활한 그에게도 남모를 고통이 있었고 그것을 그는 믿음으로 극복했다.

기독교인이 사는 법은 내 근심, 걱정, 무의미한 삶 등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사는 것이다.
믿음은 당장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확실한 대책도 없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이다. 위험하고 불안하다. 그러나 순간마다 다가오셔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스릴과 짜릿 한 삶이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이런 삶으로 초대하신다. 신앙생활이란 이 믿음을 훈련하는 것이고 교회는 이 훈련을 함께하는 공동체다.

예수님 말씀 믿고 한번 살아보자. 세상 근심과 걱정에 얽매인다고 키를 한 자라도 더 늘릴 수 있는가? 먹고 사는 일이 풍요롭고 안정되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하나님 없는 풍요는 이루었다 해도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없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1년만 살아보자. 의지가 약해서 잘 안 되면 그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주님께 고백하고 시도해보자. 그래도 변화가 없다면 그 때는 내려놓아도 된다. 믿음으로 인생의 참 행복과 자유를 누리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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