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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인자가 오리라! (마태 10:16~23)2016년11월27일 대림철 첫째 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11.29 13:19

*영상 설교 : youtu.be/qJYZmDb3zWA

주간 단상 : 농민 트랙터 

농민들이 땅 끝 해남과 진주에서부터 트랙터와 농기계와 트럭을 몰고 서울로 진군했다. 

안성까지 오는 데만 11일이 걸렸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승용차로 이렇게 오랫동안 운전하는 것이 어려운데 농민들은 속도가 느린 트랙터를 그 먼 곳에서부터 권력의 중심인 서울로 운전하고 왔다. 경찰이 진행을 막자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농민 단체 간부는 머리에 피를 흘리기도 했다. 왜 이 땅의 농민들은 이렇게 분노하는가? 

1978년 중학교 3학년 때 아버님이 돌연 농사 짓겠다고 하시면서 농촌으로 이사를 가셨다. 60년대 월남전에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악착같이 생활하여 집을 세 채나 마련하고 귀국했는데 할 일이 마땅치 않다가 결국 농사 짓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변은 농사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농사는 땀 흘리고 수고한 만큼 결실하는 것처럼 보였다. 벼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짓고, 젖소도 몇 마리 키웠다. 당시는 젖소가 생활의 주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1985년 전두환 동생 전경환이 새마을중앙본부사무총장 재직 시 수입 소 파동을 일으켜 소 값이 1년 사이에 반 토막으로 폭락해 전국 축산업자들을 실의에 빠트렸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축산인들도 많았다. 농민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도 정부의 그릇된 정책 하나에 수많은 농민들이 쓰러졌다. 

한국 근대화의 기초는 수출 정책이고 수출 상품의 단가를 싸게 하려면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의 싸구려 임금노동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세기 이상 농민 죽이기 정책이 시행되었고, 더 이상 농업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안 농민들은 무작정 상경하여 서울 청계천 주변 등에 판자촌을 짓고 살았다. 결국 권력과 신흥 부유층들에 의해 이 땅의 농민들은 지속적으로 무시당해왔다. 힘들여 쌀농사를 지어도 쌀값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농사를 지을수록 빚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 땅의 농민들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같은 선상에서 백남기 농민이 권력의 무자비한 물대포에 목숨을 잃었다. 이제 농민들은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릇된 정책과 그 책임자들에게 저항하는 길밖에! 이 절망과 분노가 땅 끝에서부터 트랙터를 몰고 서울까지 오는 고단한 순례를 감행하게 했다. 식량주권을 지켜줄 분들은 농민들인데 이들을 무시하고 경제적으로는 빚더미에 올려놓으면서 식량주권을 지키라고 할 수 있을까? 농민의 생존권이 우리 사회의 생존권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1.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다!

1) 주님은 초대교회가 놓인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고 위험한 것인지 딱 한 마디로 설명하셨다.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 꼭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양은 초식동물이고 온순함, 비공격성을 상징한다. 반면에 이리는 늑대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더 크고 사납고 육식성이 강해서 사람도 잡아먹는다. 그러니 양이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 중 하나다. 이리 가운데 보내진 양은 매우 두렵고 거의 잔인하게 잡아먹힌다. 

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했다.
공회는 유대인 대제사장들과 유대교 고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재판권을 행사했다. 회당은 각 마을의 자치 조직으로서 공동체, 교육, 율법 등을 관할하는 중요한 중심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 동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때로는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수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죄인으로 정죄당하고 따돌림과 폭력에 노출되었다. 

더 무서운 것은 유대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총독이나 왕에게 체포되어 압송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 지 어떤 말도 꺼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 경우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워하지 말라고, 성령께서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라고 격려해야 할 정도였다. 인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민주사회에서도 경찰서 가면 괜히 주눅이 든다. 죄 지은 범죄자의 모습으로 설 때는 더욱 가슴이 졸아 들고, 조서를 쓸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머리가 복잡하고 두려움이 몰려온다. 하물며 인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시대, 여차하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 내던져질 수도 있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이런 상황이 단지 로마나 유대 권력 기관에서만 일어나고 그래도 가족 친지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위로하는 관계가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공포와 죽음이 지배하는 시대는 이제 형제가 형제를,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경우까지 등장한다. 이게 생지옥이다. 이미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해 내가 살기 위해 이웃, 친척,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현장을 경험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전쟁은 이런 지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끔찍한 현실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는 끔찍한 말씀이다. 기독교가 이런 지옥 같은 현실에서 궤멸되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진 것은 그 잔혹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어떻게 이 현실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2. 우리들의 이리

1) 유사 이래 처음 보는 현재의 시국을 보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주변의 이리 같은 자들이 무서운 권력의 이빨을 드러내면서, 정치, 경제, 문화, 체육, 의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국민의 혈세로 모은 것들을 사정없이 뜯어 먹은 것과 같다. 오죽하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최순실의 판촉사원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들의 무리한 요구에 불응하거나 협조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물어뜯고 협박하고 내쫓고 사지로 몰아넣은 것과 같다. 여기서 진실과 야심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런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두렵고 떨리는 현실이다. 
얼마나 많은 선량한 이들이 고통당하고 억울한 눈물을 흘렸겠는가? 

수영 선수 박태환은 올림픽에 나가지 말라는 김종 차관의 협박에 집에 와서 온 식구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런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이야기조차 입 밖에 낼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가 박태환 선수 하나였겠는가? 김연아도 그랬고, 정말 이리 떼들이다.

2) 조금 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 노동자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기업 현실은 노동자에게는 마치 이리 떼 속에 던져진 양과 같다. 어렵게 취업을 해도 1년마다 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진 출처 : YTN 뉴스

이제 전체 노동자의 1/3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이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비정규직은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정규직의 60%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이익이라는 절대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노동자를 점점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비율을 늘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말 안 들으면 해고하기 쉽고, 월급을 조금 줘도 되기 때문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사람을 위해 기업과 제도가 있는 것인지, 이익을 위한 도구로서 노동자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 잔혹한 틀을 벗어나야 한다. 힘없고 순박한 양 같은 사람들이 잔인하게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보라 인자가 오리라!

1)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간절한 갈망은 메시아의 도래를 통해 온전히 이루어진다.

인간은 하나도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되 인간의 노력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주도권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간절히 간구하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사실은 이 기다림이 쉽지 않은 것이다.

2) 렘브란트, 문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 가족, 1648년, 16.6*12.9cm,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렘브란트하우스, 암스테르담

렘브란트는 풍요와 파산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풍파를 직접 경험했다. 그는 작품을 살 수 있는 중산층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 시대의 밑바닥 삶에도 깊은 애정으로 관심하며 그림에 담았다. 

한 가족이 집 문 앞에서 구걸하고 있다. 

실제보다 많이 늙어 보이는 남편은 그 눈과 적선하는 돈을 아내가 건네받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맹인인 듯하다. 아내는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아기를 들쳐 업고 있다. 아기는 잠든 것 같고 누가 준 것인지 모자도 바늘로 기운 자국이 있다.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여인은 겨울임에도 샌들을 신었고 양말은 한쪽이 빵구가 나 있다. 

등만 보이는 첫째 아들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자기 머리보다 큰 어른 모자를 주어다가 쓰고 있다, 허리에는 이런 저런 물건들을 동이고! 전체적으로 고단한 가정이다. 궁핍이 온 가족의 옷에서부터 흐르고 있다. 

인자한 얼굴의 집 주인은 이 가난한 행색의 가족에게 적선을 한다. 저 동전 한 닢은 주는 이에게는 작은 것이지만 받는 이에게는 네 식구의 목숨이다. 그렇게 이 걸인 가정은 한 끼 생명을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동전 한 닢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집의 문을 두드렸을까? 얼마나 무시와 냉대를 당했을까? 거절당하고 문전박대 당할 때마다 이들은 얼마나 절망하고 상처를 받았을까? 그러면서 제발 우리의 문두드림에 응답하여 문이라도 열어줄 선한 사람이 있게 해 달라고 얼마나 애타게 기도하고 기다렸을까? 

메시아 도래에 대한 갈망은 이 간절함 이상이다.

3) 메시아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째주일을 맞는다.

추운 겨울날 정류장에서 마지막 버스를 기다릴 때, 30분만 늦어도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모른다. 지옥 같은 현실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주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그보다 훨씬 깊은 신앙과 인내를 요구한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모진 멸시와 고난 속에서 눈물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기다린다면 어느 순간 메시아가 우리 가운데 탄생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집집마다 간절히 두드려도 거절당하지만 어느 순간 집 문이 열리면서 구원의 손길이 우리 앞에 나타나듯이, 주님은 생명 평화 정의의 왕으로 우리 몸과 마음, 가정, 일터, 사회 속에 홀연히 나타나실 것이다. 그날이 가까움을 믿으며 메시아 탄생을 기쁨으로 준비하고 기다리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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