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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예비하라! (이사야 62:10~12)2016년 12월 11일 대림절 셋째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12.12 11:10

*영상 설교 : youtu.be/_DYbHp23EEU

■ 주간 단상 : 응답하시는 하나님

1)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탄핵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12.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시국기도회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지닌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사회가 정상화되고 안정되기를 기도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린아이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비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여기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은 여전히 장막에 가려져 있으며 진실이 무엇인지 국민은 알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기도하며 도도한 국민의 저항 물결에 동참했다. 

2) 경찰과 차벽과 권력의 성을 쌓고 청와대에서 꿈쩍 않는 대통령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전망도 많았지만, 결국 9일에 국회는 압도적으로 현직 대통령 탄핵을 의결했다. 
 

탄핵 결과는 예상보다 압도적이었고, 

네티즌들은 각종 패러디를 쏟아냈다.

집권 여당의 절반 이상이 찬성한 것은 결국 국민 여론의 힘이다. 민주사회의 상식에 어긋나는 권력은 이제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실현한 것이기에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오만한 권력을 국민의 힘으로 평화롭게 심판한 것이다. 

3)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회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이 겸손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마땅한데, 탄핵 가결 후 보여준 대통령의 자세는 여전히 탄핵을 수용할 수 없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헌법재판소에서 부결을 이끌어냄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을 되찾겠다는 마음으로 보인다. 실제 헌재의 구조는 부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9명 중 3명은 지금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고,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했으니 산술적으로는 최소한 6명이 이미 대통령 편이다. 거기다가 국회가 추천한 3명도 2명은 여당 추천이니 총 9명 중 8명이 친 대통령인 형국이다. 평상시 같으면 보나마나 부결이다. 바로 이 점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 같다. 

4) 이제 우리는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탄핵하라는 헌재 결의까지 마무리하고, 진정 한걸음 더 진전된 민주적 지도자를 선출하기까지 이전과 같은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국민의 요청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멀고 험한 길이지만, 우리에게 주신 여건에서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운명이다. 이 길을 감사함으로 함께 가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1.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

1) 2600년 전인 BC 587년에 하나님의 도성이 바빌론에 의해 유린당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법궤를 모셔 왔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서 머물러계신다고 믿으면서 예루살렘은 그냥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거룩한 도시, 하나님이 지키시는 도성이었다. 

그런데 저 이방인들로부터 하나님의 성전이 불타고 예루살렘은 산산이 짓밟혔다. 이것만도 충격인데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이 치욕과 불신의 시대를 50년이나 견디어냈을 때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일으켜 바빌론을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사람들에게 귀향을 허락하셨다. 포로 중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했던 제2이사야의 예언이 드디어 눈물 속에서 성취된 것이다. 

2) 감격과 새 희망으로 춤추며 돌아온 예루살렘, 그러나 그곳은 꿈에 그리던 고향은 아니었다. 

예루살렘은 이미 50년 동안 황폐해졌고 주변의 이방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 갑자기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온 포로와 그 후예들이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이들과 합쳐지면서 여려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가난, 주거, 침략, 건강, 갈등 등 고난이 겹쳐서 일어났다. 이것이 얼마나 힘 들었을까? 귀향하기만 하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이처럼 지치고 힘겨운 와중에 당장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무겁고 지친 몸으로 이들은 성전을 다시 고쳤다. 문제는 그럼에도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좌절과 회의의 공기가 예루살렘을 지배한다. 

이사야 56장부터는 포로 귀환 이후 예루살렘이 배경이기에 제3이사야라고 한다. 거대한 희망을 품고 어렵게 고향에 돌아왔지만 예루살렘은 황폐해져서 고통스러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의 고통을 해소하고 새로운 미래를 주실 메시아를 간절히 고대하게 되었다. 

2. 구원이 임하리라!

1) 메시아를 고대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구원이 임하리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11절)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렀다.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주저앉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지 말라. 메시아가 오시면 이 그릇된 현실이 새로운 모양으로 변혁될 것이다. 

2)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11절)

우리 현실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잘 안되기 때문이 아니다. 잘못하면 책망 받고 능력 없으면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인생과 역사를 비관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로 기운 빠지게 하는 것은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상을 받고 상 받아야 할 사람이 벌을 받는 전도된 현상이다. 작은 것을 받아야 할 사람이 큰 것을 받고 큰 것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작은 것에 머무는 세상 때문이다. 이것이 불의다. 이런 세상이야말로 혁파되어야 할 세상이다. 
메시아가 오셔서 이루실 새 세상은 무조건 모두가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상 받을 사람이 상 받고 보상을 받을 사람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세상이다. 메시아가 이룰 정의 세상이다. 

3.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1) 오늘 예언자는 독특하게도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친다.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포로들은 한 번에 다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일부가 먼저 왔고 아직도 포로 상태인 이들이 있었다. 메시아가 도래하는 것과 포로로 남아 있던 자들이 돌아오는 것은 비슷한 기쁨과 감격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돌아온 이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신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이제 곧 메시아는 아직도 포로로 남아있는 이들을 데리고 돌아오실 것이다. 그러니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고난 받는 이들의 길을 예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으로 말하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시신들을 포함하여 304명의 세월호 유가족들, 

1988년부터 남북을 오가며 남북의 경제협력을 위해 헌신하다가 금강산이 막히고 남북 경제협력이 막히면서 망하고 병들고 죽어가면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100일 농성을 하고 있는 남북경협기업인들, 

농민 죽이기 정책에 분노하여 땅 끝에서부터 트랙터를 몰로 상경하는 농민들, 

일제에 의해 몸과 마음이 짓밟혔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도 홀대당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등 이들이 오늘 우리들이 길을 예비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다. 

또한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이들, 몸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이들, 가정의 평화를 절실히 원하며 아파하는 이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이들을 새로운 삶의 차원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자는 행복하다. 실제로 그의 삶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2) 주님이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데리고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것은 세 가지다.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10절)

첫째, 우선 길을 넓히는 것이다. 
성남에서 광주 가는 길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교통 체증이 심하다. 출퇴근 시간에는 나서지를 말아야 한다. 중요한 이유는 길이 대체로 좁고 갑자기 좁아지는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곳이 많다. 그러니 답답하고 힘들다. 메시아가 오시는 길은 좀 넓어야 한다. 

요즘은 통 큰 식당들이 있다.

예수를 믿되 좀 통 크게 믿으면 좋겠다. 하나님에 대해 너무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봉사도 시간도 물질도 하나님께는 넉넉하게 준비하고 기꺼이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주일에 예배는 11시 시작하지만 훨씬 전에 기쁨으로 오는 것이 신앙이다. 식사와 청소 당번이 번거롭고 힘든 일이지만 주님의 교회를 위한 봉사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신앙이다. 내게 주신 물질 중에서 최선을 다해 헌금 드리는 것이 신앙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시간, 지혜, 물질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통 크게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돌을 제하라. 

큰 돌은 물론이고 작은 돌도 메시아가 오시는 길에서는 제하려고 해야 한다. 어렸을 때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시는 날은 골목길을 싸리 빗자루로 쓸었다. 혹시 작은 돌멩이라도 오시는 손님에게 누가 될까봐!

20년 전 목회할 때 차가 없으니 교인이 중고 승용차 르망을 주셨다. 고속도로로 인천 가는 길에 갑자기 운전석 앞 유리창에 꽝하고 소리가 나더니 창유리가 갈라지는 것이었다. 운전하다가 너무 놀라서 큰 사고 날 뻔 했는데 다행이 뒤차가 멀리 있어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운전석 바로 앞 유리창 부분에 무언가 세게 맞아 구멍이 나 있었고 그 때문에 차 앞 유리 전체가 갈라졌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 앞에 1톤 정도 트럭이 달리고 있었는데 그 차의 뒤 바퀴는 타이어 두 개가 모아져 있는 차였다. 카센터에서는 가끔 그런 차를 뒤 따라 가다보면 도로의 나사나 돌멩이가 그 바퀴 사이에 끼었다가 뒤로 확 튕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 뒤로는 고속도로에서 그런 차 뒤를 따라가지 않는다. 고속도로에 작은 돌멩이도 때로는 큰 사고를 불러오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내 마음에, 가정에, 일터에, 사회에 메시아가 오시는 길에 이물질이 있으면 그것이 때로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다. 

셋째, 깃발을 올려라.

어제까지 7차 시국집회에서 여러 단체와 교회들이 깃발을 들고 나왔다. 우리도 오래 전에 만든 희년 깃발을 들고 나갔었고 이번에는 새로 깃발을 하나 만들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부분), 1632년, 스페인 프라도미술관

메시아와 그가 이끌고 오시는 백성들을 맞이하기 위해 깃발을 높이 들라고 하신다(사 62:10). 이 땅에는 불의, 모순, 눈물, 고통이 가득하지만 주님이 오시면 생명, 평화, 정의, 사랑이 충만할 것이다. 메시아 나라는 힘으로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건설된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이 땅에 휘날리는 메시아 나라의 깃발이다. 그리스도인은 각자가 주님의 깃발이다. 깃발은 가방 안에 감추지 않는다. 깃대에 꽂아 높이 들어 날리기 위해서 만든다. 교회가 깃발이고 그리스도인이 깃발이다, 예수님 얼굴을 담고 있는!

서울 하늘에 펄럭이는 수많은 깃발들, 한국 현대사를 깃발로 채워서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고 있다. 나부끼는 깃발들 속에 주민 깃발을 새로 만들었다. 이 깃발, 고대하는 메시아 나라의 깃발로 펄럭이기를!

깃발은 메시아를 환영한다는 의식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깃발이다. 깃발은 주머니 속에 넣지 않는다. 높이 들어 올려 보이려고 만든다. 교회는 세상에 올린 하나님의 깃발이다. 그 교회가 하나님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셔서 이 땅의 모순과 불의를 심판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실 것을 높이 깃발로 알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어 지금 울고 슬퍼하는 이들이 메시아 깃발 아래 모일 수 있게 하는 거룩한 사명자들이다. 

메시아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 어서 성문으로 나가서 그 길을 예비하자. 마음과 몸과 정성을 다해서 주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자. 좁은 길은 넓게 만들고, 돌이나 이물질들은 다 걷어내고, 메시아 오심을 환영하는 깃발을 들자. 

그곳에 구원이 이를 것이다. 보라 상급이 그 앞에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다. 우리는 그 날을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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