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커 영성 체험기 - 에큐메니안

목회실습 함부로 가지마라

“신학생이 채플에 지각을 해!?”,
“신학생이 강의에 슬리퍼를 신고와!?”
“뭐!? 신학생이 술을 마시고 학교 기물을 파손해?!”

학부 재학 중에 권위의식으로 가득했던 필자가 후배들에게 종종 했었던 말들이다. 그렇다. 필자는 자타공인 이른바 ‘꼰대’이자, ‘바리새인’이었다. 졸업 후 일 년 반을 쉬는 동안에 나의 들보를 보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다시는 알량한 귄위를 부리지 말자고 다짐하고 대학원에 들어왔지만, 대학원 2년차가 되자마자 동생·후배들에게 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생겼다. 바로 “목회실습 아무데나 함부로 가면 안 돼”이다.

현장목회실습은 한신 신대원 목회학석사 과정 중 필수 과목인데, 수요일부터 주일까지 5일간 신청 실습지에서 목회실습을 해보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상 다수의 M.Div 과정생들이 이미 개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한 주간 본래 사역지를 떠나 다른 사역지를 경험해 보는 시간이다. 실습지는 대학원 교역지도실과 개교회·기관간의 조정을 통해 선정되고, 학생들은 해당 실습지를 선착순(명절기차표예매를 방불케 하는)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인기가 있는 목회실습지는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만 한다

다양한 기관과 교회가 실습지로 올라오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 목회비전, 지리적 편의성, 지인과의 관계, 휴식 등등 다양한 욕구와 고민에 따라 선택이 갈린다. 필자가 “목회실습 아무데나 함부로 가지마” 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가 아니다. 필자는 지난 해 ‘생명선교연대’에서 실습을 했는데, 사실 필자는 생명선교연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목회지형에 있었다. 그런데 올해 정신을 차려보니, 필자는 작년 실습 당시 방문했었던 ‘아시아다문화소통센터’에서 외국인교육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실습주일에 출석했었던 ‘가온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필자에게 목회실습은 일주일간 색다른 목회경험이 아니라, 목회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다메섹이었다. “아무데나 함부로 가면 안 돼”는 비록 필자 개인의 경우일지 모르겠으나, 목회실습은 그냥 보내기 아까운 좋은 기회임을 강조하고 싶은 말이다.

목회실습을 통해 전향(!?)한 필자이기에, 가을 학기가 되지마자 어느 곳이 실습지로 올라 올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2016-2학기 현장목회실습 신청 안내” 공지가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 매력적인 여러 실습지가 있었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 번에 실습지를 정했다. 평화의 씨앗들-철원교회목회실습(담임목사:정지석)이었다.

1.기도, 노동, 공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영성의 교회를 지향하고 평화통일의 민족비전을 담아 출발한 개척교회입니다. 이곳에 실습오시는 분들은 위와 같은 목회와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삼고 기도하는 신학생을 환영합니다.

취향저격이다!! 기도·노동·공부는 베네딕트 수도원을 비롯한 모든 수도원들의 기본 생활 방식이 아닌가! 더군다나 ‘영성의 교회’, ‘평화 통일’이라니.. ‘평화의 씨앗들’은 나에게 얼른 달려오라며 손짓하고, 아니 이미 내 멱살을 잡고 끌고 가고 있었다.

어서와 DMZ는 처음이지? - 국경선평화학교: 공부

드디어 목회실습 날, ‘평화의 씨앗들’과 접선 장소는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의 뮤직비디오의 배경인 노동당사였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노동당사를 보면서 비장함에 잠겨 있을 때 평화의 씨앗들의 정보경 전도사님께서 도착하셨다. 정 전도사님은 마침 ‘국경선평화학교’(Border Peace School: 이하 BPS)의 수업일이니, 수업 참관을 제안하시며 우리를 BPS로 인도했다. BPS는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쪽의 비무장지대 ‘평화문화광장’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가 참관한 수업은 ‘평화경제’였다. 내용이 다소 생소했으나, 주된 내용은 통일의 경제성이었다. 통일을 주저하는 여러 이유 중 많은 대답은 통일준비 과정과 통일 이후에 요구될 경제적 부담일 것이다. 강의의 내용은 통일이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져보더라도 남북 모두에게 손해는커녕,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줄 것에 대한 전망이었다.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다각도의 고려가 필요해 보였고 BPS는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여 통일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시민의 소양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평화경제 수업이 끝나고, BPS의 대표이신 정지석 목사님은 목회실습에 방문한 우리 신학생들에게 BPS에 대해서 안내를 해주셨다. 정지석 목사님은 현재 BPS의 대표이다. 정 목사님은 기장의 목사이며, 영국 우드부륵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우드부륵과 펜들힐에서 ‘퀘이커’에 대해서 공부했다. 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YMCA 생명평화센터와과 같은 에큐메니칼 기관에서 일했고, 민중교회와 평신도 공동체인 새길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먼저 정지석 목사님은 퀘이커와 메노나이트, 브래들린 교회로 대표되는 ‘역사적 평화교회’ 전통을 소개해주셨다. 정 목사님은 라인홀드 니버(1892-1971)와 존 하워드 요더(1927-1977)의 갈등 주제였던 기독교 평화주의의 문제를 다루면서, 교회가 평화를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전쟁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의 섹터(1섹터:정부 2섹터:시장 3섹터:시민)의 영역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적 상황에서 평화는 ‘통일’을 거치지 않고서는 생각해 볼 수가 없다. 그러한 흐름에서 BPS의 비전과 활동을 설명해주었다.

역사적 평화교회를 소개하고 있는 정지석 목사 ⓒ이광희

BPS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마 5:9)는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을 얘기 하다가 해가 눕자, 서둘러 짐을 챙겼다. 일몰 시간에 맞춰서 민통선 바깥으로 나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BPS의 건물의 사용시간과 공간관리 등 학교의 거리 문제를 생각했을 때 얼마나 비효율적인 위치인가를 생각해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비무장지대에 있는 평화학교, 평화가 가장 필요한 곳에 평화학교라니.. 정말 환상적이다. BPS는 평화의 최전위대였다. 학교가 온 몸으로 평화를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포성이 멈추고 꽃이 필 때까지 - 침묵:기도

BPS는 퀘이커의 단순한 삶의 방식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삶의 중심에는 침묵기도가 있다. BPS는 하루 세 번 침묵의 기도를 드린다. 아침과 저녁은 마련된 기숙사에서 침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성찰하며 마무리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낮기도 시간이다. BPS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도처럼 보였다. 민통선 바로 앞에 ‘소이산’이라는 아주 작은 산이 있다. 그 산을 오르며 평화를 위해 침묵으로 기도한다. 멀리서 들리는 전투연습의 포성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포성 가운데 평화를 기도하는 침묵이라니, 얼마나 상징적인가.

작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던 백마고지와, 넓게 펼쳐진 평강고원, 그리고 금방이라도 닿을듯한 북한 땅이 보인다. 그 앞에서 산을 오르며 드렸던 기도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모아 기도한다. 분단의 경계에서 드리는 평화의 기도는 정말로 그 경계 너머를 상상하며 그 경계에 도전하는 도발적인 행동이다.

ⓒ이광희

산을 내려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BPS의 전영숙 전도사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왜 이름도 없는 소이산을 오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전 전도사님의 대답은 필자가 소이산 기도를 실습 중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게끔 해주었다. “소이산은 원래 봉화산이었어요. 봉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파수꾼이죠. 우리는 파수꾼이에요. 이름 없어도, 아무도 몰라줘도, 매일같이 묵묵히 산을 오르며 평화를 준비하는 파수꾼이요.”

BPS팀들은 BPS가 시작되기 전부터 소이산에 오르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무의미라는 절망의 속삭임과 싸웠을까? BPS는 그런 무의미함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꾸준히 이어왔다. 평화는 힘 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이 즉각적인 반응과 효과를 나타내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는 것, 평화가 단번에 이뤄질 것이라는 유혹을 거절하고 끈질기고 묵묵히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은 아닐까?

통일 이후의 삶을 준비하며 – 텃밧:노동

수도제도의 창시자인 파코미우스(292-348)는 수도자의 육체노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노동을 통해 수도사가 자급자족하도록 했다. 수도원에서 노동은 기도와 더불어 수도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슬로건은 ‘기도와 노동’이며, 기도와 노동의 일치와 조화는 모든 수도원의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BPS에서도 노동, 텃밭을 가꾸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BPS의 밭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밭일은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밭일은 단순히 평화가 이론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밭일은 통일 이후의 그림을 보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BPS는 바로 북한에 가서 살 것인데, 북한에 가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북한을 어떻게 도울 중요것인가?의 대답이 바로 ‘유기농 농업’인 것이다. BPS는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것처럼, 아니 이미 통일이 된 것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BPS의 유기농 농업은 통일을 살아가는 종말론적인 행동이며, 노동이자 공부이고 기도이다.

떨림 – 침묵과 평화의 영성

실습의 마지막 날은 주일이었다. BPS는 퀘이커의 방식으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도 성례전도 없었다. 일상적인 기숙사가 예배당이 되었다. 이는 일상이 하나님 체험을 하는 장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곳에 침묵이 있었다. 침묵을 통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의심이 든다. 하지만 아니다. 깊은 침묵으로 들어갈 때, 침묵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그리고 침묵 가운데 건네시는 하나님의 고요한 음성은 시끄러운 소리보다 힘이 있다. 이 때 퀘이커(Quaker)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퀘이커는 침묵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이들이 부들부들 떨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잠잠한 그들의 떨림은 세상의 불의와 분쟁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게 한다.

ⓒ이광희

퀘이커의 영성은 마음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화해자가 되게 하기도 예언자가 되게 하기도 한다. 남북의 평화 통일에는 화해자도 예언자도 필요하다. BPS는 그러한 평화의 일꾼들(Peace makers)을 길러내고 있었다. BPS의 노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잠잠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조용한 혁명가들은 이미 평화를, 통일을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실습을 마치고 돌아오니 종교개혁주일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 해 남겨두고 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개혁의 과제를 풀어나갈지에 대해서 교회는 다양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이제 500주년의 해가 밝았다. 필자는 오늘의 교회개혁의 상상력을 루터나 칼빈에서 뿐만이 아니라, 묵묵히 그러나 치열하게 평화를 위해 일 해왔던 퀘이커를 비롯한 ‘역사적 평화교회’의 영성에 주목해본다면 그들이 조명해주는 침묵, 평화, 단순, 평등의 정신은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할 값진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주는 지혜는 단순히 교회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 단절과 싸움이 만연한 이 시대에 주께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다하신 복을 교회가 되찾을 수 있게 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광희 webmaster@ecumenian.com

트윗하기

관련기사 영성, 고유한 나의 리듬을 찾는 것 강도만난 자에게 우린 무엇을 할 수 있나? 나는 영성학자인가? 영성가인가? “너희가 영성을 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