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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캅, 전 지구적 위기에 희망을 말하다<소소한 남자의 소소한 독서>
정주현 (예사랑교회) | 승인 2016.10.29 09:50

신대원 재학시절 신앙수련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감리교 신학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이정배 교수께서 강사로 오셔서 한 꼭지를 담당했었다. 신앙수련회 장소에 몸만 던져 놓고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보냈던 탓에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그날 강의 중에 유일하게 머릿속에 남은 게 당시 이정배 교수가 언급한 「존 캅」의 「영적인 파산」1)이란 책의 이름이었고, 후에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그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존 캅」은 책의 서문을 이렇게 연다. “개신교는 미쳐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비교적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하나의 섬과 같았다. 지구 생명계 전체가 직면한 거대한 파멸의 위기가 임박해질수록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이런 온전한 정신 상태이다.” 그는 이 지구 생명체는 시급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 세속화하는(secularizing) 기독교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세속화와 세속주의

<영적인 파산>, 존 캅, 한국기독교연구소

「영적인 파산」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세속화(secularizing)’와 ‘세속주의(secularism)’다. 저자는 이 용어들을 택한 이유가 세속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세속화’란 내세에 대한 관심보다 현세에 대한 관심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다고 해서 내세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 세상의 변혁을 위해 신앙전통을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전보다 더욱 임박해진 ‘전 지구적 재난’2)의 위협에 대한 대안으로 세속화를 말한다. 

그러나 세속주의는 이와 다르다. 세속주의는 전 지구적 재난을 가속화하는 요소이다. 세속주의는 이 세상과 세상 안에서의 인간 삶의 조건에만 초점을 둔다. 세속주의는 비판적 사고를 막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한다. 이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세속주의가 강화될수록 지구와 지구 위 거주자들의 운명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깊어지는 일이나 지구적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응답은 이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전 지구적 재난을 가속화 하는 모습으로의 세속주의가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네 가지는 ‘과학, 철학, 고등교육, 경제지상주의’다.

저자의 진단을 살펴보면 먼저 과학에서 나타나는 세속주의적인 면은 과학이 그 관심을 전적으로 이 세계에만 돌렸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풍성한 결과들을 가져왔지만 환경파괴적인 결과 또한 가져오게 했다. 철학의 경우 오늘날의 주도적인 철학 학파인 언어 분석철학은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응답은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일군의 철학자들이 환경과 연관되는 주제를 다루지만 그것은 철학자 공동체에서만 용인되는 모양새로 보고 있다. 

이어서 고등교육을 보면 고등교육 기관의 대표인 대학은 철저히 세속주의적인 기관이 되었다. 가치중립을 지향하는 학문의 현장인 대학은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대학이 이룬 연구 성과들은 연구를 위해 돈이 주어지는 곳을 위한 성과들이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아 대학의 연구는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로서 경제지상주의는 가장 세속주의적면을 보인다. 경제학의 든든한 호위를 받는 경제지상주의는 지구의 건강한 미래의 가능성을 없애면서까지 경제성장에 매진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다. 

세속주의의 등장

세속주의의 탄생 배경을 르네상스 예술과 근대과학의 출현 그리고 데카르트의 철학방법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세속주의는 세속화와 모호한 경계를 이루며 철학, 과학, 고등교육 그리고 경제의 영역에서 흘러들어왔고 결국엔 주도권을 잡게 된다. 특별히 기계적, 환원적, 유물론적, 결정론적 특성을 가진 세속주의는 기계론적 패러다임3)의 모습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급속도로 자리를 잡아갔고, 이런 모습은 다른 영역에서도 세속주의가 주도권을 잡는데 큰 힘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과학적 세속주의 혹은 과학절대주의가 탄생했고 점차 그 영향력은 커졌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오늘날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대재난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것을 방해한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세속주의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거나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입장을 제외하고는 가치에 대한 어떤 질문도 묻지 않도록 만들었음을 말한다. 그는 세속주의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거의 다루지 않을 뿐더러 삶이 이루어지는 넓은 맥락을 설명하지 않음을 보았다. 결국 세속주의는 우리의 많은 영역을 진보시키며 우리의 지식을 엄청나게 증가시켰지만, 그런 정보가 갖는 의미에 합당하게 응답하도록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을 쏟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세속주의의 한계들은 세속주의가 근대 이전의 사상들을 거부하고 그것들로부터 단절함에서 온다. 이로서 가치와 인간 삶의 의미 그리고 개인적 헌신 같은 문제들을 진지하게 여기려는 모든 노력을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로서 오늘날의 세계 전체 심지어 순수한 물리적 세계의 경우까지도 통전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지구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고 그것을 구하기 위한 철저한 헌신이 필요한 지금 세속주의의 한계들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존 캅

세속주의를 넘어서

이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새로운 철학’, ‘전복적 경제이론’ 그리고 ‘세속화 하는 기독교’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먼저 새로운 철학이다.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것, 그리고 지구가 그 안에 수많은 생명체들을 살게 하는 것을 봐야한다. 이 생명들은 인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 역시 지구 시스템의 한 부분이며 지구의 다른 부분과 철저하게 연관되고 의존 관계에 놓여있음을 인식해야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으로 책임 있는 자유를 행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구의 일부이지만 지구 전체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체와 운명을 함께하는 특별한 책임이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해는 통전적인 과학 이해와 연관 되어야 한다. 

또한 경제의 목표를 인류의 지속가능한 행복과 전 지구적 생태시스템의 유지에 두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해도 인간의 행복이 거의 늘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성장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정책들이 대개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연구결과들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경제이론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성장이 국가나 국제기구들의 주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과 전체 생명시스템의 행복이 그 목적이 되어야한다. 만약 성장이 이런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속화하는 기독교를 보자. 세속화하는 기독교의 전통은 한 분 하나님이 창조주와 구속주로 세계 전체와 관계를 맺으심을 확언한다. 이 전통은 창조주와 구속주로 세계 전체와 관계를 맺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 하나님과 함께 세계의 구원을 위해 일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예수에게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로마제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그랬듯 현재 사회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역시 현상유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때문에 세상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원리들에 기초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도덕적 긴급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 

예수의 메시지는 도덕에 대한 율법주의적 이해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다. 예수는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식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모든 선을 위한 노력은 의무가 아닌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이것은 규칙들의 답습이 아닌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예수를 통해서 세속화되어야 한다. 세속화 하는 기독교는 예수의 비전을 통해 강력하게 조명되는 세상의 구원을 중요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것 없이는 지구는 자기파멸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전 지구적 상황이 그들의 사고와 행동과 헌신에서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행동에 있어서 사려 깊고 종합적인 계획 속에서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현상유지만을 하려는 사람들의 더 잘 조직된 노력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혁을 위한 기독교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저자는 세속주의가 전 지구적 위기를 초래하고 이에 대안으로 각 영역들의 세속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특별히 기독교에게 예수를 통한 세속화를 요구하고 이를 통해 시급하게 다가온 전 지구 생명체적 위기를 타계하는 노력을 시작하자고 요청한다. 이것은 회개와 동의어이며 분연한 행동으로의 요청이다. 저자는 「영적인 파산」이 내세 혹은 내재적 영역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종교성의 영역에 갇힌 종교의 ‘영’이란 개념을 세속화여 현세와 내세의 문제가 분리되지 않음을 지적하며 현세의 문제에 눈을 떠야한다고 한다. 그러면 전 지구 생명체를 위협하는 시급한 문제가 보일 것이다. 따라서 「영적인 파산」을 막기 위해 신앙전통의 변혁과 재구성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실 전 지구 생명체를 위한 신앙전통의 세속화의 필요성을 그 동안 많이 등한시 되어 왔다.

예수를 통한 신앙의 세속화의 영역은 개인의 영역에 많이 그쳤고,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분명 인간은 창조주의 이미지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다스리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힘을 나누어줌으로써 책임을 위임한 것이다.4) 이 명령은 돌봄의 명령으로서 창조세계와 창조질서의 수호를 맡긴 것으로 이해할 때 이미 기독교의 세속화 영역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이 「존 캅」이 말하는 기독교의 세속화가 전 지구적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하고 이에 동의한다. 따라서 종교성에 갇힌 기독교를 세속화하고 그 결과로서 기독교가 개인과 공동체 모두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에까지 이른다면 이것은 창조주의 이미지와 잊었던 돌봄의 사명을 회복하는 것이며, 세상의 구원자로 고백되는 예수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응답을 요청하는 「존 캅」의 「영적인 파산」은 그가 독자들과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덧. 「영적인 파산」은 이 지면의 한 꼭지로 다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영역들을 다룬다. 또한 철학과 신학, 경제 그리고 과학을 넘나드는 서술들 속에서 독자는 「존 캅」의 지적인 성실성과 지혜를 맛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부족한 소개를 넘어서 「존 캅」의 「영적인 파산」을 읽으며 직접 그 폭과 깊이를 느껴보길 권한다.

* 각주 설명 

1) 원제: Spiritual Bankruptcy – A Prophetic Call to Action
 2) 필자주: 저자가 말하는 전 지구적 재난은 지구 생명체를 위협하는 환경문제이다. 특별히 인간의 생산 활동과 부의 축적을 위한 활동에서 발생하는 전 지구적 파괴 현상을 말한다. 저자는 이 모습을 미래의 재난을 무시하면서까지 지금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미친 짓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왜 사람들이 지구의 필요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그 탐구의 영역은 종교와 고등교육기관 그리고 철학과 과학이며 이 영역들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이 영역들에서 진행되는 세속화와 세속주의 현상의 모습을 논한다. 
 3) 1. 기계론(機械論, mechanism) : 자연현상은 물질, 운동, 그것들의 법칙에 의거해서 설명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철학의 지지자들의 주된 관심은 예컨대 실체적 형상처럼 관찰할 수 없는 것들이나 수학의 방법으로 탐구할 수 없는 신비스런 성질 등을 과학에서 제거하는 데 있었다. 기계론은 생물학적 기능을 물리적·화학적 과정으로 환원함으로써 유기체 개념을 거부했고, 따라서 심신이원론에 종지부를 찍었다.(다음 백과사전편찬위원회)
   2. 기계론(機械論, Mechanism) : 세계는 그 자신의 의지로써 신이 정한 목적의 실현을 향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목적론이나, 세계의 근저에 있는 것은 힘이라고 생각하는 역본설(力本說, Dynamism)과 반대로 모든 현상은 원인·결과의 역학적 인과관계로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말한다.(한국 위키디피아) 
 4) 테렌스 E. 프랫하임 지음/이영미 옮김, “구약학입문시리즈 1 오경”, (대한기독교서회, 2015),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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