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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이산(離散)고국으로부터 외면받은 사할린 징용동포들의 무덤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가) | 승인 2017.01.18 14:40
사할린 이야기3
 
사할린 작업을 하던 중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나는  카야노 도시히토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펼쳤다. 이 책에서는 국가를 ‘폭력을 둘러싼 주도권 투쟁의 승리자’라고 했다. 다시 말해 국가는 폭력의 합법성을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국가의 폭력이 아무리 강대해도 그 폭력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면 국가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고, 여기에서 정당성의 문제가 부상하는데 국가는 자신의 폭력의 주도권을 더 강고히 하고자 강대한 폭력을 축적할 뿐 아니라, 주민들이 그 폭력을 정당하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했다.
 
국가의 폭력은, 책임지지 않는 폭력은, 정의롭지 못한 폭력은 아직도 우리 곁에서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우리를 노리고 있다. 나라를 잃은 국민들이 겪었던 사할린동포들의 이야기와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작금의 대한민국 사태가 오보랩 되는 요즘이다.
  
코르사코프 항구, 2015 01
#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코르사코프 항구를 통해 자국민들을 귀환시켰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돌자 한인들은 고향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코르사코프 항구에 모여들 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오늘이나 내일이나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어 미쳐 죽은 동포들이 많았다는 곳이다. 
 
고르노자보드스크, 2015 01
 # 일제강점기 당시 우다르늬라는 마을의 한 야산 전체을 묘지로 사용하던 곳이 있었다. 이후 그곳에 길을 내며 강제 이장을 시켰는데, 당시 연고가 있던 묘는 인근 우글레고르스크와 샥죠르스크로 이장되었지만, 무연고 묘들은 대부분 집단 매장되었다. 당시 많은 무연고 한인들의 묘도 집단매장 되어 이제는 그 실체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고르노자보드스크, 2015 01
# 나중에 자식들이 찾기라도 한다면 알아볼 수 있도록 비석 하나 세워달라고 꼬깃꼬깃 모은 돈을 친구에게 전하며 생을 마감해야 했다는 홀아비들.
 
유즈노사할린스크 제 1공동묘지에 있는 한인묘, 2014 10
# ‘형제서약서’를 써서 가슴에 품고 다녔다는 이들의 대부분은 고국에 가족을 두고 온 홀아비들이었다. 그들은 두고 온 가족들에게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홀로 쓸쓸히 살아가다 끝내 동토의 땅에 묻히고 말았다. 독신자들의 묘는 대부분이 무연고 묘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처지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제 1공동묘지에 있는 한인묘, 2014 10
"한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조국입니다. 조국은 (우리에게) 어머니입니다. 아이가 밖에서 머리가 터져 서 들어오면, 어머니는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는 것이 급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우리의 어머니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할린의 동포들은 머리가 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머니는 냉정하게 ‘누구의 잘못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뿐, 자식의 상처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머니가 할 짓입니까?” [사할린 이중징용피해 진상조사] 113쪽/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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