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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루터에게 돌아가자'가 답일까이정배 교수, ‘종교개혁 신학의 3대 원리에 대한 메타 비판’
김령은 | 승인 2017.03.03 16:46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교회는 입을 모아 “종교개혁 정신으로 돌아가자”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로 가득하다. 한국교회 타락의 원인이 개혁 정신에서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라는 진단은 시기적절했다. 목사, 평신도 할 것 없이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라는 세 가지 기치 앞에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시 저 세 가지 원리로 돌아가기 위해 회개의 무릎을 꿇자는 이들도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 기도회도 곳곳에서 준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원리를 다시 개혁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바로 이정배 교수(감신대 은퇴교수)다. 이정배 교수는 지난 28일(화) 평화교회연구소가 주최하는 ‘우리시대 종교개혁’ 연속 세미나에서 ‘종교개혁 신학의 3대 원리에 대한 메타 비판’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3개의 ‘오직(sola)’ 교리의 비판적 재구성으로 출발해 작은 교회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이정배 교수 ⓒ에큐메니안

로마서는 어떤 책인가?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개혁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로마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로마서를 제대로 독해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자들이 로마서를 읽었던 바로 그 시각으로부터 빨리 탈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로마서는 당시 제국신학에 대한 거부의 기록이다. 또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성전신학에 반대하는 글이다.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 제국신학, 성전신학을 거부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이자, 새로운 삶의 양식들을 찾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어떻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될 것인가. 그 다음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될 것인가. 또 이방인으로 기독인과 유대인으로 기독인 된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를 고민했습니다. 즉, 세상의 전체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꿈꿨던 게 바울 사상의 핵심입니다. 로마서는 제국주의적인 상황에서 이겨내고 넘어서려고 하는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그런 시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타락한 카톨릭의 관점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 행위는 중요치 않을까?

그렇다면 로마에 기록된 ‘하나님의 의’를 통해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 ‘오직 믿음’이란 무엇일까? 완전히 행동을 제외한 ‘오직 믿음’을 말하는, 절대적 행위의 배제일까? 이 교수는 "그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애초에 바울신학에 있어서 행위가 없는 믿음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울 신학 핵심은 ‘믿음이 없는 행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당시 로마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에게 가부장제도, 노예제도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가 됐다는 것은 더 이상 그러한 가치관으로 살면 안 되는 것을 의미했다. 노예는 자유하게 해야 하고 여성이 남성이 요구하는 잠자리를 거부하면 존중해 줘야했다. 따라서 ‘오직 믿음’이라는 것은 당연히 여겨지던 로마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가 됐다고 하면서도 로마 관습에 따라 사는 것은 믿음 없는 행위의 여실한 표본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 시대로 가져와서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에 물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양식을 들여다보면 우리도 믿음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자본주의에 먹혔습니다. 어떻게 교회를 계속 존재하게 하고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대안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 이것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해내는 것이 오늘날의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은총’, 원죄 이전에 원복이 있다 

그동안 신학은 ‘은총’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이성, 의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해 왔다. 그 이면에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신학적 전제가 있다. 바로 ‘원죄’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과 ‘원죄’는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라고 했다. 

어거스틴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어온 ‘원죄’의 전통에 반해, 이 교수는 ‘원복’(Original Blessing)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성공회 신부인 매튜 폭스가 주장한 ‘원복’ 개념은 인간을 타락한 존재가 아닌 창조성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 이 교수는 ‘원죄’ 전통에 따라 인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의 소수자들을 더욱 음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가진 역할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기독인들의 시각이 정죄 받아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이 교수는 하나님의 은총은 곧 하나님의 의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의, 정의의 반대급부는 인간의 법이다. 실례로 수많은 이주민들을 돌보는 것은 실정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다는 것은 ‘체제 밖을 상상하는 일’이라고 했다. 

평화교회연구소 주최로 '우리시대 종교개혁' 연속세미나 세번째 시간이 진행됐다. 평신도, 목회자, 신학생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에큐메니안

“성서에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노동자들이 어느 때에 와도 하루 살 품삯을 줍니다. 이 체제 안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서 기자는 하나님 나라가 그와 같다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사유는 주변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실정법에 맞서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범법자가 되어야 옳을 지도 모릅니다. 시청 앞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실정법 안에서 무엇이 잘못이냐 하지만 하나님 나라, 체제 밖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잘못된 일인 것입니다.” 

‘오직 성서’, 이제는 자기 발견의 눈이 필요한 때 

이 교수는 성서를 볼 때 필요한 세 가지 눈으로 신앙의 눈, 의심의 눈, 자기 발견의 눈에 대해 소개했다. 이 중, ‘자기발견의 눈’은 인도의 신학자 파니카가 소개한 것으로, 자신의 세계관 안에는 없지만 다른 세계관 안에 있는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눈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오늘날의 ‘오직 성서’란 “성서 66권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완벽히 다 들어있다고 믿는 제사장적 믿음이야 말로 가장 큰 미신”이라는 토마스 알타이저의 말을 빌려, 정경화 과정에서 탈락된 위경과 외경을 성경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공동체들은 그들만의 유일한 성서가 있었다. 초대교회는 다양한 해석 공동체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성경을 읽고 따랐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성경은 정경화 과정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탈락됐다. 

이 교수는 그 당시 제외됐던 수많은 위경, 외경들도 오늘 우리가 경전의 위치로 다시 삽입해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만드는 일에 공헌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기독교를 더 넓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에 덧붙여 그는 ‘오직 성서’란 성경을 내려놓고 들의 백합화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연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계시의 장이자, 세계관의 가장 큰 조건이다. 자연환경이 각각 다른 문명권에서 다른 종교가 태동됐다. 다른 환경에서 태동된 이웃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기독교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지평도 넓힐 수 있다. 

강의를 마무리 하며 이 교수는 지금까지 정리한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의 교리의 담지자로서 작은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피력했다. 그간 대형교회들이 보여줬던 부끄러운 모습들에 반해 작은 교회들은 광장과 교회를 구분하지 않고 약자들의 곁을 지키는 ‘오직 믿음’의 실천을 했다. 그것은 교회 양식 자체가 ‘작은 교회’이기에 가능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종교개혁 신학을 가진 작은 교회를 통해 탈성장으로부터 향성숙, 탈성직으로부터 향평신도성, 탈성별을 이뤄내길 바란다”며 강의를 마쳤다. 

평화교회연구소의 '우리시대 종교개혁' 연속 세미나는 계속된다. 오는 4월 18일에는 '신자유주의와 기독교'를 주제로 장윤재 교수가 강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평화교회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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