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처분하고 간 사무실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됐다는 테블릿 PC 속 파일들은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국면이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박근혜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레임덕 상황에 놓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권 말기에 예외 없이 찾아오는 레임덕 현상의 결정적 계기는 측근 세력의 권력농단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사건들과 더불어 온다. 그중 민주화 이후 두 번에 걸쳐 집권한 보수정권만 비교해보면, 얼핏 보기에 그 측근비리 양상이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그 주역들만 보아도 그렇다. MB 정부의 권력농단은, 대통령 자신이 자수성가한 비루한 계층 출신임에도, 명문대 출신에 유력한 직업과 직책의 인사들, 그리고 주류 종교, 특히 가장 권력과 친화적인 개신교 대형교회에 속한 엘리트, 누가 보아도 권력의 정점임을 의심할 수 없는 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비록 대통령 자신은 ‘퍼스트레이디’였지만, 권력농단의 핵심에 있는 이로 알려진 최순실 씨는 흔히 명문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대학 출신, 그것도 청강생 출신이다. 청강생 제도란 대학생 수가 아주 적었던 시절, 대학학위를 받지는 못하지만 특정 과목을 소정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수강할 수 있게 했던, 일종의 시민의 평생교육 제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부유한 학업능력 미달자에게 편법입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활용되어 온 탓에 1981년 폐지되었다. 최순실 씨는 영문과의 청강생이었는데, 새마음봉사단이라는, 그녀의 부친이 창설한 기관의 대학생총연합회장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는 그녀의 실제 행동은 단순한 청강생 이상이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그녀는 주류종교에 의해 사이비로 낙인찍힌 한 소종파 교주의 딸이다. 또한 그녀의 처신은 전형적인 품격 없는 졸부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더욱이 그녀와 더불어 권력농단에 깊이 개입된 이들은 호스트바 접대부 출신 인사, 헬스트레이너, 마사지샵 원장 등,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의 직업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다. 

해서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시선은 MB 정부의 그것보다 훨씬 강렬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두 정부 중 어느 정부가 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는지는 도긴개긴이다. 그냥 두 정부는 모두 최악의 정부이고, 내가 이 정부들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 체제의 시민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치욕스럽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과제는 이 두 정부 같은 터무니없는 정권이 향후에 다시 등장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이 글에서 박근혜 정부의 측근비리를 둘러싼 담론에 주목하려 한다. 특히 신학연구자로서, 이 담론 속에 등장하는 영세교에 관한 담론을 보면 우려스런 점이 없지 않다. 한마디로 그것은 불온하다. 박근혜 정부의 권력농단 세력이 자행한 비리와 범죄를 성찰하고 청산하는 데 있어 부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1975년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오른쪽) (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 담론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기타 공식적 발언들 속에는 종교 색체의 표현들이 종종 등장한다. 가령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등과 같은 표현이 그렇다. 이를 여러 외신들은 ‘샤머니즘 화법’이라고 표현했다. 또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 ‘나의 깨끗한 손을 잡아달라’, ‘진실한 사람을 찍어달라’ 등과 같은 메시아주의적 표현도 주목된다. 나는 박근혜와 얽힌 불온한 메시아니즘에 관해 비판적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아무튼 대통령의 이러한 종교적 언표들을 사람들은 최태민의 영향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나쁜 정치’의 주된 원인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의 종교적 언표가 최태민의 영향이라는 가정은 개연성이 있다. 최태민을 청년 시절의 박근혜가 유달리 따랐다는 것은 여러 자료가 증명하고 있고, 이때 최태민의 접근 전략에서 그의 종교성이 주효했다는 점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까지 최태민과 그이의 자녀들이 대통령과 지속적으로 아주 특별하게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종교성이 대통령의 내면에서 청산되지 않고 이어졌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한 추정이 아니다.

박근혜의 종교성을 비판하는 대중 담론의 문제는 그 다음 부분에 있다. 즉 그녀의 나쁜 정치의 주요 원인이 최태민이라는 주장 말이다. 물론 최태민과 그가 창안했다는 영세교는, 별로 알려진 게 없지만, 좋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종교를 도구 삼아 부당하게 치부를 했고 권력을 남용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이와 자녀들의 행실 또한 종교인으로서 긍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해서 가난한 월남자가 수천억 원을 소유하는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의 담론에서 최태민으로 표상되는 종교성이 ‘다른 것’보다 ‘더 나쁘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그 ‘다른 것’에 매칭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일 텐데, 그가 목사임을 주장했으니 말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개신교 장로가 세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어느 대통령보다 ‘더 나쁜’ 통치의 장본인이다. 한 사람은 국민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학살한 주역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전쟁만큼이나 치명적인 경제 대란 속으로 국민을 휘몰아 넣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무수한 이들의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부정과 비리의 공화국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개신교 신앙과 매우 밀착된 이들임이 분명하고, 그이들의 권력 핵심에 개신교 엘리트들이 깊이 개입되어 있음도 의심의 여지없다. 이 세 장로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 가운데 후자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또 박근혜 대통령의 종교성이 이 세 명의 장로 대통령보다 더 종교적이었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오히려 그들과 개신교 간의 연관성이 박근혜와 영세교와의 연관성보다 훨씬 깊다. 그리고 최태민의 종교가 개신교보다 더 폐해가 큰 종교라는 주장도 무리스럽다. 

그러니 최태민을 ‘더 나쁜’ 종교성을 표상하는 기호로 읽고자 하는 개신교 세력과 언론들, 그리고 시민사회의 통상적 이해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가 목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순히 지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박근혜의 무능과 부패, 비리에 최태민으로 표상되는 ‘나쁜 종교성’이 결정적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테블릿 PC가 발견되기 몇 시간 전, 박근혜 대통령이 무수한 비리와 무능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해 개헌을 주장했을 때, 한기총은 재빨리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또 십알단 등을 포함하는, 박근혜 정권의 숨은 행동대원처럼 활동했던 개신교 계열의 극우 행동주의 집단들은 최태민의 영세교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정권수호 행위를 자행했다. 요컨대 장로대통령 시기에만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에서도 개신교는 잘못된 개입의 전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박근혜와 영세교를 연계시키는 담론 속에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숱한 비리와 범죄로 이어진 권력농단의 주범을 영세교로 국한시켜 생각하는 하는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권력농단세력으로 군림해온 개신교의 과오를 성찰하고 청산할 기회를 우리로부터 앗아간다. 그것은 개신교가 건강한 종교로서 한국의 시민사회와 함께 할 기회를 또 다시 놓치게 할지 모른다.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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