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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를 부르심 (마태 9:9)2017년1월22일 주현절 셋째 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1.24 11:19

*영상설교 : https://youtu.be/lN8nrG4NNS4

주간 단상 : 전환 지점으로서의 교회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새로움에는 기대와 희망보다는 우려와 불안이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온 세계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가져올 세계적인 마찰과 약자들에 대한 무관심이 걱정스럽다. 그가 외친 미국 우선주의에서 미국은 엄격히 말하면 미국인 중에서도 백인을 말하는 것이다. 흑인이나 유색인종, 이민자들, 여성, 가난한 이들, 이슬람교도 등은 그가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국의 시민이 아니다. 

NCCK 초청 NCCUSA 윙클러 총무 간담회

20일(금)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초청으로 미국교회협의회(NCCUSA) 윙클러 총무가 내한하여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 트럼프 찬성자들이 버스 200대로 워싱턴을 찾아왔는데, 트럼프 반대자들은 1,200대로 워싱턴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했다. 자신도 그 반대 집회에 참여해야 하는데, 한국에 와 있기 때문에 워싱턴 집회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그 대신 한국에서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중에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를 하나 보았는데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

1920년대 미국에서 한창 인종 차별이 기승을 부릴 때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단이 곳곳에서 활동했는데 도널트 트럼프의 아버지도 그 단원 중의 하나였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편파적인 트럼프는 바로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그러면서 사실은 윙클러 총무의 할아버지도 1920년대에 KKK단원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자연히 자기 아버지도 백인 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을 지녔을 것인데, 아버지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회심하여 진보적 사회참여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윙클러 총무는 11살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월남전에 반대하는 반전 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배경 속에서 자신은 평생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세우는데 헌신하는 기독교 사회운동가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릇된 사고를 갖고 살아가던 사람이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른 생각을 지닌 삶으로 회심했다는 점이다. 교회는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이다. 교회가 인생과 역사가 전환하는 지점이다. 교회를 통해 인생과 사회와 역사가 방향을 새롭게 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극단적 사고를 가진 KKK 단원이 교회를 통해 이웃 사랑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곳, 그게 교회의 존재이유다. 

1. 실패하는 사람의 습관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공통점들이 있다. 

1)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실패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2) 말만 하고 실행력이 떨어진다.       3) 명확한 목표가 없다.
4) 쉬운 길, 편안한 방법을 선호한다.   5) 협력자 없이 혼자 한다.
6)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7) 빨리 단념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인다면 실패하는 사람은 기회는 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나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알콜 중독자들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술을 끊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기에 지금 매일 술을 마시는 것은 자신이 금주하겠다는 마음을 안 먹었을 뿐이기에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안 된다. 
운동하는 것도 아직 결심을 안 해서 그런 거지 결심만 하면 곧바로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 있고 그러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몸의 이상 증상들은 쉽게 호전될 수 있다고 여긴다. 
평생 진지한 신앙인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은 늘 교회 갈 준비가 되어 있고 주변에 교회는 널려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교회 안 다녀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평생 진정한 신앙인은 될 수 없고 천국 문 앞까지만 가는 사람이다. 

2. 세리 마태를 부르신 주님 

1)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성경을 4복음서라 하고 그 중에서 요한복음은 좀 성격이 독특하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거의 비슷한 자료를 공유하면서 약간의 시각이 다르기에 공관복음서라고 한다. 실제 역사로는 마가복음이 AD 70년쯤에, 마태와 누가복음이 AD 90년쯤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것은 100년도 안 되고 그 이전까지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 순서대로 기록되었다고 믿었다. 

렘브란트, 천사로부터 영감을 얻는 마태

오늘 본문에 대해 마가와 누가 복음은 이 세리의 이름을 레위라고 하는데, 마태복음은 세리 마태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냥 마태가 제일 먼저 나오는 성경이니까 레위와 마태 중에 마태가 맞다고 생각해왔다. 어쨌든 기독교 전승에는 이 마태가 나중에 신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을 기록한 저자라고 믿어왔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마태는 기독교 신앙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받아들여져 온 것은 사실이다. 

2) 세리 마태 

그런데 성경 66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복음서, 그 중에서도 첫 번째 것으로 복음서 중의 맏형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마태복음서 저자가 바로 세리였다는 것을 성경은 주저 없이 밝히고 있다. 지금 시대에 세무 공무원은 선망하는 취업직종이다. 잘못해서 세금 폭탄 맞으면 충격이 크다. 사업하는 이들이 권력자에게 잘못 보였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무조사 당하는 거다. 악에 악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누구를 어떻게 먼지 털 것인가를 세무서가 정하니 세무공무원은 기업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그만큼 권력이 주어진다. 

그러나 2천 년 전, 이스라엘의 세무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때도 세리는 힘과 돈은 있었다. 로마 제국의 앞잡이로서 그들이 요구하는 세금을 충실하게 걷고 또 어느 정도는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개인이 착복할 수 있어서 힘과 돈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누구나가 이의 없이 죄인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창녀와 세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세리는 삭개오다. 오늘 이런 처지에 있는 세리 마태를 주님께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인 제자로 부르셨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다.  

3) 카라바조, 마태를 부르심, 322*340cm, 1600년,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의 한 명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크 미술의 대가 카라바조가 이 장면을 극적으로 그렸다. 언젠가는 꼭 로마에 가서 이 그림을 직접 보고야 말 것이다. 그림 크기가 가로 세로 3m가 넘으니 거의 실물 크기의 대작이다. 화가는 AD 1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성경 이야기를 1600년 후 자신이 살던 로마의 풍경으로 옮겨놓았다. 

마태와 친구들 5명은 돈에 집중하고 있고, 위로는 짙은 어둠이 이들을 내리누르고 있다. 세속적 탐욕에 사로잡혀 사는 그들은 어두운 심판과 죽음의 영역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지금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세속적 가치에만 매몰되어 사는 삶에 영원이나 구원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어둠에 갇혀 있었다. 

그 길에 한 줄기 빛이 반대편 창문을 통해 이들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깊은 어둠과 대조되는 찬란한 빛이다. 생명과 구원의 빛이다. 이 빛은 어둠에 갇혀 있던 죽음의 공간을 어둠과 빛, 둘로 나눈다. 

주님은 오른 손을 들어 마태를 부르신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이제 막 생명을 얻으려는 아담의 손가락과 닮았다. 

주님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 빛이 쏟아져 들어가고 마태의 얼굴 전면에 쏟아진다. 주님과 마태 사이에 앉은 두 젊은이는 카라바조의 그림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들인데 부르시는 주님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별 감흥은 없다, 무슨 일이지? 하는 정도!

마태는 주님의 손가락이 자신을 향하고 있기에 정말 나를 부르시는 거 맞느냐는 표정이다.

이 짧고 우연한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냥 매일 세금 더 받아내려고 아등바등하는 인생, 돈과 권력을 지녔고 갈수록 수렁처럼 그곳에 빠져드는 인생, 돈과 권력을 지닐수록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는 불행하고 어두운 삶! 
그곳에 구원의 빛이 비친 것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구원의 빛!

3. 나를 따르라 하시니 따랐다. 

1)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에 대한 마태복음의 기록은 의아할 정도로 간단하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것이 전부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마태는 그 즉시로 따라갔다는 것이다. 마태도 세리로서 직업적으로, 또는 가정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활을 정리하고 또 준비해야 할 사항이 있었겠지만, 그 모든 것을 그는 한 번에 결정해 버렸다.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주님이 부른다고 누구나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마태 왼편에 있는 두 사람은 주님이 부르든지 말든지 별 관심이 없다. 여전히 돈에 영혼을 빼앗기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새로운 인생, 구원의 삶은 열리지 않는다. 
당시 수많은 직업인들 중에서 세리 마태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 즉각적인 응답이었다. 

2) 신앙에 성공과 실패라는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수십 년을 교회 다녀도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습관 중 하나는 아직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이다.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지만 기회가 늘 그렇게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이 마태를 매일 불렀겠는가? 딱 한번 불렀고 그것에 응답한 마태가 인생과 역사를 바꾸었다. 
내가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기회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인생은 그렇지 않다. 

정말 좋은 신앙인 되고 싶다면 주님이 부르실 때 지금 즉각 그렇게 해야 한다.
예배를 정말 잘 드리고 싶다면 다음이 아니라 당장부터 실행해야 한다. 주님 주신 달란트를 묵이지 않고 활용하고 싶다면 어떤 것으로든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봉사하면 된다. 
돈의 악마적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 그 음성을 듣고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임을 고백해야 한다. 
기회는 내 주변에 널려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다. 
결정적인 기회는 어쩌면 내 인생에 딱 한번 오는 것이다. 주님의 그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신앙이다.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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