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조선민족의 이산(離散)사할린 징용 1세, 혹독한 겨울보다 더 추운 고향길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가) | 승인 2017.01.04 13:16
사할린 이야기2

사할린으로의 한인 이주는 1870년대부터로 추정된다. 1897년 러시아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한인이 67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살다가 사할린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 같다. 이후 1904~05년간의 러일전쟁으로 일본에 귀속된 북위 50도 이남의 남사할린에 본격적으로 한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한다. 일본은 사할린을 카라후토라 칭하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데 그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고자 1938년 4월 1일에는 국가총동원법까지 제정하여 한인들을 이주시킨다. 일본은 1939년부터는 모집의 형태로, 1942년부터는 관(官)알선의 형태로, 1944년부터는 강제동원의 형태로 한인들을 이주 시켰다.
 
우글레고르스크, 2014 01
# 주위에는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새 한 마리도, 파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파도는 누구를 위해서 으르렁거리며 누가 밤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지, 파도는 무엇을 찾고 있는지, 마침내 내가 여기를 떠난 후에도 파도는 누구를 위해 으르렁거릴는지 모르겠다. 여기 바닷가에 서니 사상이 아니라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무섭지만 그와 동시에 끝없이 서서 한결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그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 _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징용 1세 김윤덕 씨(1923년 경북 출생), 시네고르스크, 2014 01
 # 아버지와 형님 대신 징용을 온 김윤덕 할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한 구순의 노인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해 1주일이 넘게 걸려 도착한 사할린의 겨울은 혹독했다. 도착한 다음날 날이 밝아서야 본 설경이 하도 기가 차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던 김윤덕 옹의 한국 호적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있다.
 
# 1989년 처음 고향길이 열렸을 때 모국방문을 한 김윤덕 옹은 46년 만에 어머니와 상봉 할 수 있었다. 하지만 5남매의 자식을 또 이산가족을 만들 수는 없어 영주귀국은 포기했다. 어렵게 찾은 가족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소식이 뜸해졌고 그나마 살아있는 막내 동생이라도 다시 만나보고 싶다고 일행에게 호소했다. 나중에 막내 동생을 찾기는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오빠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여 김윤덕 옹은 고향의 핏줄들과는 영영 이별을 하고 만다.
  
지금은 폐광된 브이코프 탄광촌, 2014 01
# “ 내가 결혼할 때 남편은 꽤 나이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고향으로 가려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시간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탄광에서 일하며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월급도 자기 손으로 못 받고 한국으로 보낸 돈도 나중에 확인해 보니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처음 왔을 때는 숙소에 천여명의 조선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두들 너무 배를 곯고 힘들게 일했습니다. 콩밥에 쌀을 조금 넣어 그걸 주고 점심으로는 탄광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줬는데 너무 배가 고파 그것을 미리 먹으면 죽도록 맞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추운 겨울에 호스로 물을 뿌리고 때리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질게 감독하는 대부분 사람은 조선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나마 지식인들이었고 일본말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참 못되게 굴었답니다. 참 억울하지요. 그 사람들은 해방 후 큰 도시나 큰 땅(러시아 대륙)으로 갔습니다.”  (강제동원 구술기록집2  ‘검은대륙으로 끌려간 조선인들’  정화자 씨 구술 중)
 
사할린에는 2만5천여 명의 사할린동포들이 살고 있다. 1992부터 실시한 영주귀국 사업으로 4천여 명이 한국에 정착하기는 했지만 이는 또 다른 이산(離散)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자식들과 함께 올 수 없었고, 2인 1가구를 형성해야 했기 때문에 부부가 오거나, 1세(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에 해당하는 노인과 재혼을 해서 한국으로 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래서 한때 사할린에는 신재혼 열풍이 일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온 고향은 환영보다는 차별과 외로움과 싸워야하는 낯선 곳일 뿐이었다.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가
2016.12.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