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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샨띠홈 아이들<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6.11.25 10:40

오늘도 새벽부터 50여권의 책을 실고 여신도연합회 총회가 열리는 교회로 향했다. 너무 오랫동안 여신도회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회원들도 만나고 여신도회의 흐름과 변화도 느끼고 싶어서다. 그리고 총회에 참석한 김에 “사랑만이 남는다”는 나의 선교에세이 책을 팔아서 올해 장학금을 지원하기 위해서 빌린 차입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으며 고속도로를 달려서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거의 다 도착하게 되면 어김없이 내 마음 속에서 책 판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일어난다. 그냥 총회에 참석해서 아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예배드리며 인사를 나누고 싶은 데 책을 팔기 위해서 테이블을 빌리고 진열하고 총회가 진행되는 내내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구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 자신에게 ‘그래 알았다. 책 내놓지 말고 그냥 예배만 참석하고 가자.’라고 말을 건네며 달랜다. 총회장소에 도착한 뒤에도 차에서 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차 안에서 뭉그적거린다. ‘이 나이가 되도록 모금하며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부담을 주면서 살아야 하는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마음에 눌리는 것이다. 그래도 총회 개회 시간이 임박하면 나는 용수철처럼 반사적으로 일어나 트렁크를 열고 책 박스를 꺼내고 유능한 세일즈맨처럼 총회 장소 입구에 판을 벌린다.

마음속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하나님과 회원들에게 구하면서 책 판매를 시작하면 샨띠홈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이들의 눈동자와 밝은 얼굴이 내 곁에서 용기와 힘을 준다. 나는 아이들의 응원에 힘을 입어 목사라는 타이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책을 소개하며 스스럼없이 판다.

떠돌이 순회 전도사로서 한 자리에 정착하여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면서도 어린이집과 고아원을 세우고 자매결연과 장학결연으로 현장의 아이들을 나름 섬기고 돌보며 사랑하였다. 그러나 고아들과 가난한 아이들, 장애 아동들을 보살피는 것은 단기간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고 그들이 자라서 스스로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을 때 까지 보살펴야 하는 일이어서 후원금으로만 섬기기에는 너무 벅찼고 끝이 나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에 지쳤다.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하였으나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때 마다 후원금 모금이 힘들고 부담이 커지면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망울과 꿈 때문에 ‘한 번만 더 하자.’ ‘이번만 더 하자.’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그러다 보니 10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아이들을 섬기는 다양한 일 중에 “샨띠홈”이 중심에 있고 그곳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내 눈에 가장 삼삼하게 밟힌다. 그들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울었고 함께 비전 트립을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그들은 내 가슴 속에서 하나 둘 별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성장하면서 일으키는 문제와 그들의 절망적인 앞날을 생각하면서 나는 자주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자립하도록 섬길 것인가?’ 에 대하여 자문자답하였다.

그들의 문제를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해법을 찾고 길을 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서 나는 비자문제에 직면하였고 인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인도 밖에 있으니 그들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는데 오히려 밖에 있으니 그들의 행복과 장래에 대한 탄식이 깊어졌다. 그리고 정말 역설적이게도 내가 염려하는 그들이 절망과 분노로 우울증에 빠져드는 나를 구원하였다.

선교현장에서 강제로 분리된 고통과 고뇌는 말할 수 없이 컸지만 나는 나의 비자문제와 아픔 때문에 아이들에게 무책임하고 싶지 않았다. 슬프고 아프지만 나에게 의존되어 있는 자매결연빈민아동들과 고아들의 일용할 양식과 교육비를 매월 송금해주어야 하므로 나는 대중들에게 그들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며 후원자를 발굴해야 했다. 무력감과 무능력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의 꿈과 행복을 생각하며 없는 용기를 내서 사람들을 방문하고 만나야 했다. 버릴 수도 없고 앞으로 마냥 계속 지고갈 수도 없는 애달픈 짐으로 생각했던 아이들이 나를 구원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밝은 미소, 간절한 기도가 나를 싸고돌았다.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커가고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절박해지고 간절해져서인지 내가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깊이 공감하며 크고 작은 도움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 덕분에 작년에는 고아원 후원도, 어린이집과 공부방 후원도 차질이 없었지만 50명의 달릿학생들과 고아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는 놀라운 은총과 감격을 맛보았다.

올 들어서 나는 인도에서 온 소식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안드라푸라데쉬주 잠말라마두구에 있는 샨띠홈에서 온 소식은 나에게 청천벽력이었다. 샨띠홈은 2009년에 개원한 에이즈피해아동들을 위한 집으로 현재 HIV균에 감염된 아이들과 HIV균을 보균하고 있는 아동들 20명을 돌보고 있다.

켐벨병원의 원장이자 우리 고아원의 책임자인 닥터 헬렌에게 연락이 왔다. HIV균의 보균자인 “히맘비”를 친척들이 친권을 내세워 데려다가 강제로 결혼을 시켰다는 것이다. 히맘비는 에이즈 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온 환자의 딸이었는데 부모의 죽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갈 곳이 없어 병원에서 머물렀다. 나는 그런 히맘비를 2년 동안 오며가며 바라보다가 거리에 방치하는 것이 너무 죄스럽고 미안해서 ‘에이즈고아원’을 만들어서 돌보기로 하였다.

올해로 만난 지 만 10년이 되는 그는 활발하고 명랑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나는 그가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배워서 “샨띠홈” 공동체를 세워가는 여성 지도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 또한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여서 그를 지도자로 키우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런데 결혼을 못하고 있는 늙은 친척 총각을 위해서 무식한 친척들이 그의 늘씬한 외모만 보고 잡아다가 16세의 HIV균의 보균자인 히맘비를 강제로 결혼시킨 것이다.
 
나와 닥터 헬렌은 그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기에 어린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드는 것이 슬펐고 아팠다. 남편이 결혼생활의 첫 희생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 사이에 태어나는 아기도 수직감염자로 세상에 오게 될 것이다. 그 또한 생활이 힘들고 고달파지면 HIV균이 활성화되어 가정생활은 물론이고 자신의 삶도 감당하기 어렵게 되며 부모님들처럼 이른 나이에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불행이 연속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삼킬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의 결혼이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한사코 말렸지만 친척들의 강포에 닥터 헬렌도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히맘비처럼 보균자였던 라마 데비와 레누까도 16살에 강제로 결혼을 하였고 소식이 끊겼다. 가끔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남인도의 조혼과 내혼 그리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달릿들의 무지함에 가슴이 터진다.

두 번째 소식은 작은 키란을 친척들이 다시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버림받고 붙잡혀 가고 다시 버림받기를 반복당하고 있는 키란의 고통이 가슴에 받혔다. 나는 어리고 수줍음을 잘 타는 그를 특별히 귀여워했다. 6세의 나이로 샨띠홈에 온 그 아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였고 잘 웃었으며 휘파람을 곧잘 불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동물원에 가던 날 한 손에 사이다병을 들고 한 손에 꽃을 든 채 신명이 나서 휘파람을 마구 불었다.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 못하여 등에 업히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넓은 동물원을 세 시간 동안 씩씩하게 걸었다. 비전트립 기간 중,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보는 시간에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그의 눈물이 하나님의 가슴에 떨어짐을 보았다. 나는 막내인 그를 특별히 귀여워하였고 그도 그 사실을 알아서 내가 방문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다가 맨 먼저 달려 나와서 나를 맞아 주었다.

어느 날 그의 친척이 와서 그를 데려갔다는 소식이 왔다. 설마 하면서 보러 갔는데 아이가 정말로 없었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아이를 강제로 데려간 친척에 대하여 마구 화가 났고 그의 명랑한 휘파람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마음이 허했다.

그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사라질 만한 때가 되었을 때 그가 다시 샨띠홈으로 돌아왔다. 그는 친척집에서 학대와 노동에 시달렸고 영양실조로 말미암아 결핵으로 걸렸다. 친척은 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를 미련없이 버렸다. 그의 머리에는 종기가 올록볼록 났고 피고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정말 가엾게 흉측하게 보였다. 해골바가지처럼 마른 그의 얼굴은 그가 얼마나 학대를 받으면서 살았는지를 말없이 웅변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잘 먹이고 입히고 돌보았으며 그는 우리의 기도대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병이 치료되고 살이 오르면서 그의 귀여운 옛 모습은 돌아왔지만 휘파람은 불지 않았고 옛날의 명랑성은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기를 세워주려고 만날 때 마다 휘파람을 불자고 간청하였지만 그는 끝내 휘파람을 불지 아니했다. 그는 공부에 일체 관심이 없었고 아기처럼 먹고 자고 노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형들의 보살핌으로 조금씩 회복이 되었고 공부에도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런 희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가 다시 친척집으로 잡혀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친척집에 붙들려 간 케말 파샤가 봄베이 가내수공업 장소로 팔려가 건강을 잃고 죽었다는 말을 풍문에 들었고 그래서 가야뜨리나 스프리나가 친척집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숨었던 일도 기억한다.

세 번째 소식은 존이 대학교를 자퇴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자퇴 소식을 들은 나는 맥이 탁 풀렸다. 전문대학교에서 전기기술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결석을 자주하였고 시험을 치루지 아니 해서 자퇴를 하지 않아도 어차피 학년이 유급될 상황이었다. 그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부터 유별나게 외로움을 탔고 사람들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하였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차별어린 말에 자주 분노하였고 자기를 무시하는 급우들과도 치고 패며 싸움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일주일 씩 학교에 빠지고 뒷골목에서 어슬렁거렸고 공부를 아예 놓아버렸다.

그는 자신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와 세상에 대하여 반항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통 사람들의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아무리 예의 바르고 착하게 살아도 사람들에게 차별당하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에이즈 환자로서는 별 볼일이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아 버렸고 자포자기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를 이해하고 돕기 위하여 “일기 쓰기”, “드럼 치기”, “ 자전거 타기”, 등을 샨띠홈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였으며 일기를 읽으면서 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비록 전문대학이기는 하지만 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하였으며 그가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장학금을 서둘러서 보내주었다.

지난 9월에 존의 자퇴소식에 낙심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 있으면서 생활비와 교육비를 보내며 기도하는 것이 고작인 내가 어떻게 온갖 아픔으로 꼬여진 그의 마음을 잡을 수 있겠는가!

나는 첫 아들격인 존이 보란 듯이 대학교를 졸업하여 우리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기를 바랐지만 현재로서는 그가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족하기로 했다.

나는 존의 퇴학을 인정하고 더 이상 학교를 강요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집에서 빈둥거리지 않도록 닥터 헬렌에게 직업훈련원에 보내라고 부탁을 드렸다. 세상을 살기도 전에 세파에 지쳐서 애 늙은이가 되어버린 존을 위해 누가 울 것인가! 

네 번째 소식은 아이들이 장래의 일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년에 성인이 되는 아이들이 자기들의 거취문제로 걱정한다는 소식이었다. 일반 고아원처럼 아이들이 19세에 독립해야 한다면 고아원에서 나가야하는데 어디서든지 에이즈환자라는 것이 드러나면 쫓겨나게 되므로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취업을 해야 독립을 꿈꿀 수 있는데 에이즈에 감염된 우리 아이들의 취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경우에는 법의 보장으로 근무가 가능하겠지만 일반 직장은 에이즈환자에게 호의적이 아니므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에 운이 좋게 취업을 하면 독립과 자립의 꿈 꿀 수 있지만 취업을 하지 않는 한 자립은 불가능하므로 직업이 없는 한 그들은 죽으나 사나 샨띠홈에서 거주를 해야 된다. 그러나 성인이 된 아이들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지내려면 여러 면에서 부담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아이들의 불안심리에 충분히 공감을 하면서 아이들이 옆에 있으면 한 명씩 꼭 껴안아주면서“사랑해. 아들아, 사랑해. 딸아, 지금까지 함께 잘 해왔으니 우리는 앞으로도 나이 차이를 극복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우리 함께 기도하자.” 라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그들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에이즈 환자라 할지라도 피가 꿇는 청춘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싶겠는가? 연애하면서 청년의 낭만을 즐기고 싶겠는가? 보란 듯이 취업을 해서 멋지게 일하고 싶겠는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겠는가? 우리 아이들 모두가 행복을 꿈꾸며 취업도 하고 돈도 벌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을 것이다. 모두가 다 치료되어서 행복하게 살게 되길 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다. 취업도 돈 버는 일도 쉽지 않다. 사회적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 에이즈환자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다. 아 아 우리 아이들이 연애와 결혼, 취업과 인간관계 등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을 것인가! 

나는 아이들이 성인으로 살면서 겪게 될 고통과 시련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도록 그들을 품고 사랑하며 축복하며 바르게 교육,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그들이 중심이 되는 그들의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뒷바라지를 하기로 다짐한다. 공동생활,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봉사, 공동예배가 이루어지는 행복한 공동체가 형성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고 형제와 자매, 부모가 되어주는 예수가족이 되길 빈다.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 공동체로 살며 직업훈련과 신앙훈련을 겸할 수 있는 건물을 위해 기도하였고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으로 11월에 건축을 시작하게 된다. 인도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샨띠홈 아이들의 눈물과 고통으로 내가 정화되고 있음을 보았다. 내가 그들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 십자가를 지고 있었다.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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