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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와 페스탈로치 (2)'촛불 청년'과 청년 페스탈로치
이은선(세종대) | 승인 2016.12.16 11:08
촛불집회에 참석한 청년들 (사진출처 : KBS)

지금 대한민국은 큰 전환과 변혁의 시기에 놓여있다. 결국 민중의 촛불로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았고, 특검이 시작되었으며, 이제 헌재의 판결과 대선이 코앞에 닥치는 등 나라 전체가 큰 변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전열을 가다듬은 일군의 보수진영들은 이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를 무마시키고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각종 정치적 합종연횡(合縱連衡)이 일어나고 있다. 최고 250여만 명까지 모인 이번 촛불시위에서 세계가 놀란 것은 우선 그렇게 많은 숫자가 모이는데도 그것이 평화 시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하지만 이에 더해서 더욱 놀랍고 특별한 것은 이번 시위에 그렇게 많은 청년과 심지어는 초등학생, 중학교, 고등학생들까지 함께 했다는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국 CNN의 서울 특파원은 이번의 서울 촛불집회에서 만난 16세의 한 한국 청소년이 왜 자신이 이렇게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아주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답하는 것을 듣고 매우 놀랐고 흥미로웠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16세 청소년들은 그 나라의 정치나 정치 지도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데, 한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그렇게 다른가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었다. 이번에 한국 사람들 자신들도 매우 놀랐다. 그런 청소년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헬조선이라는 말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관이 주를 이루었으나 조금씩 희망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진행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한국 청년들의 애국심과 그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구와 열망이 결국 이 나라를 바꿀 것이지만, 과거 유럽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애국 청년 페스탈로치 이야기가 그 과정의 지난함을 가늠해 보게 한다.   

아기스(Agis), 1765년

이번에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비판판』 제 1권에 수록되어 있는 「아기스(Agis), 1765」와 「나의 조국의 자유에 대하여(Von der Freiheit meiner Vaterstadt), 1779」이다.1)  『비판판』 1권은 그가 20세에 들어서는 1766년부터 1780년까지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페스탈로찌는 취리히의 대학을 다니면서 당시 몽테스키외와 루소 등을 읽으며 급진적으로 정치적 개혁을 꿈꾸는 보드머 (Bodmer) 교수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애국단(Patrioten)'이라고 하는 개혁적 단체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당시 스위스는 13개의 자치주가 연방을 이루고 있는 중세적 체제였는데, 지역 간의 편차가 심했고, 특히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가 심하여 거의 도시민들에 의한 귀족 과두정치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1789) 전의 베르사이유의 사치가 잘 말하여주듯이 도시는 전통적인 근검과 단순 대신에 사치와 과두 독재에 물들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의 민중과 농민들의 고통은 심했다.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출처 : 위키백과)

페스탈로치의 전 삶과 사상을 지탱하는 한 축은 그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다. 그가 의식 있는 청년이 되면서 가장 먼저 자각한 것은 조국애였고, 그 조국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는 탐색이 신학과 법률 공부를 거쳐 가난한 농촌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페스탈로치에게 있어서 조국은 가정과 신앙과 더불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고 삶에서 근간이 되는 기초 덕목들을 키울 수 있는 필수 불가결한 매체가 된다. 한 인간이 과연 어떤 대상에 대한 헌신을 통해서 자신을 넘어서 타자에 대한 배려를 배울 수 있고, 헌신이라는 것을 익히며, 희생이라는 인간적인 덕목을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때 ‘조국’과 ‘가정’, ‘신’에 대한 사랑 등은 가장 기초적이고도 인간적인 삶의 매개들이라는 것이다.

「아기스」는 페스탈로치가 19살의 청년으로서 쓴 글이다. 서구 민주주의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그리스에서 B.C. 3세기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아기스의 이야기를 들어서 자신의 조국 스위스와 특히 취리히의 정치사회적, 도덕적 부패를 경고하고 그 개혁을 촉구한 글이다. 아기스는 스파르타가 전통적인 리크르고스(Lykurgs) 헌법을 버리고 소수의 사람들이 토지와 부를 독점하며 부패와 사치, 나태와 이기주의에 빠지고, 시민들은 몰락해 가는 것을 보면서 개혁을 시도하다가 처형된 비극적인 왕이었다. 

페스탈로치는 강국 스파르타의 토대가 되었던 리쿠르고스 헌법의 정신을 검소와 검약, 그리고 근면으로 본다. 그러면서 그러한 기본정신들이 전쟁의 승리로 인한 부가 나라 안으로 들어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부자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 범죄도 아니게 된” 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하여서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은 커지고, 예전의 스파르타의 미덕들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특히 그들의 검약과 절제, 시민이 주인이었으며 검소했지만 고상했던 그들의 독립심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그리하여 더 이상 그들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해서 싸우고, 귀족들의 사치와 독점은 더욱 커지는 가운데 나라 안은 온통 부패와 분쟁, 억압이 만연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아기스는 이러한 조국의 몰락을 보고서 일어서서 건국법의 처음 정신을 다시 살려내고, 그것을 통해서 나라 안에서 사치와 부패를 몰아내고 예전의 스파르타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개혁정신의 왕이었다. 그는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이 자신의 조국의 몰락을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면서 시민들이 주인과 노예로 양분되고, 고상함과 자유를 향한 사랑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바로 이 삶의 고상함에 대한 이상을 다시 일깨워 주기를 바랬다. 이러한 글을 쓴 페스탈로치 자신도 당시 젊은 대학생으로서 여러 가지 삶의 실험들을 시도했다. 그는 한 벌의 옷만 걸치고 판자방에서 1주일 동안이나 기거도 해보았고, 야채와 물만으로 1주일을 넘겨보기도 하면서 사치와 부의 독점으로 변질되어가는 취리히 시의 부패와 독재에 대해서 저항했다. 

아기스의 입을 빌린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오랜 동안 사치와 쾌락을 누려온 사람들의 의식은 변질되어서 옳은 것을 옳게 볼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노예상태처럼 보이며, 노예상태가 자유처럼 보인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그러한 사치와 돈에 물들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서 한 희망을 보는 것이다. 아기스의 개혁은 먼저 토지를 평등하게 재분배하고, 시민들의 부채를 탕감하며, 점점 더 동질의 소수의 그룹으로 폐쇄화되어가던 스파르타 사회를 개방하여 이방인과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면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법정신과 근검과 절제의 덕목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개혁의 시도는 강한 보수 세력의 반발로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처형되었으며, 그 후 스파르타와 전 그리스의 몰락이 이어졌다고 페스탈로치는 밝힌다.
   
이러한 글을 읽고 있으면 한 나라의 부패와 그 몰락의 과정이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사리사욕과 부패, 특권의식과 사치가 어느 정도인가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의 왜곡된 보수층은 다시 그 그룹을 감싸고, 세계가 놀랄 정도로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젊은이와 청년들과 온 국민이 성토하는데도 그 갈 길을 막고 있다. 페스탈로치는 이 글을 통해서 사치와 부의 편중, 그러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점점 더 폐쇄화 되어가는 보수 특권세력들을 국가와 사회의 제일의 쇠퇴원인으로 보고서, 다시 검약하고, 검소하며, 선한 법외에는 어떠한 다른 상전도 갖지 않는 자유정신의 소유자들에게 그 전환을 호소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그가 거의 15년 후인 1779년에 쓴 「나의 조국의 자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더욱 더 풍성해진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조국애, 법과 자유정신, 가정, 신에 대한 신앙이라는 네 가지의 삶에 대한 처방책이 잘 연결되어서 제시된다. 그 글은 페스탈로치가 농촌으로 들어가서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시도했던 사업들이 모두 실패하고 난 후의 글이다. 「아기스」를 쓸 때와는 달리 많은 현실의 경험을 한 후였고, 그가 자신의 삶과 사상의 배아라고 이야기한 「은자의 황혼, 1780」과 유사한 정신세계가 들어있다. 

나의 조국의 자유에 대하여(Von der Freiheit meiner Vaterstadt), 1779년

페스탈로찌는 나라 안의 고결한 사람들에 대한 호소의 형식으로 이 글을 연다. 과거 조상들이 조국의 안녕과 잘됨을 위해서 그렇게 애써서 자유와 독립을 획득했건만, 그 자유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독점되어버리고 그들의 욕심을 위해서 잘못 쓰이면서 나라의 안녕은 사라져 버리고 위태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와 모두의 안녕이야말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고 지주이며, 여기서부터 조국의 지혜와 덕목이 가능해지므로, 이것이야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이며 궁극적인 목표라고 선언한다. 

당시 유럽 전제 왕권의 횡포와 자신의 조국이 소수 귀족적 도시인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페스탈로치는 원래 국가와 정부, 사회가 생겨난 이유와 목적들을 다시 짚고 넘어간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결코 인간이 정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모든 정부가 이러한 법정신과 의무정신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나라 안녕의 기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특히 당시 정치체제에서 군주들이 이 법과 자유(평등)정신을 갖는 것을 강조했는데, 만약 이것이 없다면 국가에 매우 위험한 존재들이 되며,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가정적인 행복과 덕목을 실천할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는 기초가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아직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구제도 시기였는데, 페스탈로치도 그때는 그러한 급격한 전복을 가늠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군주와 귀족과 특권그룹의 전행을 막을 수 있는 헌법 정신과 그것의 올바른 준수를 강조했다.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애국심이란 바로 나라의 자유(평등)정신에서 길러진다. 나라에 자유가 있을 때 국민들은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그 자유가 위기에 처하게 될 때 기꺼이 자신들을 희생하고자 하며, 이것이야말로 시민들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시민들의 조국애야말로 자연과 혈연의 연이 되며, 여기에 근거해서 조용한 가정 삶에서 덕과 풍속들이 길러진다. 그러므로 나라에 살아있는 자유정신이야말로 국민들의 도덕심의 기반이 되며, 만약에 그 정신이 죽는다면 아무리 문자로 잘 쓰인 법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자유정신과 자유의식이 없이는 나라가 자유로울 수 없다.

페스탈로치는 이러한 헌법정신과 자유정신이야말로 또한 나라 산업과 경제의 밑받침이 된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자유의 첫 열매는 바로 안정된 빵이며 경제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페스탈로치는 바로 이렇게 모두가 안정되게 빵을 즐길 수 있고, 가정의 안녕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 삶의 최대 축복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위해서 나라에 자유가 없을 때 자유를 위해서 싸우며 희생할 각오를 가지는 것이라고 밝힌다. 다시 말하면 자유가 우리의 가정적 평안을 가능케 해주지만, 그 가정적 평안이야말로 바로 자유의 최종목표이며, 참된 자유는 그래서 국가의 축복이며, 그러한 자유란 그러나 배고픔에 시달리고, 비참에 빠져있는 가정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그 자유란 시민들의 평범한 직업을 무시하고 깔보는 도시 귀족들의 집에서도 결코 발견할 수 없다고 언급한다. 
  
오늘의 우리와 페스탈로치

페스탈로치는 이렇게 자유(평등)정신이 당시 자신의 조국과 도시들에서 사라지고, 부자와 귀족들은 점점 더 사치와 자신들만의 특권의식으로 구별해가며, 평범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건전한 직업생활 속에서 가정적 안정과 인간적 긍지를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을 보면서 조국의 깊은 타락을 본다. 그에 의하면 국가 헌법의 최종목표와 정신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인간적인 건전한 자긍심 속에서 가능케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통해서 국가공동체내에 검소와 겸손, 근면과 친절과 공동체 의식을 가능케 하는 일이다. 

이와 반대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고 모두가 서로에게 교만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서로 점점 더 높아지려고만 한다면 이것은 모든 타락과 비참의 시작이며, 여기서 아이들과 같은 약자가 제일 고통을 당한다고 경고한다. 오늘 우리 사회를 그대로 보는 것 같고, 또한 우리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경제도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자긍심과 가정적 안정에서 온다는 것을 당시 20대의 젊은이도 잘 파악했는데, 왜 오늘의 위정자들,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경제 전문가들은 무시하고 그것을 그들 정책의 기초로 삼지 않는지 한탄이 저절로 나온다. 

페스탈로치는 이렇게 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조국의 구원의 길을 밝혔다. 그것은 나라의 법정신의 회복과 모두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의식과 그러한 의식이 키워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가정적 평안과 안정의 구축이었다. 이러한 인간의 기초적인 의식이 또한 신에 대한 믿음과도 연결되어,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지수와 자긍심, 도덕의식과 신앙이야말로 한 국가 안녕의 바로미터가 됨을 밝혀준다.
   
이러한 18세기의 젊은 애국자 페스탈로치의 글에는 비록 혁명 후라도 어떤 국가 체제 아래서도 퇴색되지 않는 치국의 보편적인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헬조선이라는 말로 지적되는 한국적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지혜이고, 또한 박근혜 정부가 물러가고 전혀 새로운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결코 저버려서는 안되는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이제는 젊은이들과 대학생들에게까지도 사치와 음주, 퇴폐가 확산되었다고 한탄하지만 페스탈로치는 그러나 젊은이들이야말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고, 아직 그러한 교만과 사치, 이기주의에 철저히 물들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실험적 생활을 통해서 국민정신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 젊은이들마저 돈을 제일로 보고,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보다는 관심이 자신에게로만 향할 때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잘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타자에 대해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페스탈로치가 그렇게 강조한 가정에서의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관계가 그런 것이며, 또한 언어와 전통과 삶의 공간을 같이하며 형성된 조국이라는 개념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는 나라의 미래는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촛불시위에서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그렇게 많이 함께 한 것이 온갖 좋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희망의 근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기성세대가 결코 딴 길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민족과 국가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존재도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별 근거는 필요로 하는 법이라고 페스탈로치의 글은 지시하고 있다. 그 최소한의 근거는 ‘자연의 끈’이라고도 하고, 삶에서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것이 되어서 견실한 베이스캠프에 근거해서만 더 멀리 더 높게 갈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고는 페스탈로치의 전 생애와 전 작품을 통해서 관통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기본적인 사랑과 정의감과 헌신의 능력이 가까운 삶의 반경에서의 경험이 아니고서는 어디에서 키워질 수 있겠는가고 계속 반문한다. 

그런 의식에서 그는 프랑스 대혁명 전의 전제와 귀족적 도시민들의 횡포와 사치에 맞서서 원래 자신의 조국 스위스가 간직해온 자유정신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인간의 만복의 출처가 되는 가정을 안정시키고, 중산층을 안정시키며, 그래서 다시 조국애를 싹트게 하고, 그 조국애야말로 인간 끈의 한 귀중한 축이 됨을 밝혀주려고 했다. 나는 오늘 추운 겨울날 아직 헬조선의 상황 속에서 당장 해야 하는 온갖 일들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온 한국의 젊은이들의 마음도 그 때의 젊은 청년 페스탈로치의 그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두려운 마음도 크다. 

*각주설명 1)이번 성찰을 위해서 우리가 주로 이용할 페스탈로치 텍스트는 1927년부터 독일어권에서 발간되기 시작하여 계속되고 있는-본인이 1988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는 저작 29권, 서간 13권의 총 42권이 나와 있었다-『비판판(Pestalozzi Saemtliche Werke, Kritische Ausgabe)』에 나오는 것이다. 다른 판본들에 나와 있는 작품의 해설들은 참고하겠지만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고, 당시 스위스나 유럽의 시대사적 흐름과 관련한 그의 삶과 저술의 전기적 진행은 1988년에 출간된 취리히대학 페터 스테들러(Peter Stadler) 교수의 책 Pestalozzi Geschichtliche Biographie von der altern Ordnung zur Revolution(Verlag NZZ)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은선(세종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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