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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종교와 건강 국제 심포지움'조울증과 철학적 삶'주제...감신대서 열려
박일준 (신학위원장) | 승인 2016.10.24 15:21

어느 날 문득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상태로 바깥을 내다보다, 갑자기 뭐 하러 이렇게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느낌이 밀려온다. 멀리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확 뛰어내리면, 자유롭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무기력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학회 모임에 참석해서는 오늘 너무 많이 떠들고 괜히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의 말을 끊고 신나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뱉어내다, 돌아서는 순간 ‘오늘 내가 참 바보짓했구나’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다시 찾아오는 고독과 무기력.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양한 형태의 심리적 질병들을 앓고 있지만, 특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아니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해야만 한다. 내가 중증이든 가벼운 증상이든 그러한 증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는 순간, 나는 그때부터 “미친 놈”이 되거나 혹은 (무슨 문제로 서로 다투거나 하면) 내가 감정 컨트롤 못해서 벌어진 일로 덤탱이를 쓰는 사회. 육체적인 장애도 배려를 많이 못 받는 사회지만, 정신적 장애는 더 더욱 배려를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숨기고 은폐하며 살아가게 된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에서는 더 더욱 숨겨야 한다. 그런 심리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 믿음이 부족한 형제/자매로 낙인이 찍힐테니 말이다. 당사자는 이렇게 숨기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회중들과 더불어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 스스로는 어떨까? 정작 자신들의 내면에는 이런 증상과 상처들을 쌓아놓고 살아가면서, 교회에서 그런 교우들을 보면 언제나 ‘믿음 부족’ 혹은 ‘약한 신앙’으로 치부하면서, 울부짖고 통성기도하는 모임과 예배로 데려다 ‘치유’하겠다는 무지와 무식을 드러내면서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를 소위 “신앙 치유”라는 엉터리 말로 포장하지 않는가? 그건 그냥 목회자가 무식한거다. 자기가 무지하고 무식하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나을텐데, 오히려 아전인수격으로 그러한 병의 원인을 신앙부족으로 진단하고, 엉터리 신앙치료를 시행하는 돌팔이 목사가 너무 많지 않은가? 현대 사회에서 목회를 감당하는 이들에게 이런 정신적 장애들에 대한 무지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미국 드류 대학에서 철학적 신학/종교철학을 가르치는 코링턴(Robert S. Corrington) 교수는 20대 후반 발발한 조울증(manic-depression)을 안고 살아오면서도 거의 30년 동안 대학에서, 특별히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 그리고 종교학 관련 과목들을 가르쳐온 선생이다. 특별히 2003년 출판한 그의 자서전 Riding the Windhorse: Manic-Depressive Disorder and the Quest for Wholeness (Lanham: Hamilton Books; 번역 근간 예정)는 자신의 인생에서 조울증이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는지를 체험적으로 설명하고, 그리고 이 조울증의 치료와 극복을 위해 약물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정신적 질병을 위한 약물들이 상당히 많이 발달해 있는 요즘은 이런 증상들이 물론 유전적 영향으로 촉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기 진단을 통해 약간의 약물치료 도움을 받는다면 상당한 개선효과를 갖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내가 청년사역을 감당하던 시절 조울증 환자가 있었다. 너무나 착하고 절제력 있는 청년이었지만, 그녀가 조울증이 있다고 알려지던 순간, 담임목사님은 그녀를 교사에서 당장 빼고 새벽기도와 철야에 데려와서 기도와 예배로 치유해야 한다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그때 나는 참 이러한 증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목사님의 말을 따라야 했다. 유학시절이다. 그녀는 결국 교회로부터 아무런 배려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회중들로부터 물러나, 두 번 다시 교회에 오지 않았다. 코링턴은 이런 상황들이 오기 전에 일반 대중과 목회자들이 그런 증상들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와 의학적 지식을 제공한다. 특별히 이런 증상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무지한 나와 같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유익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코링턴은 현재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정신분석적 치료와 상담치료는 병의 악화를 지연시키는데 더 장점이 있을 뿐, 궁극적인 치유에는 무척 한계가 있는 방법임을 지적한다. 대부분의 분석과 상담 치료가, 특별히 의사가 프로이트식 내용을 전공했을 경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의 분석과 치료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물론 병의 원인이 과거로부터 유래하지만, 이는 그런 트라우마 상황에 취약한 트리거(trigger)를 갖고 있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보충설명할 뿐, 그의 유전적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따라서 과거의 치유를 통해 증상을 극복하자면 결국 유전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알다시피 현재의 의학기술로 이는 불가능하다. 생명공학자들은 줄기세포나 새로운 의학기술의 발달로 곧 그런 시대가 올거라 말하지만, 그건 그런 치료가 돈이 될 때에야 촉진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상담치료는 그저 증상을 안고 살아가는 이에게 ‘위로의 상담학’을 전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런 정도의 위로와 힐링 치유에 만족하지 못하고, 종국에는 자살 충동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내 삶에서 발생하는 ‘무드스윙’의 극복은 궁극적으로 나와 세계와 초월의 관계를 해석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의미지평을 견고하게 견지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정신적 질환들과 철학 그리고 신학이 만나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근원적인 물음은 ‘모두가 정상이고 멀쩡해 보이는 이 세계 속에서 왜 나만 이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가?’의 물음이다. 그저 유전적 변이로 인한 우연 때문에? 그저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성장환경 때문에? 내가 그런 상황에서 빈곤하게 양육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는 어떤 의미와 목적 없이 그저 운명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결국 이는 ‘고난의 문제’이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의 의미와 목적, 그것들이 왜 존재하는가의 물음 말이다. 

그냥 난 운없이 태어난 것 뿐인건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나만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내적 짐을 짊어지고 살도록 하시는 것인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서 대답을 할 때, 물론 획일적이고 영구적인 대답은 가능하지 않다. 각자에게 이 질병이 가져다 주는 의미지평의 파괴 수준과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다양성 때문에 이 질병은 결국 환자 자신이 삶과 생명과 우주에 대한 전일적인 이해 지평을 회복함을 통해서, 근원적인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코링턴 교수는 제안한다. 그래서 조울증 치료에 철학과 신학의 이해가 동반되어야 궁극적인 치유가 전일적으로(holistically)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기존의 정신과 치료와 상담 치료가 불필요하거나 쓸모없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일단 증상이 심각하게 발달하면 철학적 상담과 신학적 치유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증상을 받아들이고 치유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발동하기 시작하면 철학과 신학이라는 지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조울증 치료를 받아오면서 겪은 체험의 바탕 위에서 역설해 줄 뿐이다. 

이번 심포지움에서 발표하는 코링턴 교수의 발제는 이상의 내용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질의와 응답을 통해 심화된 이해를 시도하고자 한다. 함께 발표하는 오지아 교수(Jea Sophia Oh, West Chester University of Pennsylvania)는 코링턴의 해석학적 치유 속에서 “천재”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조명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불행이지만 그들의 뛰어난 작업을 통해 인류라는 종 자체가 이익을 얻게 되는 측면을 해석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코링턴의 책에서 ‘조울증’과 ‘천재’는 동전의 앞뒤면과 같다. 많은 천재들이 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병을 겪으면서도 남들이 할 수 없는 뛰어난 업적들을 남겼고, 이는 요즘 유행하는 진화이론의 ‘집단 선택’(group selection) 이론처럼 종이나 집단을 위해 이러한 사람들을 내부적으로 필요로 하면서도, 문화적으로는 그러한 사람들을 향한 차별과 낙인이 공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의 문제를 같이 성찰한다. 

본 행사를 통해, 이런 류의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의미와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참여문의:  박일준 박사 (감리교신학대학, 010-6712-5833) 

박일준 (신학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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