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 이야기>, 안병무, 한국신학연구소

언제나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 사건의 현장에서 질문을 얻어서 그 질문을 성서에 던진다. 그런데 성서에서 답이 들려올 때에도 언제나 현장에 의해 성서가 재조명되어 성서의 진리가 새롭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그 답이 이끌어 내진다, 그거예요. 별거 없어요.¹⁾

*이 글은 민중신학이야기(안병무, 한국신학연구소)를 읽으며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신학과 학부 1학년 시절 민중신학이야기라는 책을 처음 만났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내가 민중신학회에 가입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민중신학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다니던 과의 관습이 1개의 학회에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처음 본 책이 민중신학 이야기였는데 – 지금 생각하면 이 책은 오히려 민중신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는 상태에서 보아야 하는 것 같다. - 그렇게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민중신학이야기는 안병무의 인터뷰 문답집인 셈인데 안병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책이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학회의 강독시간에도 안 나가기 일쑤였고 민중신학이야기는 그렇게 내 책꽂이 한 켠에 먼지 쌓인 채로 놓여있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후략)

아무튼 바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 12주에 걸쳐 해보려고 한다. 민중신학이야기의 챕터가 12개이니 2016년이 12주 남은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아니 무슨 책 재미없었다는 얘기를 하더니 그 책 얘기를 하겠다는 건가 싶겠지만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내가 그 책을 재미없게 읽어봤던 사람인만큼 왜 노잼이었는지도 조금은 알겠기에 조금은 더 잘 읽을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이제부터 민중신학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나는 아직 대선에서 투표한 경험이 두 번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나마도 한번은 내가 투표한 후보자를 당선시킨 그런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 말인즉슨 ★박이 형을 내 손으로 뽑았단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마 앞으로는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볼 날이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내 인생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나의 삶의 궤적을 조금이라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1980년대 후반 서울의 변두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쭉 자랐다. 나의 어머니는 유치원 선생님이셨고 나의 아버지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만지고 본 물건들 몇 개가 기억이 나는데 그중 하나는 보건의료노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머그컵이었다. 집에는 꽃다지와 안치환의 CD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이었는데 그 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의 교회였으며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 계셨던 전도사님은 우리에게 ‘새 물’ 등의 민중가요를 찬양처럼 알려주었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왜 우리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들은 안 부르고 맨날 이상한 노래들만 부르지?’ 하고 생각했다. 그 당시 대통령은 노무현이었으며 나는 그 권위 없는 대통령이 좋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초대 대통령이 다녔던 미션스쿨이었다. 그의 호를 딴 동산도 있었고 그의 동상도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내가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진학하고 알 수 없는 오기와 스노비즘²⁾, 그 외의 요인이 작용하여 민중신학회에 들어가고, 찬양동아리인 줄 알고 노래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내 스스로 제법 삐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20,000달러를 돌파했고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 적어도 그때 내 눈에는 말이다. - 그러다보니 ‘단결’ ‘투쟁’을 외치는 노래를 할 때마다. 단결이 필요한건 알겠는데 투쟁이 왜 필요하지? 라고 생각했고 –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나치당원의 자질이 보였던 것 같다. - 민중신학이야기를 볼 때마다 지금 한국에 그런 ‘민중’이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그랬던 내가 처음 생각을 달리하게 된 계기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집회참가자를 넘어뜨리고 머리를 발로 찬 영상을 보고 ‘지금 내가 저 행위에 대해서 부당함을 표시하지 않으면 저 발은 곧 내 머리를 차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처음 집회, 시위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일은 내가 그저 집회, 시위에 처음 나왔을 뿐 나의 신학, 특히 민중신학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변함은 없었다. 나의 신앙과 신학이 뒤흔들린 것은 2011년의 기억이었다. 

2011년 6월, 카페 마리 강제 철거 당시 (사진출처 : 당당뉴스)

2011년 여름 어느 날 트위터가 조금 시끄러웠다. 명동 변두리의 어느 카페가 재개발 때문에 내쫓길 처지가 되었는데 용역이라는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안에 있던 사람을 이불로 돌돌 싸서 길가에 내버리고 건물을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카페의 이름은 마리였고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당사자들과 연대자들이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와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았고,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조금씩 볼 수 있었다. 그해 여름 꽤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지냈다. 

그곳에서는 용역들이 언제 또 농성장을 침탈할지 몰라 불침번을 서기도 했는데 내가 불침번을 마치고 자려고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던 때(새벽 5시 40분 즈음으로 기억된다.) 100여 명의 용역들이 농성장을 침탈했다. 모두 예상치 못한 시간이었고 안에 있던 당사자들과 연대동지들은 맞으며 건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카페 마리 농성장에선 몇몇 기독교인들이 모여 성공회 성무일과로 아침, 낮, 저녁, 밤 기도를 했는데 농성장 밖으로 끌려 나온 그 날 아침에도 우리는 아침기도를 했다. 그날 우리는 차분하게 기도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이내 모두 오열하며 마칠 때 즈음엔 이게 그냥 우는 것인지 기도문을 읽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 강렬한 예수의 가상과 우리의 삶이 한 줄기로 만나는 체험은 없었다.

안병무는 ‘민중이 예수다.’ 라는 말을 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이야기하는데 나의 현장을 가지기 전에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민중이 있네 없네’ 하며 누가 민중이고 누가 민중이 아닌지 가리는 말장난을 하며 ‘것 봐. 그런 거 지금은 있을 수 없다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현장을 가지게 되니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개발이라는 우상을 믿은 우리의 죄,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자들의 죄, 돈을 위해 사람들의 삶의 자리와 심지어 사람마저도 파괴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의 죄 등등... 이 죄들을 짊어지고 고난당하는 세입자와 타자의 고난에 참여하는 연대동지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부터 현장은 내게 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주는 샘이 되었다. 

*각주 설명 

1)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28-29.
2) 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 또는 출신이나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일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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