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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족혼(民族魂) (21)<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7.02.09 14:16

함석헌이 벌린 장준하와 박정희의 샅바 씨름 (3)

함석헌의 발언은 약간은 의아했다. 청중중 상당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동대문 을구의 국회의원 선거(제7대)를 공화당 후보 강상욱과 신민당 후보 장준하의 싸움이 아닌, 사실은 장준하의 박정희와의 싸움이란 주장에 대해 의아해 할 수밖에는 없었다. 함석헌은 이 선거 운동 기간 중 40여 회의 후원연설을 했는데, 매회 빼놓지 않고 하는 연설이 있었다. “장준하의 이 싸움은 박정희와 하는 싸움이다.”

이번 싸움이 장준하와 박정희의 싸움이라는 함석헌의 머뭇거림이 없는 당찬 주장이 청중들로 일편 의아히 여기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긴장감과 신중함을 동시에 갖게 했다. 당시 선거운동에의 후보 정견 발표는 여당은 대낮이거나 밤이거나 가릴 것이 없이 행해졌지만 야당후보의 선거연설은 대체적으로 밤이 되어서야 개최하는 것이 상례였다. 내놓고 야당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불리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야당의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은 야당을 지원하는 유권자들의 신분을 보장하까지는 어렵다 해도 가능한 보호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지녀야만 했다. 그런데 함석헌의 생각과 말을 달랐다.

“이 싸움은 역사적 싸움이요,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싸움이지요. 박정희의 불의와 장준하의 의의 싸움이요, 한국사와 인류사를 반역해 온 박정희와 한국사와 인류사를 온몸으로 수호해 온 장준하의 싸움이요, 우리가 참을 위해 싸우는 거라면 숨어서 해서는 아니되오. 참 싸움은 내어 놓고 하는 것이요. 청중걱정 할 필요 없소. 제 짐은 제가 지는 거지.”
함석헌의 말은 정말 하늘이 주어서 하늘이 주신 것을 받아서 하는 듯 했다. 듣는 모든 이들로 옷깃을 여미게 했으니....
“자, 조직이 없는 것, 자금 없는 것 염려할 것 없소이다. 마음을 다, 정성을 다, 힘을 다, 혼을 다 하면 이루어질 것이오. 궁즉통(窮卽通)이라 했소.”

그리고 정견발표회장으로 31곳을 내정했다. 이후의 선거운동은 함석헌이만 따르면 됐다. 그가 이끄는 선거운동은 세계에서도 가장 단출한 선거운동이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연사의 연설을 하는 것, 그것이었다. 술상은 물론 밥상도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들도 놀랜 것은 청중들의 호응도와 그 열기였다. 유세장에 모여드는 청중들은 그저 청중이 아니었다. 기어이 새역사를 이룩하고 기록해 낼 약속된(?) 무리들이었다. 

함석헌은 뜨겁기 그지없는 눈물을 목으로 삼켰다. 청중들의 시선에서 불퇴전의 약속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함석헌은 31회의 강연에서 빼놓지 않는 두 가지 말이 있었다. 먼저는 예의 그 “이 싸움은 장준하와 박정희씨의 싸움이다” 라면서 “여러분, 이번 국회의원 선건에 장준하 후보에게 투표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 장준하 후보는 감옥에 있습니다. 박정희씨가 감옥에 집어 넣은 것 아닙니까? ‘국가원수 모독’ 운운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박정희씨는 혈서를 써가며 만주 일본군관학교에 입학-졸업, 일본만군의 사관이 되었고,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면서는 졸업생전원을 대표하여 답사를 하는데, ”나는 일본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 할 것은 물론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자랑스럽게 죽겠습니다. 라며 일본육군사관으로 해방을 맞았고, 장준하 후보는 스스로 일본의 징병이 되어 중국에 배치, 주둔하게 되자 목숨을 걸고 그 일군을 탈출하여 당시 임천(臨泉)에 주둔해 있던 중국중앙군관학교(中國中央軍官學校)의 분교(分校)로 설치되어 있던 한국 광복군 훈련반을 찾아 간부훈련을 수료한 광복군장교로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 이후, 두 사람의 행적 또한 상이합니다. 해방이후 박정희씨는 친일세력의 청산은커녕 이승만의 친일세력의 대대적인 등용에 힘입어 역시 만군사관학교,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선임들의 등에 업혀 한국군에 편입되었지만 그는 내밀히 남로당 군조직책이 됩니다. 그러나 여순반란사건(麗順叛亂事件)이후, 군내부의 숙군작업을 벌리던 군 수사당국에 적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습니다만 그때 자신이 비밀리에 소지하고 있던 남로당원 전원의 명부를 당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자신은 석방됩니다. 

그러나 유권자여러분, 정말 우리가 주시해야할 점은 지금의 장준하 후보와 벅정희씨입니다. 장준하 후보는 천하가 인정하는 민주주의자입니다. 박정희는 천하가 다 아는 그 민주주의 정권을 총칼로 전복 시킨 자입니다. 누가 뭐래도 박정희 정권은 군인정치(軍人政治)정권(政權)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 동대문 을구의 선거를 “장준하와 박정희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싸움은 민주주의와 군인정치의 대결입니다. 그런데 이 명명백백한 싸움에 장준하가 진다면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강연을 계속해온 함석헌은 말을 멈췄다. 한참 말이 없었다. 청중도 고요, 고요했다. 함석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전혀 함석헌답지 않은 말이었다.

“장준하 그 사람, 아마 자살할 것입니다.”

“장준하 그 사람, 아마 자살할 것입니다.” 한 말은 그의 기독교 신앙적인 말로 한다면 하느님이 주셔서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을 그가 한게 아니란 말이다. 주셔서 받아 한 말이었단 말이다. 그 마을 해놓고는 자신도 놀랐다. 사실 그 말은 표를 얻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함석헌은 장준하에게서 분명한 “민족의 씨”를 본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기적이기도 했다. 함석헌으로부터 그 말을 들은 사람들, 곧 모든 청중들이 무슨 세례를 받은 듯했다면 과언이라 할 것인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함석헌의 말을 듣고 돌아서는 모습, 돌아가면서의 모습, 표정들이 한국의 집회사상 그것이 문화적인 것이었거나 교육적인 것이었거나 심지어 종교적인 것까지라 해도 그렇듯 침통하면서도 흐뭇해하고, 서러우면서도 자위하는, 모든 것을 빼앗긴 듯 하면서도 전혀 새것을 얻은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 이튿날, 장준하 후보를 위한 함석헌의 정견발표장에 다녀온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구르기 시작했다. 

“야, 함석헌 선생! 공화당표 무너지는 소리가 우지직, 우지직 하더라...”

그렇게 함석헌이 이끄는 장준하 후보의 선거 연설회가 후보지역의 구석구석에서 진행되기를 10여일, 장준하의 선거구 전역에서 이상한 미풍이 일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것은 분명히 미풍이었지만 그것은 몹시도 하수상한 풍세(風勢)의 미풍이었다. 구석 곳곳에서 실바람처럼 이는 바람이 여기저기서 영켜 붙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한 새 바람이었다!

공화당 후보 측에서도 이 같은 이상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게 실수 였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이상스러웠던 미풍이 돌풍으로의 탈바꿈을 시작했다. 때맞춰 신민당의 전국 유세반이 장준하의 선거구에 들이닥쳤다. 박순천(朴順天)을 반장으로 하는 유세반으로 전농(典農)여자중학교 교정(동대문구 답십리 소재)에서 장준하 후보의 후원연설회가 열린 것이다. 주연사는 반장 박순천과 역시 함석헌이었다. 모여든 청중이 인산인해, 물샐 틈이 없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었다.참여한 이들이 한결 같이 놀랐다.

“야, 이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첨 일일세, 첨 일이야. 이렇게 사람이 몰려들다니...”
그런데 정말 일은 반편에서 터졌다. 공화당인사들이 놀라자빠진 것이다! 이튿날의 여론, 그 분위기는 이미 장준하의 당선이 확정된 듯 했다. 
“선거? 이미 끝난거야. 두고보라고...”

술내기, 담배내기 하는 이들, 하자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옥중의 장준하가 신출(神出)하며 온 땅을 휩쓰는 듯 했다. 이제 정말 다급해진 것은 공화당 쪽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누구의 말이었는지 옥중의 장준하가 동정표 운동을 하고 있다며 장준하를 하루 속히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그 말이 그저 말로 나왔던 것인데 공화당의 선거기획팀들은 그 말을 일리 있다 하더니 나중엔 사실이다 하면서 한시바삐 장준하를 석방해야 한다며 검찰을 욱박 했다.

“장준하를 석방시켜라!”
뉘 명령이라고...
그것은 곧 박정희의 하명(下命)이었다. 
총선 투표일 엿새 전 날 6월 2일 장준하는 출소했다!
이제는 함석헌과 장준하의 합동공연이었다. 천하의 대사(大師)함석헌과 천하의 신사 장준하가 함께 부르는 민주의 대열창은 그야말로 구경거리였다.
1967년 6월 8일, 제 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구 투표함이 개봉되었다. 청량리 고등학교 강당에서였다. 개표가 끝났다. 6월 9일 새벽 3시. 

장준하 57,119표
강상욱 35,386표, 선거관리위원회의 공표였다.
“장준하가 박정희를 이긴거야!” 함석헌이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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