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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 소리가 언약을 깨우다! (출 6:2~8)2017년 2월 12일 주현절 여섯째 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7.02.15 10:30

1. 모세를 보내시는 하나님

1) 출애굽기는 한 마디로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이집트에 정착한 야곱의 후손들이 처음에는 평안하게 살다가 어느 시점부터 400년이 넘는 동안 노예로 살다가 야훼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다. 

억압, 고통, 눈물, 절망, 한숨 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출애굽 -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이다. 탈출은 곧 자유이고 해방이며 구원이다. 3,300 년 전, 저 멀리 중동과 이집트에서 벌어진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사건의 발생, 과정, 결과가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베푸시는 구원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애굽 이야기를 잘 이해하면 오늘 우리가 내 삶 속에서 어떻게 구원받아 새로운 인생과 역사를 맞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출애굽 이야기는 기독교가 선포하는 구원의 원형이다.

2) 중심 인물 : 모세 

미켈란젤로, 모세(부분)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주인공이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 왕, 사사, 예언자, 문학가 등 –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한 사람만 정하라고 하면 그 한 사람이 바로 모세다.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이 집단적으로 야훼 하나님을 만나게 했고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이후로도 히브리 노예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기로 다짐하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율법을 받음으로써, 신세계를 시작하게 한 역사적 인물이다. 그래서 모세는 언젠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궁극적으로 구원하실 메시아의 전형이다. 그래서 신명기서는 이후 이스라엘 역사 상 누구도 모세와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신 34:10)

3) 모세를 부르심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에 불로 임재하셔서 모세를 만나고 그 후에 노예로 살던 히브리 노예들을 드디어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시고 그 사명을 모세에게 맡기는 장면이다. 사실 어느 날 갑자기 불러 이 엄청난 사명을 맡기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모세는 두려움으로 거절한다. 성사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실패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온 가정과 집안 전체가 쑥대밭이 될 것인데, 누구나 이런 일을 덥석 맡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사명을 피해 도망가려는 모세를 향해 하나님은 전대미문의 출애굽 사건을 왜 일으키려고 하는지, 이런 말을 하는 야훼 하나님은 누구신지 설명하는 장면이 본문이다. 

2. 신음 소리–기억 되살리기 

1) 이스라엘의 고통

이집트 파라오의 압제 아래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의 고통은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소나 말처럼 재산의 일부였고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권 개념조차도 없었다. 노예는 그저 태어나서 일할 수 있는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의무만 있고 나머지는 아무 것도 없는 존재들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인간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서구에서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 발발 150년 후 서구사회에서 이런 인간 존중과 인권은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20세기에 서구 사회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후예인 유대인들은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그들의 조상이 3000년 전에 이집트에서 당하던 소나 말 같은 대접을 똑같이 받았다.

부르니스와후 링케, 비명 지르는 돌 연작(1946년), 수채화, 85×44cm,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미술관

폴란드에서 나치에 의한 유대인 억압과 학대를 경험한 화가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을 그림으로 증언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 폐허로 변한 도시 건물 잔해 위에 박혀 서 있는 것은 사람이지만 꼭 시멘트 기둥 같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고, 머리에서부터 쓰고 있는 유대인 표식의 망토도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다. 

그는 희망 없는 고통의 현장에서 암담한 현실에 망토를 뒤집어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마도 피울음으로 흐느끼고 있을 것이다. 실제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양손으로 얼굴을 움켜 쥔 채 괴로워한다. 노동으로 거친 손이다. 왼손 팔뚝에 감겨있는 전깃줄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손 팔뚝 안쪽은 이 현실에 긴장하고 격분하여 굵은 힘줄이 유난하게 두드러진다. 

그는 이 쓰라린 고통의 현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이 묻어난다. 묵묵히 역사의 불의와 고통을 받아내면서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정착할 수 없는 유랑인, 더 이상 도망가려해도 갈 곳이 없는 이들의 고통이다. 그 속에서 만난 야훼는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신이었다. 오늘도 야훼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 소리에 구원으로 응답하신다.

2) 400년이 넘게 고통이 지속된 이유 : 하나님의 망각 

재미있는 것은 오늘 이집트의 히브리 노예들이 400년 이상이나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살아가야만 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을 잊어버리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저 극히 일부분만 알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극히 작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그 설명은 인간이 경험과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하시는 히브리 사람들을 왜 그토록 오랫동안 노예의 고통 속에 내버려 두셨을까? 하는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 근본적인 신앙적 질문에 대해서 3천 년 전 신앙인들은 마치 인간들이 가끔 그러듯이 깜빡 잊어버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런 것을 신인동성동형론적 이해라고 한다. 위 그림 중 떨기나무에 불꽃으로 임재하시어 모세를 만나는 장면을 그린 화가도 하나님을 머리 하얗고 원숙한 할아버지 모습으로 그렸다. 하나님이 정말 저런 모습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설명할 때 인간이 경험한 것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 그리는 것과 같다. 솔직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고통당하는데 하나님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하고 방관하고 계셨는지 잘 알지 못하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설명하지 않을 수도 없는데, 그럴 때 생각해 낸 신학적 해명이 하나님이 히브리 노예들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너무 큰 슬픔이나 고통을 당할 경우,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리셨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비슷한 설명이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현실을 아시기만 한다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자녀들의 고통을 구경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이 고통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시고 구원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어떤 계기가 도대체 무엇인가? 

3. 구원의 능력을 내 삶으로!

1) 주님을 깨우는 소리 : 힘들어요 주님!

오늘 본문의 초점은 5절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망각을 깨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하게 됨으로써 구원 계획을 실행하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히브리 노예들의 신음소리!

신음소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내뱉는 소리다. 하나님께서 그 신음소리를 듣고 구원을 약속한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되고 우리의 고난 현장에 들어오셔서 구원을 단행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의 신음 소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촉매제다.

렘브란트, 갈릴리호수에서 풍랑을 잔잔케하시는 예수, 1633년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공통으로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일화 중 광풍을 잠재우신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건너 갈 때 광풍이 불어서 배에 물이 들어오고 배가 뒤집힐 지경인데 예수님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게 태평히 주무시고 계셨다. 이에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서 ‘주여 우리가 죽겠습니다!’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주님이 바다를 꾸짖으셔서 잠잠케 함으로써 위험에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고통 속에서 내는 신음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주님 내가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이 신음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원의 행동을 감행하신다. 

꼭 이렇게 하나님 앞에 호소해야만 들어주시고 알아서 구해주시면 안 되나?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임을 믿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나님이 먼저 알아서 다 막아주시고 해결해주시면 그 사람은 지금의 평화가 당연한 것으로 알기 때문에 믿음이 제대로 생기지 않는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의 어려움을 미리 알아서 다 해결해 주면 그 아이는 결핍을 모르기 때문에 바르게 성장할 수 없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간절하게 하나님께 호소하고 절망의 밑바닥에서 간절함으로 주님 이름을 불렀을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느끼며 더욱 확신에 찬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 기도하자!

하나님의 기억을 되살려서 우리의 힘든 삶과 역사에 구원 계획을 실행시키도록 하는 신음소리는 바로 기도다. 올해는 주민교회가 기도를 열심히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내 생각과 경험, 내 지식과 능력 이전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먼저 간구하고 그 믿음으로 구원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매해 연초에 한 해 동안 목회자와 함께 기도할 제목을 써 내라고 해도 안 써내는 이들이 많다. 기도의 효과를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수요기도회에 나와서 개인, 가정, 교회, 사회의 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자고 해도 시큰둥하다. 꼭 수요기도회에서만 기도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때라도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가 아니면 집에서라도 열심히 기도하기 바란다. 그런데 사실 수요기도회 안 나오고 교회에서 기도 안하는 사람이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교회는 소 예배실을 명상예배실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나는 썩 좋은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기도실이 낫다. 그 장소가 히브리 노예들처럼 시련과 고통 속에서 눈물 짓는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나 좀 구원해 달라고 매달리는 기도의 성소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주부터 누구나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 기도할 수 있도록 지하 1층 문도 열쇠가 아니라 번호 키로 바꿨다. 

개인의 문제든 사회의 문제든 기도하지 않고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장 중요한 문제 해결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임을 뜨겁게 고백하자. 

기도하지 않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기도하지 않고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하고 구원받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보라. 단언컨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절망적이고 힘들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내 고통과 소원을 주님께 아뢰어라, 주님이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듣고 반드시 구원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체험하고 그 하나님께 인생과 역사를 맡기라는 것이다. 

3) 진급하는 우리 자녀들에게

오늘 진급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새롭게 한 단계씩 올라가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구원의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내가 고통스럽고 절망적일 때 좌절하지 말고, 내 신음소리를 하나님께 들려드려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완벽한 프로그램을 실행하시도록 하는 믿음이 우리 자녀들에게 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기도하는 신앙을, 그리고 우리 사회의 중대한 전환기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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