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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19)<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7.01.31 11:12

함석헌이 붙인 박정희와 장준하의 샅바 씨름(1)

1967년 6월 일, 제7대국회의원선거에 당선(동대문, 을구)된 장준하는 1967년 7월1일 국회의원 선서를 한다. 그것은 결코 장준하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사상계사 대표 장준하>(思想界社 代表 張俊河)라는 이름에 더할 수 있는 이름이 없었다고 하는 말이다. 장준하는 정계에 나타나기 이전부터 사실은 어떤 정치인도 담당할 수 없는 구체적인 역할을 음으로 양으로 수행해오고 있었다. 정계의 지도자급 인사들마저 대들기 어려운 일들을 그는 마치 그런 일들을 오래 전부터 구상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이미 확실히 이루어 놓은 것처럼 행동해 오는 것이었다. 그의 그 같은 저돌적인 행동은 소위 정치물을 오래 마셔왔다는 이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 비소(鼻笑)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뭐, 장준하가?”
“아니, 정치 개혁? 웃기지 말라고 그래. 되는 소리를 해야지...”

더구나 야당통합, 통합야당의 대통령 추대 운동 소리를 아예 내 놓고 해대는 데 대해 한 서울지역지구당의 나이 많은 고문은 “아래서부터 배워 올라가야지. 사람이 제 주제를 알아야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준하는 박정희와 이제, 이후 어떻게 대결해 갈 것인가? 어떻게 군부세력에 의해 붕괴된 민주정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있었다. 우선 과제가 야권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단정한 장준하는 먼저 한일 회담의 입장차이로 분열되어버린 신민, 민중 야권의 두 당이 다시 통합을 이루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권, 야권을 막론하고 당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바라는 것은 언제나 현상의 유지였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생각조차 않는 이들이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누릴 것이 있고 현실적으로 지킬 것이 있는 자들에게 ‘새 역사’란 언제나 불순한 것이었다. ‘현상’ 이라니, 지금, 여기를 말하는 것이고 ‘유지’라니,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다. 이보다 더 역사의 반역이 없지만 현실을 장악한 자들은 이 명명한 진리를 알 턱이 없었다. 장준하가 여당은 물론 그 같은 힘을 가진 야당인사들에게 까지 불순한 자로 여겨지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것이었다. 

장준하가 이 같은 야당(?)의 실력자들의 내심을 모를 리 없었다. 장준하의 놀라운 점이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데 있었다. 그의 생각을 크게 주목하는 것은 그의 생각에는 반드시 일이 따라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장준하에게 일이 있다!” 함석헌이 장준하와의 사귐이 더해가면서 늘 하는 말이었다.
“그저 일을 만드는 사람....”

신민, 민중야권의 실력자들을 조심스럽게 만나 본 장준하는 이 판(Place)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면서 ‘제야 인사’를 생각하게 된다. 외곽으로부터 밀고 들어오는 전략이었다. 66년 9월 어느 날, 장준하는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신한, 민중양당인사와 재야인사 10명이 「야당통합운동」을 펴가기로 결의했다. 장준하가 시작해 장준하가 이끈 야당통합운동이 각종 언론과 여론의 조명을 받았다. 연말에 이르면서 「야권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운동」이 불 붙어 올랐다. 역시 모사는 장준하 였다. 정치현역과 제야인사들을 망라, 142명이 서명, 「야권, 야당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운동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66년 12월 24일!

야권의 4자회담(四者會談)

1967년 5월 3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장준하에게 무슨 신기(神氣)가 있어서였을까? 두 야당이 유명무실의 정치집단이어서 였을까?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야권선거위원장이 장준하인 듯 했다. 바톤을 들고 뛰는 것이 어처구니없게도 제 정당은 제쳐두고 홀로 뛰는 듯 한 형국이었다. 야권의 단일정당, 단일후보, 최소한 박정희 정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이 두 가지는 절대 과제라고 장준하는 확신했다. 

장준하는 함석헌을 찾았다. 1월초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는 대선에서 군정은 끝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
“다른 건 몰라도 야권이 단일정당, 단일후보는 만들어 내야하지 않겠습니까?”
“....”
함석헌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아무 말 없는 함석헌의 속맘을 장준하는 환히 알고 있는 듯 자신의 말을 계속 해 간다. 
“곧, 수일 새에 대통령 후보로 뜻을 가진 분들을 한 곳에 모셔볼 생각입니다.”
장준하는 그리곤 거침없이 야권의 대통령 후보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이들을 지명했다. 
“윤보선, 백낙준, 이범석, 유진호 네 분입니다.”
순간 함석헌은 불안을 느껴야 했다. 그것은 바로 그 네 사람의 약속이나 받아놓은 것 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준하 역시 함석헌의 그 불안해함을 알고 있었다. 

장준하는 다시 엉뚱한 말을 내어놓는다.
“선생님. 그 4자모임에 선생님이 꼭 참석해주셔야겠습니다.”
함석헌은 더욱 의아해하며 놀라(?) 묻는다.
“아니, 내가? 내가 왜 거길...” 
“네. 선생님이 오셔서 좀 도와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니, 글쎄. 내가 그 자리에 가서 뭘 한단 말이요?”
장준하는 약간의 자세를 여미며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그저 오셔서 편안히 네 분들과 앉아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주로 네 분이 이야기 하실 것인데, 그분들의 말을 듣고 계시다가 선생님께서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때 해주시면 됩니다.”
장준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준하는 함석헌을 믿고 있었다. 

함석헌은 한동안 멍했다. 자신을 너무 무겁게 믿어주는 장준하가 고맙기 한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4자회담이었다. 네 차례의 4자회담에 이어 야권의 단일후보 윤보선, 단일 야당의 이름은 신민당, 당수는 유진호로 결정짓고「신민당」의 당명으로 등록하니 67년 12월 11일이었다. 

장준하의 투옥(投獄)과 옥중출마(獄中出馬)

장준하가 그렇듯 공들였던 단일야당, 장준하가 그렇게 공들였다. 야권의 단일후보!
실제로 여기까지의 역사를 이루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산파 장준하는 그 자신이 이끌어온 작업의 결과 야권 단일후보의 선거를 외인으로 좌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그의 생명처럼 지켜온 「사상계」가 박정희의 철권의 억압에 정말 힘든 숨을 쉬고 있었다. 은인자중하던 그가 야권 대통령 단일후보의 선거연설원을 자원하고 나서야 했다. 이것이 또다시 장준하가 투옥되는 도화선이 된다. 

지난해 10월엔 민중당이 주최한 「특정재벌밀수진상폭로 및 규탄국민대회」연사로 초청되어 ‘박정히는 밀수왕초다. 존슨대통령이 방한하는 것은 박정희가 잘났다고 보러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청년의 피가 필요해서 오는 것이다’라고 한 강연 내용 때문이었는데, 12월 보석으로 풀려난데 이어 다시 투옥되게 된 것이다. 소위 국가원수의 모독이라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젊은이들을 상품 취급해 월남에 팔아먹었다는 이전 연설에, 박정희의 ‘사상문제’를 더했다. “박 씨는 과거 남로당 조직책으로 임명되어 조직 활동을 한 사람이며, 그 조직의 명단을 특무대에 넘기는 조건으로 자신만 살아남은 자”라는.

5월 3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서 5월 7일, 대통령 선거법 148호 위반으로 장준하는 재수감된다. 역사는 의인의 고난을 통해서만 자라고 승화하는 것인지라 「군인정치」라는 악(惡)이 기승을 부리는 때 장준하의 고투(苦鬪)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만일까? 그가 “선생님”이라 하는 함석헌도 말이다. 의인의 옥고(獄苦)가 요구되는 때 옥중에 앉은 사람, 역사의 아들이 아닌가? 

함석헌 감옥에 있는 장준하를 찾아갔다. 위로나 격려를 위해서 라기 보단 그저 보고 싶었다. 안에서 보는 얼굴이나 박에서 보는 얼굴이나 한 얼굴일 줄 믿고 갔다. 믿었던 대로 밖에 있을 때나 같은 얼굴이었다. 여전히 죄 없는 듯 백옥 같은 얼굴에 애인 같은 웃음을 머금은 그런 얼굴이었다.

함석헌은 가려진 유리창편의 장준하를 그저 쳐다보고 있었고, 장준하 역시 꼭 같이 그랬다. 함석헌이 이제는 일어설 시간이 다 되었겠다 싶을 때까지 둘은 말이 없었다. 혼의 사람은 혼으로 말을 한다!

함석헌이 이제는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하는 때 장준하가 어렵게 함석헌을 불렀다.
“선생님, 저 이번 총선(1967.6.8.)에 입후보 하려 합니다.”
“?.........”
“6월 8일 제 7대 총선입니다. 물론 옥중출마입니다. 동대문 을구 입니다. 당 공천은 이미 내정이 돼있습니다. 상대는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당시 최고위원 이었던 자로 지금 공화당의 서울 시당 위원장 하는 자입니다. 당선되면 좋겠습니다만 낙선해도 좋습니다. 싸움에 어떻게 승리가 보장되는 싸움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함석헌은 한마디 하지 않았다. 

돌아 나오며 함석헌은 뜨겁게 울었다.
“아, 장준하야. 네가 내 싸움을 싸우고 있구나!”

이상스러운 일이었다. 함석헌이 열아홉 되던 해, 3.1운동이 문제가 되어 평양보고에서 재적을 당하고 헤매던 2년, 그때가 너무 확실하게 살아오는 것 아닌가!

“아, 장준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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