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쓰 vs 주님을 아는 지식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창6:11, 개역개정)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사11:9, 새번역)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결의되고 만 두 달을 넘겼다. 5천만이 들고 일어나도 끄떡도 않을 거라는 노회한 정치인의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드라마보다 재밌고, 홈쇼핑 매출을 떨어뜨릴 만큼 우리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차가운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자연처럼, 우리 민족에게도 그런 시간이 되어 주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경험적 민주주의 교육의 현장인가! 어린이들은 부모를 졸라 촛불집회에 나가고 노인들도 역사의 현장에 마지막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한다. 매주 광장에 모이는 수십만의 숫자는 석달 동안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나머지 그 경이로움이 평범해져 버렸다. 그러나 그런가? 결코 아니다. 이제 봄과 함께 마지막 썩은 뿌리를 뽑고 땅을 고를 날이 머지 않다.

피청구인의 변론을 최대한 허락했던 헌법재판소는 이제 그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고작 찌라시를 믿은 여당과 수구집단들은 기각을 확신한 나머지, 헌재결정에 불복해서는 안된다는 합의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 합의문은 제 발등을 찍는 도끼로 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80%가 결정하고 참고 기다리는 시간과 뜻을 정치권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은 추후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 누가 그 합의의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우리는 헌법재판관 9명(현재는 8명)의 무엇을 믿고 5천만의 운명을 맡긴 채 ‘기다리고’ 있는가? 이 사회를 지탱해나가는 최소한의 양심과 집단지성을 믿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미 국민이 결정하고, 정치권이 대리해서 처리한 사실상의 판결을 절차적으로 마무리할 의무를 졌을 뿐이다. 그들에게 그 재판의 전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이며 착각이다. 그들은 신이 아니다. 그들은 그 모든 인간적 약점, 개개인이 지닌 정치적 신념, 그리고 욕망과 두려움을 넘어선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믿는 믿음의 바탕에 우리는 ‘법’을 세운 것이다. 그 법이 법대로 집행되기를 촉구한다.

하나님의 법, 사람의 법

법(法)은 다른 말로 진리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법(佛法)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토라(법)라고 한다. 법은 원래 신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위한 것이었다. 높고 고귀한 존재이신 신의 인간을 향한 메시지가 바로 법이다. 인간이 잘 살기를, 행복하게 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법 아래서 법 대로 살아갈 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질서도 세워진다. 그러나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서 법을 이용한 세력도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말이다.

창세기 6장 11절 이하 노아시대는 ‘무법천지’(새번역)였고, 하나님은 그 무법천지를 물로써 심판하신다. 이 때 ‘하마쓰(폭력, 잘못, 불의, 불법)가 땅에 가득했다’고 되어 있다. 성경에 토라(법)가 처음 나온 본문은 창세기 26장 5절인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켰다는 서술이다. ‘하마쓰가 땅에 가득했다’는 구절과 함께 떠오르는 성경구절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다’(사11:9)이다. 즉 하마쓰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불법과 법, 불의와 정의, 폭력과 평화의 대립인 셈이다.

지금 헌법재판소가 하고 있는 것은 탄핵재판이 아니라, ‘탄핵심판’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마치 형사재판의 형태로 호도하며 변론을 이어나가고 있다. 탄핵심판은 범죄 유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대통령 탄핵결정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피고가 아니라 피청구인이다. 그러므로 단 한번의 심판으로 사태를 종결짓는다. 항소는 없다.

재판관은 그곳에 인간 아무개로 앉지 않는다. 그들은 법복을 입고 법관으로서 의무를 수행한다.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믿고, 한계를 인정한 가운데서 권위를 부여한 것이다. 법복을 입는 순간 그들은 법의 아이덴티티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목사가 성의를 입고 강단에 서는 것도 인간 아무개로서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을 수 없으나 성의로서 그 존재를 덮고, 말씀의 대언자로서 서는 것이다.

이 법이 상식적이고 정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실현될 때는 평화다. 평등, 정의 등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불의, 폭력, 불법 즉 하마쓰가 없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힘 아래 굴복한다. 그러나 하마쓰가 땅에 가득할 때, 즉 무법천지일 때는 어떤가? 오늘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최순실과 그의 패거리들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때, 공무원들이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경험했던 세상이 바로 무법천지였을 것이다. 예컨대 탄핵이 기각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법천지가 펼쳐질까? 아니 탄핵기각 그 자체가 심판해야 할 하마쓰다.

민중은 메시아를 기다린다

힘없는 민중인 우리는 콧바람에도 꺼져버리는 약한 촛불을 들고 일어섰다. 힘없는 사람의 힘은 오직 힘없는 사람들의 연대뿐이다. 그러나 100만이 모이고 1000만이 모여도, 끄떡하지 않는 악의 세력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연대를 넘어서는 힘을 기대한다. 하나님의 직접개입, 하나님의 심판! 역사 속의 민중혁명들은 욕망으로부터 일어난 폭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개입이었을 것이다.

예수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수많은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스러지던 시대였다. 법이 아니라 힘과 돈으로 억압해 오던 때였다. 저항하거나 또는 저항하지 못한 사람들의 절망이 쌓여가던 시절에 갈릴리 한 촌에서 한 깨어난 젊은이가 불의와 폭압적 질서에 맞섰다. 그리고 숨죽이고 있던 민중들이 따라 일어났다. 이번에도 승리를 꿈꾸면서. 어쩌면 어떤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길 밖에는. 그러니 오늘, 헬조선의 흙수저들에게 촛불의 연대는 아직 절망이 아니라는 성령의 은총인 것이다.

억압과 착취의 세상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 불의와 부정의 사건 앞에서 우리에게 다시금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 줄 방법은 무엇일까? 탄핵이 인용되면? 정권이 교체되면? 그러면 그러한 새로운 세상이 올까? 모세는 그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다. 예수는 그 시대 그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설교했다. 절망과 숨죽임 속에서 생겨나는 생명과 정의와 평화에 대한 열망, 그것으로서 이미 하나님 나라였는지도 모른다.

민중은 메시아를 기다린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악한 세상을 심판하고 약하고 억울한 민중을 구원할 분이시다. 누가복음 3장 6절은 바로 그 메시아가 와서 이룩할 세상의 청사진이다.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3:7)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다”고 하였다(같은 내용 갈3:28).

누가복음 3장 7절은 민중의 각성을 말한 것이다. 민중이 그것을 보았다. 골로새서 3장 11절은 당시 기득권, 지식인의 각성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구절이 공히 가리키는 곳은 정의와 평등의 세상,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였다. 오늘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말하는 정치인들, 지식인들, 그리고 우리들은 어떤 것을 보았고, 어떤 것을 깨달았을까? 누군가의 선동에 이끌려 또다시 욕망에 이끌려 새로운 대한민국을 입에 담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오늘 광장을 보라. 있는 그대로 ‘민중’으로 일어선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 청소하는 아주머니,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이, 청소년, 어린 아이들의 살아 숨쉬는 언어들은 희망과 재치와 풍자, 그리고 불의를 향한 단호한 심판의 의지를 담고 있다. 어렵게 써내려가는 지배자들의 법조문을 넘어서는 지혜의 언어들이다. 광장에서는 이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거기에 양심적 지식인들이 합세했다. 기득권을 버리고 민중 속에서 세상을 바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의 바울들이다. 모두 출세하여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을 따라 불의의 길로 갈 때, 의의 길로 들어선 이 시대를 밝히는 등신불들이 있다.

새로운 나라를 위해

우리는 모세의 길이 아니라 예수의 길을 갈 것이다. 출헬조선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울 것이다. 메시아를 기다렸던 로마 식민지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이 주신 하늘의 메시지는 가난과 슬픔과 온유와 의를 위해 일하는 민중들을 통한 하나님나라 건설이었다. 식민지 땅을 벗어나서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 누군가 힘 있는 자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민중의 손으로, 재물과 능력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가난해짐으로써 세우는 나라(마5:3)였다.

모세는 왕자의 신분을 버렸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바울 역시 순교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새로운 지도자는 이러한 희생과 죽음을 각오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자기 뱃속을 채우는 데만 몰두할까? 메시아를 기다려온 이스라엘에게 예수께서 주신 것은 메시아가 아니라, 그들 각자가 예수로서 부활하는 것이었다. 부활은 예수의 육신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다. 만약 실제로 죽은 육신이 살아난 부활이었다면 기독교는 신비종교로 그 운명을 다했을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의 깨어남이었다. 밀알이 땅에 묻혀 밀알 그대로 있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이치다. 진리다. 제자들이 깨어남으로써 기독교는 새로운 세상의 희망과 빛으로 민중들의 절망과 어둠을 깨뜨렸던 것이다.

촛불정국, 탄핵정국이 오래 되면서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달려온 수많은 세월과 수많은 희생을 헤아려보면, 어둠 너머에서 우리보다 오래 어둠을 밝혀 빛의 때를 기다려온 그 얼굴들이 하나 하나 촛불 속에 비쳐온다. 우리가 다시금 한 사람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꿈으로 돌아간다면, 예수의 육신의 부활을 기다리다 자기의 부활 없이 죽어갔을 그 누군가의 반복이 될 뿐이다. 지난 10년, 헌법 없이 살아온 이 백성에게 헌법 1조 1항은 민중이 주인된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다. 주권자로서 ‘나’를 깨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 1항)

탄핵심판이 길어지자 깜짝 놀랐던 부패기득권 세력들이 다시 기력을 회복했다. 그들은 다시금 세치 혀로 법치를 말한다. 그러나 그 법은 그저 자기들 뱃속이나 채우는 밥으로서 법이다. 법(法)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심판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미쉬파트’이다. 이 단어에는 공의, 정의, 법도라는 뜻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해 온 방식대로’라는 뜻도 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대로 거슬리지 않고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법대로’의 의미로.

가진 것이 많은 저들의 악다구니는, 심판이 끝나도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이 저들을 부활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세워낼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가난의 조건을 이미 충족하고 있다.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다. 물질이 아니라 진리로, 하마쓰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이 정국이 마무리되면, 우리는 다시금 법 없이 법대로 살아갈 것이고, 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또다시 법 운운하며 세상을 뒤집으려 할 것이다. 어림없는 소리다. 진리(法)는 악인과 가는 길이 다르다(잠14:22).

김종수 목사 (목포산돌교회) webmaster@ecumenian.com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