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분들, 특별히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고, 그의 시를 사랑하고, 가슴에 새기고 계신 모든 분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 시인이 거쳤던 일본의 각지에서 그의 삶과 시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오늘 추도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저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지금 이 곳 릿쿄대학에서 교목으로 재직했습니다. 이 채플은 10년 일본에 일하는 동안에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전쟁 전 1942년 1학기 동안 릿쿄 영문과에 속했던 당시 25세의 식민지 출신 청년 윤동주도, 그가 크리스찬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분명 이 곳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렸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이 앉아계신 회중 석 어딘가에 그의 체온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작년 한국에서 개봉 상영되어 화제가 된 영화 <동주>를 아시지요?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대해서 청년들에게 올바른 시대를 가르쳤던 분, 그래서 당국의 압박과 박해를 받았던 당시 영문과 교수이자 성공회 사제로 교목으로 일했던 타카마츠 타카하루 신부님의 기념 동판이 이 곳 채플의 벽에 걸려있기도 합니다. 아직 못보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강단에 오른 유시경 신부 ⓒ유시경

시인 윤동주의 족적이 남아있는 이 곳 채플에서 그를 기억하고 추도하는 공식 행사가 시작된 것은 지금부터 10년전입니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이 릿쿄에 왔던 때가 1942년이니, 65년만의 추도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뒤늦게야 시인을 기억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저의 릿쿄 재직 중에 한 분이 보내오신 한 통의 편지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입니다. 일생을 걸고 윤동주의 족적과 흔적을 줄곧 찾아다니고 계신 분입니다. 10년도 넘은 편지지만, 아직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윤동주와의 새로운 만남으로 이끌어 준 계기였던 때문입니다.
 
사실 저 자신도, 한국의 대부분의 분들처럼 '윤동주'라고 하면, 교과서에서 배운 '서시' 정도를 외우고,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겨우 그 정도였습니다. 한편 그 정도로 한국에서 유명한 시인이었던 만큼 일본에서도, 적어도 릿쿄대학 정도는 잘 알고 있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전국이 배용준=용사마 붐으로 달아오른 때였지만, 오로지 윤동주=윤사마만을 바라보고 있던 야나기하라 씨를 위시하여, 명예교수 야마다 선생님 등의 자문과 많은 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를 시작했습니다.

릿쿄회는 몇 가지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첫째, 매년 이 곳 채플에서 모여서 추도의 뜻을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시를 읽고, 때로는 한글로, 때로는 일본어와 영어, 중국어로, 그리고 윤동주 연구가, 시인, 문화 예술인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그의 시와 인생을 기억하고 돌아보며,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릿쿄대학의 배려, 여러분들의 참여에 힘입어 10년 동안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둘째, "식민지 청년 윤동주에게, 당시의 릿쿄는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었던가?"를 물었습니다. 일본의 학생 마저도 전쟁 준비에 내몰렸던 시대, 그런 때에 문학을 위해, 시를 쓰기 위해, 더욱 큰 공부를 위해 중국을 떠나, 조선반도를 관통해서 부산까지 가서, 배를 타고,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시모노세키로 건너와서, 다시 이 곳 동경까지 먼 길을 찾아왔던 한 조선 청년 윤동주에게 릿쿄대학은 도저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땐 그랬습니다. 그를 기억하면서, 자 그렇다면 그의 후배들, 지금 릿쿄대학을 찾아온 윤동주 시인의 후배들에게 공부를 도와주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3년 동안의 논의를 거쳐 '윤동주 국제교류 장학금'이 실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 장학금의 의미는, 단지 릿쿄의 10개 학부마다 1명씩의 한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수여한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 다시는 윤동주처럼 좌절하는 청년을 만들면 안된다. 다시는 젊은이들을 군사훈련으로 내모는 대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의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다시는 이 나라가 전쟁으로 치닫는 역사를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선언이요, 미래에 대한 다짐입니다.

릿쿄 채플에 모인 학생들과 한,인 성도들. 이날 추모예배에는 4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윤동주를 추모했다 ⓒ유시경

또한, 우리가 윤동주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윤동주 한명 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동주로 대표되는 역사 속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다행히 '동주'는 되살아났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의 편지를 받아 소중히 간직한 친구 정병욱이 있었고, 그가 학도병으로 불려 전장으로 가면서 소중한 문서라고 어머님께 맡겼지요. 시골집 어머님께서도 항아리에 넣어서 마루 밑에 넣어 꽁꽁 감추어 보관했고, 또 정말 기적적으로 이 친구가 전장에서 살아돌아왔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윤동주는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생각해보면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이들, 이름만이라도, 유골만이라도, 모자 하나라도 남았다면 좋았을텐데...
 
그래서 저는 오늘 릿쿄회의 출범 당시에 지녔던 또 하나의 목표를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윤동주 시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자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동주'는 분명 이 곳에서 '졸업예배'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2곳이나 대학을 다녔는데, 어느 한 곳도 졸업을 못했습니다. 첫 유학지인 릿쿄立教대학도, 두번째였던 동지사同志社대학도 모두 졸업을 못했습니다. 그는 물론 전쟁과 식민지라는 비극적인 시대 속에서 공부도, 문학도, 신앙마저도 비뚤어지고, 졸업의 꿈은 꾸지도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을 대표해서 그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면 어떻겠습니까? (참석자 중 일부 박수) 박수로 뜻을 함께 해 주시겠습니까? 유족을 초대해서 졸업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가능하다면 향후 2-3년 안에 졸업증서를 가지고 윤동주의 묘지에 가서 보고를 하고 싶습니다. "동주씨, 졸업 축하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협력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저의 애창시로, 윤동주 시인이 릿쿄 시절에 쓴 "쉽게 씌어진 시"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며 마치고자 합니다. 릿쿄 재직 시절, 저 역시 시인과 비슷한 심정을 느낀 바 있습니다.

ⓒ유시경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해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결의를, 날마다 스스로 새로와지겠다는 굳은 다짐이 담긴 시입니다. 그의 시심을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 삼아, 미래를 함께 열어가기를 바랍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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