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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사람 요셉 (마태 1:18~25)2016년 12월 18일 대림절 넷째 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12.19 16:10

*영상 설교 youtu.be/DrRRHWjOz1A

1. 마리아와 요셉

1) 대한 성공회 주교좌성당과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제단 성화 

서울 한복판 시청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이 있다. 건물 전체의 외관은 십자가형이다. 규모가 아주 크다고 말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건물을 현대식으로 건축하고 도시 모양이 현대화되는 가운데 전 근대적인 건축이라 색다른 전통이 느껴진다. 

우리교회도 올해 NCCK가 주관하는 아시아주일에 이곳에 가서 기도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천장의 목조와 기둥과 외벽은 돌로 이루어진 주교좌성당의 건축은 독특하다.

그 중에 백미는 제단에 장식된 황금색 모자이크 그리스도 상이다. 

예수님은 라틴어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Ego sum lux mundi)’라고 쓴 성경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복을 내려주신다. 변하지 않는 영원을 상징하는 황금빛이 가득한 제단에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예수님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진다.

지난 1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제65차 총회가 특별히 한국정교회에서 열렸다. 마포 한겨레신문사 근처 언덕에 한국정교회 성당이 있다. 정교회는 크게 그리스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가 대표적인데 한국정교회는 그리스정교회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번에 NCCK 회장이 된 암브로시우스 대주교도 그리스에서 온 신부다. 종교개혁보다 500년 전, 기독교가 서유럽의 가톨릭과 동유럽과 아시아의 정교회로 분열되었고, 한국은 주로 서유럽과 그곳의 기독교에 접촉했기에 정교회 예식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전에도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정교회 성당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서 놀란 점은 성화(이콘)가 굉장히 많다는 것과 제단의 성화가 성모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 마리아가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이 낯선 것은 아니지만 제단 중앙에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 그림으로는 처음 본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보다 성모 마리아를 더 높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회의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추측하건대, 정교회 건축은 비잔틴 양식이라 일반적인 서구 건축과 달리 중앙에 돔이 있다. 건물에 돔을 얹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수학과 물리학 기초 위에서 가능한 건축기술이다. 지금의 터키에서 발달한 비잔틴 양식은 수학이 발달했던 아라비아와 이슬람 세계의 영향이 크다. 

돔 둘레에는 둥글게 돌아가면서 창문을 내어 전기가 없던 옛 시대에 천상의 빛이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 있게 한 것이 비잔틴 양식의 특징이다. 서구 전통에서 빛은 곧 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제단이 교회의 가장 중심이지만 돔이 있는 비잔틴 양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돔이 더 중요한 가 보다. 그 돔의 중앙에 그리스도를 그리고 거기서부터 사방으로 다른 그림들이 펼쳐져 있다. 

2) 남성성 대 여성성 

서구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 그리스-로마 문화와 접촉하게 되고, 그리스-로마의 오래된 여신 숭배 전통이 기독교에 들어온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니까 이단이니 어쩌니 하지는 말고…!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해서 마리아를 신격화는 것은 안 될 것이나, 그 중요성은 우리도 공감할 필요가 있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중 아담을 창조하시는 하나님(부분)

야훼 신앙과 기독교는 고대 중동의 아주 남성위주 사회에서 만들어졌기에 남성 존중/여성 비하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하나님은 성이 없지만 은연 중에 남성으로 인식되어 있다. 남성적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힘이 세고, 이성적이고, 법에 따라 단호하시다. 그런데 하나님을 이렇게 남성으로만 이해하면 기독교는 매우 단편적이고 성차별적이게 된다. 오늘 21세기 이 민주주의 사회에도 한국교회가 여전히 여성 차별과 힘의 논리를 고수하는 중요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의도적으로라도 여성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마리아 숭배가 그 대안은 아니지만 호세아 같은 하나님의 여성성, 성모 마리아나 막달라 마리아 등 초대교회 여성 지도자들의 역할 등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다른 각도에서 크게 보면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만 놓고 보면, 또 반대로 마리아보다 요셉은 너무나도 저평가되어 있다. 이 또한 균형을 맞추면 좋겠다.

2. 요셉 전설

1) 요셉과 마리아 결혼 전설 

성경에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예수님이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부모를 잃어버려서 찾아다녔다는 사건 이후에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예수님이 장성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 이야기의 중심 주제인 십자가를 전후한 사건에는 없었기 때문에 요셉의 비중이 적을 수밖에 없다. 

조르주 라 투르와 카라바조의 요셉 그림(부분)

요셉은 그보다 오히려 전설을 통해 더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요셉은 원래 나사렛의 늙은 홀아비였는데 젊고 아리따운 마리아의 배필을 구할 때 제단에 올려놓은 지팡이에 싹이 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제사장의 공언에 따라 요셉도 제단에 지팡이를 올려놓았는데 거기서 싹이 나서 마리아와 정혼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기독교 미술에서 마리아가 마치 처녀 같은 젊음과 여신 같은 미모로 표현된 반면, 요셉은 늘 할아버지로 그려진다. 카라바조도 그랬고 조르주 라 투르도 그랬다. 

2) 요셉에 대한 기록 단절과 이미지 

엘 그레코, 성 요셉과 어린 예수(부분), 1600년

간혹 요셉이 건장한 남성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엘 그레코의 요셉은 어린 메시아를 보호하고 돌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든든한 모습이다. 역사적 요셉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요셉이 젊고 건장한 가장이었고 든든한 아버지였는지, 아니면 늙고 쇠약하여 일찍이 먼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노인이었는지는 궁금하기는 하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아빠면 어떻고 늙은 아버지면 또 어떠랴! 중요한 것은 나이나 외모가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었던 내면적 가치가 무엇이었느냐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나사렛 촌 동네의 목수 요셉이라는 인물에게 메시아를 낳게 하고 양육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맡기셨을까? 오늘 우리가 요셉처럼 메시아를 낳고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요셉의 어떤 점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 가 중요하다.

3. 메시아의 아버지 의인 요셉 

1) 인격자 요셉
오늘 성경은 메시아 예수님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8~19절)

악한 사람과 악한 시대는 남의 잘못은 천하에 다 드러내서 온갖 망신을 다 주고 자기 자신의 잘못을 꼭꼭 숨겨서 위선을 행한다. 반면에 자기가 조금이라도 잘한 것은 대서특필하여 크게 떠들고 선전하려 한다. 

임신 양성 반응에 놀라는 마리아 2011년 뉴질랜드의 한 성공회 성당 앞에 세워진 성탄 광고 : 마리아의 충격, 놀람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요셉은 달랐다. 동네가 다 아는 정숙한 여인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요즘이야 아이가 혼수품 목록에 들어가지만 2천 년 전 철저한 율법사회인 이스라엘에서 여성이 혼전에 그것도 신랑 될 사람이 아닌 다른 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처형 감이었다. 그보다 마리아에 대한 환상과 신뢰가 산산이 부서진 현실에 요셉은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마리아로부터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마리아의 심각한 배신감에 그는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서 복수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리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결혼만 무효로 만들려 했다.

교회는 말이 많은 곳이다. 교회가 또 말이 없으면 생기가 없다. 말은 곧 생명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래서 말을 가려서 조심해서 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많은 이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말하는 곳이기에 자칫 말실수하기 쉽다.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은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니었다 해도 좀 지나서 그게 사실이 아니었네, 그건 과정된 것이었네 하면 그만이다. 칭찬은 사실이 아니어도 크게 파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남에 대한 비판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을 사실인양 유포했을 때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중에 주워 담기가 어렵다. 

요셉은 성경 표현대로 의인이었다. 선행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성품이 원래부터 호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의 잘못된 점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이렇게 교우들의 잘못이나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2) 신앙인 요셉

요셉이 아무리 의인이라 해도 철석같이 믿었던 마리아의 임신 소식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도 밤을 새워 고민하며 힘들어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0절)

오늘 성경은 그냥 그가 의로운 사람이라 소문 안내고 조용히 끝내려 했다고 아주 쿨하게, 아주 단순하게 보도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려는 결론까지 요셉은 얼마나 긴긴 밤을 새우며 수많은 가정을 머릿속에 그리면 고민했을까!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이 짧은 문구 속에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 요셉의 깊은 고뇌가 스며있다. 하나님 일로 고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교회 일 때문에 가슴 아프고 힘들어 하고 눈물 흘리는 이는 복되다. 

(주보 글) 안톤 라파엘 멩스, 성 요셉의 꿈, 1774년모두가 선망하는 마리아와의 결혼을 앞두고 가슴 설레던 요셉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마리아의 임신! 요셉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며, 배신감으로 얼마나 치를 떨었을까! 요셉의 고뇌가 깊다. 노동으로 단련된 손과 팔뚝은 아직 건장하지만 그의 영혼은 한없이 지쳐있다. 목수 일에 집중하던 톱과 도구도 내려놓은 채 눈을 감고 수심 가득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있다. 얼굴 표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낭패를 당했을 때처럼 거의 울상에 가깝다. 실망과 분노, 허탈과 이해할 수 없음이 그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 요셉은 마리아를 조용히 끊고자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정이다. 그리고는 꿈속에서 천사의 음성을 듣는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원망이나 복수로부터 벗어나는 인격, 받아들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음성 앞에 모든 것을 수용하는 믿음, 그는 진정 메시아의 아버지로서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안에 메시아가 탄생하시도록 요셉의 인격과 신앙을 준비하자.

이처럼 갈등하는 요셉에게 꿈속으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믿을 수 없는 말을 전하고 있다.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혼인을 앞둔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께서세상의 구세주를 잉태하도록 한 것이니 아무 걱정이나 분노하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요셉의 위대한 점은 다음 절에 잘 나타나 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1절)

요셉은 현실에 대한 꿈속의 처방이 만족스럽지도 못하고 현실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온전히 천사를 통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그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였다. 

신앙이란 내 생각과 달라도 하나님 뜻이라면 나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가가 신앙의 핵심이다. 내 현실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하면서 주님 뜻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매우 힘들지만 신앙인의 길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포기한 그 자리에 메시아가 탄생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구유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내려놓는 것과 같은 뜻이다. 

2016년 성탄절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메시아는 어떤 사람에게 탄생하시는가?
요셉처럼 의로운 사람에게서 탄생하신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는 소극적이고 남의 잘못은 드러내지 않으려는 인격자, 그리고 내 생각과 너무 달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적으로 그 뜻에 내 인생을 거는 삶, 멋지다, 메시아가 탄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올해 성탄절에는 정말 요셉처럼 메시아가 오시게 하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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