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언론윤리위원회」와 장준하의 「자유언론수호연맹」 (3)

함석헌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 시대정신을 추구하는 열린 민중들은 함석헌을 알려 ‘한국의 예언자’라 불렀다. 함석헌 자신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예언자? 예언자는 무슨...” 하며 무언의 몸짓으로 답하고 지나쳤지만 확실히 함석헌에겐 예언자적인 혼이 있었다. 그를 예언자로 일컫는 것은 그가 앉아서 천리 본다는 따위의, 아니면 내일 일을 기이하게도 미리 투시, 예시한 다는 데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각된, 자각해가는 민중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민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하늘의 소리를 들은 대로 질러댔다. 예언자의 소리였다. 하늘로부터 들은 소리였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소리가 당대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도 사람들의 심산(心山)을 울려대는 것은 그의 소리가 그의 것이 아니요 위로부터 받은 것이었고, 그가 유다른 하늘의 소리(命)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민중으로 민중의 자리를 살아냈기 때문이었다. 

함석헌, 그는 민중을 지도하겠다든가, 민중을 위한다든가 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냥 민중이었다. 민중으로 사는 이었다. 민중으로 죽기를 원하는 이었다. 그의 글 중,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것이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 걸음을 소원했다. ‘이 걸음’이란 곧 “민중으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장담은 못하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걸이’는 놓지 않으련다. 삼일운동이 몰아쳐 내세워준 이 걸음 늦추지 않을 것이다. 부자는 뚱뚱해 앉아 있기만 할는지 모르고 세력 있는 자는 자가용 자동차 안에서 바아크샤처럼 드러누워 갈른지 몰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걸으련다. 장안 길거리를 두리번거려도 내가 주워가지라고 떨어진 금덩이는 없을 테니 나는 가난한 순 조선종 틈에 끼어 뒤도 돌아볼 것 없이 걷고 싶다. 영원히 영원히 빠르나 급하지는 않게, 뚜벅뚜벅 걸으나 느리지는 않게...”

그것이 함석헌이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끼어 살고 싶다는 ‘가난한 순 조선종’이란 주석(註釋)을 필요로 하는 말이다. 함석헌 스스로가 전하는 것으로 그의 친구 이문욱(李文郁)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은 장문인 듯 하나, 함석헌의 <민중>을 이해하는데 그대로 옮기는 것이 옳을 듯해, 이문욱을 말하는 함석헌의 글 전문을 옮겨본다.

삼일운동을 돌이켜 생각할 때에 내가 잊지 못하는 두 인물이 있다. 하나는 남강 이승훈(南崗 李承薰) 선생이요, 또 하나는 내 평고동창 이문욱이다. 남강선생에 관하여는 자연 말할 것이 있을 것으로 여기서는 그만두고, 이문욱 군에 관하여는 한마디 아니할 수 없다.

그는 평안북도 박천 영미 태생이었다. 학교에서 삼년을 같이 공부하면서도 별로 가깝지는 않았다. 그는 인상이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어째 이따금 가다가 그렇듯 안과 밖이 서로 다르게 하시는지 모른다. 아마도 얼굴딱지로 사람을 판단치 말라는 경고 일 것이다. 대개 사람은 그 얼굴을 보면 그 성격이나 말씨가 짐작이 되는데, 그이는 그렇지 않았다...(그는)어딘지 모르게 품격이 좀 낮은 듯한, 못생긴, 어득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래 속으로 늘 업신여겼다. 나는 워낙 맘이 약한 사람이라 밖에 내색은 아니 했지만 반중에도 좀 까부는 동무들은 쉬는 시간이면 그저 그를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별호를 귀신이라 했다. 머리는 언제 깎았는지 늘 귀를 뚝 덮고 눈초리는 본래 내려 찢어진데다가 누가 뭐라 해도 눈을 내리깔고 대답도 아니 하고, 마지못해 반항을 할 때는 또 혀가 좀 굳어서 말도 변변치 못했다. 어느 모로 보나 장가는 이미 간사람 같은데 두루마기는 늘 때가 재작재작 묻어있었다. 정말 나 보기에도 귀신같았다. 

만세를 부르는 날도 그가 어쨌는지를 나는 몰랐다. 그리고는 나는 학교를 다시가지 않았으므로 그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후 내가 동경을 거쳐 오산 모교에 와 있게 되었을 때 들려오는 말에 ‘영미 부근 어느 동리에서 매우 뜻있게 사립순학교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한번 찾아보려 했으나 좀처럼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해방 후 총살을 당해 이젠 고인이 된 박승봉(朴勝芃)형택세를 이따금 가게 되었으므로 그에게 그 얘기를 물었더니 의외로 그가 이문욱이라는 것이요, 두분이 서로 대단히 친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를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만나니 모양은 옛날 궁상(窮相)그대로 인데 병으로 퍽 약해 있었다. 그런데 듣고 놀란 것은 그가 평고에서 둘째 번 만세 때에 주동이 되어 잡혀가 오랜 고생을 했다는 것이었다.그리고는 학교는 퇴학 맞고, 돌아와 영미에서 신문지국을 하면서 일본 세력과 싸워가며 이날까지 왔다는 것이요, 학교도 경영하고 있다는 그를 보고 나는 속으로 내 옷깃을 바로 잡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당시의 ‘귀신’이 그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 그 속에 그런 힘이 있었던가! 그를 업신여기던 똘똘 하노라 던 것들은 금일에 안재재(安在哉)요, 나는 스스로 부끄럽고 차마 말로도 못하는 사과를 했다.

그 후 그는 몇 해를 못살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서는 별로 알 사람도 없는 청춘을 청춘같이 누리지도 못하고 모르게 났다 모르게 죽는 깊은 산의 풀모양으로 스러져간 한 궁한 선비 이야기를 이렇게 까지 하는 따로 단단한 까닭이었다. 그때가 일제 시대 점점 압박이 심해가는 때인데 언젠가 무슨 이야기를 해가다가 그 경영하는 학교의 “금년 졸업생이 몇이요?”하고 물으니 그 대답이 명답이었다.

“순조선종 여섯”
그리고는 말을 이어 내가 모를까봐 걱정이나 하는 듯이 설명을 붙였다.
“그거는 참 다시 더 할 수 없는 가난한 것들이지...”
아닌게아니라 나는 ‘순조선종’이라 할 때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었다. 
그 후 그것은 내 가슴에 칼처럼 박혔다. 하는 사람은 무심코 했는지 모른다. 그는 그 자체가 그러니 모르고 했을 것이다. 참은 모르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듣는 나는 가슴을 찔렸다. 잊을 수가 없다. 그런지 30년이 되는 오늘도 그 말은 내 귀에 있고 뼈에 꽂혔다.

“순 조선종, 다시 더 할 수 없이 가난한 것들.”

함석헌은 그 문욱을 울부짖는다.

“문욱아! 너는 그 한마디를 남기기 위해 이 거지 같은 역사의 끄트머리에 나왔던가? 그 한마디를 낳기 위해 너는 귀신이 됐던가? 저 백성을 잡아먹고 살찐 것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파리하다 죽었던가? 저 피를 빨아먹는 귀신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너 자신 귀신같은 모양을 했었던가? 지금도 나는 눈을 감으면 내 가슴속에 텁수룩한 머리로 귀를 덮고 서 있는 한 처참한, 그러면서도 빙그레 웃음을 띄는 한 형상을 본다. 아, 그것은 이문욱이 아니고 이 겨레의 상징이던가?”

함석헌이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며, “...장안 길거리를 두리번거려도 내가 주워가지라고 떨어진 금덩이는 없을 테니 나는 ‘가난한 순 조선종’틈에 끼어 뒤도 돌아볼 것 없이 걷고 싶다고 한 그 ‘가난한 순 조선종’이란 이문욱을 그리며 한 말이었다. 함석헌에게 있어 이문욱은 ‘민중의 전형’이었다. 

함석헌에게는 실로 위대한 꿈이 있었다. 더 할 수 없는 가난뱅이로 더 할 수 없는 가난뱅이들과 영원을 사는 꿈이었다. 함석헌의 예언자 의식은 함석헌 자신의 민중으로서의 삶에서 왔다. 그의 말, 그의 글이 읽는 사람, 듣는 사람들로 ‘우리가 어이 할꼬?’가슴 치게 하는 것도 그의 가슴을 터지도록 채운 민중혼에 기인한다. 민중만이 역사 속에서 하느님을 대행하며 대언한다. 함석헌은 세상에 와서 갈 때까지 민중의 자리에서 살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역사의 현장을 떠나 본 적이 없으면서도 체제의 접근은 거부했다. 함석헌에게 있어 체제에의 거부는 그 삶을 통한 후천적인 선물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생(역사, 歷史, 役事)의 현장의 중심(?)부엔 탐욕을 일으키는 갖가지 부류(部類)들이 있었다. 소위 체제 내부에 말이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웬만하면 누구나 한번 씩은 앉아보고 싶고 가져보고 싶은 빛 좋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함석헌은 그 체제내로 들어갈 수 없는 이었다. 그는 위로부터의 명(命)에 끌려 사는 이었다. 구약의 예언서에 보여 지는 “야훼께서 내게 명하여 가라사대...”한 그 명 말이다. 예언자들은 그 명(命)을 듣고 행하는 것으로 존재이유를 삼는다. 

위로부터의 그 명(命)이 명료할수록 예언자들은 신기(神氣)를 얻게 된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 현실의 가운데 자리 곧 체제 안으로 갈수록 그 명(命)은 흐려지고 멀어진다. 위로부터의 그 소리를 가장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현실의 변방, 곧 민중으로, 민중들과 더불어 있을 때였다. 이것이 그가 평생을 바닥살이(野人生活)로 그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함석헌은 그 민중으로, 민중들과 더불어 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 민중의 존엄을 해치려하는 모든 외적인 것들과 죽기로 싸웠다. 이것이 당대는 물론, 이제도 그를 “예언자”라 부르는 이유다. 

한겨레 초대사장을 역임한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송건호는 「언론인 함옹」이라는 글에서 함석헌을 ‘누구도 겨룰 수 없는 탁월한 언론인’이었다면서 이렇게 소개한다. 
“일상적인 시사 문제를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이 신문기자의 기능이라고 한다면 아마 함옹만큼 그때그때 주어진 사회적, 정치적, 민족적, 혹은 사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어느 신문기자 누구도 감히 모방할 수 없는 핵심을 찌르는 언론활동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송건호는 함석헌을 ‘누구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언론인’이었다면서, 함석헌의 그 같은 언론인으로서의 탁월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를 밝히고 있다.

“함옹의 언론활동이 이른바 언론인들의 추종이나 모방을 불허하는 탁월성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사회적으로 아무 것에도 매인 것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힘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은 재산이 많거나 무슨 부귀의 지위에 있거나 하면, 죽 잃을 것이 많으면 그것을 지키느라 할 일도 못하고 할 말도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함옹은 잃을 것도 지킬 것도 아무것도 없는 죽 서민(민중, 필자 주)이다. 언론인으로서 함옹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이 여기에 있다.”

함석헌과 장준하, 장준하와 함석헌은 예언자적인 그 무엇인가를 지닌 이들이었다. 한일 협정저지를 위한 투쟁, 비상계엄령하에서의 민주화투쟁을 지속해가는 중에서도 언론을 지키지 않고는 이후 박정희의 독재(獨裁)악정(惡政)을 저지할 수 없게 된다며 자유언론 수호운동의 조직화를 공식화 하게 된다. 1964년 7월이었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