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듣는 것을 좋아해 왔다. 그러한 사람의 본성 탓에 세상은 수많은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사람들은 뒤엉켜 지낸다. 성서를 비평적으로 연구해온 사람들은 성서를 서사의 대결로 보기도 한다. 권력자의 서사는 기록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서사는 잊혀 진다. 성서를 연구한다는 것은 기록되지 않은 서사를 더듬어 보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이야기는 글을 모르고 자신들만의 언어가 없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민중’이라는 단어로 아우르고 그들의 이야기를 신학으로 정리한 이들이 있다. 안병무, 서남동과 더불어 민중신학을 창출한 1세대 민중신학자인 서광선 박사도 그중 한명이다.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는 6일(월) 열린 한국민중신학회(회장 강원돈 교수) 월례 세미나에서 “이야기와 민중, 회상과 단상 : 현영학과 서남동을 기리며”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문화는 정치이고 정치는 문화”라는 후배 신학자의 발제를 듣고, 그가 참고했다는 두 권의 책을 통독한 뒤 준비한 발제였다. 

한국민중신학회 월례세미나가 6일(월) 서대문 이제홀에서 열렸다. ⓒ에큐메니안

서 박사가 기억하는 민중과 이야기의 관계는 탈춤으로부터 시작된다. 앞서 그의 선배인 현영학 교수는 <예수와 탈춤>이라는 저서를 통해 “한국탈춤이야말로 민중의 비판적 초월의 경험”이라고 정리 했다. 그의 주장처럼, 서 박사는 “민중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보다 사회적, 도덕적으로 더 높은 위계에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 양반 세력들을 비판해 왔다”고 강조했다. 

민중과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다. 서남동 교수는 ‘이야기 신학’을 소개하며 “이야기 신학은 신학 아닌 신학”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했다. 그것은 성서가 이야기책이며 그것이 계시된 삶의 자리가 가나안과 갈릴리의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구약과 신약은 이야기 문학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의 화법은 이야기였다. 하나님은 사색과 철학으로 계시하지 않고 몸의 언어로 계시 하셨다. 민중을 억압하는 지배자에게 저항하는 정치적 몸부림은 이야기 신학이자 정치 신학이기도 하다. 

서 박사는 이야기 신학의 힘을 직접 경험한 세대다. 우리말로 된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서 박사는 “신앙심이 애국심과 독립정신, 자유, 정의, 사랑의 실천으로 확대되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어린 그에게 성경 이야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것은 500년 전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사건과 연결된다. 서 박사는 종교개혁의 열매 중 하나를 “성서 해석의 민주화”로 꼽았다. 민중이 글을 읽음으로써 절대군주 체제가 무너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는 “민중의 이야기가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정리했다. 

서광선 박사 (이화여대 명예교수) ⓒ에큐메니안

한편, 이야기는 민중만의 것일까? 서 박사는 책 <스토레텔링 애니멀, Jonathan Gottschall, 노승영 옮김>을 소개했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이야기로 생존하고 진화하는 동물이다. 저자인 갓셜은 이야기의 구조를 인간지능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구분했다. 이야기는 인간의 상상에 따라 의도적으로 각색된다. 서 박사는 “이야기가 편파성을 가졌다면 결국 누가 누구 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가 중요 하다”고 전했다. 이를 현 시국과 연결시키면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 붙이는 것은 곧 권력이 이야기를 독점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것은 권력의 이야기를 민중의 이야기로 탈환하려는 투쟁”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의 편파성’은 서 박사가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민중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갓셜의 말을 빌려 “민중의 이야기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전했다. 그 힘은 민중의 박탈감에서 오는 분노의 힘이다. 그는 “광장의 촛불이야 말로 권력의 이야기가 거짓말뿐이라고 하는 박탈감과 배신감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라고 해석했다.

서 박사는 다시, 예수가 이야기꾼이었음을 환기시키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4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이야기입니다....고난당하는 유대 민중들, 그들의 현실, 그들의 꿈과 그들이 그리는 하느님 나라의 이야기 였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민중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예수의 이야기는 우리 민중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는 유대 민중이었고, 오늘도 예수는 우리 민중이기 때문입니다.”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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