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이훈삼 설교
주님 앞에서 비는 기도를 들어주소서!(왕상 8:27~30)2016년 11월 13일 창조절 열한번째 주일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11.12 15:36

*설교 영상 링크 youtu.be/eNMi30nKBCs 

1) 개체주의의 승리 : 미국 대통령 선거■ 주간 단상 : 두 개의 세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한다는 브렉시트(Brexit)에 이어 세계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다시 한 번 경악했다. 그 전날 밤까지 미국의 대다수 유력 언론들이 힐러리의 승리를 예상했고, 또 상식적인 민주주의자들은 그리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 얼굴만 봐도 싫어한다. 그래서 그를 경멸하는 많은 사진들이 난무한다.

물론 이런 감정은 단순한 루키즘이 아니고 트럼프가 보여준 저급한 말들과 유치한 생각들,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캐나다에서 목회하는 후배 목사의 말로는 캐나다에서는 선거 결과를 보지 않아도 캐나다 이민국 사이트가 다운되면 트럼프가 이긴 것이라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트럼프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캐나다로 이민 가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한꺼번에 캐나다 이민국 사이트에 접속하여 서버가 다운되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트럼프의 이미지는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돼지였다. 실제 모습이 좀 비슷하기도 하지만 그의 행동에서 받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러나 독일 이민 3세이면서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의 젊을 때 모습은 아주 멋지다. 아무리 싫어도 사람의 외모 때문에 막연히 감정적으로 싫어하지는 말자.
그보다 정말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영국과 미국 시민들이 세계 다른 나라들과 협의하고 상생하는 것은 지양하고, 유색인종이나 이민자, 여성 등 상대적으로 연약한 이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그냥 우리끼리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전 세계로 파급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더욱 더 우선 나부터 잘 살고 보자는 태도가 강해질 것이다. 거기에 협력과 상생, 도덕과 윤리 등의 고상한 가치는 반대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기독교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제 교회는 다가올 세상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한다.

2) 공직자에 대한 엄격함 : 독일 대통령 사임

벌써 4년이나 지난 사건이지만 요즘 새삼스럽게 우리 언론의 조명을 받은 사건은 2012년 독일 불프 대통령의 사임이다.

(이하 사진은 중앙일보)

물론 독일은 총리가 실제 권한자이고 대통령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실권은 약하다. 그러나 상징적인 대표성은 있다. 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임하고 만다. 그런데 그 이유가 우리가 볼 때는 어이가 없다.

대통령 친구가 축제에 온 대통령 부부를 위해서 90만 원짜리 호텔을 제공했다는 의혹,

5만원짜리 장난감 자동차를 대통령 아들 선물로 받았다는 의혹,

대통령 부인이 차를 렌트할 때 0.5%를 할인 받았다는 의혹,

집을 살 때 재벌 친구에게 돈을 빌렸는데 기준 금리보다 1% 낮은 이율로 빌렸다는 의혹 등, 우리가 보면 이게 진짜 사실일까 하고 의문이 드는 내용들이다.

결국 불프 대통령이 ‘친구에게 돈을 빌릴 수도 없는 나라에서는 살기 싫다’고 하자

독일 국민들은 어이 상실하여 85%가 사임을 요구했고 대통령은 그대로 사표를 냈다.
독일 국민이 정치 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은 엄격한 정직성이었다. 미국 선거에서 뛰어난 능력과 경력, 그리고 주류 민주당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도 힐러리가 패배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막판까지 따라다닌 그의 정직성 문제였다.
우리는 왜 그렇게 관대해야할 것엔 집착하고 엄격해야 할 것에는 관대한지…!
교회는 이 가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 솔로몬 성전 건축과 기도

1) 성전 : 신의 거처

예로부터 신전은 국가의 최대 사업이었다. 신의 은총이 임재하지 않으면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그리고 전쟁 등 수많은 불행이 닥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고 그 신을 섬기기 위한 신전 건축 사업은 중요한 국책 사업이었다.

그리스의 수많은 신전들, 로마의 만신전, 그리고 남미 잉카 신전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이 모두 그렇다. (시계 방향)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다윗왕은 평생소원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서야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하셨다. 오늘 본문은 성전 건축을 다 마치고 감격적인 봉헌 예배를 드리면서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드렸다는 기도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어떤 의미인지를 볼 수 있다.

2) 성전에 관한 성경의 시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거처는 어디일까? 하나님이 땅에 기거하실 수 있을까?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이 땅의 어느 곳에도 머무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믿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고백이다. 그 만큼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인간의 능력 안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라는 견해다.

그래서 오늘 거대한 성전을 지은 후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7절)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도 거처로는 충분하지 않을 만큼 위대하신 분이라고 한다. 그러니 솔로몬의 성전이 아무리 크고 아름답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처로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라는 것을 먼저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이렇게 이어서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8절)

눈에 보이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무리 웅장하다 해도 하나님의 거처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면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솔로몬의 기도에 나타난 성전에 대한 관점이 정확하게 옳은 것이다.

3) 성전 : 기도하는 집

성전, 곧 건물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집은 아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큰 규모의 성전도 감당하기 힘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그 건물 안에만 계실 수는 없는 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집은 곧 이 우주 만물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심혈을 기울여 지은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기도를 드리면 꼭 기도에 응답해주시리라는 믿음이다.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다. 하나님이 꼭 성전 안에만 계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성전 밖 저 우주 가운데 계신다. 기도는 꼭 교회에서만 해야 들으시는가? 그렇지 않다. 집에서도, 산에서도, 길거리에서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런데 왜 가능하면 교회 와서 기도하라고 하는가?

우리가 인생의 진로, 가정의 문제,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어른에게 상담을 하려고 한다면 어디서 할 것인가? 상담은 내 고민이나 생각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니까 꼭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도 할 수 있고, 횡단보도에서도 이야기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문제를 상담할 때 아무데서나 하는 사람은 없다. 중요하고 심각한 내용일수록 그것을 말하기 최적의 장소를 일부러 택한다. 상담을 잘 할 수 있다면 차 한 잔에 만원을 해도 비싸지 않다. 차 값 아끼려고 길거리에서 대화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어디서 한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내 마음을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는 곳, 모든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곳, 그곳이 성전이기에 교회에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즉 교회는 우선 이렇게 하나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는 곳, 세상 모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2. 예수님의 성전정화

1)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계기가 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마가 11:17~18)

마가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그 전부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는 예수님의 언행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어떤 결정적인 사건을 보고서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인가? 바로 성전정화사건이다.
 
2) 성전 정화

니콜라 콜롱벨(1644~1717년),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는 그리스도'(1682년, 119.4*88.3cm,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그림 출처: Wikipedia)

기둥 주두가 꽃무늬로 이루어진 화려한 성전 안에서 예수님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붉은색과 파란 색으로 강렬하게 대비되는 옷을 입은 예수님이 심판의 오른 손으로 나무 채찍을 들고 계신다. 이제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든 악인들을 가차 없이 심판하실 것이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렬한지 당대 종교 권력을 쥐고 있던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저 뒤 멀찍이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장사꾼 중 대부분은 이미 밖으로 쫓겨나갔고 일부는 도망치다가 넘어져 있다. 이 긴박하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돈 주머니를 꽉 움켜쥐고 있는 사람, 그리고 도망가는 길에 몸을 반대 방향으로 틀어서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 사람, 심판은 탐욕에 사로잡혀 헤어 나올 줄 모르는 인간들 머리 위에서부터 가혹하게 시작될 것이다.

이 사건으로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 살해 음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본인의 행위가 당시의 권력층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그리고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십자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이렇게 소리치셨다 ;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3) 성전 내 장사하는 이들의 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장사하던 이들은 정말 천하의 못된 죄인들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변이 궁금하다. 어떤 면에서는 억울함을 토로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예배이고 오늘의 예배는 현재 사회 상황에 맞게 재편성되어 있다.

2천 년 전 예배는 제사였다. 제사의 핵심은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비둘기, 양, 소 등의 제물을 성전에다가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 기본 구조다. 처음에는 각 자가 집에서 기르던 양이나 소를 끌고 왔고 산에서 비둘기를 산 채로 잡아다가 제물로 드렸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차도 없이 다 걸어 다녀야 했으니 수십 킬로미터를 양이나 소를 몰고 와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이나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이나 모두 새롭고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올 때는 그냥 오고 성전에 와서 적당한 제물을 선택하면 그것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예배드리는 사람은 제물을 살 수 있는 보물이나 돈을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 이게 얼마나 편리한가! 처음에는 조금만 이익을 남기고 바꿔주다가 이제는 집에서부터 제물을 가져오는 것은 너무 불편하여 불가능하게 되고 판매하는 것도 익숙해져서 이익을 더 남겨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르는 게 값이 되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의무적으로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 때 제물을 사려면 그리스나 로마의 화폐를 다시 유대 화폐로 바꿔야 하고 환전 수수료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꼭 장사꾼들만을 위한 것인가? 사실은 여기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이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하려니 당연히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것인데, 뭘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제 제사장들이나 성전의 장사꾼들이나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일에 관심이 쏠렸고 그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성전의 진정한 기능, 사람들이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본질은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성전의 본질과 부수적 역할의 뒤바뀜, 이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 신앙의 변질을 초래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러한 현상에 분노하시고 개혁을 단행하신 것이다. 본질을 상실하는 것이 타락이다. 우리는 신앙의 본질,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써야 한다.

3. 교회의 본질

1) 교회의 본질이 아닌 것을 추구할 때 교회가 망한다.

한국 교회의 위기 책임은 우리 모두가 같이 져야 한다. 그러나 경중을 가린다면 이제까지 한국교회의 대표로서 자처하면서 행동하던 이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해야 한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야 하는 예언자적 사명이라는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고 오히려 권력에 기대어 온갖 영화를 누려온 것에 대하여 하나님과 역사 앞에 회개해야 한다.

11일(금) 기장 시국기도회와 시가행진의 구호 중에는 권력에 아부한 종교인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도 있었다. 요즘 전국 곳곳에서 노인부터 중고등학생까지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사이비 종교에 영혼을 팔아먹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다급해진 대통령은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며칠 전 종교계 대표들을 만났다.

천주교는 염수정추기경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과는 달리 권력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추기경이다.

개신교에서는 김장환목사와 김삼환목사가 청와대에 대표로 초청받았다. 김장환 목사는 1969년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하는 등 독재 정권을 옹호했던 인물이다.
김삼환 목사는 현재까지 한국교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역시 권력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밀착관계라고 보아야 한다.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 10차 부산총회 때 그는 한국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세계 교회 대표들은 7년 만에 개최된 세계교회 총회가 분단된 한반도에서 열리는 것을 기념하여 한반도의 펑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중요한 선언서를 채택하였다. 세계교회가 뜻을 모은 선언서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과 북이 대화하고 협력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나가 될 것과 세계 강대국들은 북한 경제 봉쇄를 해제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선언이 채택되자 아마도 우리 정부는 무척 당황한 것 같다. 열흘간의 총회 마지막 폐회식에서 한국준비위원장인 김삼환목사의 감사 인사시간이 있었다. 통상 모든 회무를 잘 마치게 되어 감사하고 멀리서 참석하신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의례적인 순서였다. 그런데 김삼환위원장은 아주 작심을 하고 세계교회 총회가 선택한 한반도평화통일 선언과 정반대되는, 대북 강경책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주장했다.

한국교회는 박근혜대통령의 훌륭한 통치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기도한다고,

한국교회는 (미국이 추동하는) UN의 대북경제 제재조치가 적절하고 훌륭한 결정이기에 존중한다고!

나는 그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장으로서 저 자리에 참여하고 있었다. 맨 뒤에 앉아서 저 이야기를 듣다가 정말 책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개하였다. 세계교회 대표들이 채택한 선언을 한국교회준비위원장이 마지막에 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김삼환 목사 개인의 생각이고 판단에 따른 행동이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수많은 교회와 목사가 있는데 왜 하필 이런 목사들만 골라서 초청했는가? 결국 정말 소통하여 국정을 정상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자신을 지지하는 종교인들을 만나 형식만 대화했다하는 생색을 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가 수많은 사람들을 서울이나 지방 가리지 않고, 어른이나 학생이나 모두 참가하는 국민 저항운동을 불러 온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쇠락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만 스스로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하면서 진정 하나님의 뜻을 증언하지 않고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권력과 유착하여 교회의 본질을 훼손한 대형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역사 앞에 석고대죄 해야 한다.

2) 성전은 기도하는 집, 기도에 응답받는 집

하나님의 집, 성전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여러 가지 기능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빼놓지 말아야 할 것, 그 모든 기능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와야 할 것은 바로 기도하는 곳이다. 성전은 건물이 호화롭거나 높은 곳에 있어서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하는 곳이기 때문에 성전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성전의 본질이다. 기도가 없는 교회,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은 본질이 빠진 껍데기에 불과하다.

오늘 우리는 주민교회에서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뼈아프게 참회해야 한다. 개인의 문제든 가정의 문제든 사회의 문제든 그 모든 과제를 놓고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전에 이런저런 세상적인 방법에 마음과 우선순위를 빼앗기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질책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불신앙을 질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채찍은 더욱 철저하고 가혹하기 때문이다.

주민교회를 기도하는 공간으로 만들자. 하나님께 간구하고 비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자.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병자가 치유되고 몰락한 가정이 다시 일어나고 가정에 평화가 넘쳤다는 고백이 이 공간 안에 차고 넘치게 하자.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드렸더니 사이비 무당에 혼을 빼앗긴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남과 북의 장벽이 철거되고, 청년들이 희망을 보고, 무력했던 시민들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가치를 향해 분연히 일어나게 되었다는 고백이 교회의 공간을 차고 넘치게 하자.
성전은 기도의 공간이며 교회는 기도의 공동체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