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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돈에 사랑을 담아내는 일<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7.03.02 11:06
이옥희 선교사 (제일 윗쪽 가운데) ⓒ에큐메니안

지난해에도 인도의 케랄라와 난달, 아도니와 카림나가르에서 여러분들이 카톡과 이메일로 교회건축이나 기타 건축 지원을 요청해 왔다. 예나 지금이나 건축 요청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 같다.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계획하고 준비하셨으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후원을 요청하시는 분들은 이런 나의 대답이 너무 상투적이고 평범하다고 생각하여 더 확실한 약속을 해주길 원하지만 나로서는 그럴 수가 없다. 선교회가 건축후원금 기금을 쌓아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분들의 후원으로 일을 추진하기 때문에 후원의 손길이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 이름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후원금을 마냥 기다리며 일을 추진해왔지만 때로는 느낌으로 후원하실 분과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 때는 놀랍게도 후원자가 먼저 찾아와서 “여호와 이레”라고 하며 후원금을 맡길 때도 있다. 

교회 건축, 애간장이 타는 일 

연말에 특별히 품고 있는 교회가 있어서 찾아갔다. 특별히 한 장로님께서 일 년 전에 공공석상에서 인도교회 건축 후원에 대한 의사 표명을 하였던 터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그 분께 건축후원에 대한 계획을 여쭈면서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그분의 대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고 말에 가시가 있어서 아팠다. 

“선교사님이 교회건축 후원을 하나 더 받아서 교회 건물 하나를 더 완성하면 더 많은 명예와 영광을 받으시지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다 자기를 위해서지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는 그 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반문을 하였다. 
“교회 건축을 많이 하면 선교사님이 개인적으로 유명해지고 영광과 명예를 받지 않습니까? 건축비는 교회나 개인 후원자가 내는데 영광은 선교사님이 다 받으시잖아요. 이제는 한국 경기도 나쁘고 교회사정도 어려워져서 후원받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숨이 탁 막혔다. 본인이 자원해서 건축 후원할 계획이 있다며 추천하고 싶은 교회가 있으면 방문해주라고 요청을 해서 간 것이었는데 적반하장 격으로 사람을 모욕하며 은근 슬쩍 후원을 강요하지 말라고 침을 놓으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 년 전에 적은 돈으로 큰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인도에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이 복음전파에 아주 좋은 방법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셨던 분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지셨다. 화를 내서 그분을 통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불쾌감과 수치감을 추스르며 그 분이 교회건축과 나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낮은 음성으로 조곤조곤 말을 시작하였다.  

“제가 제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교회 건축에 열심이라고 생각하셨군요. 머릿돌에 이름 석 자가 적히고 봉헌예배 시 귀빈 예우를 받는 것을 명예와 영광으로 간주한다면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도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도 교우님들이 저에게만 하는 특별한 예우가 아니고 인도교회의 오랜 전통에 불과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장로님에게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행사에서 인사하고 박수를 받으려고 교회 건물을 짓는 그런 힘든 모험은 하지 않습니다. 건물 하나가 완성되려면 얼마나 애간장이 타고 오장육부가 썩는지 아십니까? 후원금이 한국에서 인도로 오고, 인도 총회에서 노회로 가고, 노회에서 지교회로 가는 과정이 얼마나 느리고 힘든지 아십니까? 착공을 해서 완공을 하고 봉헌할 때 까지 지프를 타고 6 ~ 10시간 넘는 거리를 최소한 5~ 10번은 다녀야 완공됩니다. 어떤 케이스는 3, 4년에 걸쳐서 완공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 저는 후원자 앞에서 죄인이 되고 후원받는 교회에는 폭군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냐고요? 첫째는 대부분이 날품팔이인 가난한 달릿 교우들이 헌금하며 기도하는 것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저를 그 일에 써주시기 때문이고요. 둘째는 반듯한 교회 건물이 완성되면 달릿들이 예배드리는 순간만이라도 깨끗한 곳에서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요. 셋째는 건물이 있으면 복음을 전하며 넌 크리스천에게 전도하기가 쉽기 때문이고요. 넷째는 우리 조상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서구교회에 받은 사랑과 진 빚을 갚을 수 있기 때문이고요. 다섯째는 한국교회 교우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나눔으로 성숙한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지요. 만약 제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했다면 힘들어서 그만두었겠지만 후원금이 오지 않아서도 벌써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나는 가슴을 진정하며 마지막으로 한 방을 날렸다. “장로님, 세상에는 제 말을 듣고 교회건축 후원을 할 순진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교회건축 후원은 오직 성령의 감동감화로만 가능합니다.”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그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내 눈길을 피하였다. 그리고는 “맞습니다. 교회 건축 후원은 선교사님이 권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고 꼬리를 내렸다. 

교회 건축, 기적의 현장

1999년 10월에 뉴델리에서 남인도 데칸고원 시골로 내려갔을 때 그 시골에서 할 일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고 실망한 나머지 다시 도시로 나가길 원하였었다. 그러나 도시로 나간다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정쩡하게 머물고 있는 잠말라마두구 캠벨병원 주변의 시골마을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돌아다니며 거리에서 나무그늘에서 마당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설교는 아주 단순하게 <예수님이 구세주시다>는 말씀을 반복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에 할애를 하였다. 기도는 한국어로 해도 되고 방언으로 해도 무방함으로 전혀 부담이 없었고 무엇보다 환자들과 어린이들 붙잡고 안수 기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뽀남빨리는 잠말라마두구에서 지프를 타고 40분 정도 광야로 들어가는 마을이었는데 나는 그 마을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하여 가시나무 그늘에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교우들은 기도회가 끝나면 낡은 헌금 주머니에 5루피, 10루피 씩 헌금을 하였다. 그 당시 날품팔이 여성들의 하루 인건비는 20, 30루피로 한화로 치면 400원, 600원 정도였다. 그들이 바치는 5루피, 10루피 헌금의 용도는 교회건축이었다. 

당시는 25평, 30평의 교회건물을 지으려면 5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헌금 액수로는 20~30년은 족히 모아야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들은 늙고 병들어 죽어갈 터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무 그늘도 시원하고 좋은데 굳이 돈을 들여서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을 하였다. 교우들은 이구동성으로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대답을 하였다. 건물이 필요한 이유를 물은즉슨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싶고 말씀도 배우고 싶고 기도도 하고 싶다. “고 막힘없이 대답을 하였다. 그들의 열망에 붙잡힌 나는 그 때부터 하나님께 교회건축을 이루어 주시라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교회 건축은 뽀남빨리교우들 만의 열망이 아니었다. 타디가틀레, 카지뻬따, 네멜라딘네, 비추왈리빨리, 순꿀라와르빨리도 교회 건축을 강력히 염원하였다. 치르다나깔루, 빨레빠두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를 가든지 교회 건축을 원하는 달릿교우들의 염원과 열기가 온 몸으로 감지되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주님, 저는 모든 교회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가까운 친지나 친구, 이웃 중에 교회건축비를 후원할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달릿교우들의 열망을 담아낼 재간이 없습니다. 주님 제 몸을 드릴 테니 팔아서 원하는 달릿교회 건축을 다 이루어주세요.” 라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다음 해 봄, 달릿교우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5개 교회를 일시에 건축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고 기적의 역사는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선교현장을 방문한 분이나 봉헌예배에 참석한 분 중에서 누군가를 성령의 감동으로 부르셨고 그 분들의 응답으로 후원의 물결이 데칸고원에 파도치도록 하셨다.

어느 날 이침, 자원해서 건축 후원을 약속했던 사람에게 “명예, 영광” 운운한 말을 들은 것이 억울해서 인지 자꾸 곱씹었다. 어떻게 그렇게 180도 다르게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들은 말일까? 아니면 본인이 스스로 생각한 것일까? 하며 그 속마음을 헤아리고 있을 때 어느 권사님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가능하면 빨리 오라는 말에 놀라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 분은 신명이 나있었고 밝게 웃으시며 크고 두툼한 서류 봉투를 주셨다. 

“아 글쎄, 아침에 딸이 성탄 선물이라며 주고 갔는데 돈이야. 생각치도 않은 꽁 돈인데 이런 돈은 미련 없이 좋은 일에 써야 되어서 전화를 했어요. 세상에 좋은 일중에 교회 건축을 하는 것이 최고 좋은 일이라서 해를 넘기기 전에 건축비를 넘겨드리려고 목사님을 호출했어요. 연말에 교회 건축을 하나 더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딸을 통해서 축복해주셔서 정말 신나요. 신나!”

그의 기쁨이 나에게 전이되었다. “얼마나 소원을 하셨으면 따님께 받은 선물을 고스란히 헌금하시나요. 참으로 장하시고 복되십니다.” 그는 인도를 방문한 이래 해마다 서너 개의 교회 건축을 해오셨고 그것이 자기 남은 생애의 과제라고 하였다. 그의 적극적인 참여로 교회건축 후원은 급물살을 탔고 나는 건축 현장을 순회하며 격려하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그는 사람이 사는 동안 복이 있어야 교회 건축에 3번 정도 참여를 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보통 1회 내지는 2회 참여를 하고 세상을 떠나는데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로 많이 참여를 하게 되어서 참으로 영광스럽고 기쁘다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기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건축 후원의 길을 잘 안내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였다. 나는 정중하게 
“권사님께서 달릿교회를 세워주시니 제가 고맙지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시니 제가 고맙지요. 선교사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돈만 내고 편히 교회 건축했다는 영광을 받는데 목사님은 몸으로 뛰어야 하니 하나님께서 보실 때 더 귀하실겁니다.”
“권사님,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치요. 생각해보세요. 현장에서 종처럼 수고하는 사람이 없으면 헌금은 돈 그대로요. 수고하며 땀 흘리는 분이 있어야 비로소 돈이 건물로 바뀌지요. 그리고 돈이 건물로 바뀔 때도 종이 충성스럽지 않으면 건물이 돈의 액수보다 허술하게 나오게 되요.”  

권사님은 주어진 일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는 내 마음을 꿰뚫고 계셨다. 그의 말이 은혜의 소낙비가 되어서 나를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던 크고 작은 내 안의 가시 같은 말들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가시가 제거되니 그야말로 평화와 감사가 넘쳤다. 

선교, 돈에 사랑을 담아내는 일

참으로 그는 만날 때마다 시의적절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주셔서 나를 감동시켰고 그 감동으로 주어지는 일을 힘차게 추진할 수 있도록 밀어 주셨다. 무엇보다 권사님의 말을 통하여 돈을 건물로 바꾸고, 돈을 사랑으로, 위로와 격려로 바꾸는 일이 내 몫임을 다시금 뜨겁게 자각하였다. 돈이라는 물질에 사랑, 희망, 생명, 평화, 정의, 감사와 믿음을 순간순간 힘차게 의심 없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담아내야 하리라.

그 즈음에 나는 인도 고아원에서 받은 후원 요청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에서 4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한 교회에서 성탄선물비로 후원 받기도 힘들지만 금액을 작게 나누어서 1만원씩 400명에게 모금을 할라치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였다. 수증에 후원금도 없었지만 내가 세운 고아원도 아닌데다 임박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무신경증이 싫어서 마음에서 한쪽 구석으로 제켜버렸다. 사실 우리가 세운 고아원의 운영도 벅찬데 이웃 노회 산하에 있는 고아원에 까지 신경을 쓴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성탄절이 가까이 오면서 아이들의 큰 눈망울이 떠올랐고 선물 하나로 기뻐할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흔들어 왔다. 비록 부담스럽고 불편해도 선물을 받고 성탄절 하루 종일 행복하게 웃고 떠들 아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의 추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마음은 그렇게 변하고 있었지만 돈을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당장 모금이 어려우므로 일단 내 개인 후원금에서 지출하고 나중에 후원자가 있으면 반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피일차일 미루는 중에 성탄절이 눈앞으로 다가 왔다. 

그 날, 세상의 모든 돈을 사랑으로 바꾸는 것이 선교사의 몫이고 내 몫이라는 강한 진동을 느끼며 카톡으로 인도 고아원에 ‘1월 초에 인편으로 3,000불을 보낼 터이니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사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어 보냈다. 그 쪽에서 ‘여호와 이레’의 함성을 지르며 고아원과 호스텔 학생 300명 전원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답을 보내왔다. 또한 ‘한국의 형제자매들을 통해서 보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누겠다는 연락이 왔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이들이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온 세상의 아이들과 선물을 나누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았다. 감동으로 나 혼자 울고 웃는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저 박 목사 입니다. 저희 교회가 이러저런 사연으로 선교헌금을 모았고 목사님께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가능하시면 1월 셋째주일에 오셔서 선교보고도 해주시고 예배 후에 선교헌금을 전달하는 순서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전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박 목사님의 음성이 천사의 음성처럼 들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자르르 흘렸고 온 몸이 감동으로 떨렸다. 선교후원금 금액이 대충 400만원이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그 귀한 헌금 후원자를 나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음을 직감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독일에서 카톡이 왔다. 나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겠다며 한 제자가 120여 만 원을 송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향의 친구가 100만원을 소리 소문 없이 입금해주었다. 하나님께서 박 목사님과 친구와 제자를 통해서 당신이 선교의 주인이며 부족한 종이 일을 하도록 공급하시는 분이시며 고아를 돕는 일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선교가 물질에 십자가의 사랑을 담아내는 일임을 천명해주셨다. 없는 돈에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담아내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선교임을 가르쳐 주셨다. 선교는 돈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움직이는 것이요, 선교사는 믿음으로 그렇게 살아내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 세상은 돈을 금고에 쌓아두고도 미래가 불안해서 온갖 모양의 돈을 땅과 대형 호화건물, 대형 상업형 위락용 스포츠 시설 등등에 투자하는 사람들과 사회, 기업과 정치로 인하여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선이 악으로 몰리고 악이 선을 가장하여 국민들의 가치관이 쉼 없이 흔들리고 있다. 불의가 정의를 핍박하여 정의가 지하 어둠 속에서 빈사상태에 이르러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가 된 현대사회 속에서 선교사에게 “돈에 사랑과 희망을 담는 일, 생명을 살리며 평화와 정의를 담아내는 일에 깨어 있으라.” 고 하신다.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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