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왜 격정을 발견해야 하는가?

1. 정확한 회개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를 많이 찾아서 많이 회개하면 할수록 더 좋을 텐데 왜 에니어그램에서는 자신의 유형에 해당하는 그 한 가지 격정을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에니어그램 유형의 아홉 가지 격정 중에서 자신의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 여덟 가지 격정은 그래도 쉽게 인정할 수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에니어그램 유형에 해당하는 그 한 가지 격정만은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또 그 격정을 인정했더라도 새롭게 솟아오르는 격정을 그때마다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런 격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나도 모르게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으로 휘둘린다는 것이다.

그 격정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와 같은 죄이지만 불편한 줄 모르고 지낸다. 그 격정은 일만 달란트의 빚과 같은 큰 죄로 그 죄를 용서받았지만, 그 죄가 나에게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용서 받았는지조차 잘 모른다. 또 그 격정은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고 갈등과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도 상대방 탓으로만 여기면서 관계의 골을 더 깊게 만든다.

따라서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격정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에니어그램 유형을 정확히 발견하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일반적 의식 수준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죄와 피상적인 죄만 떠올리면서 회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자기객관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지만 각 자아가 경험하는 현재는 각 개인마다 서로 다르다. 이를 두고 폴 틸리히는 ‘해석된’ 상황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특정한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해서 본다. 즉, 언제나 상황을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런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는 ‘자아’라는 세계에 갇혀 자신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고 느끼고 있지만,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성격으로 인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건 물론 결국엔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어려움이 따르게 되는데 이것은 격정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격정은, 정서의 중심을 일그러뜨리고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왜곡된 해석을 하게하고 다른 반응을 하고 싶어도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자신을 안다고 하지만 자신을 주관적으로 바라보기 쉽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자신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안다는 것은 자신의 격정을 안다는 것이다. 자기를 대면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성격유형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격정을 발견해야한다.
자신의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을 발견하고 자신의 격정을 인정할 때 ‘내면의 관찰자로서의 나’와 ‘행동하는 나’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극’과 동시에 일어나는 ‘기계적인 반응’ 사이에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 격정을 발견하고 인정함으로써 격정에 휘둘리지 않고 격정을 다룰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언어와 행동 속에 작용하는 격정을 확인하고 그와 관련된 감정이나 정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관찰할 때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해석이 달라진다. 자신의 언어와 행동을 격정과 연결시키는 과정을 통해 주관적 자기이해가 객관적 자기 이해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거쳐 자신도 모르게 격정에 휩쓸려는 가던 것에서 격정을 다루는 법을 몸으로 체득해 나가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바로 자신을 객관화를 시켜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Ⅳ. 격정의 발견

1. 아홉 가지 격정

격정이 무의식적인 충동이라는 건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격정을 쉽게 깨달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격정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으려는 순간이 올 때 그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각 유형마다 다음의 순간이 올 때 그 순간을 무심결에 넘겨버리지 말고 잘 유념하면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 순간을 발견하고 나서 얼마나 자주 내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지, 그 순간을 제어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또한 충분히 확인해야한다.

1번 유형은 완전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일을 완전하게 처리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분노한다. 완전하지 않은 걸 볼 때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게 있다. ‘이거 왜 이래?’ 하면서 지적하고 비판한다.

2번 유형은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유형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칭찬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당연하지. 이제야 나를 알아보네’ 스스로를 잘했다고 여기는 교만이 올라온다.

3번 유형은 성취를 추구하면서 최고가 되려고 애쓰는 유형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마음 깊은 곳에서 ‘빨리 해야지. 내가 먼저 해야지’ 하면서 능률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경쟁에서 이기려고 기만을 한다.

4번 유형은 항상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진정한 것을 찾는 유형이다. 무언가를 잘 해내는 멋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배우자라 할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럼 난?’ 하면서 자신에게 없는 것, 자신이 잘 못하는 것만 바라보면서 시기한다.

5번 유형은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식을 채우려는 유형이다. 하지만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마음 깊은 곳에서 ‘난 아직 모자라는데…’ 라고 여긴다. 부족하다고 여기는 만큼 나눠줄 게 없다고 생각하고, 더 채우려고 하는 한 인색해진다.

6번 유형은 모든 것에 안전을 도모해야하는 유형이다. 안전을 위협받을까봐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럴까, 저럴까?’, ‘믿을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근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7번 유형은 기쁨과 만족을 얻기 위해 이상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뭘 할까?’ 하면서 끊임없이 무수한 계획을 세우고, 신나는 일을 하기 위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탐닉한다.

8번 유형은 정의를 이루기 위해 힘 있는 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유형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까불지마!’ 하면서 사람들을 위협하며 강력한 힘을 열망한다. 내 마음대로 ‘다 내꺼!’라고 여기는 한 오만한 것이다.

9번 유형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세상에 순응하는 유형이다. 문제를 일으킬까봐 뒤로 물러나 있으려하고 다 묻어두려고 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생각도 미루고 행동도 미루면서 나태해진다.

2. 격정으로부터의 자유

(1) 잠자는 상태

우리는 성격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면서 감옥에 갇힌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타성에 의해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이게 바로 잠자는 상태다. 잠을 자고 있는 상태에서는 내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의식이 잠을 자고 있는 한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고, 듣고 있어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없다.

(2)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야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 성격이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때, 즉 격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가 바로 의식의 잠에서 깨어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의 격정을 발견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격정을 발견하고 자신의 격정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싫고, 아프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거북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반발까지도 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자신의 격정을 부정하고 저항한다. 두려움 때문에 보통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격정을 인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죽음의 경험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의 격정을 인정하면 그 순간엔 죽을 것 같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자기부정을 통해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된다.

Ⅴ. 격정을 발견한 후

1. 자기 관찰과 자기 기억

‘보는 나’와 ‘행동하는 나’ 사이의 틈이 점점 더 벌어지면서 자기 관찰이 가능해진다. 자기 관찰을 통해서 자신의 동형반복적인 언어와 행동을 기억하기 시작하면서 격정에 사로잡히느냐, 격정을 사로잡느냐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성경에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했는데(마 6:24) 하나님이냐, 맘몬이냐의 갈림길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마 22:37-40),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느냐,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잠들어 있는 상태로 계속 있느냐,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로 가느냐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2. 격정에 저항하기

격정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격정이라는 어두운 힘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쉽게 말하자면 격정에 의해 자동적으로 늘 해오던 걸 그대로 하지 않고 멈추는 것이다. 휘몰려오는 자동적인 힘에 투쟁하면서 지금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기계적 행동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낯선 행동을 해보는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인 것이다.

3. 깨어나기

성격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 곧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거짓 인성으로부터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객관적 의식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옛적부터 선인들은 지식을 추구하기도 하고 금욕을 하면서 선행을 하려고 애썼다. 또 명상이나 요가를 통해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대속의 은총 속에서 회개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4. 격정이 열정으로

실제의 삶과 생활 속에서 격정을 사로잡고 살아가게 되면 격정이라는 파괴적인 힘은 아름답고 창조적인 힘으로 변화된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세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됨으로써 세계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진다.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더 큰 자유를 얻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야기되던 갈등과 문제는 사랑과 협력의 관계로 바뀌어 간다.

Ⅵ. 나가며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책임을 질 때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과 타인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방해했는지, 또 스스로 얼마나 많은 관계를 멀어지게 했고 끊어지게 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처럼 격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분리되도록 만들고, 더불어 우리의 동료인 인간 존재로부터 분리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아빌라의 테레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이러한 우리 자신을 알도록 힘써야 한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곧,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로마서 7장 25절에서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마음으로만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지체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회개할 수밖에 없다. 행복이냐 비참이냐, 생명이냐 죽음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마음뿐만이 아니라 육신까지도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재숙에니어그램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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