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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20)<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편집부 | 승인 2017.02.06 15:49

함석헌이 붙인 박정희와 장준하의 샅바 씨름(2)

지명도로 말한다면야 장준하의 명성은 이미 전국적인 것이었지만 정치현장에서의 장준하는 이제 입문하는 신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통합야당의 동대문 을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분열이 되어 있는 야권을 통합 단일 야당을 이루어 내는 일, 4자회담의 산파역을 감당해 낸 일, 물론 그 모든 일들을 장준하가 이루어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해도 그 ‘틀’을 그려낸 첫 사람이라는 데서 결코 이의(異議)를 말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장준하가 감옥에 갇힌 몸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 공천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 같은 공로를 인정해서 였다. 그 4자회담으로 극적인 통합을 이룩한 신민당은 급박한 양대선거에 대비한 선거체제를 우선적으로 이루어 나가기로 했다. 필승의 전략중의 하나가 민중의 신뢰를 받는 제야인사의 발굴이었는데, 이는 4자회담의 흔쾌한 합의이기도 했다.

제야의 영입이라! 
그 영입의 제 1순이 장준하일 수밖에....
영입해야 할 제야 인사의 그 영입조건은 마치 장준하 하나를 영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짜 맞춘듯한 것이었다. 장준하는 그렇듯 당당한, 자랑스런 과거를 살아왔고 현재를 살아오고 있다는 증언인 듯 했다.

그런데 일이 될려고 그랬던 건지 안될려고 그랬던 건지 그 선거운동을 앞에 놓고 다시 장준하가  철창의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대방은 말할 필요도 없이 집권당의 후보다. 최고 회의의장 비서실장 출신에 현재 공화당의 서울시당 위원장이다. 그 이름을 강상욱(姜常旭)이라 했다. 선거구의 모든 공적기구가 그의 선거운동 단체였다. 공기구,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야 말로 중대한 범죄행위였지만 천하는 이미 박정희의 것인지라 공화당 후보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동대문 을구의 싸움은 단순한 한 지역선거구의 여야결전이 아니었다. 박정희와 장준하의 싸움이었다.

박정희와 장준하, 장준하와 박정희의 성장과정이 그랬고, 인생여정이 그랬고 미래의 이상이 그랬다. 그 둘은 아주 정확하게 역사가 그려낸 숙적(宿敵)이었다. ‘장준하를 두어 둬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제 신이 되려하는 박정희로부터의 명령이었다. 그렇잖아도 장준하라면 어쩔 수 없이 상당한 열등감을 지울 수가 없는 박정희였다. 그런데 그 장준하가 국회에 들어온다? 그것은 박정희에겐 거의 재앙수준의 잠 못 이룰 일이었다. 

필자가 국회의원 선거구인 동대문 을구의 선거전을 강상욱과 장준하의 싸움이 아닌 장준하와 박정희와의 싸움이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두 사람이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軌跡)을 두고서이다.

삶(生)처럼 위대한 변증은 없다.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처럼 그 사람, 그 인격에 대한 변증은 없다! 우리 역사 속엔 특히 우리의 현대사엔 두 유형의 사람이 있다. 장준하와 박정희 말이다. 

자신의 조국이 풍전등화 같은 비운에 처해있을 때 맨몸, 온몸으로 그 설한풍을 막아온 사람 장준하에, 제 조국의 명맥을 압박하는 적제국(敵帝國)의 압잡이를 자원해 온 박정희가 있다. 실로 둘은 천적이었다.

백척간두의 조국을 좌시할 수 없어 은인자중하던 중 군대를 동원, 혁명을 했다는 박정희에, 박정희의 군인 정치 아래서 묶이고 갇히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민주주의를 제창(提唱)하는 장준하가 있다. 장준하와 박정희의 싸움, 박정희와 장준하의 싸움은 그래서 그만둘 수 없는 싸움이었다. 누군가 한 편이 죽지 않고는 그만둘 수 없는 싸움이었다. 박정희로써는 그 통치 권력의 야욕이 그 싸움을 포기 할 수 없게 했고, 장준하로서는 그의 생(生)이 명한 민족, 민주, 자유혼이 그 싸움을 그만 둘 수 없게 했다. 그래서 그 싸움은 천부의 싸움이었다.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게다가 이 박장지전(朴張之戰), 장박지전(張朴之戰)을 더욱 처절한 결사지전(決死之戰)으로 묶어낸 이가 바로 함석헌이었다. 

장준하 후보 개인연설회 연사 함석헌

장준하 후보의 선거사무소는 그야말로 초상집에 불난 격이었다. 돈이 있나, 사람이 있나, 장준하라는 이름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겠지만 그 사람들이 장준하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킬 수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장준하가 아무리 분열된 야권을 하나로 묶어내고 소위 거두(巨頭)라 일컬어지고 있는 지도자들의 회담의 자리를 주선해 냈다 해도 한번도 정치적인 조직에 참여해 본적도, 또 크거나 적거나간에 정치적인 조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장준하가 국회의원 후보가 된 것이었다. 그마저도 옥중에서 말이다. 

「사상계」사의 부장 몇 사람이 우선 사무실을 꾸리고 대책을 마련해보자며 머리를 맞대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장준하가 정치를 하는게 옳으냐, 그르냐를 토론할 수도 없었다. 이미 장준하의 정치참여가 사실로 목전에 박두했으니 말이다. 

그때 함석헌이 장준하 선거 사무실을 찾아왔다.
“나, 장준하 선거운동 하러 왔소.” 거침없는 말이었다. 실로 이제 기이한 모습이 펼쳐질 것이었다. 함석헌이 장준하를 위해 선거연설을 하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5.16을 반대한 그였고 그의 명성이며 일반 시민의 존경도 역시 주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게다가 정신적인 인물로 깊이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6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야의 선거기획팀들은 함석헌을 대통령 후보와 단일팀을 이루는 후보지원 연사로 참여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으나 딱 짤라 거부해 버렸던 그가 장준하의 국회의원 후보 지원 연설에 자청,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이는 함석헌이 얼마나 장준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함석헌은 장준하 이외에 이전에도 이 후에도 정치에 발 들여 놓은 적이 없었다. 장준하를 위한 이 일로 함석헌은 주변으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그를 가까이 따르던 종교친우들로부터 그랬다. 함석헌이 1947년 월남한 이후 이제까지 그가 주관해 온 무교회 모임, 말씀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던 그의 제자들, 동지들이 그랬다. 

“아니, 선생님이 정치 마당에 나가신다니 말이 되냐?”
“말려야 한다. 괜히 선생님만 바보 되실 것 뻔 한데말야.”
“선생님은 아무리 좋은 생각으로 참여하신다 해도, 또 장준하 선생을 우리가 이해한다해도 정치판은 다르단 말야.”
“그럼 그렇구 말구. 아니 선생님이 늘 그러셨잖소. 정치는 도둑놈들이 하는 거라고 말이오. 그런데 그러셨던 선생님이 어쩌자고 정치판에 나선단 말이오.”
모두들 함석헌을 염려해 하는 말이었지만, 어쨌던 함석헌의 주변은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장준하의 선거 캠프에서 함석헌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함석헌이 제 발로 찾아와 장준하의 선거운동을 자청한 것이니...

「사상계」사는 유경환 편집부장이 지키기로 하고, 취재부장 고성훈과 김동준 부장에 장준하의 동생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장창하가 선거캠프를 열어 그 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백면을 봐도 서생들이라, 그저 글 쓰며 글 찾으며 살아 온 주제들이 장준하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겠다(?)며 장(場)을 열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장을 열었으나 전혀 장이 설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함석헌이 찾아온 것이다.

“나 장준하 선거운동하러 왔소.”
와, 그것은 그들에겐 실로 거인(巨人)의 소리였다. 순식간에 캠프에 신기(神氣)가 도는 듯했다. 선거운동의 지휘봉은 아주 자연스럽게 함석헌에게 넘어갔다. 대체적으로 선거 싸움이란 조직의 싸움이었지만 서울 동대문 을구 장준하의 선거싸움은 철저히 예외 였다. 도대체 장준하의 조직이란 전무한터였으니... 장준하의 선거운동은 자연히 유세전(誘說戰)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장준하의 경우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천우신조라 할 것이엇다. 그 엄청난 말의 무게를 지닌 함석헌이 장준하를 외칠 것이니 말이다. 다행히 장준하의 운동원들에겐 고성능의 마이크와 사(社)의 검정 찦차가 있었다. 그것은 장준하의 선거운동에 안성맞춤이었다 할 것이다. 선거운동법이 허용하는 한 선거연설전회를 다 사용할 수 있도록 시간, 장소를 확정했다. 그 횟수가 41회였다. 매회연설회 때마다 찦차에 스피커를 설치, 후보자 장준하의 선거 연설회를 방송하고 유권자들의 참여를 간청했다. 물론 함석헌 선생의 연설이 있을 것임을 알렸다.

첫 연설회!
청량리 역전, 오후 7시.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함석헌 보러가자, 함석헌 선생 연설 들으러 가자, 연설장에 나아가는 유권자들이 선전원이요, 운동원이었다. 광장에 모인 청중들의 모습, 그 분위기는 꼭 무슨 종교의식을 위해 모여든 것처럼 지극했다.

사회자가 함석헌을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여러분, 민족정신의 지도자 함석헌 선생께서 장준하 후보를 위해 우리 선거구에 오셨습니다. 후보는 비록 감옥에 갇혀있습니다만 우리는 반드시 장준하 후보를 당선시켜 대한민국의정사에 신기록을 남기게 할 것입니다. 이제 함석헌 선생님을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이어 함석헌이 단에 올랐다.
“여러분, 제가 함석헌입니다. 이번 싸움은 장준하와 강상욱간의 싸움이 아닙니다. 장준하와 박정희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필자가 함석헌이 벌린 ‘장준하와 박정희의 샅바싸움’이라고 한 이유다. 그랬다. 그것은 장준하와 박정희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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