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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라!(눅 12:16~21)2016년 10월 9일 창조절 여섯번째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10.08 14:07

*영상설교: youtu.be/nkGgt6u8Rx8

 

■ 국가 폭력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저항

한국현대사의 대 전환점에는 지극히 평범한 국민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나 군인 등에 의해 무참히 죽임당한 사건들이 내재해 있었다.

고 김주열 군의 영정사진. 시신은 너무 끔찍해 보여주기가 어렵다.

4.19 혁명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군의 죽음으로,

80년대 이후 우리 역사를 결정지은 광주 5.18 항쟁

고 박종철 군의 추모열기.

 

고 이한열 군.

그리고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으로 촉발된 6.10 민주운동 등 민주사회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폭력이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을 때, 그 때 우리는 분노했다. 그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망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지금 또 한 명의 평범한 농민 백남기 님이 국가 폭력에 의해 317일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생명을 잃은 비극을 맞이하고 있다. 더욱 국가 폭력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연사로 몰고 가기 위해 부검을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백남기 님은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그것은 우리 같은 평범한 국민도 언제든지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한국기독교장로회 101회 총회 중에는 백남기 님의 생명을 주님이 안아주시고 다시는 이러한 국가 폭력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특별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이에 항의하여 교회 외벽에 현수막을 걸었다.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것은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만 현장의 책임자들이 신중히 처신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성남시민들이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행동을 결정하면 우리교회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우리 자손들이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할 것이다.

1. ‘걱정마라’와 ‘걱정해라’

1) 누가 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상반된 말씀을 하셨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2절)
그래서 몇 주 전에 이 본문으로 걱정하지마(Don’t Worry!)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 정반대로 걱정하나 없이 평안히 사는 사람에게 청천 벽력같은 죽음의 경고를 하셨다. 한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 그 직전에는 걱정하라고 하셨다.

2) 인생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하나다.
그러나 이것을 듣는 청중에 따라서 강조점을 다르게 하고 계신다.
순간마다 걱정에 짓눌려 살아가는 민중들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시고, 풍요로운 부에 둘러싸여 인생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는 부자에게는 오늘 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라고 하신 것이다.
청중이 놓여 있는 자리가 예수 복음의 강조점을 다르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교회가 놓인 자리, 곧 복음을 선포해야 할 자리가 어떤 곳인가를 과학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2. 어리석은 부자

렘브란트, '어리석은 부자(32*42.5cm, 1627년/ 베를린 국립미술관)

1)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는 아주 많이 알고 있는 말씀이다.

이 장면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렘브란트의 ‘어리석은 부자’가 가장 인상적이다. 렘브란트는 역시 대가다. 성경이야기를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이 비유의 핵심을 찾아내서 다시 자기 시대의 한 장면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미 이 그림은 얼마 전에 설교를 통해 언급했기에 오늘은 다른 그림을 소개한다. 예술성에서 보면 렘브란트 그림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그림의 장점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아주 충실하게 모두 표현해 놓았다는 점이다.

2) 어리석은 부자, 작자 미상 러시아 이콘

그림 출처 : scholarblogs.emory.edu

삶이 풍요롭다. 적당한 햇빛과 비가 내려 대지는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일꾼들은 반월형 낫으로 열심히 곡식을 베어 나른다. 가운데 네 명은 기존의 창고만으로는 소출을 모두 쌓아놓을 수가 없어서 도끼를 들고 창고를 더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경은 말에 실어온 곡식 단을 창고로 들이는 장면이다. 일꾼들의 어깨와 허리가 굽어질 정도로 무거운 곡식 단이다. 대풍이다.

화면 오른쪽 집에 앉아 풍년을 바라보는 주인은 흐뭇할 것이다. 앞에는 곡식 단과 그것을 팔아 생긴 금화가 여러 개의 궤짝에 담겨 있다. 탁자 위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불확실하지만 돈 주머니 등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주인은 만족하여 손뼉을 치는 것 같다. 이제 부족함이 없다. 인생이 행복하고 평안하다. 농사도 풍년이고 인생도 여유롭다. 현재 상태가 너무 좋다(Status Quo).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개혁은 개나 줘버려라. 이제는 즐기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만 남았다.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워워!

주님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을 한 마디로 정의하셨다, 어리석은 부자여(The Rich Fool)! 부자가 되는 방법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내 생명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생의 기본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바보였다. 화면 왼쪽 위 끝에서 하나님이 그를 향해 심판의 오른 손을 들어 올리셨다. 하나님으로부터 발현한 빛은 직선으로 부자를 향해 나아간다. 이제 곧 그에게 닿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다, 추수도, 확장한 창고도, 멋진 노래와 계획도!

그래도 일말의 전환 가능성이 남아있다. 아직 그 빛이 부자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어리석음으로부터의 자유가 구원이다. 

3. 어리석음의 본질 : 내 것이 내 것이 아닌데!

1) 부자 : 유능하고 지혜로운 인물의 전형
여기 나오는 부자는 능력이 없는데 어쩌다가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실력, 성실함, 아이디어, 대인관계 등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인물,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많은 이들이 이 부자를 롤 모델로 삼고 성공 비결을 묻고 본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한 마디로 어리석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도대체 무엇이 어리석은가?

2) 내 인생은 내가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500년 동안 이어져온 근대 역사의 핵심은 내가 내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에 간섭할 수 없으며, 나의 미래는 내가 계획하고 내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바로 이런 삶의 자세가 어리석다고 단언하셨다.

신앙인과 비 신앙인의 차이는 형식적으로는 교회 나오고 안 나오는 것으로 분별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바로 이 점에서 나뉜다. 교회 나온다고 다 신앙인이 아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참 신앙인이 아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내 인생과 역사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소꿉놀이하는 꼬마들이 저녁때가 되어서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모든 것 다 중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와 같다. 내 인생의 시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만이 정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부자라 해도 이 실존적 진실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면, 허망한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혜는 이 땅위서 사는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영생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미 확증되지 않은 것은 쉽게 믿을 수 없는 구조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하지 않고 덥석 믿었다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등 많은 것을 잃은 경험을 지니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인생을 거는 것이야말로 모험이다. 현대인들은 이 모험을 두려워하며 가능하면 안정을 추구한다.

문제는 진정한 안정이 어디에 있느냐이다.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평안하게 인생을 즐겨보자는 부자의 계획을 향해 하나님은 어리석도다! 하신다. 오늘 밤에 네 생명이 끝나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신다, 우리에게도!

4. 구원 : 어리석음으로부터의 자유

1)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사는 법은 이웃을 돌보지 않는 삶이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절).

인생을 살면서 능력과 여건을 주셔서 풍요롭게 한 것은 이웃에 눈 감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만족한 삶을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셨다. 그는 자신이 만든 탐욕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이다. 여기에 구원은 없다.

풍성한 소출을 보며 부자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이것을 도둑맞지 않고 잘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삶의 반경이 자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삶을 평안하게 하고 유복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물질이기에 어떡하든지 이것을 보관해야 하고 가능하면 더 많이 늘리려고 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복음은 여기에 아니오라고 외친다, 아니오!

내 삶과 경제의 모든 원인과 결과는 나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수용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믿음이다.

2) 며칠 전 오마이뉴스에는 임금 문제로 파업하고 있는 시화공단의 어느 기업 노동자 임금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입사 11년차 시급 6149원.

한국 현대사의 큰 산 장준하 선생님의 아들 장호준 목사님은 기장 경기노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미국 UCC 코네티컷 컨퍼런스에서 한인 목회를 하면서 미국의 노란 스쿨버스를 10여 년 전부터 운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목회도 하니 무척이나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민주화 운동 세력을 조직하고 보수적인 한인사회를 깨우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며칠 전 그 목사님이 페이스 북에 글을 올렸다.

나는 하고 싶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나보다 못한 이웃이 눈에 밟히는 마음,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 부요한 사람, 지혜로운 삶이다. 이건 어떻게 가능한가?
지금 힘든 사람은 걱정하지 말라(Don’t worry!).

지금 풍요롭고 행복한 사람, 그래서 이 삶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걱정하라.
내가 이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마치 내가 내 인생과 물질의 주인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걱정하라.

내 인생, 내 재물이 내 것이 아니라 창조주요 내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믿는 삶이다. 이 믿음의 삶 끝에 놓여 있는 것이 자유이고 구원이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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