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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이산(離散)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사할린 한인 1세들의 절망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가) | 승인 2017.02.23 14:10

사할린 이야기4

사할린 내에 있는 동포들이 직접 나서고, 일본으로 건너간 동포들이 일본 내 여론을 움직여 한국과 일본 정부는 양국 적십자사를 통해 사할린 동포들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하게 된다. 사할린 한인 1세들의 모국방문사업과 영주귀국사업이 1992년부터 본격화되면서 천안 사랑의 집, 경북 고령 대창양로원, 인천 사할린복지관, 안산 고향마을 등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귀환할 수 있는 대상을 사할린 한인 1세로 한정, 그 1세의 범주를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 이주 또는 사할린 출생자’로 정해버렸다. 이후 2008년부터는 1세의 배우자와 장애자녀까지만 동반 귀국을 허용하고 직계비속 가족의 동반은 허락하지 않았다.

대창양로원, 2014.08 경북 고령군 대창양로원은 1994년 53명이 영주 귀국을 시작하여 현재는 2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지연

자녀와 동반할 수 없게 된 1세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많은 부작용과 직면하게 된다. 고령의 나이에 그토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자식과 떨어져 살다 보니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뿐더러 또 죽기라도 해서 한국에 묻히면 자식들이 묘를 돌볼 수 없을 거란 불안감 때문에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가는 숫자가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을 90일 이상 떠나있으면 그나마 나오던 기초생활수급비마저 끊겨 버리기 때문에 사할린에 있는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대로 오갈 수가 없는 처지이다. 고향으로 돌아왔다기보다는 늘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이유도 이런 데서 시작된다.

인천국제공항, 2014.08사할린에서 강제동원 대상 묘로 파악된 3천7기 중 2015년까지 32위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지연
천안 망향의동산, 2014.08유골은 천안 망향의동산에 모시게 된다 ⓒ김지연

일본은 더 이상 귀환을 원하는 대상자들이 없다는 이유로 영주귀국 사업을 2015년 조기 마무리했다. 그때도 이렇게 마무리 지으면 안 된다고 사할린 동포들만 동동거렸을 뿐 나라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만약 일본이 책임을 다했다고 인정해서 조기마감을 수용한 것이라면 많이 늦었어도 이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 이분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추위과 굶주림, 그보다 그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라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절망감이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겪었을 가장 혹독한 시련을 인고 한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보상하려면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이분들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최소한 일본이 강제 예치시킨 임금에 대하여 지금이라도 적극 나서 해결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사할린에 남아 계신 1세들과 아직도 탄광촌에 홀로 남아 쓸쓸히 연명하고 있는 1세들의 미망인들을 위한 돌봄 시설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오도 가도 못하도록 방치한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진정한 사과 또한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글레고르스크, 2017,014년 만에 다시 만난 우글레고르스크 할머니들. 그때나 지금이나 할머니들의 작은 소망은 kbs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지연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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