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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공성(公性)회복 운동<김명수 칼럼>
김명수(심원안병무기념사업회장; 충주예함의집) | 승인 2016.10.17 16:04

* 이 글은 지난 16일(일) 향린교회에서 열린 '안병무 심포지엄'에 앞서 드려진 안병무 박사 20주기 추모예배 설교문입니다 - 편집자 주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눅6:20-21)                         

심원 안병무 박사

안병무 선생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20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전에 선생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여러분께서 잊지 않고 오셔서 이 자리를 빛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한국사회, 그리고 여러분과 저는, 어떤 면에서든지 선생께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생께서 평생 추구해 오셨던 삶과 신학사상의 가치들은 지나간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삶과 목회현장에서도 살아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현재진행형 사건입니다. 선생의 삶과 학문은 우리사회에 민권민주주의 회복과 한반도 평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데 있어서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근본주의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성서해석과 신앙교리에 안주해있던 한국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존재를 세계교회에 널리 알리고 소통과 연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도 선생은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금년 6월에 일본 오사카에서 안병무 저작 일본어 출간을 기념하여 신학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화여대 박경미교수, 한신대학 최형묵박사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일본 신학계의 안병무’라 할 수 있는 아라이 사사꾸(荒井獻) 교수님의 주제 강연을 비롯하여 21세기 기독교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80여분의 일본교회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안병무선생의 평생에 걸친 화두(話頭)는‘민중’이었습니다. 예수사건을 민중사건의 원형질로 보았고요. 그 지평에서 오늘의 민중사건을 해석했습니다. 

선생에게 민중은 깨우쳐야 할 대상도 아니었고 계몽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민중 그대로에게 하느님 자녀라는 인식론적 특권과 존재론적 우선성을 부여했지요. 민중의 고난과 해방사건 그대로를 하느님의 역사개입 사건(misssio dei)으로 증언했던 것입니다. 
  
민중 그대로가 하느님 자녀인가, 아니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하느님 자녀다운 민중이 따로 있는가? 하느님의 아들딸로써의 민중은 존재(存在)인가, 아니면 당위(當爲)인가? 

본문은 마가복음보다 20여년 먼저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 원형복음 큐(Q)의 말씀인데요. 예수의 첫 설교입니다. 이 설교말씀에는 예수의 삶과 모든 가르침이 수렴되어 있고요. 예수설교의‘브랜드 마크’라 할 수 있지요.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예수는 당위(當爲)로써의 민중이 아닌 존재(存在)로써의 민중인 ‘가난한 사람’자체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나라의 수혜자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일방적인 선언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존재론적 우위성과 인식론적 특권을 분명히 하고 있는 말씀인데요.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억압의 문제 해결 없이, 그 어디에도 하느님 나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첫 설교에서 하느님나라는 피안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민중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역사적인 사태(事態)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급사회에 들어온 이래로, 인류역사의 모든 문제는 곧 피압박 민중의 문제였습니다. 민중의 문제이고요. 민중의 문제로 수렴될 것입니다. 민중의 문제를 푸는 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근본 모순과 인류역사의 문제를 푸는 근본이지요. 

그러면 민중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가? 안병무선생은 ‘공(公)의 사유화(私有化)’시스템에서 찾고 있지요. 정치권력의 사유화, 경제성장의 사유화가 구조악(構造惡)이고, 이를 선생은 ‘죄(hamartia)’로 규정하고 있어요. 사유화된 공(公)을 본래의 제 자리로 돌려놓는 ‘공(公)의 회복’운동을 일컬어 선생은 메타노이아(metanoia)라고 하고 있어요. 바울은 구원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으로 보고 있어요. 바울이 말하는 칭의론(Justification)은 신앙이나 관념이 아니죠. 공(公) 회복운동의 선구자인 예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의해서 결판나는 사태로 보았던 것이지요(롬3:28). 이게 바울이 말하는 믿음(pistis)의 본뜻이지요.    

서구기독교 신학전통은 물(物)에 대한 정신의 우위성을 주장하고 있어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物)을 천시하면서도 동시에 물질축복을 신앙의 궁극목표로 삼고 있어요. 기독교의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지요. 물(物)은 가치중립개념(wertfreier Begriff)이지요.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지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의 도구 또는 악의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일찍이 동학의 해월선생은 경물(敬物) 사상을 피력했어요. 물질에도 신성(神性)이 깃들어있으니, 하느님 공경하는 마음으로 물질을 대하라는 것인데요.  땅에 함부로 침을 뱉거나 오물 버리는 행위를 금했습니다. 하느님 얼굴에 침 뱉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는 만물을 하느님의 몸으로 보았기에 함부로 하늘과 땅을 오염시키거나 파헤치는 일을 경계했어요.

기독교 언어로 바꾸면 물질 또는 피조물의 성화(聖化; sanctification) 운동일 텐데요. 사유화된 물(物)의 공성(公性) 회복운동이지요. 물(物)의 신성(神性)회복 운동이지요. 우리는 물질과 정신의 통합적 영성(靈性) 회복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에서 하느님의 모습 나아가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는 다른 것이 아니지요. 생각을 바꾸고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회의식을 바꾸고 사회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일체의 왜곡된 관계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사유화된 물(私物)을 본래의 자리(公物)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공생에로, 축적에서 순환에로, 성장에서 분배에로, 분리에서 통합에로 경제 패러다임을 교체하는 신성한 경제학(sacred economics) 논리가 필요한 것이지요. 사유화된 물(物)의 공성(公性) 회복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예수의 첫 설교를 이루어가는 여러분이 되길 빕니다.

김명수(심원안병무기념사업회장; 충주예함의집)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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