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웃종교 칼럼 연재
"거룩"(Kodesh)에 관한 묵상<일점일획 말씀묵상>
이영재 박사(성경과설교연구원) | 승인 2017.01.20 11:37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을 때 천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노래하였다. 이 때 ‘거룩하다’란 히브리어는 <카도쉬קָדוֹשׁ >란 단어로 표현했다(사6:3). ‘거룩’은 순우리말인데 한자말로는 ‘성결(聖潔)’이고 영어로는 holy라고 한다. 기독교에 ‘성결교(聖潔敎), Holiness Church’란 교단이 있는데 이는 ‘거룩’이란 주제를 강조하는 교회이다. 성경에 나타난 ‘거룩/성결’의 개념을 보다 바르게 파악하고 깊이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거룩/성결’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קֹדֶשׁ>인데 이것은 명사이다. 이 명사에서 동사 <카다쉬 קָדַשׁ>와 형용사 <카도쉬 קָדוֹשׁ>가 파생되어 나왔다. 동사 <카다쉬 קָדַשׁ>는 매우 고귀하여 신성시되는 어떤 영역을 세상의 속된 영역과 구별하고 분리하는 동작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단어의 뜻은 기본적으로 ‘분리하다/ separate’가 된다. 그러니 ‘거룩하다’라고 말하면 그 속에 ‘분리하다’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사야서 6장에 야훼 하나님을 가리켜서 ‘거룩하다’란 형용사 <카도쉬>를 세 차례나 반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임을 나타낸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다는 말은 어떤 속된 영역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그 끝점에는 죄악으로 물든 세상이 있다. 폭력과 살인과 전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그 반대쪽 극점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야훼는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세속의 영역은 죄악의 영역이다. 세속도시는 살인자 가인이 창설하였다.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서 놋 땅으로 가서 ‘에녹성’을 쌓았다(창4:17). 이것은 지중해 문명의 발상지를 가리킨다. 에녹성에서 문명이 발달하면서 라멕의 대에 이르러 폭력이 더욱 증대하였다(창4:23). 이처럼 도성문명에서는 전쟁용사 네필림이 출현하였고(창6:1~4) 그들은 살인과 억압과 착취를 자행하였다(창6:11, <하마스חָמָס >).

노아 시대의 대홍수 심판이 있은 후에 다시 함의 후예들 가운데 네필림과 같은 전쟁용사 니므롯이 등장하여 대도시를 건설하고 도시연맹체를 구성하니 이로써 역사 속에 왕국<마멀라카 מַמְלָכָה>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왕국은 이집트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와 같은 거대한 제국과 가나안 도시국가의 모습으로 창세기 10장에 제시되어 있다. 시날 땅의 바벨이라는 도시는 바빌로니아라는 거대한 도시국가 연맹체의 제국으로 발전하였다(창10:10; 창11:2). ‘거룩’은 이들 제국과는 반대되는 곳에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애굽제국과 블레셋 왕국과 가나안 도시국가의 왕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아브라함의 후예 히브리인들은 애굽 땅에서 노예의 처지로 전락하였다. 왕들은 전쟁을 일삼았으며(창세기 14장), 노예체제를 확립하여 사람을 착취하고 있었다. 폭력은 세속도시 문명의 본질이다. 폭력이 도시(city, <이르 עִיר>)의 지배자들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성경은 매우 강조하고 있다.

야훼 하나님의 ‘거룩’은 세속도시의 폭력 문명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고도 멀다는 뜻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보좌에 계신다. 그런데 그토록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께서 세속도시들이 지배하는 폭력의 세상 속으로 내려오신다. 야훼께서 시내 산 위 산꼭대기로 내려오셨다(창19:16). 높으신 주께서 내려오시는 동선이 거룩하다. 야훼께서 하늘 보좌를 떠나셔서 시내산 산정으로 내려오셨다는 동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신학을 표현하고 있다. 빌립보서 2장에 나오는 <케노시스> 기독론의 어법과 많이 닮았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스스로 신분을 낮추어 내려오시는 그 동작은 세속문명이 흉내조차 낼 수도 없는 거룩한 행동이다.

야훼 하나님은 시내산 위에 우레가 치고 번개가 번쩍이며 먹장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상황에서 내려오셨다(출애굽기 19장). 우레와 번개는 야훼 하나님의 강림을 표시하는 현상이고 먹장구름은 야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가리워주는 역할을 한다. 세속 도성의 문명생활에 물든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면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먹장구름 속에서 내려오신 것이다. 야훼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을 착취하는 어떤 폭군과도 구별된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왕들과는 전혀 다른 거룩한 임금님이시다.

죄 많은 백성은 산 아래 진영 안에 머물러 벌벌 떨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이었건만 막상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니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감당하지 못하고 쩔쩔 맨다. 죄로 물든 백성은 모세의 인도를 받아야 하나님을 만나러 나갈 수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떨다가 모세가 인도하자 백성은 비로소 모세를 따라 진영 바깥으로 나아간다. 백성은 산기슭에 서서 하나님의 강림하시는 현존을 만나려고 기다린다(출19:16). 창조주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니 죄인들만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산을 위시한 모든 자연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만큼 역사와 자연은 죄 속에 갇혀서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해낼 수 없을 만큼 타락해 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거룩’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거룩해야 한다.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로 존립하려면 세속도시의 폭력 문명을 멀리하고 자신을 구별하여야 하여 거룩하신 하나님 쪽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생활로 나아가라는 뜻이 아니다. 이기주의와 폭력을 조장하는 세속국가의 문명적 삶을 버리고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일구는 사랑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거룩’은 세상의 나쁜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물질주의와 권력지상주의를 버려야 이룰 수 있다.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도 ‘거룩’에 이를 수 없다.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내는 교회라야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출19:6). 종교개혁 500주년의 취지는 교회에 하나님의 ‘거룩’을 회복하는 데 있다.

이영재 박사(성경과설교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