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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다른 세대?(삼상 8:1~5)2016년 10월 23일 창조절 여덟 번째 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10.24 11:05

*영상설교: youtu.be/yMqZfBt05E0

 

1. 기독교 학교의 위기

1)이화여대

86일 동안 본관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인 이화여대 학생들과 총장의 대립이 결국 총장 사임으로 일단락되었다. 요즘 국정을 뜨겁게 하는 최순실 씨의 딸 입학에 대한 논란이 이화여대 사태의 중심에 있다.

“최순실씨는 올해 초 딸에게 제적 경고를 한 지도교수에게 '교수 같지도 않은 이런 뭣 같은 게…'라고 상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지도교수는 교체됐다. 최씨 딸은 이대 입학이 결정된 2014년 말 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글을 올렸다. 이렇게 들어온 스무 살 학생에게 어느 교수는 굽신거리는 듯한 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130년 전통 명문 사학의 자존심은 구겨졌다.” (조선일보/만물상 ‘이화의 수난’ 강경희 논설위원)

드디어 교수들까지 가세하여 총장 사퇴와 학교의 자존심 회복을 외쳤고 실로 오랜만에 교수와 학생이 하나 되어 학교를 살리고자 한 운동은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이화여대가 이런 현실을 맞이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처음 스크랜튼 선교사의 선교 열정으로 학교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감리교를 이사회에서 퇴출함으로써 겉으로는 기독교 학교이지만 속으로는 한국교회와 아무 관련이 없는 학교가 되어 버린 것이다.

2)연세대

2013년 말 주민교회 부임하기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연세대학교 설립자로서의 권한을 한국교회가 되찾아오는 것이었다.

연세대학교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사재와 모금, 그리고 한국교회의 기도와 헌금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한국 최고의 사학이 되었다. 학교 운영의 주체인 이사회는 설립자인 한국교회를 대신하여 연세대학교를 운영해왔고, 이사 총 15명 중 4명을 기장, 예장 통합, 감리교, 성공회에서 한 명씩 파송해왔다. 그런데 조선일보 방** 전 사장이 이사장을 맡으면서 정관에서 이 조항을 삭제하여 연세대학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권한을 박탈해버렸다.

연세대학교는 명성뿐만 아니라 규모에 있어서도 하나의 대학이 아니다. 1년 예산이 대전광역시와 비슷한 규모로 4조원에 이른다. 실무 책임자로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는데 결국 주민교회 부임 후 1년 정도 후에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함으로써 되찾아오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그 이면에는 모두가 개인의 탐욕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철되고 있음을 본다.

3)한신대

1981년 신학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확장한 한신대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 중심지였지만 내부적으로는 기독교 인재 양성이라는 종합화 목적과 학내 민주화라는 갈등이 내재해 있었다.

그 갈등이 기회 있을 때마다 분출되었는데, 작년 말부터 시작된 내홍이 올해 초부터 계속 학교와 교단인 기장 교회 전체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에 주민교회 당회는 올 봄 경기노회에 한신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연구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총회에 헌의하자고 제안했고 경기노회가 주민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러 노회와 함께 한신대 문제를 지난 101회 기장 총회의 주요 의제가 되게 했다.

지난 총회는 개혁의 도를 넘어 혁명에 가까운 결정을 했다. 현 이사회의 자진 사퇴를 결의하고 그 이사회가 선출한 총장 인준을 부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학교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총회는 각 노회에서 1인씩 선출하여 ‘한신대학교 개혁 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경기노회는 나를 선출하여 중임을 맡겨주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담이 많이 된다. 주민교회가 우리 교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한신대의 발전을 위해 기도해 주기 바란다.

4) 기독교 학교가 위험에 빠져 있다.

이 또한 한국교회 위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처음 선교사들이 학교를 통해 선교하고자 한 순수하고 거룩한 뜻은 흐려지고, 학교가 어느새 이권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한국교회 앞에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 또 하나 요즘 대학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이렇게 분석하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화여대가 최씨 모녀에게 휘둘린 데는 결국 정부가 쥐고 있던 돈줄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 이화여대는 교육부 9개 주요 재정 지원 사업 중 8개나 선정됐다. 지원 예정액이 178억 원을 넘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신설된 재정지원 사업 6개를 유일하게 모두 따낸 사립대학이다. 이 대학 의류산업학과 이모 교수는 최근 1년 새 총 55억 원의 정부 지원 프로젝트를 땄다. 최씨 딸에게 후한 학점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다. 타 대학 의류학과 교수들한테 물으니 "이쪽 분야 연구 지원비는 1억원 넘기 어렵다. 55억 원은 상상도 못할 돈"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정부와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다. 교육부는 40여개 재정 지원 사업에 연간 7조원 남짓한 돈을 나눠주며 350여개 대학을 쥐락펴락한다. 대학 자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와 권력에 취약한 고리를 비선 실세의 치맛바람이 파고들면서 대학을 휘둘렀다. 당국이 최씨 모녀의 비리를 제대로 밝혀내고 교수와 학생들이 힘을 합쳐 전통 사학의 명예를 하루빨리 회복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위 글)

결국 현 정부의 정책이 대학의 본질을 흐리고 생존을 위해 권력에 줄을 서야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걱정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이 개인이나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기에 교육만큼은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써야한다.

구약의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도 자식 교육에 실패하여 평생의 업적에 균열을 가져왔다.

2. 사무엘의 실패

또 하나 요즘 대학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이렇게 분석하니 틀리지 않을 것이다.

1) 엘리 제사장 아들들의 신성모독 죄와 대안으로서의 사무엘

여호수아 레이놀즈 경, '어린 사무엘'(1776 년, 영국 국립미술관, 런던)

어렸을 때 버스나 택시 운전석의 위에는 대개 작은 카드 모양의 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예쁘고 똘똘한 서양 어린이가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어린아이의 모습만으로도 운전기사나 승객들이 무언가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아이가 이스라엘 역사의 위대한 예언자요 재판관이었던 사무엘이란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믿음의 어머니 한나 손에 이끌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무엘.

그는 부족동맹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이행하는 이스라엘 역사의 전환기에 지도자로서 중책을 감당하였다. 사무엘은 제사장의 직분을 물려받았으나 그 거룩한 사역에 소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혹독한 심판을 받은 엘리의 두 아들을 대신하여 지도자로 부름 받았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사무엘의 두 아들 역시 물려받은 재판관으로서의 중요한 사명을 사익에 따라 곡해함으로써 왕 제도를 도입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다음 세대 교육은 참 어렵기만 하다.

사무엘상은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2백 년 동안 유지되던 왕(권력자) 없는 평등한 부족 동맹체였던 시기 이스라엘의 마지막 제사장이었던 엘리는 두 아들이 제사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전쟁에 지고 아들들은 전사하고 며느리들도 죽고, 엘리 제사장마저 충격으로 목이 부러져 죽는다. 그리고 자식 교육에 실패한 엘리 가문의 대안으로 나타난 시대의 걸출한 인물이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부족공동체에서 왕권 국가로 전환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제사장, 예언자, 재판관의 역할을 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 더군다나 왕정으로 이행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이후 이스라엘의 왕가를 이룬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사람이 사무엘이다. 실로 대단한 인물이다.

엘리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서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고 그 대안으로 옹립된 사무엘이 막강한 책임과 권한으로 이스라엘을 지도해왔는데, 기묘하게도 사무엘 역시 엘리처럼 두 아들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서 불행을 맞게 된다.

사무엘은 부족의 평등을 깨고 사회를 권력화, 계급화하는 왕권 제도를 반대했는데, 결국 왕 제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한 이유가 바로 사무엘 아들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사무엘 아들들의 잘못으로 한 사회의 구성체를 변경하는 중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무엘이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은 개인과 가정의 불행을 떠나 이스라엘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2) 사무엘 아들들의 죄와 법의 중요성

민주사회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 민주주의는 사법부의 결정이 최종 결정이기 때문에 사법부 독재도 가능하다고 할 정도다. 정치 문제든 경제 문제든 종교 문제까지도 최종적인 판단을 사법부가 하게 되어 있다. 법원 판결로 국회의원도 무효가 되고, 대통령도 쫓겨날 수 있다. 기업의 총수가 구속되기도 하고 교회의 분쟁도 사법부의 판결에 꼼짝 못한다. 그러기에 사법부는 특히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생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들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결국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여 3권 분립의 민주정치 원칙을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비민주적 방식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1960년에는 판사들 절반이 참여하여 민주적으로 대법관을 선출했었는데,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뒤엎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비민주적으로 바꾼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는 9명의 재판관으로 이루어지는데, 대통령이 3명을 지명하고, 국회가 3명을 선출하며,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결국 9명 중 6명이 대통령 권한 아래 있고 국회 몫 3명도 여당이 다수면 2명, 소수라도 1명을 지명하니 전체 9명 중 7~8명을 대통령 지명하는 구조나 마찬가지다. 이러니 국민이 뽑은 정당인 통합진보당을 헌법위원회가 해산하고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과도 다르게 단지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 사이의 시시비비를 가려 판결해주는 사사(士師)로서의 직무가 더 중요하였다. 우리 성경은 사사기라고 되어 있지만 영어로는 판사를 의미하는 Judges라고 한다. 사사기는 재판관들에 관한 책이고, 우리가 말하는 사사의 중요 업무는 재판관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사사기를 (재)판관기라고 했다.

사회에서 재판이 공정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고, 수많은 불의가 횡행하게 된다. 엘리와 그 아들들이 맡은 제사장의 역할이 제사를 집례하는 것이었다면, 사무엘과 그 아들들이 맡은 재판관의 역할은 서로 대립하는 양쪽의 주장을 듣고 엄중하게 잘잘못을 가림으로써 사회의 정의를 세우고 유지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사명이다. 그러기에 사법부는 뇌물, 개인 이해관계, 권력에 휘둘리거나 유혹받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대 지도자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3절)

불의한 판결은 사회에서 정의를 쫓아내고 부정을 키우고 원한을 키우는 온상의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참 어려운 과제다.

3. 다음 세대를 위하여

1) 미국에 대해 비판할 것도 많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도 많다.

특히 17세기 영국에서 미국으로 온 청교도들은 신앙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험난한 신대륙에서 바른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이민 온 목적이었다. 이들은 주로 영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기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교를 먼저 세웠다. 1636년 존 하버드 목사는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좋은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학교를 세워달라고 유언했는데 그것이 하버드 대학이다.

나도 사실 하버드 대학을 나왔다, 저 문으로!

거기 가면 기념관이 있는데 저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놀랍게도 저 안에는 학생들의 식당이 있었다. 저기서 밥 먹어 보고 싶어.

그리고 하버드 동상이 있다(실제 이 동상의 인물이 하버드 목사는 아니고 어느 학생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의 오른발이 반짝 빛난다. 그의 오른발을 만지는 사람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다는 전설이 있어서 모든 사람이 만진다. 나도 열심히 만지고 왔는데 10년이 지났건만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기노회와 UCC 커네티컷노회 결연 20주년 기념 방문, 예일대학교 탐방 (2014.10)

1700년 초에는 코네티컷에 예일 대학이 세워 졌는데, 예일이라는 분이 자기 전 재산을 기증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우리노회와 UCC 코네티컷 노회 파트너쉽 20주년을 맞아 방문했을 때, 그곳 교회가 우리 방문단을 예일대로 안내했었다.
그 외 프린스턴 대학 등 모두 초창기에는 기독교 목회자와 평신도를 양육하기 위해 재산과 열정을 기울여 다음 세대 교육에 힘을 쏟은 것이다.

2) 우리의 신앙교육

(사진 출처: 한국성결신문)

이스라엘 역사의 전환기를 책임졌던 지도자 사무엘도 자기 자식 교육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만큼 자식 교육은 참 어려운 문제다. 부모와 기성세대의 권위가 살아있던 과거에도 쉽지 않은 문제인데, 요즘처럼 개인의 인권과 주체성이 강조되고 기성세대에 대한 존중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 어떻게 다음 세대를 교육할 수 있을까, 그것도 신앙 교육을?
참으로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우리는 어떡하든지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를 신앙으로 교육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세대는 다음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가 될 것이다.

(사진출처: 로뎀나무교회)

내 자식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다면 그 현실을 아파해야 한다. 자식이 학교 안 가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학원 빼먹으면 무슨 큰일 난 것처럼 노발대발하는 신앙인이 교회 안 가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대한지 모른다. 학교와 학원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고 교회는 하나님을 가르치는 곳인데, 학교나 학원보다 교회를 중요시 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내 자녀가 바른 신앙관을 갖고 살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니 보다 정직하게 말하면 부모의 신앙이 내 자식은 하나님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에서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오늘부터 교회 안 오는 아이들 야단치라는 것이 아니다. 야단치고 화낸다고 해서 교회 오지도 않는다. 정말 신앙이 세상 지식과 학벌보다 인생의 결정적 요소라고 내가 먼저 믿는다면, 그 길에서 벗어나고 있는 내 자식의 미래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내 자식들의 신앙, 우리 교회 어린이/청소년들의 신앙교육 시스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음세대들의 신앙에 대해 가을만큼이나 고민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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