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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설국열차의 교회들<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7.01.06 13:26

'기독교 운명론'?

동부 아프리카 우간다, 케냐, 르완다, 콩고, 탄자니아를 두루 다니는 동안 식민지 제국으로부터 나라가 해방은 되었어도 여전히 그 악몽과 어둠에 짓눌려있는 아프리카인들을 만나며 사악한 제국주의의 민낯을 보았다. 침략과 약탈을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다윈의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로 정당화, 합리화시켰던 나라들과 그 국민들에게 폭탄을 맞은 여리고 약한 나라와 그 국민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인간의 악과 탐욕에 진저리를 쳤다. 

인도 카스트제도는 사람들이 저마다 태어난 자리를 지키는 것을 거룩한 의무라고 가르친다. 의무를 그대로 지키면 그 다음 환생 시 보다 좋은 세계내지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카스트제도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정면으로 충돌하건만 카스트제도를 그대로 두둔하며 비호하는 기독교의 운명론자들이 인도교회에 있었다.   

어느 비숍은 달릿의 고난과 고통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 보면서 ‘기독교 운명론’을 설파하였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은 뜻이 있으며 악인도 적당하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고 하였다. 바로도 출애굽을 촉진시킨 사람으로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았다고 주장하였으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에는 우리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성숙된 믿음이고 지혜라고 하였다. 그는 불의하고 포악한 인간에게 폭력과 학대를 받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므로 참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완덕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을 때 마다 분노가 끓어올라서 논쟁을 벌이다가 자칫 원수가 되어 인도에서 쫓겨나게 될까봐 아예 입을 다물었다. 이 세상은 잠시면 지나가고 별 것 아니므로 영생을 위해서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믿음이요, 지혜라는 것이다.  

'아프리카'라는 설국열차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커티스는 그의 동생 에드가와 함께 인도 기차의 4등 칸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서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바를 먹으며 하루하루 짐승만도 못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열차의 군인들이 와서 꼬리 칸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티미와 앤다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몇 몇 아이들도 함께 붙들렸다. 

꼬리 칸의 사람들은 십 여 년 동안 기아와 폭력에 시달리며 자신들의 운명에 도전하여 거사를 도모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만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납치사건으로 분노한 그들은 아이들을 찾고자 모의를 하였고 굳건하게 닫힌 다른 칸의 문을 열기위해서 열차 보안 설비를 담당했던 남궁 씨를 찾아 그의 도움으로 수십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불의와 악, 빈익빈 부익부의 양상을 드러내는 다양한 열차 칸들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드디어 지도자인 커티스는 열차를 설계한 마스터 윌 포드를 만난다. 윌 포드는 커티스를 수많은 반란자 중의 최초로 자기를 만난 성공한 반란자라고 추켜세우며 그야말로 자기를 이어서 열차를 맡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하였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윌 포드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받은 운명의 자리가 있으며 그 자리에서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고 도리라고 커티스를 설득했다. 사람들이 운명을 어기게 되면 세상의 질서가 파괴되고 체제가 붕괴되며 문란해져서 세계가 대파멸에 이르게 되므로 그는 세계 유지와 보전을 위해서 겉으로는 악하고 불의하게 보이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스터는 사람들이 배정받은 운명대로 살도록 공급하며 교육하며 훈련시키는 과업의 담당자로 열차의 신이었다.  

그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반란은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인구를 조정하기 위하여 허용된 것이었다, 반란자들과 군인들이 싸우는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은 열차의 안전을 위해서 유익한 것이었고, 식량의 안정된 공급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에 불과하였다. 인구 증가는 열차 안에서 생산되는 공기, 물, 전력, 양식의 부족을 가져오므로 재앙이며 체제 유지를 위해 인구는 조절되어야 했다. 마스터는 커티스가 반란에 성공하게 된 것도 과잉인구를 처리해야 하는 기차 내 사정 때문에 가능했을 분이라고 하였다. 

설국열차는 인간이 만든 과학과 자본과 권력으로 통제되며 계급화 되어가고 있는 비인간적이고 악마적인 세상에 대한 풍자이며 은유다. 권력 중독자인 정치인은 지식인들을 통해서 언론과 교육으로, 경찰과 군대를 이용하여 폭력과 안보 게임으로, 예술과 스포츠를 이용하여 그림과 음악, 경기와 많은 경쟁으로, 기타 약물과 마약 등등으로 모든 칸의 사람들을 세뇌시켜서 제국과 독재자의 숭배자로 만든다. 모든 칸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자기 칸이 아닌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배타적이며 집단 이기주의의 익숙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보장받는 한 현실 타협적이며 보수적이며 자기 세계에 충실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먹고 살며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늘로부터 받은 권리라고 생각하며 자기들의 편에 서서 자기들을 대변하는 독재자를 친구로 영웅으로 찬미한다. 

내가 본 동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태어난 운명의 자리와 설국열차의 약육강식의 폭력에 강도를 맞아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동부 아프리카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공부와 사전 준비 없이 목회학을 강의하러 갔기 때문에 막연히 아프리카 복음화 율이 아시아 나라들과 비슷하게 낮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여행을 통해서 아프리카에 대한 소명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고 도시화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체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여정에 올랐다. 그러나 가슴 설레는 낭만적인 마음은 거리의 실업자 군상들과 구걸하는 아이들, 피난민촌 같은 집들을 보면서 무너져 내렸다. 슬픈 마음에 눌리면서도 거리에서 십자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으므로 복음이 전해지면 복음이 아프리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다. 막연한 생각도 잠시 후에 쿵하고 무너져 내렸다. 동부 아프리카 어디에서도 교회건물과 십자가 조형물이 잘 보이지 않아서 기독교 인구율이 아주 낮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독교 인구율 92%인 콩고...내전, 집단 학살, 강간, 고문, 질병으로 몸살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자국의 기독교에 관한 각종 조사를 과제로 내주었다. 가장 먼저 킨샤샤 콩고 학생들이 발표를 하는데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 인구율이 92%’라고 콩고 학생인 져어맨이 발표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이 안돼. 기독교 인구율이 이렇게 높은 나라가 어떻게 내전을 일으키고 내전기간에 집단학살, 집단강간, 고문, 질병으로 수 백만 명을 죽이고 수천 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 수 있어. 그 때 이렇게 많은 교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라고 반문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6년간의 내전이 기독교 인구 92% 가 되는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멍해졌다. 져어맨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여학생인 파리지가 “대부분이 명목상 크리스챤이거든요.” 라고 말했다. 피그미족 출신인 프린스는 “주요 교단들이 다 식민지 지배 때 성장했으며 독립된 이후에도 여전히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고 하였다. 르완다 학생들은 자국의 기독교 인구율이 85%라고 발표하였다. 나는 콩고 기독교 인구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바로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입을 열었다. “이렇게 기독교 인구율이 높은데 80만 명이 죽는 내전은 왜 일어났을까? 그 때 교회는 무엇하고 있었을까?” 아무도 내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제 2차 르완다 내전은 후투족이 독일과 벨기에 식민지 통치기간에 앞잡이로 자기 조상들을 노예로 잡아 팔며 괴롭힌 투치족에 대한 증오로 학살이 시작되었다. 우리 학생들은 내전 당시 두세 살의 아이였을 것이고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전의 추악함과 비참함을 익히 알고 있을 터였다. 한국으로 돌아 와서 기독교 인구 통계 책자를 찾아보니 르완다의 기독교 인구율은 89%였고 주요교단은 로마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였다. 

강의가 끝난 후에 마음이 영 불편하였다. 세계 선교 역사와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생각하니 콩고와 르완다 신학생들에게 던진 내 질문이 영적인 교만이었으며 무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 혼자 쓴 웃음을 웃었다. 

십자군 전쟁을 잊었던 것일까? 기독교 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행한 살인, 약탈, 횡포를 잠시 잊었던 것일까? 청교도 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과 정교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러시아가 세계 속에서 군수산업으로 경제와 패권을 유지하며 전쟁으로 밀어버린 나라가 어디 한두 개에 불과하던가! 

잉카제국과 마야제국, 아즈테크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이 신부와 함께 동행하지 않았던가! 나는 두 나라의 높은 기독교 인구율에 불편을 느끼면서 17세기부터 20세기 까지 제국주의로서 식민지를 확장하며 그것도 모자라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킨 전쟁 장본인들이 기독교인들이었고 기독교 인구율이 높은 나라였다는 사실에 새삼스런 분노를 느끼면서 절망감에 빠졌다.

이디 아민이라는 독재자가 나와서 30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죽인 우간다도 기독교 인구율이 84% 였고 주요교단은 역시 로마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였다. 영국 식민지 부역자들과 지식인, 부호들을 위한 교회로 존재하고 있는 현 교회들이 반석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디 아민은 가톨릭과 성공회만 인정하고 나머지 개신교 군소교단은 탄압하였다고 한다. 

케냐도 마찬가지로 기독교 인구율이 82%로 높았고 주요 교단은 로마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였다. 케냐는 다행스럽게도 주변국처럼 내전이나 독재로 집단 살해나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고질적으로 만연한 정치 부패와 빈부 격차, 식수 부족, 도시 슬럼가 확산, 거리의 아동들, 에이즈 고아의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국제 마약 거래상과 테러범들의 거점이 되고 있다. 

탄자니아는 다행스럽게도 기독교 인구율이 54%에 불과하였으며 로마가톨릭과 루터교, 성공회가 주류였다. 탄자니아는 이웃 나라에 비해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안정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국민의 8.8%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으며 100만명 이상의 어린이가 에이즈 고아였다. 

식민지 제국주의 국가는 '깡패'였다

동부 아프리카의 5개의 나라는 그야말로 설국열차였다. 그들은 권력과 부, 종족과 종교, 교육으로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나뉘어 있었다. 식민지 제국주의가 만들어 놓은 계급제도와 빈부 격차, 폭력정치와 인종 차별, 종족 불화와 대립, 역사 세탁과 우민화로 말미암아 아프리카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는 빈사상태로 보였다. 아프리카 형제자매들은 설국열차의 승객처럼 나뉘고 분류되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듯하였다. 그들은 내 눈에는 식민지 본국에서 이민 온 집단의 후손들, 식민지 부역자로서 고급 관리의 후손들과 중간 관리인들, 새롭게 부상된 정치 집단과 군인들, 다국적 기업의 회사원들, 식민지 부역자로서 부호들과 협력자들, 지식인들, 하위직 공무원들과 경찰들, 도시 노동자와 빈민들, 농업 노동자들과 농촌 빈민들, 고아와 과부들, 거리의 여성들과 떠돌이들로 나뉘어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은 모르지만 주류교회는 설국열차의 윌 포드처럼 꼬리 칸에 탄 사람들에게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태어난 자리”를 잘 지키면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설교를 해왔을 것이다. 앞 쪽에 칸에 탄 사람들에게는 “태어난 자리”가 하나님의 축복이니 감사를 드리며 교회 일에 잘 협조를 해서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축복 했을 것이다. 기아, 질병, 전쟁과 폭력으로 죽는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미화시키며 꼬리 칸에 탄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권세자들에게 순종하라고 세뇌시키는 일에 앞장서 왔을 것이다. 

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나는 전쟁과 약탈로 세계 평화를 깨고 인권을 유린하며 무려 300년 동안 지구상에서 깡패로서 많은 나라와 종족들을 짓밟은 식민지 제국주의 국가와 그 국민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설국열차의 교회로서 식민지 앞잡이 노릇을 한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절망과 분노로 머리가 돌았다. 

날마다 가난하고 슬픈 거리를 걸으면서 주님께 기도드렸다. 속히 오셔서 제국주의에 갇혀버린 교회를 향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고 외쳐 주시라고. 아프리카 교회는 물론이고 한국교회를 비롯한 세계 교회가 “설국열차 윌 포드의 시녀”의 자리에서 속히 벗어나게 해달라고. 아프리카 거리에서 울고 또 울었다. 

아픔은 흐르고 

아시아 
아프리카에 
아픔없는 사람 있는가 
아픔없는 나라 있는가 
어디에나 아픔이 흐른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피멍든 가슴 
산마다 들마다 
시퍼런 해골 가득

녹색진주 스리랑카 
선주민 싱할리 
영국 앞잡이 타밀족에 
피맛 보여주며 
수많은 
난민과 장애자,
고아와 과부 생산
포성은 멈추었으나 
타밀은 여전히 불씨 

평화로운 섬나라, 필리핀
스페인, 미국, 일본
발길에 채이길 수백 년
두 곰들의 전쟁에 독립을 선포했으나
윌리엄 매킨리는 
야만족의 땅을 선교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들어
60만 명 학살
태평양전쟁 때는 100만 명
저승으로 갔지
원한에 사무친 혼백들이 
언제 잠들까

아프리카 알프스, 르완다
노예로 팔려간 조상들
피눈물로 추모하며 
후투족 역사 보복 
벨기에 앞잡이 
투치족 청소 
피는 지하수가 되었고 
시신은 산이 되었다 

남수단을 아는가 
북부 아랍계
남부 원주민들의 사투 
쫓고 쫓기는 피난
죽고 죽이는 학살 
종교의 이름으로 성전이 되고 
종족의 이름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반백년 지옥살이 

서구 제국주의 
탐욕의 역사가 빚은 
침략, 약탈, 노예무역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시아 
아프리카는 
지금도 악몽 중 
아 어디에나 
아픔이 흐른다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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