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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라고 한 적 없다"여성신학 아카데미, '성서는 여성비하의 원천인가?'
김령은 | 승인 2017.01.25 12:15

“여자가 죄가 많지”

명절에 식구들이 모이면 여자 친척들이 부엌에 모여서 했던 말이다. 최영실 교수는 아직도 어렸을 적 들었던 저 말이 기억난다고 했다. 왜 여자는 죄가 많을까? 어른들은 죄 많은 여자가 명절에 높은 강도의 노동을 견디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야하는 형벌처럼 여겼다. 죄인이라는 낙인은 뚜렷한 범죄의 기억이 없어도 여성으로 태어날 때부터 찍혀있는 것처럼 그랬다. 

여성혐오는 성서적 근거를 갖고 있는가? 여성신학 아카데미 두 번째 시간, 최영실 교수가 던진 화두다. 최 교수는 창세기 1장-3장, 디모데전서 2장-3장을 대표적인 ‘여성혐오’의 근거가 되는 본문들로 소개하며 이에 얽힌 오해들을 풀어나갔다. 

최영실 교수 ⓒ에큐메니안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강의는 학생들이 먼저 해당 본문을 읽고 모둠을 지어 토론 한 뒤 모아진 생각들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타락 설화’으로 불리는 창세가 3장을 읽으며 학생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와인 것 같다”, “주도적 욕망을 가진 하와와 비겁한 아담의 이야기다”, “죄성을 여성에게 부여하는 남성의 책임회피가 느껴진다”는 등의 느낌을 털어놨다. 

특히 창세기 3장 16절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에 학생들은 “주일학교 때 이 말씀을 읽고 주눅이 들어있었던 게 생각난다”, “이 말씀 때문에 자연 분만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제왕절개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산모를 본적이 있다”는 등의 경험담을 나누기도 했다. 

최영실 교수는 창세기 1장-3장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보다는 양식사적으로 신화로 볼 것을 권했다. 그런데 신화는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인가? 최 교수에 따르면 그렇게 치부해서는 안된다. 신에 관한 이야기인 신화는 많은 나라에서 인류의 기원, 남자와 여자, 죄,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신화는 ‘현상에 대한 답’이다.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는 이야기인 것이다. 최 교수는 민담, 신화 같은 이야기들을 읽을 때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창세기 3장은 인간 타락의 원죄가 여성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 교수는 창세기 3장을 “타락설화가 아닌 신의 구원설화로 봐야한다”고 했다. 신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에 대해 그 둘 모두에게 벌을 내리지만 처음에 경고한 것처럼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 신은 둘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시고 살게 해 주신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배반과 신의 용서를 그린 구원사의 첫 시작인 셈이다. 

한편,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디모데전서 2장 13절(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이다. 최 교수는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가 쓰이던 시기의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의는 모둠을 지어 본문을 읽고 느낀점을 나눈 뒤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에큐메니안

성서 기자들은 여성 혐오자 일까? 

최 교수에 따르면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을 가진 자유한 자’라는 교설에서 시작해 성적인 방종으로까지 나아갔다. 디모데 전서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여자들’은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에 속아 죄를 짓기도 했다. 디모데전서 기자는 이들이 거짓 교사의 속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디모데전서를 기록했다. 최 교수는 “디모데전서 기자가 근본적으로 여성의 원죄를 못 박으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라고 못 박았다. 

또한 신양성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예수의 선포다. 예수는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는 다만 창조기사를 통해 여자와 남자는 나뉠 수 없는 한 몸이라고 선언했을 뿐이다. 

“창세기를 포함해 신약성서의 많은 기자들은 창조기사를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과 제기된 문제들에 답하기 위한 신학적 의도에 맞추어 각색하고 변형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 모두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각 기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답했는지 올바르게 밝혀내야 합니다.” 

‘여성들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고린도 전서 13장 34절은 바울의 의도가 왜곡된 대표적인 사례다. 교회가 덕을 세우는 것을 강조했던 바울은 남자처럼 ‘그와 같이’ 여자 또한 예배 질서를 어지럽혀서는 안되며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에 열심 해야 한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본문을 기록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3장 34절은 지금껏 교회 여성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이자 여성성직을 막는 근거로 쓰여왔다. 

예수를 포함해 성서 기자들은 여성을 혐오하거나 비난하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선한 직무를 감당하기 위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최 교수는 “여성을 포함해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진술들이나 이방인에 대한 살인을 정당화 하는 것처럼 보이는 본문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절대적인 율법이나 명령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전했다. 

최영실 교수의 여성신학 아카데미(여신협, NCCK 여성위원회 공동주최)는 매주 화요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오는 2월 28일까지 진행된다. 다가오는 네 번째 강의는 2월 7일(화)이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빌라도의 아내, 마리아와 마르다 등 ‘성경 속 신여성의 출현과 그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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