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세 번째다. 무슬림 친구를 초대하는 일이 처음도 아닌데, 상차림에 고민이 많다. 이런 날을 위해 하랄(halal meat 이슬람교 계율에 따라 도축된 고기)을 파는 가게는 이미 알아두었다. 불고기에 쓸 소고기는 거기에서 사면 되겠다. 가만, 그녀가 달걀은 먹나? 생선은 다 괜찮다고 했는데, 참치도 괜찮겠지? 와인도 안 마시나? 그녀에게 물어보려 전화기를 들다 말고는 실례가 될까 하여 관두기로 한다. 나는 너무 물어 미안하고, 그녀는 너무 묻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상이 차려졌다. 다만 국의 간이 영 싱거워 조미료를 치려는 찰나, 조미료의 이름이 ‘소고기’다시다인 것을 발견한다. 한 꼬집만 넣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하랄된 소고리로 만든 것이 아닌지라 말기로 한다. 그녀가 왔다. 여느 무슬림 여성과 다르게 오늘의 그녀는 머리에 스카프(히잡 hijab)를 두르지 않았다. 내가 그녀와의 식사를 기다렸던 이유는 사실 거기에 있었다. 그녀와 같은 여성들을 드물게 본적은 있었지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러기에 오늘 밤 그녀와의 식사는 긴장되기도 설레기도 한 그야말로 낯섦과의 마주함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들었고, 뜨끈한 한국 음식은 감싸고 있는 긴장감을 가뿐히 녹였다. 나는 조심스레 묻는다. 언제부터 히잡을 쓰지 않았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부모님은 찬성하는지, 속한 집단에서 아웃팅은 없는지 등등을 묻는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웠다. 근래에 이보다 더 공손한 영어를 구사했던 적은 없었다.     

나의 조심스러움이 무색해질 정도로 그녀의 대답은 당찼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히잡을 벗었고, 부모님과 친척들은 그녀의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여줬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결정권을 획득한 데에 기뻐하였고, 여전히 히잡을 쓴 여성들을 존중하며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다만 그녀가 문제 삼았던 것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그녀는 영국 태생이지만, 그녀의 부모는 방글라데시기에 생물학적으로 아시안이었다. 대학의 백인 여성들은 그녀가 히잡을 벗어 던진 것을 축하했다. 이러한 태도는 서구(백인) 페미니즘적 접근으로서, 지배자의 앎의 논리로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무슬림 여성은 억압당하고 있다’, ‘여성 해방을 위한 계도가 시급하다’ 등의 생각이 얼마나 그들에게 일반화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인종적, 종교적 편견의 일상화가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들의 태도가 차별주의적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모든 축하와 안도의 눈길을 거부하며 불쾌함을 표했다고 했다. 

Waheeda Mullulah, Green억압과 학대는 히잡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었다. 무슬림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히잡을 벗지 않은 채로, 무슬림 여성들을 향한 편견을 깨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작품 출처http://muslima.globalfundforwomen.org/gallery)

비백인이자 아시안 그리고 무슬림인 그녀는 백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하위주체로서 존재했다. 하위주체는 지배자의 앎의 그물망에 쉽게 포획된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지평 안에서만 이해되며, 지배자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선 비합리성이나 이해 불가능한 야만성으로 폄하된다(윤지영). 뿐만 아니라, 사랑, 포용, 관용, 인권 등은 계속해서 이야기 돼야 하겠지만, 아름답기 짝이 없는 저 단어들의 이면에도 지배질서가 들어 차 있다. 왜 네가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가? 그 자격을 너에게 준 이는 누구인가? 네가 믿는 신이? 너는 왜 너의 종교와 믿음을 나에게 들이대는가? 왜 너만이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누가 내게 인권을 말하는가? 누가 내가 억눌렸다 말하는가? 너는 왜 해방시키는 자로서 존재하는가? 나는 왜 네 앞에서 억눌린 자로서 서 있는가? 왜 네가 나를 계도하는가? 그녀의 불쾌감은 이러한 앙칼진 물음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물음 앞에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기피 음식이 뭐냐 묻지 않았던 데에는 단순히 피차 미안해지지 않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무슬림에 대한 무지를 들키고 싶지 않았고, 기독교적 폐쇄성을 뚫고 나와 타종교와의 대화 정도는 거뜬히 해내는 열린 여자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무슬림을 향한 시혜적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친구가 아닌, ‘소수자’를 대접하기 위해 식사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저 ‘핍박 받는 타자’(윤지영)로서 내 식탁에 머물렀다.

다시 생각해도 헛웃음이 터진다. 대체 누가 소수자란 말인가. 앞으로 대보나 거꾸로 대보나, 나야말로 지독한 ‘소수자’로서 영국 사회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나 스스로가 가진 소수자로서의 정치성은 싹 잊은 채, 보다 진보한 페미니스트이자 보다 문명화된 기독교인으로서 그녀 앞에 앉아있었다. 내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공손한 연유도 실은 이 맥락이었다. 나의 우월감을 공손함 속에 감췄던 것이다. 이미 서구적 가치로 흠뻑 젖어 있던 내가 그녀와 함께 서구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실소가 터진다. 

실상 ‘타종교에 대한 이해’는 낙관주의적 비현실성을 내포한다.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내가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려 할 때, 그 처음의 의도는 선할지 모르나, 결국에는 어긋나기 마련이다. 종교는 믿음을 넘어, 한 집단의 정체성이자 한 종족의 꼬리표(the label of the ethnic group) 와도 같기에, 그 집단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고스란히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을 필자는 믿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무엇을 마실 수 있는지를 헤아려서 갖추는 ‘마음씀’으로 이해의 첫 단추는 꿰진다.

낯설고 성가신 일이지만, 비로소 서로는 ‘얼굴’을 마주하고 반성적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스치듯 서로를 이해했다가 조만간 전혀 다른 존재자로서 살아가게 되겠지만(모든 관계가 그렇듯), 다른 존재자와의 반성적 대화는 차별로부터 나를 분리해 낸다. 일단은 그 낯설고 성가신 시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는 신도 없고, 믿음도 없고, 질서나 우월감도 없다. 달라서 낯선 서로의 ‘얼굴’들이 비객관적 시간 안에 머문다.

사랑, 포용, 인권, 차이 등에 관한 거창한 이야기가 ‘차별하는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그것들은 되려 내가 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일 때가 많다. 차이의 인정이란 말 역시 위험하지 않은가. 이미 그 차이는 위계화 되었기에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어버렸다. ‘너와 나의 차이’에는 수많은 위계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아름다운 담론 속에 나를 꽁꽁 숨기는 한 반성은 불가능해진다. 아름다운 담론은 가능한 뒤로하자. 대신 다른 얼굴들을 응시할 수 있는 낯선 시간 속으로 들어가자.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반성적 대화는 우월한 지향성도, 열등한 정체성도 없다는 진리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나아가 소수자는 단순히 영국 사회 내에서의 무슬림만을 일컫는 것도 아니고, 여성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며 성 소수자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소수자는 핍박 받고 있거나 변태적이거나 계도할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연령, 학벌, 성별, 고향, 국적, 종교 등등의 사회/경제/문화적 상황에 따라 언제고 소수자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것은 스스로의 다면적 정치성을 거절하는 것이며, 자기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에 대한 부정을 예고하는 것이다. 낯선 것을 마주하는 힘, 그 속에 너와 나를 위한 세상이 있다. 

<필자 소개>               김정원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 석사 졸업.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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