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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정의와 시적 정의의 통섭에 대하여 (2) - 페스탈로치의 <입법과 신생아 살해><우리 시대와 페스탈로치>(5)
이은선 (세종대) | 승인 2017.02.03 15:10

시작하는 말

전편에 이어서 페스탈로치의 선구적인 입법정신과 오늘날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그의 급진적인 민중해방 정신과 성의식이 잘 나타나 있는 「입법과 신생아 살해」에 대한 두 번째 성찰이다. 그는 ‘신생아 살해’라고 하는 인간성 파괴의 현장 앞에서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렵고, 또한 모든 입법과 인간 사회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주는 전제적 질문들을 먼저 던졌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더욱 세밀하게 영아 살해의 구체적 요인들과 그 원인들을 놀라운 시적 감수성과 연민의식을 가지고 분석해 나간다. 그는 그것들을 8가지로 제시했다. 

지난 번 우리의 첫 번째 성찰에 나는 “법적 정의와 시적 정의의 통섭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붙여보았다. 그 글을 읽으신 많은 독자들께서 어떻게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에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난제인 ‘미혼모’ 문제와 ‘신생아 살해’의 문제를 그처럼 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는지를 놀라워하셨다. 이번에 살펴볼 두 번째 부분에서도 그의 성찰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높게 우리 삶의 이상을 추구하는지를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그의 통찰에서의 깊은 시적 감수성을 만나는 것이다. 그가 들은 신생아 살해의 8가지 구체적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신생아 살해’의 8가지 요인들

첫 번째 요인은 유혹한 남성의 불충실과 속임수이다. 여기서 페스탈로치는 도망간 남성이 아이의 아버지인 것을 부인할 때 여성들에게 그것을 “증명”하라고만 주장하지 말고, 그런 남성들의 거짓말보다는 여성들의 호소를 “추정”해보면서 여성들의 말을 더욱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들이 임신했을 때 일정한 시기까지 임신 사실을 꼭 신고하고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알려야 하는 법을 만들 것을 주창하는데, 이는 불쌍한 여성들에게 아버지 없는 아이의 출생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주장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간통죄도 없어지고 십대들의 임신과 출산이 더욱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혜롭게만 응용하면 특히 아이와 모성의 보호를 위해서 좋은 혜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요인으로 페스탈로치는 당시 국가가 풍기범에 대해서 법적으로 벌을 주는 것을 들고 있다. 여기서 당시의 법은 유혹한 남성에게나 배신당한 가난한 여성에게나 똑 같이 벌금을 물리는데, 페스탈로치는 이것을 형평성 상실이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당시 국가는 이들로부터 받는 벌금에만 눈독을 들이고, 더군다나 여성들에게는 벌금 외에 온갖 육체적 고통과 수모를 주는데, 이것은 법이 그녀들 인간성의 마지막 불꽃까지도 꺼버리는 처사라고 비판한다.  

세 번째 요인은 가난이다. 여기서 페스탈로치는 어떻게 가난이 한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가는지를 여러 예를 통해서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서 살아가기 위해 도시로 나와 식모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남자의 값싼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소녀들, 군인들, 대학생들,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속아서 여성들이 임신하고, 발견되면 일자리에서 쫓겨날 것이 두려워 숨기고 있다가 도망 나와서 강가를 헤매며 굶주림 속에서 해산을 맞는 여성들, 이런 여성들이 영아 살해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요인은 이렇게 도시나 성(城)에서 식모살이 하는 여성들이 처한 환경이다. 이들이 도시에 와서 갑자기 경험하게 되는 사치와 화려함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모두 지우게 하고, 이들의 욕망만 점점 부추겨 놓으며 유혹에로 이끈다고 한다. 당시 산업문명의 도래 상황에서 도시와 농촌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다섯 번째 요인은 부모와 친척, 그리고 후견인들로부터의 배척에 대한 두려움이다. 페스탈로치는 여기서 미혼의 여성이 임신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가족들로부터도 당하게 되는 소외와 멸시, 배척에 대해서 가슴 아프게 쓰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어야할 어머니나 아버지, 형제자매들로부터도 가족의 창피라는 죄목으로 배척을 당하고, 이런 가정의 비인간성이야말로 궁지에 빠진 여성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든다고 한다.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이러한 가정의 비인간적 경직이란 바로 국가 입법의 비인간성과 경직이 불러온 것이다. 경직된 입법이 비인간적 법관을 불러오고, 비인간적인 법관이 다시 비인간적인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을 불러온다고 지적하면서, 어떻게 나라 전체가 맨 위의 비인간적 입법으로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나쁜 영향을 받는지를 적고 있다. 그는 외치기를,

“미쳐 날뛰는 형제여! 네가 비참에 빠진 너의 누이에 대해서 터뜨리는 분노는 바로 인간성에 대해서 저지르는 죄악이다. 분노에 날뛰는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시골의 초막에서 순결한 너의 누이에게 모욕을 주고, 비통해서 이를 가는 너의 아버지, 절망한 너의 어머니를 더욱 부추기는 너, 너는 누구인가! 너의 아버지를 복수에로 자극하면서 너의 누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너, 너의 방패는 그러므로 개의 방패와 마찬가지이다.”(KA9:96)  

여섯 번째 요인으로 페스탈로치는 당시 유럽 사회의 기만적인 성모랄과 명예심을 들고 있다. 이것은 진정으로 마음의 정결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가식 속에서 비밀리에는 모든 쾌락을 즐기면서도 겉으로는 경건하고, 도덕적이고, 순결한 척하는 위선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고상한 여성의 집 앞에서 거지가 굶주리고, 거기서 순진한 아이의 무구가 깨어지며, 모든 진실과 정의가 경건의 이름 아래 억눌려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 가운데 교회 성직자나 세상 정치 지도자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온갖 죄를 저지르면서도 감추어지지 않고 불거져 나오는 민중들의 작은 죄는 혹독한 심판대의 처벌로 엄하게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 시대 지도자층의 허위와 거짓 경건을 꼬집은 것인데, 오늘 한국 사회와 교회의 모습과도 어떻게 그렇게 유사한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주현절에 먹는 케이크 (장 밥티스트 그뢰즈 , 1725, 캔버스에 유채) / 중세 시대 가족 풍경을 담은 그림, 의료 혜택이 전무했던 당시 여성들은 생명을 걸고 많은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일곱 번째는 계속해서 순환적으로 연결되는 악한 상황의 내적, 외적 요인을 들고 있다. 예전의 잘못과 어려운 처지가 다시 현재의 발목을 잡으면서 수렁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난한 여성들의 반복되는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로 페스탈로치는 임신한 여성이 열 달 후에 맞게 되는 출산 시점의 비인간적 환경을 들고 있다. 동물에게조차도 출산 시에는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데, 인간으로서 그때까지 한시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지내오다가 출산 시 강가로, 어두운 수풀 속으로 내몰려서, 어떤 도움의 손길도 없이 거기서 혼자서 아이를 낳아야 했을 때, 그녀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동물이 된다는 것이다. 동물이 새끼를 편안히 낳을 수 없는 환경이 되면 그 새끼들을 물어 죽이듯이, 그렇게 그녀도 자신의 갓 태어난 아기를 죽인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페스탈로치는 누구나 한 여인이 임신한 것을 알고, 출산할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았을 때는 그에게 어떤 천금을 훔친 것보다 더 크게 책임을 묻고 벌을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어떤 여관도 그녀를 거부해서는 안 되고, 어떤 고용주도 그런 상태에서 그녀를 내쫓아서도 안 되며, 만약에 그랬을 경우 모두가 바로 영아 살해범으로 같이 처벌 받고 책임 추궁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오늘의 입법에서도 모두 이루어지기 힘든 이 인간적인 요청을 페스탈로치는 당시의 입법자들에게 강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입법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로 페스탈로치는 당시 계몽주의 유럽사회의 비참과 수치인 신생아 살해의 여덟 가지 요인을 조목조목 헤아렸다. 그러나 그는 그 각 요인들이 결코 따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즉, 아기를 배게 하고 떠나가 버린 남성의 속임수가 그 원인이었다면 그것은 다시 가난의 결과이며, 그 가난이 원인이라면 그것은 다시 불충실때문에 야기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요인들이 순환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나라의 입법자가 이 비행의 보다 더 근원적인 원인을 보지 못하고 단지 나타난 한 두 개의 사항이나 또는 나중에 결과로 나타난 것들만 보고서 처리하는 것은, 지금까지 세상의 법들이 무수히 실패한 이유, 즉 ‘범죄’(신생아 살해)를 또 다른 ‘범죄’(사형)로 다스리려는 것이고, 분노를 분노로써 다루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 입법이란 결코 나라의 사람들을 행복에로 이끌 수 없고, 오히려 나라 전체를 황폐화시키면서 범죄와 비인간성만을 더욱 조장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자신에게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확실해진다고 한다. 즉 먼저는, 신생아 살해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처방은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개개인을 처벌하는 것이 될 수 없고, 두 번째는 설사 법률적으로는 죄가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변의 사람들도 역시 범죄의 내적인 행위자들로 같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이 신생아 살해의 범죄도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인간 부도덕의 보편적인 원인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범죄에 대한 진정한 예방책과 해결책이란 나라 안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름답고, 선하고, 고상한 것에 대한 내적인 기쁨과 악한 것에 대한 수치와 혐오감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먼저 선포한다.(KA 9:113) 그러면서 그는 여기서부터 보다 보편적으로 신생아 살해라고 하는 패륜적 범죄의 원인과 그 방지책을 탐색해나가고, 이것들을 참된 입법자가 자신의 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기초적인 사항으로 제시한다. 

페스탈로치에게서의 ‘입법’(Gesetzgebung)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의 정신과 도덕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행복의 기초가 그 내면의 자아와 도덕성의 고양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고양시키고 증진시키는 일이다.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입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하는지, 어떤 주변과의 관계성 속에서, 어떤 것을 누리면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지를 입법자는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특히 삶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해야 하는데, 즉 어떻게 삶에서의 각각의 악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선이 인간성의 고양에 영향을 미치며 작용하는지를 아는 일이라는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여기서 ‘하느님 신앙’(Glauben an Gott)을 국민들의 덕의 확고한 기초로 삼을 것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의 평안 없이는 행복해 질 수 없으므로, 이 하늘 부모님의 선함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인간 모두의 자연 안에 놓여있다고 강조한다. 즉 여기서 페스탈로치의 인간 자연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다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이 하늘 부모님의 선함에 대한 신앙이야말로 우리가 본성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 될 수 없고, 우리의 모든 다른 즐거움도 여기에 근거되어야만 참된 행복을 가져온다고 한다. 페스탈로치가 1780년의 작품 『은자의 황혼』에서 하늘 아버지의 선함에 대한 신앙이란 인간 자연의 가장 내밀한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여기서의 신생아 살해 범죄에 대한 최고의 방지책을 이 인간 자연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 신앙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이은선 (세종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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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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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진방 2017-02-04 20:33:47

    기사 감사합니다. 여성의 문제도 외면 받는 세상이지만 여성 중에서도 결혼제도 밖에서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고통을 겪고 있는 미혼모들 또는 이혼 후 혼자 양육을 떠 맡은 여성들에게 성서와 하나님은 아무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고전의 힘 그리고 기독교와 정치의 친밀성을 보면서페미니즘과 하나님나라를 다시 한 번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혼자 양육하는 여성들을 외면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필요한 여성주의는 무엇인지 대해 정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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