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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 촛불 문화 통해 '회개의 담' 넘자[에큐 신년인터뷰] ① 에큐메니안 발행인 이해학 목사
윤인중 목사 / 김령은 기자(정리) | 승인 2017.01.01 17:08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갔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여러 사안들을 뒤로 하고 그럼에도 2017년의 문은 열렸다. 닫힘과 동시에 열리는 새해의 문 앞에서 선뜻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렵다. 어쨌든 가버린 시간 속에서 우리의 2016년이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17년의 첫 한걸음을 힘차게 떼기엔, 마무리 되지 못한 2016년의 그림자가 짙다. 

우리의 지난해는 어떤 말로 정리될 수 있을까. 또 새해에는 어떤 말로 우리의 수고로운 발걸음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어른에게 덕담을 들었나 보다.  

신년을 앞두고 지난 12월 29일(목), 서대문의 한 카페에서 이해학 목사를 만났다. <에큐메니안> 발행인이자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원로 목사인 그에게 덕담을 듣기 위해서다. 거창한 말이 아닌, 우리의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조망하는 혜안을 묻기 위해서다. 

이해학 목사는 성남 주민교회(기장, 이훈삼 목사) 담임목사 은퇴 후 고향인 남원에 자리를 잡았다. 이 목사는 성남에서 빈민들이 지역의 주인이라 믿고 그들을 섬겨왔다. 그가 1974년 긴급조치 1호를 맨 처음 태잎을 끊고, 76년 긴급조치 9호, 90년에는 범민족대회 후 베르린 남북해외 통일회담에 참석하여 국가보안법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옥고를 치른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굴곡진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의 역사 속에서 그와 성남 주민교회는 늘 선두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광장 민주주의 혁명’으로 회자되는 지난 2016년은 어떤 해였을까? 2016년이 남겨준 과제를 풀어가야 할 2017년은 어떤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까? 아래는 이해학 목사와 에큐메니안 운영위원장 윤인중 목사가 나눈 대화다. 

이해학 목사 ⓒ에큐메니안

성남 주민교회 담임 목사 은퇴 이후, 어떤 시간들을 보냈나? 

요즘 자연에 뭍혀서 별보기를 한다. 내가 사는 남원에는 천문대가있어서 저녁에는 별 보며 지난날 많은 어리석었던 일들을 참회하고 있다. 나는 요즘 우리민족의 위대한 문화 중 윷놀이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다. 

별을 보다 보면 우주가 얼마나 넓고 광활한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은하 하나만해도 1초에 30만km 나가는 빛의 속도로 2백5십3만7천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내가 지금 보는 빛은 2백5십3만7천년 전의 빛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안드로메다와 우리은하는 서로 돌진하여 달려오고 있는데 1시간에 5십만 키로 메타씩 가까워지고 있다. 어느 땐가는 우주 대충돌이 생길 것이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러나 아직은 안심해도 될 것이 그런 일은 30억년 뒤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것을 계산해낼 수 있는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가? 성서에서는 이런 신비를 ‘신묘망측하다’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지구는 먼지하나 만큼도 못하다. 거기에서 <나>라고 하는 인간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다. 그런데 지구만이 생명이 있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 광활한 우주에 나라고 하는 생명체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별을 바라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다. 그런데 나보다 앞서서 우리 조상들은 북두칠성을 보며 우주사상과 인간관계를 정립한 민족이다. 사람이 북두칠성에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또,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고 믿었다.

놀라운 것은 현대천문학에서는 북도칠성이 별들의 중심임을 증명한다. 7천년유적인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유골에서 상투를 튼 동곳이 나왔다. 상투는 일곱 마디를 묶는 천손민족의 상징이며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상투는 후에 슈메르를 거처 영어의 성자(saint)라는 말로 발전한다. 이런 자미원의 28수 우주철학이 윷판에 그려저 있다.  나는 우리문화와 기독교의 관계성을 연구하면서  기독교가 더 풍성한 영성으로 무르익기 위해서는 동양문화 특히 배달겨레문화영성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볼 때에 욥기와 요한계시록은 북두칠성으로 풀어야 이해가되는 책이라고 본다.

2016년 광장 촛불,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어머니 딸들 손자 등 이해학 목사 가족 4대가 주민교우들과 함께 서울 시청앞에서 ⓒ이해학

세월호의 핏 소리가 하늘을 움직인 사건이다. 민중들의 탄식이 하늘을 찔러 때가 찬 것이다. 악이 넘쳐 새로운 변혁의 때가 도래한 것이다. 예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신 때이다. 광장 촛불 문화는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그리고 5.18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화산맥처럼 분출된 혁명의 폭발이다. 그것은 다른 민족에 비해서 우리 민족이 유독 기질적으로 더 강하게 가지고 있는 유전인자인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에게는 큰 근본의 샘물 같은 곳에서 계속 퍼 올라오는 에너지가 있다. (‘東夷’라는 말의 옛 뜻은 ‘근본’이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이번 촛불 문화는 다른 때하고 달리 더 성숙화 된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너무도 질서정연할 뿐 아니라 오히려 축제로 즐기는 것을 세계가 감탄하는 것이다. 

촛불은 그간에 이 땅을 오염시킨 거짓과 부정과 비합리적인 모든 것을 태울 것이다. 촛불 문화는 그간에 적체된 가진 자들의 비리, 억지논리, 갑 질에 시달린 사람들의 좌절감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집회에 자율적으로 나오는 시민들의 비율이 60~70%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최대의 과제는 절차민주주의를 넘어 제도적 민주주의 정착이다.

당분간 정치는 정치인들의 결탁과 야합과 조절, 타협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이제는 광장의 눈치를 봐야하고 광장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형식적 대의정치의 한계를 넘어 직접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정치 기류뿐 아니라 경제, 교육, 언론, 노동 등 전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천안함의 조작이후 미국에 넘겨버린 군작전권을 포기한 정부에 예언자적 역할을 포기하였다. 대신에 동성애, 할랄식품,종북몰이에 동조하고 있어 거짓 예언자들의 모습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하루살이는 뱉고 약대는 삼키는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알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정치권력과 타협하고 맘몬신앙에 도취된 교회가 정유년 새벽닭울음 소리를 들으며 회개할 때이다. 타락한 교권주의에 안주하며 반민중적 반민족적, 반통일적인 교회가 촛불에 밀려서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반드시 맛을 잃은 소금같이 버림받을 때가 온다. 지금이 그 때 이다. 이것은 성령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 임하신 것을 직면하는 사건이다. 성령이 광화문에, 시민운동에, 한국 역사에 임하신 때다. 우리는 기독교방송까지도 지금까지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오며 복음을 변절시킨 복음주의자들이 차고앉아 화려한 말 바꾸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본다.

2016년 뜻 깊게 늦봄 통일 상을 수상했다. 소감이 어땠는지? 

지난 11월 2일 늦봄 통일상을 수상한 이해학 목사 ⓒ이해학
2012 1.16 LA. 틴루터 페레이드에서 인터내셔널 그랜드 마샬 수행 ⓒ이해학

금년도 늦봄 통일상 뿐만 아니라 2012년 '마틴루터 퍼레이드 인터네셔널 그랜드 마샬'이나, 2014년 한신상도 극구 거절했지만 받고 말았다. 

통일운동은 내가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때로는 조직으로 함께하였기 때문에 내가 속한 단체가 받아야할 상이다. 거절하다가 늦봄통일상을 수상하게된 것은 나와 어께 걸고 외롭게 고난의 좁을 길을 함께 걸었던 동지들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를 협력하고 지원했던 사람들이 “우리가 잘못 살지 않았 구나”하는 기대를 해 본다. 평생 빚진 마음인 나로 인해 고문당하고, 구속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나의 수상을 통해서 ‘이해학이 상을 받으니까 나도 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나 때문에 상처 받은 모든 이들이 나와의 연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 인내해 준 가족들과 전민련시절부터 민족회의, 민화협을 거친 동지들, 특히 성남 주민교회 교우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1990년12월. 독일 베르린에서 남북해외 지도자들이 통일회담을 하고 ⓒ이해학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한국교회,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할까? 

한국초대교회는 매우 건강했다. 위기에 처한 민족문제에 대응하며 교육과 한국인의 고질적 폐습을 바꾸는 사회개혁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교회가 힘이 생기면서부터 교회성장과 내면의 구원에 한정시키는 신학의 결과 본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수가 아닌, 교회가 갖고 있는 힘의 논리로 복음이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신자본주의 논리를 동조하면서 한국교회는 금송아지 신앙과 바벨탑 신앙으로 무장해 왔다. 교회는 사회에서 비난이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이 얼마나 타락하고 변질되었는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부흥운동과 방향 없는 기도운동에 신도들을 내몰고 있다. 자연히 교회는 정치적 보수세력과 배를 맞추고 반이성적, 반과학적, 반역사적, 반통일적, 반민중적 괴물로 변신해 왔다.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교권의 행태는 독재권력에 야합하고 제국주의 찬양과 종북타파로 자신들의 타락을 위장하려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생명과 인간에 대한 절대적 뿌리를 내린 예수에 반하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다윗을 책망한 나단이나 야합에게 나봇의 포도원으로 인한 저주를 퍼붓는 예언자가 교회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다. 왕이 듣지 않더라도 할말을 하고 왕궁의 마른 우물에 갇힌 예레미아가 있는 한 진리의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인들이 거짓예언자들에게서 종북으로 몰리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큰길로 돌아서는 현실이다. 

성탄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구유에 오셨다는 징표이다. 구유는 더 이상 물러갈 자리가 없는 곳, 동물같이 무시당하고 능멸당하는 자리, 고난 받는 자리,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이 당신의 몸을 하향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그리스도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오늘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처럼 하향조정을 할 줄 알아야한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인들은 하향조정을 못한다. 설교 부흥회를 통해 상향조정 훈련만 받았다. 오늘날 교회만 비대해지고 더 큰 바벨탑 쌓기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은 경쟁적 상향조정만을 해온 결과이다. 회개한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은 집을 짓는 것, 옷을 입는 것, 먹는 것, 모든 것에 있어서 하향조정을 해야 한다. 하향조정을 해서 남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 이웃들을 섬기는데 써야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넉넉하게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 같은 교회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연습들을 해야 한다. 성서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기독인들이 부활한 예수께서 갈릴리에 가셨듯이 이 땅에 소외된 인간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교회는 개교회주의를 넘어 지역공동체적 살림운동에 나서는 일일 것이다.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언론이 문제라면 기독교 언론도 마찬가지다. 방대한 방송국운영을 위해 오염된 복음을 거침없이 증거하는 대형교회 목회자의 설교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돈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민중들은 장님이 인도하는 길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안다.

이어지는 촛불 정국, 기독인은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이해학 목사 ⓒ에큐메니안

사회가 대 변혁을 이뤄가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촛불시위 때문에라도 회개의 담을 넘고 있는데 기독교도 그 담을 넘어야 한다. 기독교가 정치권력과 야합하면 썩는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변화를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면 둘 다 산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그런데 정치권력과 야합한 사람들은 늘 야합하고 정치적 참여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매도를 당한다. 앞으로 촛불문화가 그런 것들을 깨고 넘게끔 만들어주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일제에 부역한 교회들을 해방정국에서 청산을 못한 풍토 안에서 우리도 자랐다.  한기총은 출발 자체가 독재정권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보조기구로 만들어 졌다. 사이비 어용 집단이다.  촛불 정국에서 기독교가 집중해야할 것은 한기총의 비리와 거짓복음을 폭로하고 순박한 신자들이 그 영향력에서 빠져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4.19부상자로서 지금까지 부르짖어 왔던 바와 같이 '4.19의 완성은 통일이다'는 말이 선언으로서가 아니라 금년에는 현실적으로 열매가 익어가는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천안함 같은 조작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 당사자들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역사는 발전한다. 

윤인중 목사 / 김령은 기자(정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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