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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10)<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6.11.01 16:48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

장준하가 박정희의 군정종식을 위해 함석헌과 함께 열어 가기로 한 연속강연회의 일환으로 시민회관의 대강연회를 주최한 자신도 놀라리만큼 그야말로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청중 속에서 들리는 한 소리가 이랬다. 

“야, 이건 예술일세. 예술이야!”
듣는 이의 말대답 또한 그랬다.
“예술? 그렇지, 이런 예술이 어디 있겠나?”
반군정의, 민정회복의 포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박정희의 군정을 향한 포문 말이다. 

장준하는 장준하대로 시민회관 강연회를 구상하고 있을 때, 정확하게 그 제1차 7월 22일의 시민회관 강연회가 시작되기 바로 1주일 전 조선일보지상에 그 함석헌의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려 나간다.

그러니까 7월 22일 함석헌의 시민회관 강연회가 개최되는데, 바로 이전 7일 동안 연재되는 함석헌의 그 글은 정확하게 그 글이 끝나는 날 개최되는 「사상계」사 주최 「함석헌 선생 귀국 보고 강연회」의 청중동원에 엄청나면서도 절묘한 광고, 선전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에 7회에 걸쳐 연재된 그 글의 파고 또한 온 독서계를 뒤흔들어 버렸다. 사상계의 독자들은 물론이요, 대다수의 시민들이 조선일보의 독자가 된 듯했다. 열차 안에, 버스 안에 갑자기 조선일보를 펴든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는 함석헌의 글이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이 함석헌의 기고가 끝나면서, 끝나는 날 그 시민회관 대 강연회가 개최되었으니 실로 그것은 절묘한 합장(合掌)이었다!

그러나 일이 그렇듯 절묘할 수 있었던 것은 거저 그렇게 될 것이어서가 아니었다. 생(生)에 가설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준하’라는 인격을 두고는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만일 그때 박정희가 없었다면 한국은 장준하로 세계적인 역사를 그려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義)와 심(心)의 사람, 장(腸)과 뇌(腦)의 사람을 죽여 놓고, 그 벌, 그 죄 값 청산 없이 그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나라인들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역사의 제물이 되어간 원통한 혼들을 안식에 들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장준하는 언론인으로서는 물론 언론경영인으로서도 타고난 기능을 지닌 이었다. 정치한다는 이는 말한 것도 없고, 교육자도, 문화인도, 종교인까지도 돈 없이는 안된다는 일에까지도 해야 할 일이라는 심적인 명이 내려지는 경우 그 몸을 내 거는 이었다.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는 그 글의 조선일보 연재는 사실은 장준하가 시민회관 <반군정> (反軍政) 대강연회를 구상하는 도중 일종의 계시처럼 이루어진 것이었다. 조선일보사가 필자 함석헌을 찾아서 쓰여지게 된 것이 아니라 장준하가 조선일보를 찾아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말이다. 시민회관 강연회가 그토록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룰 수 있게 한 것은 박정희의 군사정치에서 오는 함석헌의 그 ‘울음’을 장준하가 이 같은 일련의 틀로 엮어내는 기능의 결과였다. 이 같은 함석헌과 장준하의 동역은 1955년이 다해가는 깊은 겨울 그가 함석헌을 만나, 1975년 8월 17일 그가 박정희 군부정권에 모살(謀殺)로 가는 그 날까지 계속되었다.

그 글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는 이렇게 읽는 이의 가슴을 후벼댄다. 

“씨알 중에 지극히 작은 씨알의 하나인 이 사람은 부끄럼과 두려움을 무릎 쓰고 감히 3천만겨레와 이 나라 정치를 맡아하겠다고 나선 박정희님 이하의 재건최고회의의 여러분과 민족문화의 지도자인 지식인과 나라의 울타리인 군인과 겨레의 내일을 맡을 학생 여러분 앞에 눈물로 부르짖습니다...누가 말을 해도 하기는 해야겠는데 다들 잠잠하고, 어디서 꿈틀해도 꿈틀하기는 해야겠는데 그저 죽은 듯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주제넘게 말을 하는 까닭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처럼 사나운 운명의 길을 걸어온 역사는 없습니다. 단군이 나라를 태백에 열 때 그 땅으로 보나 그 사람으로 보나 나무랄 때가 없었고, 삼국이 민족통일의 큰 이상을 두고 서로 다툴 때, 그 정치로 보나 그 문화로 보나 어디 부끄러울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국의 정치한다는 이들이 민중을 저버리어 그 역사적 과제를 이루지 못하고 한번 실패할 때, 그 땅을 그대로 지킬 수가 없었고, 그 사람의 성격도 정신도 병이 들었으며 그 문화는 빛을 잃고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궁예, 왕건의 꿈이 한가람가에 사라지고 최영, 정몽주의 기백이 송악산 밑에 묻혀 버릴 때에, 슬픔에 고난의 역사의 테두리는 결정된 것입니다. 한 개 무부(武夫)에 지나지 않은 이성계가 한 때 어지러웠던 때를 타서 나라를 쥐기에 성공 했다기 로서 그것으로 어찌 민족과 문화의 자람을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다행히 한 둘 잘난 임금들이 있었고, 목숨보다 의를 더 사랑하는 어진 선비가 있어 나라의 형체를 지켜오기는 했으나 그 어간에 있어서 그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고 그 고유한 문화를 가늘게라도 지켜온 것은 전혀 무지한 민중의 끈질기고 줄기찬 견딤이었습니다.

4천년 역사에 100으로 세게 되는 전쟁에 한 번도 남의 나라에 도둑해 들어간 일이 없고, 늘 제 땅에서 겪는 이 싸움엔 진 일이 있어도 제 말 제 풍속 제 역사를 내버린 일은 없습니다. 죄가 있담 언제나 저들을 다스리다 팔아먹곤 한 지배자들, 정치가들이라는 것들에게 있지 민중에게는 없습니다. “

'3000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의 여기까지 글에서 함석헌이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4000년 고난의 역사를 살아오는 동안 이 역사의 산(生) 맥은 민중이었다는 것, 정치한다는 것들 지도자라는 것들은 허명 뿐, 대대로 이 역사, 이 문화, 이 땅을 지켜온 것은 민중이었다는 것. 그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지금도 역사의 주체, 역사의 생명선은 민중이라면서, 이 민중사(民衆史)의 반역으로 박정희를 조준한다. 조건 없이 물러가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박정희님에게! 남은 길은 공약준수 뿐”

“박정희님. 내가 당신을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나는 당신을 양심을 가지고 이성을 가지는 인간 박정희님으로 알고 대하고 싶습니다. 지위는 관 덮개 밑에 들어가는 날 같이 떨어져 버리고, 사업도 비석에 글자가 지기 전 먼저 무너져 버리는 것이나, 영원히 남는 것은 양심과 이성으로 쌓아올린 인간상이기 때문 입니다. 나는 당신과 군사혁명주체 여러분의 애국심을 인정합니다. 여러분의 정의감과 의협심도 모르지 않습니다...그러나 여러분은 여러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첫째, 군사쿠데타를 한 것이 잘못입니다. 나라를 바로 잡잔 생각은 좋았으나 수단이 틀렸습니다. 그리고 수단이 잘못될 때 목적은 그 의미를 잃고 맙니다. 여러분은 나라의 기본 되는 헌법을 깨치고 직접 정치에 손을 댔을 때 후에 올 수 있는 모든 군사적 동란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정의를 위하였거든 마땅히 무기를 들지 말고 비밀리에 일을 꾸미지도 말고 정정당당하게 청천 백일하에 내놓고 항의를 했을 것입니다. “

이제 함석헌의 붓은 박정희 일단이 ‘국가를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뽑아 든 칼을 조준한다.

“또 여러분은 아무 혁명이론이 없었습니다. 단지 손에 든 칼만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무력만으론 얻지 못합니다. 지금의 민중은 영웅의 휘두름을 따라 폭동을 일으키던 옛날의 군중과는 다릅니다. 저들은 자각해가는 인간이므로 이론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민중을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민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성의만을 너무 과대평가했습니다. 자기네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해주려는데 왜 듣지 않느냐? 하고, 심지어는 민중을 강제하여서까지 선정을 해보려했는지 모르나, 그것이 여러분의 사상적 빈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시대의 지도자 의식, 특권의식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성의는 있으면서도 실패한 근본원인입니다. 그런 구식머리를 청산하고 겸손히 민중 속에 뛰어 드십시오. 

또 여러분은 혁명의 꿈을 세우기에 급급하여 여러 가지 수단방책을 썼습니다. 공을 세우기에 급급해 하는 것은 따지고 들면 결국 영웅주의입니다. 속에 영웅주의가 있으면 모든 애국은 결국 가면 밖에 아니 됩니다. 민중은 마침내 그것을 알고야 마는 법이요, 알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큰 잘못은 공약을 아니 지킨 것입니다. 당초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국민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혁명 공약을 내세우고 할 일을 마친 다음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는데 일루의 희망을 걸고 믿고 묵인하기로 했습니다. “

함석헌의 붓이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민중과의 공약의 파괴였다. 함석헌은 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 버린 것은 민중에 대한 무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민중을 무시하는 정권은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된다. 그것이 함석헌이 박정희 군사정권을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함석헌의 글은 계속된다. 

“여러 가지 정치적 부패를 청산하고 사회적 새 질서를 세우는 것을 보고는 잘한다며 칭찬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2년간 군정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때부터 지식인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원체 부대껴온 민중이므로 그것까지 참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다 되어도 당신들이 물러갈 생각을 아니하고 정당조직을 하는 등 박정희님이 출마한다 했다 아니한다 했다 하는데 아주 실망을 해버렸습니다. 당신들한테 민심의 실정을 바로 말해 드리는 이가 있습니까? 나는 아무 당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실정을 조금도 속임 없이 말합니다. 지금 당신들은 민중의 신임을 얻지 못했습니다. 당신들을 아끼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들이 설혹 군복을 벗고 출마한다 하더라도 민중은 불안한 생각을 놓을 수 없습니다.”

함석헌은 마지막 통첩성 발언으로 “박정희님에게! 남은 길은 공약준수뿐”의 마지막을 이렇게 가름한다. 

“박정희님. 당신이 정말 나라를 사랑하다면 이제 남은 오직하나의 길은 혁명공약을 깨끗이 지킬 태세를 민중 앞에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 다음 일은 당신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하는 내 맘도 슬픕니다.”

박정희의 대변자로 알려진 조갑제는 함석헌의 이 글을 포함해 그 이전의 글 “5.16을 어떻게 볼까?”를 말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군사혁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던 당시, 확실하게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최초의 글이었다”라고 했다. (「위기의 순간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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